[서울신문]
국내 최대 축산폐수 배출 지역이란 오명을 가진 전북 익산 왕궁의 한센인촌을 생태마을로 복원한다는 계획이 삐걱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환경부와 국무총리실, 전북도, 익산시 등 7개 기관은 '왕궁 환경개선 종합대책'으로 지역 축산단지를 매입해 생태숲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경부와 환경공단은 2011년부터 하천 오염원인 왕궁 축산단지의 축사를 단계적으로 매입·철거하고 바이오 순환림(林)을 조성하고 있다. 하천과 저수지는 생태하천으로 복원해 새만금으로 유입되는 만경강의 수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축사매입 시 영업보상 문제를 이유로 난관에 부닥쳐 사업이 공전하고 있다. 현장을 찾아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점을 알아보고 관할 지자체인 익산시와 환경부의 입장을 들어봤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220억원을 들여 축사 등 토지 17만 5000㎡에 대해 협의 매입을 완료했다. 사들인 토지는 축사 외에 농지와 대지 등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순수 축사 매입 면적은 5만㎡에 불과하다. 축사 매입 이후 돼지 사육농가는 208가구에서 126가구로 40% 가까이 줄었지만 돼지 사육 마릿수는 소량 감소하는 데 그쳤다. 돼지 사육 마릿수가 줄어들지 않아 분뇨 발생량도 여전하다. 따라서 공공처리장의 적정 용량을 초과한 많은 양의 분뇨가 무단 방류되고 있다. 이처럼 환경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가축 농가들이 영업손실 보상을 요구하며 매도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웃마을에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장이 들어서는데 이곳은 영업 손실분까지 보상해 줬다며 버티고 있다. 또한 하림, 도뜰영농조합법인 등 정육 납품업체들이 가축분뇨 처리 비용이 적게 드는 왕궁 축산단지에 위탁 사육하고 있는 것도 사육 마릿수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이다.
정부는 '익산 왕궁 환경개선종합대책'에 따라 2015년까지 국고 428억원을 투입해 현업축사 면적의 80%인 30만 6000㎡를 매입할 예정이다. 축사 160개를 사들여 생태숲을 조성하고, 환경개선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한센인을 위한 양로시설 신·개축과 소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만경강 수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새만금으로 유입되는 오염원이 크게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거세지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익산시 신승원 환경위생 과장은 "환경부의 축사 매입이 휴업 중인 곳 위주로 이뤄져 가축 분뇨 발생량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면서 "생태복원 사업비를 현업축사 매입비로 전용해 우선 투입해야 수질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보상 법률에 따라 주민들이 요구하는 영업보상(휴업기간 3개월)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환경부의 의견은 다르다. 축사매입이 공익사업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영업손실 비용까지 얹어서 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매수한 토지(현업 30만㎡, 폐업 21만㎡)를 활용한 소득보전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유종열 물환경정책 사무관은 "현재로서는 영업보상비를 줄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기존 매도자와의 형평성 등을 감안할 때 영업손실 보상금을 지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가능 여부에 대해 법률자문을 의뢰하는 등 방안을 모색할 수는 있다는 의견이다.
지역 주민들은 어려움에 처한 축산농가의 처지는 무시하고 각종 규제만 강화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축산농가 대표 박기봉씨는 "낡고 오래된 노후 축사가 가축분뇨 다량 발생의 요인이므로 이를 증개축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지원을 해 줘야 한다"고 항변했다. 또한 "현재 휴·폐업 축사 매입 시 인근 식품클러스터에 준하는 영업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한센인 단체인 '한빛복지협의회'와 연계해 시위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5일에는 정부세종청사 정문 앞에서 한센인 200여명이 모여 환경부를 성토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익산 왕궁 축산단지는 현재 돼지와 닭 사육 등으로 하루 928t의 오·폐수를 내보내고 있다. 축산폐수 처리장은 처리용량이 하루 700t 규모라 초과된 228t이 무단 방류되는 셈이다. 이곳에는 익산·금호·신촌농장 등 3개의 대규모 가축농장이 있다. 자체 정화시설과 시에서 위탁 운영하는 폐수처리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개울물은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까맸다. 축산폐수는 인근 저수지인 주교제(면적 26만 4000㎡)를 거쳐 익산천과 합류된 뒤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새만금으로 유입되는 만경강의 수질오염원 중 왕궁 가축 분뇨가 3.6%를 차지한다.
이해관계가 얽힌 축산농가 환경개선 사업이 봉합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 곳곳에는 관계기관을 성토하는 현수막들이 내걸려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글 사진 익산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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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손실 보상 약속해야 돼지 마릿수 줄고 폐수도 줄 것”
이한수 익산시장
“처리되지 않고 방류되는 가축 분뇨는 수질오염의 주범이어서 조속한 해결이 절실합니다.”
집무실에서 만난 이한수 전북 익산시장은 ‘축산폐수 최대 배출지’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왕궁 축산단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부터 털어놓았다. 왕궁 특수지역으로 불리는 한센인 정착지역은 1948년 익산시 왕궁면 온수리에 요양소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조성됐다. 현재 이곳에는 전국 한센정착촌 한센인의 16%인 671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이 시장은 “이곳은 1969년부터 총 420가구 720명이 정착해 축산업에 종사하게 됐다”면서 “2007년 7월 이후 수계관리법에 따른 ‘건축허가 제한고시’로 축사의 증·개축이 전면 금지되고 축사 현대화자금 등의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부에서 감정평가에 의한 휴업축사 위주로 17만 5386㎡를 매입하고 5897마리를 줄였다. 그러나 감축목표인 7만 9263마리의 7%에 그쳐 환경개선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시장은 “왕궁 특수지역 축산인들이 요구하는 영업
손실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근거는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이나 제한과 그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다. 축산인들도 손실 보상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인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공권력
행사 ▲침해 행위의 적법성 ▲특별한 희생 ▲보상규정 존재 중 보상 규정을 제외한 3개 요인을 충족하고 있으므로 수용 유사침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산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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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보상 법적 근거 검토중…기존 매도자와의 형평성 고려할 것”
이영기 환경부 물환경정책과장
“새만금 수질 개선을 위해 왕궁 정착농원의 축산폐수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합니다.”
영업손실 보상 문제로 축사매입 사업이 주춤거리는 것에 대해 이영기 환경부 물환경정책과장은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과 긴밀히 협조해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왕궁 정착농원 환경개선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은 양돈농가에서 배출하는 가축분뇨로 인한 수질오염 방지를 위해 오염원을 없애고 수림대를 조성해 쾌적한 마을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축사를 매입했지만 돼지 사육 마릿수는 대책 추진 전과 비교해서 6000마리(6.2%) 정도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 과장은 “사육 마릿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6개 정육 납품업체가 왕궁 정착농원을 대상으로 지역 전체 사육 마릿수의 30%에 해당하는 3만 5000마리나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부분의 축사가 지은 지 오래된 데다 과잉 발생된 가축분뇨가 공공처리장을 거치지 않고 하천으로 흘러내려 수질 개선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왕궁 축산단지는 매입한 부지에 바이오림 등을 조성해 마을
이미지가 개선되고, 땅값도 오른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폐업을 희망하는 농가를 대상으로 영업손실 보상 없이 협의매입 방식으로 축사와 토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축산농가들은 협의매입을
토지수용 방식으로 전환해 인근 국가
클러스터 수준으로 영업손실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는 “영업 손실을 보상해 줄 법적 근거, 기존 매도자와의 형평성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