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토루는 푸젠성 난징(南靖), 융징(永定), 화안(華安)현의 높은 산과 험한 고개에 위치한 방어 목적의 집단 주택이다. 원형, 장방형, 팔각형, 반월형,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토루 3천여 개가 있는데 그중 46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송(宋)ㆍ원(元)나라 때 생겨나 명(明)나라 초기와 중기에 발전을 거듭했고, 명나라 후기와 청나라 때 가장 성행했던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600∼700년 전의 가옥에는 현재까지도 객가인의 후손이 살고 있다.
◆흙으로 빚은 신비한 건축물
한족의 한 갈래인 객가인은 원래 황허(黃河)강 북부에 살았지만 전란을 피해 중국 각지로 이동했고, 이곳 푸젠성에 이르러 터전을 일궜다. 그래서 생겨난 주택이 바로 토루이다.
규모가 큰 토루는 높이 20여m에 지름 100여m, 둘레 260여m에 달한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쉽게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은 하나뿐이고, 1~2층 이상에만 바깥으로 난 창문을 냈다. 초기의 토루는 작은 크기에 장방형이나 정방형이었으며, 장식은 수수하고 돌로 된 기초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명나라 시대에 농업이 발달하면서 부유해지고 도적의 약탈이 많아져 규모가 지금처럼 커졌다.
토루는 쌀, 차, 담배 경작지 사이에 들어서 있다. 하늘이 환하게 올려다보이는 마당이 가운데 있고, 마당을 중심으로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3~5층의 목조 주택이 들어서 있다. 요새화된 높은 진흙 외벽에 기와지붕을 얹었고 처마는 널찍하다. 규모가 큰 토루는 최대 8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토루는 한 채에 한 씨족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씨족 소왕국’이나 ‘번잡한 소도시’라고도 불렀다. 토루 이름도 성(姓)을 앞에 붙여 ‘○○루(樓)’라고 일컫는다. 토루에서는 가족 단위로 수직적으로 구분해 거주했는데, 가족마다 한 층에 있는 방 2~3개씩을 사용했다.
토루는 하나의 작은 집성촌이기 때문에 교육, 혼례 등 모든 것이 안에서 이뤄졌다. 사당, 학당, 서재, 조당, 우물 등 필요한 시설은 내부에 모두 있었다. 물론 혼례는 근친혼을 피하려고 3대 이상이 지나야 같은 성끼리 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도 발휘했다. 현재는 객가인 후손이 남아 전통적인 모습으로 일상을 꾸려가고, 농사와 관광 수입으로 살아간다. 토루는 과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시절 정보국이 핵미사일 발사 기지로 오인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토루는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을 자랑한다.
▲여행 정보 = 대한항공과 샤먼항공이 공동운항으로 중국 남동부의 항구도시 샤먼(厦門)까지 매일 운항한다. 비행 시간은 3시간 15분이 걸린다. 대표적인 토루 유적지인 난징현이나 융징현까지는 샤먼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ㆍ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