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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 길] 7,500리 마음의 길, 환하게 열리고···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3. 10.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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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 길] 7,500리 마음의 길, 환하게 열리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남도의 끝자락 경남 사천은 아직 겨울이 아니었다.

마치 봄날같이 따사로운 햇살이 7,500여리를 걸어온 도법스님의 조그만 어깨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노인복지시설 ‘삼소원’에서 김장울력을 하던 스님은 광주에서 먼길을 달려온 김민해 목사를 반갑게 맞았다.

저 멀리 반짝이는 삼천포 앞바다를 뒤로 하고 두사람은 고즈넉한 정자에 앉았다. 다른 신앙의 길을 걷는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라는 어쩌면 낯선 만남이었지만 생명평화라는 화두 앞에서는 결코 다른 길이 아니었다.

먼저 이 시대 종교의 역할이 대화머리에 올랐다. 김목사는 스님이 탁발순례라는 큰 짐을 진 데는 종교가 가져야 하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 사라진 데도 원인이 있는 것 아니냐며 운을 띄웠다.

도법스님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순례중에 만난 종교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면서 도법스님은 “절망은 크고, 희망은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종교가 높이 높이 쌓아놓은 울타리를 지적했다. “누구보다 열려있어야 할 종교인들이 현실적으로 닫혀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이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종교에 대한 무지와 왜곡에서 비롯된다”고 스님은 답했다.

그러면서도 “종교 본래의 정신에 충실하려는 겸허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자기 삶보다 우선하려는 종교인들이 있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300여일을 걷고 걸어온 스님에게 지금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김목사는 그것을 궁금해 했다. 도법스님은 “이 걸음이 처음에는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그 무엇인 양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누구를 위해 걸은 것이 아니었다”라고 다소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이는 누군가를 부정하고 미워하고 경멸하고 함부로 짓밟는 것이 결국 자신을 피폐하게 하고, 초라하게 하고, 품위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부연설명으로 이어졌다.

결국 생명평화 순례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로보는 마음, 자신에 대한 성찰을 키워가는 과정이었다는 말이었다. 김목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성찰’ 없으면 희망도 없어 -

스님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관념적·추상적인 것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전도몽상(허황된 생각)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결국 자신속에 내재돼 있던 잘못된 세계관, 왜곡된 삶의 태도가 전도몽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랑이름으로, 자비의 이름으로, 수행의 이름으로 찾으려 했던 깨달음도 결국 잘못된 사고방식,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는 게 스님의 대답이었다. 그 깨달음을 땅과 발이 맞닿는 걸음을 통해, 마주하는 산과 들과 강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좀더 직설적으로 질문했다. “스님의 걸음이 사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일진대 일부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거냐’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실업, 실직, 난장판 정치, 이라크 파병 등등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한 어두운 구석들에 ‘생명평화’가 무슨 메시지를 던지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고 물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몸짓이 아니냐는 것이다.

스님은 이 물음에 이 시대 우리들의 자기성찰을 먼저 요구했다. 자신의 존재에만 집중해서 살아온 역사, 남의 삶을 짓밟으며 걸어온 인류의 역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는 시대는 희망을 꿈꿀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걸음은 지금이 우리에게 반성적 성찰이 절실한 때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스님은 우리사회에 터져나오는 모든 문제가 ‘성찰 없는 시대’가 받아야 하는 당연한 업보라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현재의 얽히고 설킨 사회문제들은 필연적인 결과물이에요. 개인과 사회는 가꾼 대로 이뤄지는 겁니다. 준비하지 않았는데 어떤 결과물을 기대합니까. 준비하지 않고 희망을 논하는 것은 관념일 뿐입니다. 자기성찰을 통해 사회문제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이라크 파병이 가능하고, 지율스님의 호소에 모르쇠를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단 한번도 우리들의 모듬살이가 옳은 것인가, 바른 길인가를 되돌아보지 않았다는 질타로 이어졌다.

김목사는 생명복제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 21세기를 ‘생명공학의 시대’라고 말하고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를 통해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 역시 이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 생명공학 또 하나의 환상 -

“부분적, 현상적으로 보면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적 문제로 들어가면 함부로 쉽게 유익하다느니, 바람직하다느니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스님은 지적했다.

“생명공학은 일부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기중심적 소유욕구와 편리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공학은 인류를 비극적 참상으로 몰고가는 또다른 환상일 수 있다”고 스님은 말했다. 더불어 스님은 이 문제에 대한 종교인들의 제대로 된 역할을 촉구했다. 이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불교계에 대한 경종이기도 했다.

김목사는 마지막으로 대중을 향한 바람이 무엇인지 물었다. 스님은 “무엇보다 삶의 거품을 걷어내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불교에서는 ‘꿈 깨라’라고 말하죠. 행복한 삶의 실현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보고 거짓을 걷어내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스님은 “그동안 뿌리를 북돋우기보다는 열매 맺기와 꽃 피우기에 열중했던 삶의 자세를 반성해야 한다”면서 “연말 연시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저물어 갈 즈음, 김목사와 도법스님은 서로에게 삼배를 올리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랬다. 한사람은 떠났고, 한사람은 남았다. 하지만 진리를 찾아가는, 성찰을 향한 도법스님의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될 것이다.

〈사천|배병문기자〉

- ‘길위의 도반’ 들 -

도법스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지난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처음 걸음을 내디딘 이후 이들은 지치고 힘든 도법스님의 곁을 지키며 생명평화의 메시지를 이 땅에 함께 전하고 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 시인은 순례단의 팀장이다. 사는 곳은 지리산 문수골이지만 올 봄부터 도법·수경스님을 따라 나섰다. 한때 백화산 만득사에서 행자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중앙지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1998년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수경스님과 인연이 닿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에 뛰어들었다. 도법스님이 큰 어려움 없이 탁발순례를 할 수 있었던데는 이시인의 역할이 컸다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전주 모악산에 거처를 두고 있는 박남준 시인 역시 순례단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최근 ‘풀여치의 노래’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순례단의 문화팀장 역을 맡고 있다.

가는 곳마다 열리는 각종 행사에서 즉흥시를 통해 생명평화의 전도사 역을 자임한다. 최근에는 “300여일을 걸으며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어 버렸다. 분노했던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와 너를 분리했던 모습에서 또다른 나를 발견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현장 실무를 담당하는 권오준씨는 원래 건축설계회사에서 근무하다 수경스님의 요청으로 순례단에 합류했다. 남원 실상사 귀농학교에 들어간 것이 탁발순례단과의 인연으로 엮어졌다. 그는 3년동안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탁발준비 등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황인중씨, 홍보영상기록을 맡고 있는 송정희씨, 홍보를 담당하는 홍상미씨 등이 도법스님과 함께하는 ‘길위의 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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