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주의의 위기 진단과 재(再)민주화를 위한 모색] 과거회귀를 타파하고 최병선(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
여러분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 개최하는 노무현대통령기념 학술심포지엄은 올해로 4 번째를 맞이합니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신 5 월에 심포지엄을 개최했었지만 올해부터는 생신이 있는 9월로 날짜를 바꾸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3년 상도 치루고 했으니 이제는 우울한 분위기의 서거일 보다는 희망과 내일을 바라보는 생신을 기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 이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고 꽃을 피우던 시기였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던 독재·군사·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과 더불어 참여와 소통을 바탕으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데 진력했습니다.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정권이 아닌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크고 작은 국정과제는 국민적 합의아래 추진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혁신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10 년이라는 기간을 이렇게 보내면서 우리나라는 상식이 통하는 민주사회의 제도적·실체적 모습을 부족한대로 어느 정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체험을 통해 알게 된 민주체제는 어느 정권도 쉽사리 허물 수 없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MB정부 불과 5 년 사이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이나 힘들여 쌓아놓은 민주주의 토대는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권력기관이 다시 정권수호의 전면에 나섰고, 국정은 다수 국민의 뜻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소수 위정자의 뜻에 따라 흘러갔습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 정부기관의 민간인사찰, 남북관계의 단절, 4 대강사업 등은 MB 정부의 독재·권위주의 회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그저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박근혜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수십 년 전으로 뒷걸음질 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어렵게 세워놓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을 이끌어 낼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심포지엄의 주제는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진단과 재민주화를 위한 모색 ”으로 정했습니다. 먼저 정해구 교수님을 비롯한 세 분이 발제해주실 것이고, 2 부에서 발표자 세 분외에 다섯 분의 지명자가 토론해주실 것입니다. 물론 방청객 여러분을 위한 자유토론시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발표, 진지한 토론을 통해 현행의 수구적 과거회귀를 타파하고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추구했던 건강한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많이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김한길 대표님, 이병완 이사장님, 안철수 의원님, 문재인 의원님을 비롯한 내빈여러분,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 여러분, 그리고 행사준비에 애써주신 송재호 원장님과 실무진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고, 아울러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개회사를 마치겠습니다.
민주주의 부활을 소망하고 이병완(노무현재단 이사장)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뿌리째 뒤흔드는 이러한 불법행위들에 대해 한 점의 반성도 없이 이를 감싸고 호도하는 집권세력의 후안무치가 국민들을 우롱하며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슬픈 현주소입니다. 험난한 도정을 겪으면서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쳐 본 궤도에 올랐다고 자신했던 민주주의가 지난 5년의 반동에 의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주주의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민주진영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의 착시가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색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입니다. 민주주의 부활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함께 할 준비가 되어있는 민주시민들이 계십니다. 퇴보하고, 매몰되어가는 한국민주주의의 본질과 원인, 대응방향을 정확히 진단하고 제시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부활을 갈구하는 민주시민들에게 희망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동시에 민주시민들의 촛불이 죽비가 되어 후려치기 전에 집권세력의 각성과 자성을 촉구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정치지도자, 학계 인사와 전문가, 그리고 모든 참석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4만여 회원 분들과 함께 진심어린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이번 학술심포지엄을 기획하고, 준비해 오신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최병선 이사장님과 송재호 원장님 등 연구원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극좌-극우 모두‘민주주의 위협세력’ 문재인(민주당 국회의원)
왜 지금의 상황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까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런데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란 ‘상식과 합리’에 기초해 정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과 NLL 포기 논란의 본질은 정보기관이 나서서 자신들이 원하는 선거결과를 만들어 내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안보를 선거공작에 악용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선거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민주주의의 규칙이 깨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사태를 놓고, 집권당은 오히려 책임자를 비호하고, 대통령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야당대표와의 만남도 거부합니다. 이렇게 정치에서 ‘상식과 합리’가 사라지면, 공정한 경쟁도, 승복도, 대화와 타협도 불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새누리당 정권 하에서 새누리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자행된 일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 수혜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과 선대위가 직접 선거운동에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도, 풀 수 있는 해법도 박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다시는 선거개입, 정치개입을 하지 못하도록 진상을 밝히고, 엄중한 조치와 함께 국정원을 바로 세우면 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훼손된 공정성과 정당성이 그것으로 치유되고, 사회의 분열과 갈등도 해소될 것입니다. 이석기 의원 사건은 국민들이 이미 여론을 통해 엄중히 심판하고 있습니다. 내란음모죄가 인정될 것인가라는 법률 적용 문제를 떠나서, 국민들은 녹취록에 표출된 사고와 발언내용을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의 교조적 이념에 얽매여 있는 낡은 진보는 이제 변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인 사고가 진보일 수 없습니다. 국회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체포동의안을 가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부당한 특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상식과 합리’에 기초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편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무서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신종 메카시즘의 광풍입니다. 과거의 야권연대도 종북, 10년전 법절차에 따른 가석방과 복권도 영락없는 종북입니다.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종북좌파 프레임이 지난 대선을 지배하지 않았습니까?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NLL 공작도 그 목적을 위한 것 아니었습니까? 반대는 일체 허용하지 않겠다는 전체주의적 위협도 있습니다. 체포 동의안에 찬성하면서도, 적어도 정보위라도 열어 국정원 녹취록의 절차적 정당성을 짚어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견들이 묵살된 가운데 이뤄진 표결에서 나온 소수의 반대 또는 기권조차 종북으로 공격받고, 심지어 표결을 밝히라는, 무기명 투표원칙에 위배되는 협박까지 받고 있습니다. 이 역시 민주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행태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심판 받아야 합니다. 극좌 극우의 극단적인 세력들이 변별될 때 비로소 합리적인 진보와 보수 세력 간에 건강한 경쟁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민주주의인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평범한 국민, 보통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원 1표가 아니라 1인 1표의 원리가 살아 숨쉬어야 중산층과 서민들의 삶이 지켜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생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인 이유입니다. 오늘 좋은 심포지엄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정을 힘차게 이어 가겠습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 가을하늘이 청명합니다. 폭우와 폭염으로 언제 가을이 올까 싶었는데,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이 천지만물의 진리이듯, 우리도 진보의 역사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광장에서 노숙을 시작한지도 이제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벼랑 끝에 놓인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을 살리겠다는 민주당 전체 구성원들의 강력한 의지에도, 한 밤 서울광장 천막에 누워있으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빈자리가 그립습니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습니다. 민주정부 10 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세웠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 5년,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 새누리당의 국기문란 범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계를 몇 십 년 전의 과거로 되돌려놓았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니까 먼저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졌고, 약속은 공수표로 되돌아와 서민과 중산층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장자답게 “역사는 진보한다.”는 신념을 믿습니다.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후예답게 민주당 구성원 모두 민주주의 회복과 민생을 살리기 위한 대장정을 힘차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광장에서는 무서운 호랑이처럼 투쟁하고 국회에서는 우직한 황소처럼 일하며 호시우행(虎視牛行)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오늘 ‘한국 민주주의 위기 진단과 재(再 )민주화를 위한 모색’에 참여하신 분들의 혜안과 지혜로 위기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열띤 토론이 가득하기를 기대합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서민과 중산층이 제대로 대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민생문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안철수(국회의원)
노 대통령께서 서거하신지 4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치도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올해 심포지엄 주제로도 선정하셨지만, 국정원 개혁은 시작도 되지 않았고, 거기에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사초분실 논란까지 올해 정국은 내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상황들 속에서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거대 양당의 대립 구도 속에 한 개인 의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민생문제들은 계속해서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 가시는 모든 분들이 동의하시다시피,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꿈꾸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사회 혼란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민주도 진보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정치세력들은 진보로 위장하며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이석기 의원의 문제는 이제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검찰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국정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유야무야 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의 이름으로 경고해야 합니다. 여권 일부에서 이석기 의원 문제를 민주당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저는 여야 정파를 떠나 통진당 사태를 민주당과 연결시키려는 어떤 정치적 음모나 논리적 비약에도 반대합니다. 여당 일부에서 혼란상황을 이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짧은 생각을 한다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당이 거대한 의석수를 갖고서도 장기간 대치정국을 풀어내지 못하는 초라한 위상부터 먼저 고쳐야 합니다. 더 이상 정국이 표류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정치는 다시 국정원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잡고 민생문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혼란스러운 정국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어느덧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년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직접 마주 앉아 드리고 싶었던 말씀 전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NLL 발언 왜곡 사태 및 국정원 대선개입 정해구(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 분단상황의 정치지형 : ‘기울어진 운동장’ 정치세력들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한국의 정치지형은 구조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 이는 그 지형이 보수세력에는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민주진보진세력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의 지형은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위쪽을 점하고 있는 보수세력은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민주진보세력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경기에 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운동장의 기울기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 2년이 흐른 2013년의 지금에도 운동장의 기울기는 여전히 수평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지형은 서구나 미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선 서구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제적 냉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좌우의 극단적인 정당들을 주변화시키면서 주로 중도우파 정당과 중도좌파 정당이 경쟁하는 정치지형을 만들어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과 더불어 서구의 중도좌파 정당을 대신하는 리버럴 정당인 민주당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미국의 민주당이 리버럴 정당이라 하여 한국의 민주진보세력처럼 불리한 여건의 정치지형에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한국의 정치지형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될 만큼 공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원은 해방 이후 남북이 좌우 갈등 속에서 분단되고 상대방을 절멸시키려 했던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겪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한에서는 강력한 반공세력이 등장했고, 그것을 정당화 해주었던 반공주의가 구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지속되었던 남북 적대의 분단상황은 남한에서 반공세력의 일방적인 지배를 가능케 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물론 분단과 전쟁의 경험 그리고 남북 분단상황은 북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그것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남북이 공유했던 이러한 상호 적대의 분단상황은 남한 내부의 정치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반공을 내세운 권위주의체제의 등장인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졌던 권위주의체제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1987 년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로 인해 정당정치가 정상화되었음에 불구하고 그리고 그 직후 국제적인 탈냉전이 이루어졌음에 불구하고, 국내의 정치지형은 여전히 분단상황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세력은 자주 안보를 내세워 정치적 경쟁자인 민주진보세력을 탄압하거나 약 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북 적대의 분단상황에서 보수세력이 안보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 경쟁세력을 탄압하거나 약화시키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안보의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안보정치’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사회의 각 부분을 대표하는 정치세력들에 의한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반공세력 또는 보수세력이 이러한 안보정치를 이용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 하거나 약화시키려 할 때 정상적인 정치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보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를 발휘하여 공정한 정치 경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안보정치가 차기 정권을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에서 작동하게 될 때, 그것은 공정한 대선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작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전대통령 북방한계선 발언 왜곡사태 (이하 NLL 발언 왜곡사태)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대선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적 갈등은 바로 이 같은 안보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치의 한 사례로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왜곡 사태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그러한 사태는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었는가, 그리고 이에 따른 의회정치의 후퇴와 이에 저항하는 촛불시위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나아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 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등이 그것이다.
2012 년 대통령선거에서 NLL 발언 왜곡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통일비서관 출신인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이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하면서 시작되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단독회담에서 ‘NLL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다.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구두약속을 해줬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또한 정문헌 의원은 비밀회담이 10월 3일 오후 3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이루어졌고, 당시 회담 내용은 녹음되었고 북한 통일전선부는 녹취된 대화록이 비밀 합의사항이라며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비밀 합의를 통해 NLL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정문헌 의원의 이 같은 발언 이후 박근혜 캠프는 이를 바탕으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그 공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그들은 비밀 합의를 통한 NLL 포기는 엄청난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새누리당 당내에 ‘대북게이트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한 그들은 비밀대화록 공개를 주장하는 한편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이 대화록이 폐기되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한편 박근혜 후보 역시 이에 발맞추었다. "NLL 은 수많은 우리 장병이 목숨 바쳐 지켜낸 것으로 누구도 함부로 변경할 수 없다“ 는 발언이나, “수많은 우리 장병이 목숨 바쳐 지켜낸 서해 NLL 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이냐는 정당한 질문에 (야권이) 무조건 비난만 하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발언 등이 그것이었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 비밀대화록과 NLL 발언 문제는 10월 내내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그렇다면 박근혜 캠프는 왜 비밀대화록과 NLL 발언 문제를 이슈화시켰던 것일까 ? 그것은 박근혜 캠프의 대선 전략 변화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8월 20일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시대와 국민대통합을 내세워 중도 확장을 꾀하면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봉하마을 권양숙 여사 방문, 이희호 여사 방문, 전태일 재단 방문 시도 등은 바로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캠프의 중도 확장 전략은 운동은 인혁당사건 관련 논란과 정수장학회 문제 등의 과거사 문제, 홍사덕 전 선대위원장 등 측근인사 비리 , 그리고 캠프 내부의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혼선과 잡음 등의 문제들로 인해 지지부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10 월에 들어 박근혜 캠프는 그 조직과 전략을 일대 쇄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 그리하여 박근혜 후보는 캠프의 조직과 전략의 일대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박근혜 캠프의 조직 정비는 10월 11일 중앙선대위 추가 인선을 통해 이루어졌다. 즉 박근혜 캠프는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를 갖추었는데, 이는 그를 통해 혼선을 빚고 있는 캠프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한 시도였다. 또한 김무성을 중심으로 하는 박근혜 캠프의 정비는 그 동안 추진되었던 중도 확장 전략의 변경을 의미했는데, 새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을 친북 또는 종북으로 몰아 보수 결집을 이루어내고자 했던 색깔론이라 할 수 있었다. 2007 년 남북정상회담의 비밀대화록 논란 그리고 이를 통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은 중도 확장에서 보수 결집으로의 전략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색깔론의 구체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11월에 들어서면서 10월 내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비밀대화록과 NLL 발언 문제는 점차 잦아들었다. 그것은 우선 원세훈 국정원장이 10월 29일 국정감사에서 2007년의 정상회담에서 노무현·김정일 단독 비밀회담은 없었고 따라서 비밀대화록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한편, 국정원에는 정상회담의 정상적인 대화록이 있지만 그 공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그 동안 제기 되었던 의혹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것은 11월에 들어 대선 경쟁의 관심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문제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처럼 한 동안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NLL 발언 문제는 문재인 후보가 야권의 단일 후보로 확정된 가운 데 12월 초순 이후 다시 급부상했다. 우선 NLL 발언 문제는 12월 4일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간의 첫 TV 토론에서 다시 거론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NLL 발언 논란을 다시 지피면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요구했기 그러나 NLL 발언 논란이 대선 경쟁의 최대 이슈로 다시 부상한 것은 대선투표일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인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다. 즉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발생하자 박근혜 캠프는 한편으로 국정원 여직원 인권 유린 주장과 동시에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의 축소·은폐로, 다른 한편으로는 NLL 발언 문제의 재점화를 통해 이에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 동안 보도되고 밝혀진 각종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12월 11일에서 18일까지 취해졌던 그 대응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었다. 그러나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김무성 본부장이 14일 부산 유세에서 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거의 그대로 언급했고, 특히 대화록 발췌문뿐만 아니라 전문에만 나오는 용어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무성 의원은 2013 년 6월 2 일 새누리당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 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하여 읽어봤다.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협조를 안 해줘 가지고 공개를 못한 것” “그래서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대선 당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쯤 부산 유세에서 그 대화록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부짓듯이 쭈욱 읽었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김무성 본부장 등 박근혜 캠프의 지휘부에서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이미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화록 공개가 박근혜 캠프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그로 인한 역풍을 고려하여 국정원에 그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 스스로에 의한 그 공개를 꺼리자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김무성 본부장이 부산 유세에서 그 내용을 원문 거의 그대로 직접 공개하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본부장의 이러한 대화록 내용은 1 8 일 유세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다시 한 번 이루어졌다. 다른 한편, 박근혜 캠프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야권의 공세에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문제로 대응했다. 민주당이 죄 없는 국정원 여직원을 오피스텔에 감금함으로써 그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경찰의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 수사에 대해서도 대처했는데, 그것은 그 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하고자 하는 시도로 나타났다. 즉 수서경찰서의 요구로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분석팀이 댓글 흔적으로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투표일을 이틀 앞둔 16일, 그것도 밤 11시에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그 동안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 전날인 15일에 있었던 김용판 청장의 오찬 모임, 16일 김용판 청장에 대한 김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의 전화 등은 경찰의 중간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하고자 했던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정치권에서의 전개 대통령선거 직후의 상황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가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새누리당은 대선에서 승리했고,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3월 17일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 완료 즉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을 뿐, 이를 둘러싼 갈등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검찰 또한 2월 21일 NLL 발언 문제와 관련하여 대선 과정에서 고소·고발된 관계자들 모두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 특히 검찰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리했는데, 국정원이 제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발언이 거짓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는 다음과 같은 계기를 통해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나는 6월 14일 발표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인데, 그 결과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2년 대선까지 각종 선거에 개입한 혐의가 밝혀졌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역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축소·은폐시킨 혐의가 드러났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새누리당에 이어 민주당의 문재인 의원에 의해서도 강력히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전자는 대화록 공개 공세를 통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물타기’, 즉 희석시키고자 했던 새누리당의 의도 때문이었고, 후자는 박근혜 캠프의 NLL 발언 왜곡으로 줄곧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없었던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 소재의 대화록 원본 공개를 통해 그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6월 중순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는 보다 거세어졌고, 동시에 NLL 발언 왜곡 사태는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다음은 이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던 여야 간의 갈등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NLL 대화록 공개에 적극 나선 것은 국정원이었다. 그리하여 NLL 대화록 공개를 요청한 국회 정보위의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이미 국정원 보관의 대화록 발췌본을 전달한 바 있는 그들은 6월 24일 국정원 보관의 대화록 전문을 2급 비밀에서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이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대선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을 주도했던 원세훈 전 원장도 새누리당의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화록을 직접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가 했던 것은 검찰에 대화록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남재준 현 국정원장은 새누리당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여 국정원 보관의 NLL 대화록의 발췌본과 전문을 전면 공개하고 나섰던 것이다. “ 야당의 공격에 대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라는 것이 그가 밝힌 대화록 공개의 이유였다. 그러나 국정원 보관의 대화록이 이처럼 전격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기록관 소재의 대화록 원본은 끝내 공개되지 못했다. 국회의원 2/3 찬성의 결의를 통해 대화록 원본의 공개가 결정되었지만,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화록 원본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화록 원본 실종의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의원은 대화록 실종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가 합의해 사실관계를 차분히 규명 해나가면서” “NLL 논란을 끝낼”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대화록 실종이 최종 확인되자마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을 재빨리 검찰에 고발했다. 새누리당의 회피 속에서 NLL 대화록 문제가 이상과 같이 전개되는 동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는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6월 24일 NLL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아마도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대화록의 전면 공개가 그들에게 유리한 여론상의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를 크게 약화시킬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록 공개의 효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NLL 대화록 발췌본과 전문 내용을 확인한 여론의 다수는 오히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의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NLL 대화록 공개는 새누리당에게 역풍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대화록 공개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이 같은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여야는 6월 25일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고 7월 2일 국회 본회의는 국정조사 계획서를 통과시켰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7 월 8 일 “이번 기회에 국정원도 새롭게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동시에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의 방법으로서 국정원 스스로가 그 개혁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외면적으로는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국정원 개혁을 국정원 자체에게 맡김으로써 국정원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그것은 마지못해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조사 결과를 통해 이루어질 국정원 개혁을 가로막는 일이었다. 이러한 현실이 시사하듯, 이후 국정조사 실시는 새누리당의 방해와 비협조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우선 새누리당의 정문헌, 이철우 의원은 자신들이 NLL 의혹 제기의 당사자임을 들어 국정조사 특별 위원을 사퇴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은 민주당의 김현, 진선미 의원에 대해서도 국정조사 특위 위원 사퇴를 요구하였다. 두 의원이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어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제척 사유를 내세운 것이었지만, 그 실제적 이유는 국정조사의 정상적인 진행을 방해하기 위한 새누리당 전략의 일환이었다. 다음으로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을 문제 삼아 국회 일정을 전면 중단시켰다. 결국 국정조사가 이렇게 지연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김현 진선미 의원은 국정조사 특위에서 자진 사퇴했다. 자신들의 사퇴를 통해 국정조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였다. 국정조사 진행에 대한 새누리당의 또 다른 방해는 국정원 기관보고를 비공개로 하자는 주장 그리고 여름휴가 기간 동안 국정조사 특위를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여야는 7월 28일에야 국정원 기관보고를 8월 5일 개최하되 사실상 비공개로 개최하고 7~8일 중에는 증인·참고인 청문회를 개최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청문회에 참석할 증인 채택에 있어서는 그 절충에 실패했다. 따라서 8월 15일로 예정된 국정조사 종료 시한을 18일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은 겨우 국정원의 사실상 비공개 기관보고와 증인 채택도 못한 청문회 개최에 불과했다. 8월 5일 국정원 기관보고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청문회에 참석할 증인 채택 절충에 실패한 상황에서 7~8일의 청문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여야는 6 일 국정조사 종료 시한을 8월 15일에서 23일로 연장했고, 7일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 29명의 증인 채택에 합의했다. 그러나 14일에 예정되었던 1차 청문회는 원세훈과 김용판 두 증인의 불참으로 16일로 또 다시 연기되었다. 하지만 동행명령장 발부에 의해 두 증인이 참석한 16일의 청문회 역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두 증인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증인선서를 거부한 상태에서 그 증언 내용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19일에는 나머지 증인들에 대한 2차 청문회가 진행되었는데, 그 내용이 부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3차 청문회는 8월 21일 개최되었다. 그러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 대사의 증인 채택이 무산된 가운데 야당의 특위 위원들만이 참석한 3차 청문회는 ‘반쪽 청문회’에 그쳤다. 이와 관련하여 3차 청문회의 의미는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대사의 참석 여부에 달려 있었다.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왜곡 사태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그 동안 ‘원·판·김·세’( 원세훈, 김용판, 김무성, 권영세)의 증인 참석을 강력히 요구해온 터였다. 그러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겨우 원세훈과 김용판의 부실한 답변만 얻어냈을 뿐, 김무성과 권영세는 청문회에 불러내지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요컨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한편으로는 대선 당시에 이어 또 다시 제기 되었던 NLL 대화록 공개 문제로 인해, 다른 한편으로는 국정조사 자체를 지체시키고 방해하고자 했던 새누리당의 끈질긴 시도에 의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국정원의 대선개입의 진상은 물론 NLL 발언 왜곡 사태의 진상 또한 제대로 밝혀질 수 없었다. 결국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8일간의 기간 연장에도 불구하고 결과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정치권을 넘어 시민사회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에 대한 항의와 시위사태가 발생한 것은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국정조사를 회피 하면서 NLL 발언 문제를 다시 꺼내들었던 6월 말부터였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하기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하는 한편 6월 20일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날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국정원 대선개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고, 경희대와 성공회대 총학생회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시국선언과 항의시위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우선 시국선언의 경우 각 대학의 학생회로부터 시작된 그것은 이후 교수사회, 학술단체, 청소년, 시민모임, 시민단체, 전문직, 종교인 등 사회의 각계각층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미국, 프랑스, 프랑스 등의 해외동포로까지 이어졌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시국선언이 시작된지 약 40일 정도가 지난 8월 2일의 시점에서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에 참여한 연서명자(연서명이 없는 단체 시국선언의 인원은 제외)는 다음과 같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은 8월 31일의 시점까지 개최되었던 시국회의 주도의 범국민대회와 민주당 주도의 국민보고대회를 정리한 것이다. [표4] 국정원 규탄 범국민대회 / 국민보고대회 이상과 같이 대선 당시 그리고 대선 이후에 전개되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거나 추론할 수 있다. 우선 대선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첫째 국정원은 대선 과정에 개입해 왔고 그 일부는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일부가 드러났을 때 그것은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하여 누군가에 의해 은폐·축소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왜곡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 박근혜 후보가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새누리당 또는 박근혜 캠프의 주요 인사들에 의해 등장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그 첫 등장은 박근혜 후보의 중도 확장 전략이 위기에 처했던 10월 초에 보수 결집의 수단으로서 이루어졌고, 그 두 번째 등장은 12월에 들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으로 박근혜 캠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루어졌다. 셋째 박근혜 후보는 NLL 사수 발언이나 NLL 대화록 공개 요구 그리고 국정원 여직원 인권 문제 등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유리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대선 이후의 상황과 관련하여 새누리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매우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새누리당이 취한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와 그것으로 국정조사의 분위기를 약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국정원은 NLL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이에 적극 부응했다. 다른 하나는 새누리당이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여 국정조사 자체를 무력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이다. 김현 진선미 두 민주당 의원의 국정조사특위 위원 사퇴 요구, 국정원 기관 보고 비공개 주장, 여름휴가 기간 특위 개최 불가 주장, 증인 채택 과정에서의 비협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이후의 이 모든 사태에 있어 자신은 무관한 듯한,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대선 당시 그리고 대선 이후에 전개되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의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와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안보정치의 한 양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안보정치를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적극 이용하는 정치라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안보 문제는 당파적 이해를 뛰어넘는 국가적 아젠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와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는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도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왜곡하는 한편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의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었던 이 같은 안보정치는 어떤 특징을 보여주고 있나? 첫째는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자의적인 요소가 적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행사되었던 막강한 대통령 권력의 잔재가 남아 있는 가운데, 지금도 국민 선출의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그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위임민주주의적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통령이 그 동안 우리 정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를 발휘해 왔던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게 될 때 그것은 권위주의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는다. 첫째 왜곡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동원하여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의 정상적인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것은 그런 과정에서 새누리당에서 강경파의 목소리만을 강화시키는 한편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정원의 영향력 증대라는 후자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국정원을 정치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셋째 이상의 요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신만의 의지대로 국정을 수행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수직적 리더십과 결합하여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권위주의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새누리당 강경파와 국정원이 그 중심이 되는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두 번째 특징은 의회정치의 약화이다. 우리 정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 관계는 양자가 공히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수평적이지 않았다.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지위가 우월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는 전통과 관행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론 지지도에서도 국회는 대통령에 비해 거의 언제나 낮은 수준의 지지를 받을 뿐이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안보정치를 통해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을 추구할 때 국회는 더욱 약화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에 의해 무력화되었던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국정조사는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견제 수단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국회의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고 여기에 국정원이 동원되어 사태의 전면에 나섰을 때 국회의 국정조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부 임기 첫 해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무력화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대선 패배 이후 야당은 그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내부의 계파 갈등 속에서 매우 약화된 처지에 있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야기된 국정조사의 무력화와 이에 따른 의회정치의 약화는 시민사회의 항의시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6월 말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촛불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새누리당에 의해 국정조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민주당 역시 장외투쟁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치에 따른 권위주의적 국정운영과 의회정치의 약화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을 통해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개혁의 진전과 더불어 이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에 직면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2012년 작년의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을 지배했던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의제는 바로 그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리 민주주의의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박근혜 캠프와 박근혜 정부는 안보정치의 과거 유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퇴행 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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