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 왜 사회적 경제인가](3) 또 다른 시도- 사회적기업

2013. 7. 29. 13:38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신년 기획 - 왜 사회적 경제인가](3) 또 다른 시도- 사회적기업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774곳의 정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생겨났고, 1만8700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예비 사회적기업도 1682곳이다. 주로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 창출이나 인건비를 지원받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졌던 사회적기업은 이제 다양한 사회 혁신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010년 기준 영업이익을 내는 사회적기업은 전체의 14%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이 아직 정착·성장 단계에 있어 실패나 성공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에는 24개 사회적기업이 자율경영공시에 참여했다.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경영 투명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다.

■ 설립 6년차 ‘한국컴퓨터재생센터’
중고컴퓨터 재생 연매출 32억… “정보 격차 해소” IT센터 추진


한 해 발생하는 중고 컴퓨터는 400만대이며, 그중에 재활용되는 것은 30만대 정도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한국컴퓨터재생센터는 사람들이 중고 컴퓨터를 믿고 살 수 있도록 제대로 재생하고,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컴퓨터를 제공할 목적으로 2008년 설립됐다.

구자덕 대표(46)는 원래 연매출 100억원 규모의 컴퓨터 대여업체 임원이자 대주주였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컴퓨터 자원이 너무 아까웠고, 그 안에서 시장성도 발견한 구 대표는 4명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첫해 중고 컴퓨터를 4000대 재생했던 게 지난해 2만2000대로 늘었고, 2011년 매출은 32억원을 기록했다. 주된 수입원은 중고 컴퓨터를 정비, 재생해서 쓰거나 기증하려는 기관들의 주문을 받아서 용역비를 받는 데서 나온다. 나머지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중고 컴퓨터 판매로 충당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한국컴퓨터재생센터 사업장에 수리가 완료된 중고 컴퓨터들이 놓여 있다. 한국컴퓨터재생센터는 버려진 컴퓨터를 고쳐 취약계층에 저렴하게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 한국컴퓨터재생센터 제공


▲ 공공부문 입찰 가산점 있지만
혜택 보는 경우 드물어 보완을


정보 격차 해소도 재생센터의 주된 관심사다. 구 대표는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 접근성은 빈부격차의 악순환을 끊을 고리인데, 요새 컴퓨터 못 사고 인터넷 안 하는 사람이 있겠냐 싶지만 실상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에게 컴퓨터 하드웨어를 기증하거나 활용 교재를 보급해왔던 재생센터는 최근 지역 내 아동센터 등 다양한 비영리 민간조직들과 함께 IT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민들이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소프트웨어 개발도 지원할 예정이다.

구 대표는 “수입은 예전의 절반이고 사회적기업이라 이익이 나더라도 지주가 가져가는 부분이 한정돼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행복감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재생센터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분류에 따르면 ‘기타형’에 속한다. 사회적기업 유형에는 일자리제공형, 사회서비스제공형, 혼합형, 기타형, 지역사회공헌형이 있다. 재생센터는 환경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면에서 기타형으로 분류됐지만, 노동집약적인 사업인 만큼 직원 24명 중 절반을 저소득층, 기초수급자, 고령자 등 취약계층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곳에 대한 정부의 인건비 지원은 지난해 2월로 종료됐지만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170만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구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일감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수익이 발생하고 고용이 안정되게 돼 있다”며 “인건비 지원보다는 공공 구매에서 우선권을 주거나 사업개발비를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판로개척이다.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공공부문 계약 입찰 시에 사회적기업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가산점으로 혜택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구 대표는 “사실상 관련 재량권은 담당자들에게 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을 돕겠다는 담당 공무원들의 의지가 가장 관건인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벤처기업 ‘대추씨’가 지난달 7일 서울 합정동에서 개최한 ‘어른이 놀이터’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 대추씨 제공


■ 사회적기업 인증 앞둔 ‘대추씨’
공동체 통한 일상적 치유 기획… 인증 받으면 고용도 늘리기로


10년간 출판계에 몸담으면서 잡지 편집장까지 맡았던 권민희씨(35)는 경력을 버리고 사회적기업가가 됐다. 2010년에 시작한 대추씨는 예술, 명상 등을 도구로 개인, 공동체의 내면과 소통을 돕는 치유 전문 소셜 벤처(Social Venture)다. 권씨는 “다들 치유받기 원하는 세상에서 외국의 명상 프로그램들이 고가에 팔리고, 심리치료정신과 상담이 또 하나의 ‘의존적 소비’가 되는 경향이 안타까웠다”며 “대추씨 프로그램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한 일상적인 ‘힐링’에 주안점을 둔다”고 말했다.

대추씨는 2010년부터 어른이 놀이터, 공동체 워크숍 프로그램, 다문화가정을 위한 힐링클래스 등 직장인이나 학생,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심신을 돌보는 기획을 진행해왔다. 춤 배우기, 표현예술, 마사지, 심리상담 등 다양하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다. 7주차 프로그램의 경우 평균 참여 비용은 5만~10만원 선이다. 힐링 프로그램을 원하는 기관의 요청을 받아, 각종 전문기관을 연결해주고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것도 대추씨의 주 업무다.

현재 대추씨를 운영하는 이는 6명이다. 이들은 아직 고정적인 월급을 받지 않고, 프로젝트마다 자신이 받고 싶은 임금을 제시하고 토론을 거쳐서 확정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나눈다.

▲ 자본금 부족 땐 도움 되지만
창의성 침해·업무 증가 부담


지난해 10월 법인등록한 대추씨는 올해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정식 고용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권씨가 처음부터 사회적기업을 염두에 두고 대추씨를 만든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출판계 환경에서 권씨는 “나를 치유하는 데 돈과 시간을 가장 많이 썼다. 회사 등 많은 곳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0년간 각종 심리치료를 경험하면서 요가, 명상 강사 자격증을 따고 그 자신이 ‘힐링’ 전문가가 됐다.

대추씨 프로그램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발굴해서 제공하는 너희가 사회적기업”이라고 조언해줬다. 권씨가 지난해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청년 사회적기업가로 선정되고 받은 교육과 지원금은 경영에 큰 보탬이 됐다. 2년간 대추씨를 운영하면서 퇴직금과 그간 모은 돈을 대부분 까먹었던 권씨지만 자본금을 1000만원 수준으로 다시 모을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 인증이 꼭 혜택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권씨는 “자본금 없이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보고서 등이 늘어나 창의성이 침해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기업은 돈을 받지 않고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부딪칠 때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권씨는 “직장생활할 때보다 업무 강도는 세지만 스스로 밝고 건강해졌음을 느낀다”며 “앞으로 취약계층을 위해 수익 일부를 환원하거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