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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식물 프로젝트--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3. 11. 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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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발광식물 프로젝트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스스로 빛을 내는 나무가 거리에서 자라고 있다면 어떨까.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 밤 은은하게 반짝이는 가로수 사이를 걷다보면 추위를 잠시 잊을 정도로 흠뻑 낭만에 젖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 지구에 이런 나무는 없다. 하지만 조만간 미국의 마을 곳곳에 빛나는 나무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일명 ‘발광(發光) 식물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됐다는 소식이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반딧불이같이 빛을 내는 생물에서 발광 유전자를 추출해 식물 종자에 삽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빛나는 장미꽃을 개발하는 일도 계획에 포함돼 있다. 유전자변형생명체(GMO)가 농산물의 범주를 넘어 꽃과 나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연구의 주제뿐 아니라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방식이 독특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GMO의 개발은 제도권 내의 전문 연구진에 의해 수행돼 왔다. 필요한 연구비는 정부와 기업을 통해 제공됐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금하는 방식을 취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 구축된 대표적인 인터넷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com)를 통해서였다.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공간에서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의 목적으로 일반인에게 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의미한다. 주로 음반 제작이나 공연, 영화 제작 등 문화 영역에서 활발하게 펀딩이 이뤄져 왔다. 그런데 이번처럼 과학기술 연구에 펀딩이 시도된 것은 처음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4월23일 모금이 시작됐을 때 제시된 목표액은 6만5000달러였다. 개인별로 40달러 이상 자유롭게 펀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시간 만에 목표액의 20%가 모금됐고, 3일째에 목표액이 완전히 달성됐다. 펀딩 만료일인 6월7일까지 기대치의 7배가 넘는 48만4000달러가 모금됐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은 8433명에 달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은 3명이다. 고등학교 생물교사, 기술경영인, 그리고 생명공학 장비회사 대표였다. 제각기 생명공학 분야에서 상업화 가능성이 큰 아이디어를 물색하다 서로 만나 의기투합한 드림팀이다. 연구를 실제 수행하는 역할은 생물교사 담당이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식물병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도 유망한 20대 연구자다. 박사과정 이후의 제도권 내 정해진 길이 따분하다고 느꼈던 그는 우연히 아마추어 생물학자들의 모임인 바이오큐리어스 그룹을 접하고는 진로를 과감하게 결정했다. 낮에는 고등학교 교사로,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는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자유롭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그는 발광 유전자를 손쉽게 여러 생명체에 삽입하는 방법 개발에 몰두했고, 나머지 2명이 그에게 찾아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멋진 아이디어, 즉 빛나는 식물을 제작하는 일을 함께 실현해보자고. 식량문제 해결이나 의약품 개발처럼 당장의 굵직한 현안에 매달려온 기존의 제도권 과학기술계에서는 좀처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없는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작됐다.

프로젝트팀은 일단 애기장대라는 작은 고등식물을 타깃으로 제시했다. 내년 5월까지 유전자가 변형된 애기장대 종자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바로 이 종자다. 250달러를 펀딩한 사람에게는 종자와 함께 직접 빛나는 애기장대를 만들 수 있는 제작키트도 제공할 계획이다.

당연히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000명이 넘는 미국인이 자신의 집 안팎에 수십만 개체의 유전자변형 애기장대를 심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밤에 은은히 빛나는 식물을 본다는 사실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 식물이 주변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킥스타터의 펀딩 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한편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예를 들어 전문가로 구성된 세계적인 비정부기구인 ETC그룹은 미국 농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다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인디고고(indiegogo.com)에서 킥스타터 프로젝트를 막겠다는 목표로 킥스토퍼(kickstopper)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발광식물 프로젝트의 흐름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놀랍게도 현재 GMO 개발이나 보급과 관련된 미국의 규제책으로는 이번 프로젝트를 막을 근거가 전혀 없다. 제조 과정에 병원성 유전자나 박테리아가 삽입되지 않고, 음식으로 사용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팀은 연구 주제와 규제 모두에서 제도권의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셈이다. 위험 가능성을 분명히 내포하지만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없는 이 같은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이 닥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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