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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수경 길]-[생명평화탁발순례] 한라여 영원하라-#제주 갈무리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3. 10. 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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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탁발순례] 한라여 영원하라

 

#제주 갈무리

“저승길 가는 낭떠러지 아래/ 나직이 주저앉아 흐느끼는 사람들/ 낯익은 계곡과 계곡을 돌아/ 실핏줄 같은 돌담과 돌담을 돌아/ 군가 부르면서 스쳐가는 바람소리… 아득도 하여라/ 굶주림과 목마름, 비바람 눈보라속에/ 우뚝 서있는,/ 아- 어머니의 고향, 그 한라산이여.” (이산하의 ‘한라산’ 중에서)

낮에는 토벌대에, 밤에는 산사람에게 쫓기고 쫓겨 낭떠러지로, 계곡으로 몰렸던 4·3 그날의 희생자들을 찾아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비극의 오름’ 한라산을 찾았다. 어제의 생명흔적을 찾아, 내일의 생명평화를 지키려 29일간 제주를 걸었던 순례단이 이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어승생악(御承生岳). 늘 뭍에게 무언가를 내주면서도 죄인인 양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지내왔던 그 역사처럼 이곳 역시 임금의 말을 키웠던 지역이라 했다.

도법과 수경스님은 어승생악 정상에 올라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원혼을 불러냈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백록담을 넘어, 크고 작은 오름들을 돌아서 수정같이 투명한 바다의 어느 물결 위에 떠돌고 있을지 모를 그 영혼들을 위한 천도재였다. 신록은 우거져 어느 때보다 한라는 눈부셨고 지수화풍의 세상은 여여하기만 했다. 두 스님은 흔적조차 없어진 무명 무덤안에서 흘러나올지도 모를 외침을 붙잡고 이제는 평화롭게 잠들기를 기원했다.

견벽청야(堅壁淸野·토벌군으로 벽을 쌓고 이후 들판을 청소하듯이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병법)와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삼광(三光)·삼진(三盡)작전으로 스러져간 이들의 혼령들을 위해.

“좌익은 무엇이고, 우익은 무엇인가. 역사는 어찌 평화와 영광보다 투쟁과 반목과 복수가 되풀이되는가. 같은 민족, 같은 형제들이 어찌 시기와 질투 원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영혼들 앞에 3배하고 독송하고 염불하면서 순례단은 자신들의 몸짓이 민들레 씨앗처럼 퍼져나가 평화의 섬, 생명의 성지가 되기를 경배했다.

한달 가까운 여정을 접고 첫 출발지이자 당시 대정부 투쟁의 시원이었던 제주시내 관덕정으로 돌아온 18일 도법스님은 행로의 결어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가 돌았던 곳곳에 죽임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골목골목들이 삶의 평화가 짓밟히고 파괴되는 아픔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저희들은 마음 모아 걸음마다 삶의 문화의 씨를 뿌리자, 지금 이 순간 이후 어떤 명분으로도 생명을 죽이거나 평화를 파괴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 염원을 남기고 걸었다.”

이날 저녁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생명평화 탁발 제주순례환송 어울림마당’에 함께 한 문규현 신부도 반세기 전의 4·3과 24년 전의 광주 민주화항쟁을 가장 참혹한 역사의 상처로 기록했다. “광주항쟁의 그날에 순례단이 제주순례를 갈무리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큰 두 상처를 위로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 문신부는 “이런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생명을 지키고 평화를 구하라는 메시지였다”며 상생을 언급했다.

순례단을 바라본 제주인들도 이제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용서와 화해를 떠올리고 있음 직했다. 피비린내 나는,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들을 이제는 꺼낼 수 있지만 기실 그것이 또다른 생채기를 줄지도 모를 일.

지난달 법정스님은 이같은 속세의 우리네 고난을 짚으며 “아물려는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물을 들추는 것은 업을 짓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그러면서 “불교에서 육도윤회라고 부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고 인도했다(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회 중에서).

순례단도 한달간의 걸음걸음을 통해 고통의 뿌리를 위무하고 평화의 노래를 남겼고 상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이들과 가족에 대한 보상은 물론 아직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후유 부상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오늘의 환경속에서 걷히지 않은 그날의 그림자를 본다.

때문에 이산하는 그의 연작시 ‘한라산’의 후기에서 남은 이들의 책무를 이렇게 적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신혼여행지는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핀 노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있다”고

#부산으로 떠나며

순례단은 지리산에 이은 제주 탁발순례를 마치면서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지난 17일 처음으로 전원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도법스님은 죽비를 치듯이 “우리가 붙잡고 있는 생명평화라는 화두가 사람들과 지역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박남준 시인은 “내 안에서 평화롭지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천도재를 지내고 무명 무덤을 벌초하는 것이 생명평화의 최선의 길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상념이 맴돈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절망과 함께 희망도 보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도 “탁발순례가 지향하는 의미를 향해 가고 있는지 치열한 평가를 해야 할 때”라고도 지적했고 총괄진행자인 이원규씨도 “해결방도는 없이 던져만 놓고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라고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되도록 말을 아껴온 수경스님은 “관점과 방식이 있기 때문에 (내) 방식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다”면서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따로 만난 자리에서 수경스님은 “환경과 평화운동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내 자신부터 개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스스로의 문제로 돌렸다.

3년 장정의 초입을 막 끝낸 도법스님은 토론의 말미에 “우리가 붙잡고 있는 화두가 시대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다. 자신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가자”고 분위기를 다잡았다. 수경스님과 단 둘이, 아니 삼보일배로 인해 다리손상이 심상치 않은 수경스님이 걷지 못하는 사태가 오면 그 몫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는 다짐도 함께 담겨 있었다.

◇순례 다음일정

24일(월) 순례단 부산집결, 부산조직위 상견례-25일 민주공원 순례출발 기자회견, 하야리아부대 일대 순례-28일 온천천 환경생명 문화축전 참가(도법스님 21일 인제대, 24일 서울백병원 강연)

◇문의:지리산생명평화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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