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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의 피켓, 도시 경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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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의 피켓, 도시 경관이 되다!

필자 : 박선민 / Trend Insight 2013.09 호

당신의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언젠가부터 도시는 단순히 거대 인구가 밀집하고 모든 자본과 산업이 집중되었다는 ‘도시’의 근본적인 특징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어떤’ 도시로 각인되기위해, ‘ I AMsterdam’, ‘MADrid ABOUT YOU’, ‘Be Berlin’, ‘I Love NY’ 등 저마다 특색있고 긍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만들고자 앞다투어 도시 브랜딩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매년 도시 브랜딩에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들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경쟁력있는 도시가 될 수 있을까? 많은 국가에서 도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도시를 ‘가꾸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느 도시에나 도시의 미관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거리의 홈리스들이다.

 

사실 도시 곳곳의 홈리스들은 어느 정도 도시에서 ‘당연한’ 존재였다. 도시 브랜딩 이전에는 암묵적으로 당연하고 허용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홈리스에게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시선은 어쩌면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다시 찾고 싶은 정갈한 이미지를 목표로 하는 도시 브랜딩의 특성상, 도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한 홈리스들은 필연적으로 그 컨샙과는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을 도시에서 무작정 내쫓고 억지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면 그것은 무자비한 긍정적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홈리스들을 이전 그대로 마냥 도시의 무법자로 방치할 수는 없다. 홈리스를 내쫓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방법. 홈리스가 도시 브랜딩의 일부가 될 수 는 없을까?

 

홈리스의 ‘피켓’에 주목하다

눈을 감고 홈리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마음 속에 떠오르는 홈리스의 이미지는 거리에 앉아, 다소 추례한 차림으로 저마다 사연을 호소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누군가는 사업 실패의 과거를, 누군가는 겪고있는 신체적인 어려움을, 누군가는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는 등, 피켓 속에는 홈리스들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처럼 홈리스에게 피켓은 다수의 대중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창구‘이다.

 

뉴욕에서 열린 The Starving Artists Project에서도 이러한 ‘메시지 창구’로서의 피켓의 기능을 주목하고, 거리의 진짜 홈리스들이 들고있던 피켓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열어 홈리스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했다. The Starving Artists Project는 사람들이 홈리스 뿐만 아니라 홈리스의 피켓에도 무관심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피켓에 쓰여진 내용을 읽어보고, 홈리스의 생각과 입장을 공감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시선을 끌지 못하는 홈리스의 피켓

 

시선을 끌지 못하는 홈리스의 피켓

 

 시선을 끌지 못하는 홈리스의 피켓

 

시선을 끌지 못하는 홈리스의 피켓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홈리스의 피켓뿐만아니라 홈리스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홈리스에게 피켓을 통해 저마다의 메시지로 ‘소통’을 시도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커녕 피켓 자체도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에, 홈리스들은 어떠한 소통도 없는 ‘불통’의 상태에 처했다. 홈리스의 피켓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홈리스 자체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피켓이 주목받지 못하는데는 ‘피켓’ 자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왜 피켓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걸까? ‘주목받은 피켓’의 사례를 통해 그 원인을 반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홈리스의 피켓을 리디자인 하다

도시에는 화려한 형형색색의 간판과 표지판, 그리고 입간판까지, 행인의 주목을 끄는 것들로 넘쳐난다. 그것들은 저마다 색깔과 디자인을 입고 행인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하지만 홈리스의 피켓은 어떠한가? 홈리스의 피켓은 황갈색의 박스 종이조각에 갈겨쓴 글씨체로, 어떤 개성도 디자인적 요소도 가미되지 않은 그저 날 것 그대로의 ‘메시지’일 뿐이다. 어떠한 꾸밈도 없는 그저 갈겨쓴 글씨일 뿐인 홈리스의 메시지는 형형색색의 도시 경관 속에서 주목을 이끌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 튀고, 더욱 예뻐야 주목 받을 수 있는 거리의 환경 속에서 홈리스의 피켓의 경쟁력은 거의 없는 듯하다.

 

보스턴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Kenji Nakayama과 Christopher Hope는이러한 홈리스 피켓에 경쟁력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홈리스의 피켓을 리-디자인(redesign)해주는 캠패인을 열었다. 무채색했던 홈리스의 피켓에 색을 입히고, 알아보기 힘든 글씨에 타이포그래피를 가미하는 등, 더이상 행인들이 홈리스의 피켓을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고, 자연스럽게시선이가도록 화려하게 디자인한 피켓을 선보였다.

 

새롭게 디자인한 홈리스의 피켓

 

새롭게 디자인한 홈리스의 피켓

 

새롭게 디자인한 홈리스의 피켓 

 

같은 말도 다르게, the power of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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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프랑스의 한 거리에서 눈이 먼 홈리스가 구걸을 하며 앉아있었다. 그는 자신의 피켓에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자신의 사연을 적은 어찌보면 행인들에게는 익숙한 말을 적어놓은 피켓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홈리스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하지만 어느날 그 맹인 앞을 지나가던 한 프랑스의 시인은 그의 피켓을 집어들더니 다른 문장으로 고쳐놓았다. 그러자 어찌된 일인지 맹인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확연히 늘어났다. 시인이 적은 피켓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자주 인용되곤 하는 사례이다. 홈리스의 피켓은 흔히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히 설명하거나, 단순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다소 ‘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행인들에게는 하루에도 여러번 마주치는 여느 홈리스와 다를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또는 홈리스의 피켓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봤듯이 그 ‘뻔했던’ 피켓이 좀더 주목받을만하게 재치있거나 감동적인 내용으로 바뀐다면 행인들도 홈리스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될 수 있다. 즉, 뻔한 메시지를 탈피하고 어떤 주목할 만한 내용을 피켓에 담는다면, 홈리스의 피켓은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재탄생한 홈리스의 피켓, 도시의 경관이 되다

앞서 보았듯이 기존에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홈리스의 피켓이, 다시 디자인되고, 그 내용을 재치있게 변화를 줌에 따라 홈리스의 피켓과 홈리스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처럼 리디자인, 피켓에 담긴 콘텐츠의 변형을 통해 홈리스의 피켓은 본래의 ‘메시지 전달 창구’로서의 가치를 확실히하고 더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홈리스는 오랜 노숙 생활로 말끔하지 못한 차림과 들고 있는 피켓마져도 행인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는 등, 앞서 지적했듯이 점점 새련되게 변화되는 도시와 점점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새련되지기 위해 홈리스들을 모두 무작정 내쫓는 것 만큼 비인간적인 처사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는 처사이다. 그렇다고 도시 브랜딩을 위해 막대하게 ‘공들인’ 도시에 홈리스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는데, 홈리스의 피켓은 홈리스가 그러한 도시 브랜딩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준다.

 

많은 홈리스들이 피켓을 들고 있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 피켓의 내용에 주목한다. 하지만 홈리스의 피켓이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어떨까? 잘 디자인된 홈리스의 피켓에 내일의 날씨, 지역 사회의 정보나 지도, 또는 주목할 만한 광고처럼 행인들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면 홈리스는 더이상 마냥 도시 경관의 ‘골칫거리’는 아닐 것이다. 도시에서 홈리스는 필수 불가결한 도시의 일부이다. 그런 홈리스들을 마냥 피하고 싶은 홈리스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더 세련된 도시가 되기 위해서 홈리스들에게도 도시 경관에 맞는 새로운 색을 입히고, 또한 홈리스들에게도 행인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기회로 ‘피켓’을 활용한다면 모두에게 윈윈(win-win)한 결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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