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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 길] “건강 어떠시냐”에 “떡이나 드시라” 한다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3. 10. 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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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 길] “건강 어떠시냐”에 “떡이나 드시라” 한다

 

도법 스님은 여전히 걷고 있다.

생명 위기와 공동체 붕괴 위기의 이 시대, 그 대안을 전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사는 방식을 바꾸고, 삶을 새롭게 대해보자는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길. 그 뜻에 동참하는 발길들도 늘고 있다. 생명을 살리고, 사람이 살 만한 공동체를 가꾸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땅엔 삶과 생명의 안정성과 건강성이 파괴되고, 평화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걷고, 만나고, 또 걷고

지난해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된 순례의 발걸음이 이제 남도에 닿았다. 제주도와 울산, 경남의 들길과 산길, 물길 8,000여리를 걸었다. 3만여명을 만나 이야기를 얻고 주었다. 뜻을 나눴다.

올 순례는 3월2일 전남 광양에서 시작됐다. 봄과 더불어 순천과 여수, 고흥, 보성, 장흥, 강진, 완도와 해남, 진도 땅을 밟았다. 한 낮 햇볕이 따가운 지난 12일 목포 순례길의 스님을 만났다.

스님의 잿빛 승복도, 걸망도 군데군데 해졌다. 그러나 맑은 눈동자와 구릿빛 얼굴의 해맑은 웃음은 여전하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인사에 “떡이나 드시라”한다. 산 너머 남원땅 사람들이 떡을 준비해왔다. 잔디밭 위에 펼쳐놓은 소소한 떡 잔치에 지나가던 노인도 자리를 잡는다.

“돌아다니다 보니 삶을 바라보는 안목이 문제예요. 작은 것에 싸움하고 다툼을 만들고. 마음을 나누고, 양보하면 서로에게 훨씬 살 만한 세상이 될텐데….”

스님은 “이제 순례과제는 만나고 이야기 주고받으며 그 내용을 더 알차게 하는 것”이라면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선다. 도심의 길은 고되다. 들길과 산길은 나무와 풀과 꽃, 새와 하늘이 친구가 된다. 도시는 달리는 차, 하늘을 가린 건물, 숨을 막는 바람이 순례자 어깨를 누른다. 도심을 제대로 걸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하지만 끌어안아야 할 일상. 그 속에 생명과 평화가 숨쉬게 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해야 한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고, 주유소를 스치고, 아파트 단지를 휘감는다. 엄마를 따라 순례단에 끼어 앞뒤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힘이 된다.

#움트는 생명평화

순례단의 발걸음은 생명평화의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노동이다. 땀흘리며 걸어온 그 땅에선 지금 생명평화의 작은 씨앗들이 움을 트고 있다.

각 지역에 만들어지고 있는 생명평화학교. 광주 지역의 ‘빛고을 생명평화학교’, 마산·창원·진해 지역의 ‘가고파 생명평화학교’가 대표적이다. 또 제주와 순천, 해남, 진도 등에서도 꿈틀거리고 있다. 생명평화학교는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각 종교인 등이 하나가 돼 공동체문화를 살리고, 진정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순례단원인 황인중씨는 “지금까지 거쳐온 곳들이 하나의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따로 노는 점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끈으로 이어진 선이라는 의미다.

순례단이 벌이고 있는 ‘10만 생명평화결사서약’ 참가자도 2,5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생명평화를 위해 개개인이 일상 속에서 공부하고 실천하고, 나아가 전쟁방지를 통한 평화가꾸기에 기꺼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 서약이다.

순례단에 합류하는 ‘보통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의미가 크다. 문선진씨(37·목포시 석현동)는 이날 순례에 남매를 데리고 참여했다. 그는 “순례단의 뜻을 거들기 위해 나왔다”며 “특히 아이들에게도 순례단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엄마를 따라나온 최호주군(석현초등 1년)은 “다리가 아프지만 걸어다니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며 스님 주위를 돈다. 이수진씨(59·서울 역삼동)는 서울에서 새벽차를 타고 내려와 오전 순례에 합류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순례단의 뜻, 스님의 뜻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공감한다면 관심을 갖고, 실제로 행동해 달라”고 강조한다. 이씨는 “이 땅의 한 시민으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순례단과 스님께 작지만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한다. 순례단에는 또 지난해 10월 합천 순례부터 함께 하고 있는 합천농민회의 김경찬씨, 1주일간 참여하겠다고 나선 서울의 왕영술씨(42) 등도 있다.

목포 순례일정을 짜고 걷기에 나선 신대운 전남시민사회단체협의회 공동운영위원장(50)은 “목포 순례에만도 7개 시민단체가 동참했다”며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 이 땀과 의지라면 생명평화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생명평화 꽃필 때까지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은 7월말까지 전남 5개시, 16개군과 광주광역시를 걸을 예정이다. 신안·목포 지역에 이어 영암(17~23일)~광주로 향한다. 6월 들어 무안과 나주, 함평, 영광, 장성, 담양, 곡성, 화순 등을 순례한다.

한여름에는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는 기회도 가질 작정이다. 수지행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사무국장은 “전남·광주 순례에 참여한 모든 분들과 순례단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는 ‘광주·전남 생명평화 마당’을 열 생각”이라고 전한다. 하반기에는 경북으로 넘어가 12월말까지 생명평화의 씨를 뿌리게 된다. 이 땅 어느 곳, 어떤 사람에게나 생명과 평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목포|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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