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본문

[과학오디세이]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요즘 날씨가 이상하다. 여름이라 더운 것은 당연하고 장마라서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자연스럽다지만, 남부와 중부가 확연하게 다른 반쪽 장마나 지역마다 달리 쏟아지는 기습적 폭우 등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감마저 느끼게 된다.

대중매체에서도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 전문용어로는 ‘적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기후란 기온, 강수량, 바람 등 대기상태의 장기적 양상을 의미한다. 어려서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의 ‘우수성’(?)에 대해 들어온 필자로서는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일단 여름이 더 더워지면 냉방에 필요한 에너지도 더 많이 들 것이다. 하지만 대신 겨울에 난방비는 적게 드니까 결국은 비용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기후가 변하게 될 때 잃을 것과 얻을 것에 대한 판단은 이렇듯 쉽지 않다.

사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 자체에도 이런 판단의 어려움이 있어 왔다.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기체가 지구 복사열을 가두어 지구를 덥힐 수 있다는 사실은 20세기 초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 더해 지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 역시 1970년대가 되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안이 됐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대기의 온실기체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산업화로 인해 양산된 미세먼지는 오히려 지구를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 밖에도 복잡한 여러 메커니즘이 지구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미 친다. 그러므로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하는지 여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 요인을 모두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후학이 융복합 학문으로 된 과정에는 이처럼 기후와 관련된 여러 분과학문의 연구 결과를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과학자들은 대개 다른 요인은 무시하고 자신의 특정 분야에서 고려하는 인과 메커니즘에 집중하는 연구에 익숙하다. 그런데 기후 문제에 있어서는 과학자들이 여러 전문지식을 함께 통합적으로 고찰해야 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분과학문의 연구 결과에 대한 상호 검토 및 종합적 분석을 통해 1990년대가 되면서 기후 전문가들 사이에 지구의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그 주요 원인은 인간의 활동이라는 점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도출됐다.

이는 획기적인 결론이었고 동시에 두려운 결론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빨리 바꾸지 않으면 파국적 결과가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포함해 모든 과학적 주장은 틀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가능성은 매우 유용했다는 것이다. 당장 석유회사들은 기후변화가 거짓임을 밝히는 연구에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몇몇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직 논쟁적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학자 중 상당수는 기후변화 연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원로 물리학자나 공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주문하는 것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방해하려는 좌파의 음모라고 생각하고 이에 반대했다. 해당 분야 학문의 전문성을 가장 중요시해야 할 과학자들이 특정 정치적 입장에 휩쓸려서 과학정신의 기본을 무시한 셈이다.

보다 세련된 저항의 방식은 경제학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사실이지만 이를 막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비용이 들기에 비용편익적 관점에서는 그 돈을 가난한 나라의 경제발전을 돕는 데 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미래에 발생하는 이익을 적게 잡아 계산하는 경제학의 통상적 방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럴 경우 기후변화 대응책처럼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나타나는 정책은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기 어렵다.

엄청난 비용은 당장 지출되고 그 효과는 미래에 나타나기에 비용은 크고 이익은 적게 계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되는 어떤 정책도 경제적 합리성을 가질 수 없다.

결국 이런 생각은 미래 세대에 신경쓰지 말고 현재 우리가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태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어려운 판단을 요구한다. 이 판단이 지금까지 밝혀낸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야 함은 분명하지만, 이와 더불어 정치, 경제, 인문학적 요인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필요하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