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환경련
정부·기업·언론 상대로 운동, 쉽게 타협한 탓?
실천 없는 반성·’환경 권력’ 비난 처방전 있나
환경운동연합(환경련) 활동가와 간부들의 정부보조금 유용 의혹이 잇따라 불거진 데 이어 환경재단의 압수수색, 검찰의 최열 환경재단 대표 소환조사 등 환경련을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환경련은 윤준하 공동대표와 안병옥 사무총장의 사퇴에 이어 환경련 중앙 사무처 간부의 일괄 사퇴로 활동정지 상태에 빠졌다. 환경련은 지난 5일 특별대책회의를 꾸려 “환경연합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세운다는 각오”로 쇄신책을 짜고 있다. 그러나 이시재 특별대책회의 의장(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이 인터넷에 올린 “우리 사회의 귀중한 공공재산인 환경련을 구해 달라”는 절절한 호소문에 대해서도 싸늘한 반응이 적지 않다.
국내 최대 환경단체인 환경련이 침몰 직전에 놓여있고, 사실 여부를 떠나 환경운동가의 상징인 최 대표가 공금유용 혐의를 받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5년 전에도 제기된 ‘환경의 위기, 환경운동의 위기’
그러나 ‘환경운동의 위기’란 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두달만에 환경단체들은 ‘비상 시국회의’를 결성하고 광화문에서 거리농성에 들어갔다.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간척사업,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터 선정, 북한산과 천성산 관통도로 등에서 노 정부의 환경정책 후퇴를 지켜보며 ‘환경의 위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환경운동의 대결을 바라본 평자들은 이 사태가 환경의 위기이지만 동시에 ‘환경운동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환경위기를 부른 한 원인이 정부와 너무 쉽게 협상하고 타협해 온 환경단체에도 있다며, 주로 공무원과 언론을 상대로 운동을 하다 보니 일반시민과 환경현장으로부터 멀어진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나오기도 했다. (‘환경의 위기, 환경운동의 위기’ <한겨레> 2004년 12월6일치 http://www.hani.co.kr/section-001014000/2004/12/001014000200412051926006.html)
환경단체의 활동가들도 이런 위기의식에는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2005년 4월 <한겨레>의 ‘토론과 논쟁’ 좌담(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29205.html) 에 참석한 김혜정 당시 신임 환경련 사무총장은 “내부에서도 쏟아지는 현안에 매달려 자기성찰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환경운동에 대한 비판이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계간 <환경과 생명>도 2005년 여름호에서 주요 환경단체의 실무책임자들이 모여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눈 기획좌담 ‘환경운동, 거듭나지 않으면 미래 없다’를 실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에 비추어 볼 때 당시의 자성과 반성은 진정성이 없었거나 방향이 잘못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만 적어도 실천이 따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환경과 생명> 좌담회에 참석한 이상훈 환경련 정책실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감사 체제가 굉장히 취약합니다. 사업 감사·회계 감사 등이 있지만, 정말 10여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다른 시민단체들도 비슷하다고 보는데….”
이번 위기는 짧게는 참여정부, 길게는 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부터 배태된 것이다. 환경운동에서 위기는 숙명이다. 환경운동의 목소리가 제도로 정착할수록 환경운동이 할 일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1990년대 이후 급성장한 환경운동이 자연스럽게 맞이한 ‘성장통’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위기를 불렀는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현장’과 ‘대중’ 속에서 대안 제대로 찾아냈나
환경운동 안팎에서 당시부터 제기돼 온 환경운동의 주요한 문제점을 꼽는다면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시민과 현장보다는 정부와 기업, 언론을 상대로 운동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환경운동은 정부와 파트너십을 이뤄 정책수립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새로운 협치(거버넌스)를 실천했다. 이것은 환경행정을 선진화하는 중요한 진전이었다. 사후약방문식 행정에서 사전예방의 행정으로 바뀌고, 정책 수요자가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 기회를 제공했다.
문제는 환경운동이 거버넌스의 토대인 시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면서 비롯됐다. 바닥에서 흙을 묻히는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운동보다는 고위 관료와 정책결정을 논의하는 효과적이고 깨끗한 방식의 운동이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언론을 통해 활동을 널리 알리는 홍보에 힘을 쏟았다. 1년의 현장활동보다도 1시간 동안의 도심 퍼포먼스가 지면에 훨씬 비중있게 소개됐다. 고위관료와의 교분을 통해 얻는 고급정보도 풍부했다. 그러다 보니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기자들과 정기적으로 술자리를 같이하는 고위관료, 정치인, 경제인 등의 반열에 끼이게 됐다.
보수언론은 기회만 닿으면 환경운동을 ‘환경권력’이라고 비난했다. 2005년 환경련이 대기업에 협조공문을 보내 자가발전 손전등을 판매한 것을 두고 <중앙일보>는 ‘환경 시민단체가 환경 팔아 장사하나’란 사설에서 “시민단체가 권력화해 또 다른 부패의 온상으로 타락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국민으로부터 영원히 외면당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작금의 사태를 보수언론은 얼마나 고소해 할 것인가. 무엇보다 시민운동에 대한 인식과 거버넌스는 또 얼마나 후퇴할 것인가.
둘째, 환경운동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환경운동가들이 가장 많이 털어놓는 고충은 시민들이 환경얘기에 피곤해 한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대중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무책임하고, 무조건 개발의 발목만 잡으려 한다고 짜증스러워 한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대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는 것이 화급한 과제가 됐다. 이런 도도한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물결 속에서 환경운동이 나름대로 현장 속에서 대안을 찾아내는 등 제대로 대응했는지 의문이다.
장성익 <환경과 생명> 주간은 2005년 <한겨레> 좌담에서 ‘현장’과 ‘대중’이 환경운동이 붙들고 나가야 할 두 가지 화두라고 강조했다. 그 지적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환경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부실해진 풀뿌리 운동을 되살려야 한다. 그럼으로써 일부 명망가와 메이저 단체 중심의 과잉대표 문제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다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들은 무력감과 허탈감을 떨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환경운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독자 여러분의 기탄없는 의견과 토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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