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안으로서의 시민정치]시민정치 리더십은 살아있다
2013 01/15ㅣ주간경향 1009호
이번 대선 좌절감 맛보았지만 향후 총선 · 대선 국면 화두로 부상할 듯
임유진씨(42·서울 강서구 화곡동). 지난 대선 때 서울 공평동 안철수 진심캠프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개최하는 정치혁신포럼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던 인사다. 그의 관심사는 비례대표제의 개혁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임씨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은 ‘두번째표 대표’였다. ‘시민은 그 수준만큼 제도를 얻는다’는 모토도 적혀 있었다. 단체 이름에서 ‘두번째 표’란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를 의미한다.
지난해 10월 22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 등의 주최로 열린 ‘시민정치콘서트-우리는 유권자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토론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포털에 개설한 두번째 표 카페에는 한국의 비례대표제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놓았다. 다른 회원은 없었다. ‘1인시민운동’인 셈이다. 포럼에서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현행 비례대표 선거의 문제와 대안을 역설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임씨에게 연락했다. “선거 때 지역구는 어느 쪽은 빨간색, 다른 쪽은 초록색 식으로 보여주는 거, 엄청난 왜곡이거든요. 지난 총선의 경우 246개 지역구만 결과를 보여주고 나머지 54명의 비례대표가 가능했던 전국 투표율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자에게 “2001년 7월 19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1인1표제가 위헌판결을 받은 날이었다. 그전까지는 각 후보자의 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각 정당이 배분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정당투표라는 ‘두번째 표’가 생겨났다. 첫 수혜자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었다. 이때부터 도입된 ‘두번째 표’ 제도와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진보정당은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당원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순위를 정합니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같은 거대 양당은 왜 순위가 그렇게 되는지 밝히지 않아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전체 610명이 비례대표에 지원했는데 그 중 50명을 선발한다고 밝혔는데, 그것도 그 정당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민주당의 경우 아예 몇 명이 접수했는지 발표하지도 않았고.”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 등 개혁이 한국 정치개혁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관련해서 정치학 교수들의 세미나에도 참석해봤다. 유명인으로 단체의 홍보대사를 선임할까 고민도 했다. 임씨의 직업은 논술학원 대표다. 생계 이외의 모든 관심을 비례대표 개혁에 쏟고 있다.
안철수 현상,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
시민정치. 짧게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화두로 등장한 말이다. 시민정치의 개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씨처럼 투표권 행사 이외에도 시민 자신이 정치제도 개혁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시민정치이고 궁극적인 지향이다. 좁은 용례로 사용되는 것이 시민사회, 기존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제도정치권 진출을 두고 나온 말이다. 시민정치에 대한 합의된 개념은 아직 없다. 정상호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외국 학계에서 논의되는 생활정치나 참여정치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지 않은 개념으로 외국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끌고가야 하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시민정치의 기원을 보다 정교하게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두 흐름과 만나게 된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이 시민사회 리더십이 자치행정으로 이전된 경우가 첫째이고, 둘째는 안철수 현상이다. 전혀 정당기반이 없던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한 후, 안 후보의 위상은 잠재적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그 힘은 생각 외로 컸다. 실제 후보 사퇴(2012년 11월 23일)까지 대선 레이스 내내 안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엎치락뒤치락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한때의 바람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현상이었다.
‘안철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두고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과 같은 해석이 나왔다. 제도권 정당정치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이라도 집권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의 민만기 집행위원장은 “안철수 현상은 대중 스스로 시민정치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데,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을 때 야권으로서는 리더십의 부재로 가장 절망적인 때였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불신하면서도 야당에서 대안을 발견 못하니까 안철수를 ‘드래프트’한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국민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아 현상을 일으켜버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4·4분기 직원 정례조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 한 해 고생한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큰절을 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난 1년 서울시 행정 역시 또 하나의 시민정치 실천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2월 28일, 박원순 시장이 시청 공무원들에게 절하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2012년 서울시 공무원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 표시다. 사진이 관심을 끌자 박 시장은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시 직원들이 다 한 일”이라며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공무원들도 이전까지 경험한 오세훈식 리더십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박원순 서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1년 시정에 대한 시민평가도 좋은 편이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12월 5일 서울시민 여론조사를 보면 69%의 서울시민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지지자의 46.2%로부터도 박 시장의 시정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정책과제 중에서는 투명시정, 청책(聽策)·주민참여 예산제 등이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청책, 경청의 리더십은 그가 시민사회 인사이던 시절부터 쌓아오던 독특한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은 “‘간사와 사무처장, 대표가 동등하게 토론하는 시민단체 문화’(우석훈 <시민의정부, 시민의 경제> 참조)가 서울 시정에도 이식된 것”으로 평가된다.
박 시장은 2012년 10월 낸 대담집 <시민은 현명하다>에서 변한 서울시의 운영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자평했다. “시장에게 보고를 할 때 팀장도 들어오고, 담당 주무관도 들어오게 합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국장이나 본부장만 들어오는 것이 기존 관례였다면, 이메일로 바로 팀장하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일종의 형식 파괴인 셈인데, 이 팀장들이 미래의 과장이고, 과장이 미래의 국장이잖아요. (중략) 이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비전을 주겠습니까. 사실 제가 보기엔 행정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박원순 시장의 ‘경청’ 리더십과 시민정치
시민정치가 ‘총선 1당-정권교체’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시민정치 실험은 또 하나가 있다. 시민사회 인사들이 국회에 들어간 것이다.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민우회 대표를 역임한 김상희 의원은 이미 18대부터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 2012년 7월, 18명의 전직 시민사회 출신 원내 의원들을 중심으로 의원 연구모임인 시민정치포럼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당면과제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 탐색 ▲시민들의 정책적 요구를 입법적 성과로 전환 ▲시민정치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발 및 제도개선방안 연구 등 “시민정치 관점에서 정치개혁 과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민주통합당과 진보정의당 등 야권 의원들로만 결성된 모임이지만 ‘시민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최초의 시도다. 이들의 ‘시민정치 실험’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모임 구성원 대부분이 초선이며, ‘대선’과 같은 정치일정 때문에 이들이 역량을 발휘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정치적 환경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모임의 출발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던 박원석·김제남 의원은 진보정의당으로 당을 바꿨고, 안철수 후보가 출마함에 따라 송호창 의원은 민주통합당을 탈당해 현재 무소속이다. 역시 시민사회 출신으로 원외에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민영 참여연대 전 사무처장은 “시민사회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를 갖고 움직이기는 어렵고, 또 당내의 계파질서 속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고 평했다.
‘제도권 정당 밖 시민정치 흐름’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2008년 촛불시위를 계기로 만들어진 ‘희망과 대안’을 시작으로, 대중운동과 결합을 꾀했던 시민정치행동 ‘내가꿈꾸는나라’(이하 ‘내꿈’)가 2011년 11월 정식 창립해 활동에 들어갔다. ‘내꿈’은 지난해 11월 26일,‘대한민국의 희망을 위한 국민연대의 밤, 위대한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후보 단일화를 축하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었다. 이 행사는 일간지에 광고까지 냈지만 하루 전 전격 취소했다.
시민정치, 대안적 리더십 될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4일 ‘투표권 연장 콘서트’가 열린 서울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무엇 때문일까. “원래 계획은 단일화 협상 시한인 11월 26일, 누구로 되더라도 단일화가 완성되었을 것으로 예상해 계획한 행사였다. 그런데 11월 23일, 안철수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안철수 후보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국민들의 상심이 너무 큰 마당에, 후보 단일화를 축하하는 행사를 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취소한 것이었다.” 민만기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내꿈’은 투표시간 연장운동 등과 함께 후보 단일화, 대선 이후 시민연합정부의 상 등을 주제로 한 정치콘서트를 대선기간 13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내꿈’의 활동이 지나치게 후보 단일화나 진영논리에 기울지는 않았나 하는 비판도 나온다. 이원영 정치혁신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초기에 시민정치 콘서트를 공동주최하다가 기획에서 빠진 것은 내꿈이 후보 단일화 프레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 때문”이라며 “‘내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크게 보면 시민정치운동이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있지 않느냐는 것은 꼭 한 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주요 이슈가 되었던 ‘무상급식’과 같은 경우 정치권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제기해온 것을 정치권에서 받으면서 선거의 이슈가 된 것인데, 그와 같은 시민정치적 활동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치공학적 논의에 휩쓸려 들어갔다는 문제의식이다.
장외의 시민정치에서 평가되어야 할 또 하나의 ‘실험’은 투표시간 연장활동과 투표율 제고운동이다. 지난 2002년 이후 시민사회는 매번의 대선에서 대선유권자연대와 같은 조직틀을 만들어 운동을 벌여왔다. 이번 대선에는 그와 같은 조직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신 ‘투표권보장공동행동’, ‘투표하고 웃자 국민캠페인단’ 등의 활동이 있었다. 활동을 조직한 이재근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장은 “투표시간 연장의 경우 결국 관철해내지 못했지만, 제도개혁 직전까지 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며 “과거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야권 지지성향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낸다는 뜻이기도 했는데, 이번 대선 결과에서 보이는 것처럼 반드시 여야 지지와 상관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2013년에는 투표권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새누리당 1당의 정치환경에서 시민정치는 정치개혁에서 대안적인 가능성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법조인·관료·학자로 치우친 현재의 정치인 충원 구조를 바꿔내는 시민정치리더십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쉽게 말해, 시카고에서 풀뿌리시민운동을 하다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와 같은 사례를 한국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선과정에서 시민정치를 평가해보면 사실 정당정치적 토대가 부재했다는 것이 드러났고, 새정치 또는 정치혁신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며 “단기적으로 봐서는 ‘시민정치발 새정치’의 좌절로 볼 수 있지만, 새정치에 대한 국민 다수의 열망은 살아있기 때문에 멀게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가까이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화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미 정치권에 포진한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과 관련해서도 “그동안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이 추구했던 가장 중요한 방식이 입법청원이었는데 2012년이 선거의 해이다보니 시민사회 출신이 자신들이 쌓아온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며 “특히 올해는 새정부가 출범하는 해이기 때문에 입법청원운동이 중요해질 것이고, 과거와 달리 이제는 국회에 진출한 시민사회인사를 통해 직접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정치활동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선 결과와 관련해 정상호 교수는 “전체적으로 평가를 해보면 안철수 식의 시민정치와 문재인의 책임정당정치가 시너지 효과를 냈어야 했는데, 안철수는 시민정치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했고, 문재인은 제도정치의 민주당적·친노적 한계에 갇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정치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데, 특히 새롭게 정치에 눈을 뜬 세대의 정치참여욕구가 높아졌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에 대한 참여 체감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특집| 대안으로서의 시민정치]풀뿌리 시민정치 꿈꾸는 사람들
2013 01/15ㅣ주간경향 1009호
서울풀시넷 · 더 체인지 등 생활형 정치 표방하며 기존 활동 확장 노력
시민정치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단체들은 시민정치의 혈맥이다. 대선이 여당의 권력 재창출로 귀결됐지만, 그럴수록 중앙정치의 권력 지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상의 ‘작은 정치’의 중요성은 커진다. 시민의 삶에 밀착하는 생활정치는 지난 대선 기간에 여야가 한 목소리로 주창한 ‘새정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선 이후 풀뿌리 시민정치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이들은 기존 활동을 지속·확장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한편으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생활정치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풀시넷(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은 이름 그대로 서울지역 풀뿌리 단체들의 네트워크다. 서울지역 37개 풀뿌리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풀시넷은 2010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5~6일에 진행된 더 체인지의 ‘모떠꿈’ 워크숍 참가자들이 풀뿌리 시민정치 관련 강의를 듣고 있다. 더 체인지는 시민들의 생활정치 참여를 지원할 목적으로 2010년에 출범한 시민단체다. | 더 체인지 제공
전상봉 서울풀시넷 정책위원장은 지난 대선 결과를 보고 낙담했다.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야권의 패배라기보다는 그동안 민주화와 진보의 가치를 표방한 야권의 제도정당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정권교체의 열망은 높았지만 중앙 정치인들은 그 열망을 대변할 만한 준비나 능력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전 위원장은 지금이 생활정치 운동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야권이 새정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새정치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해 패배했다면, 새정치의 모델은 생활정치에서 나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의제를 풀뿌리들이 수용해 정치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는 지방선거다. 전 위원장은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2014년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후보들이 지방의회에 더 많이 진출하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도적인 걸림돌이 있다. 현행 지방선거 제도는 제도권 정당과 무관한 정치신인에게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 관심
대표적인 장벽은 기초지자체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다. 정당공천제가 풀뿌리 후보들에게 얼마나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는지는 그간의 선거 결과가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2010년 2월 전국 16개 풀뿌리 단체들의 연대체인 풀뿌리좋은정치네트워크(풀넷)는 “동네 정치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지역 기득권 정치의 벽을 뚫고 새로운 풀뿌리 정치운동의 흐름을 만들고자 한다”고 선언하며 그해 6월 지방선거에 17명(광역의원과 기초의원 포함)의 후보를 냈다. 그러나 17명 가운데 14명이 낙선하고 3명만 당선했다. 서울의 경우에는 출마자 6명이 모두 낙선했다. 2006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2006년 초록정치연대는 기초의원 선거에 20명을 내보냈지만 2명만 당선했다. 반면 정당공천제가 없었던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 30여명이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이 때문에 지난 대선 기간 중 여야가 공언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마냥 긍정적이진 않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봉구 기초의회 선거에 나섰다 낙선한 이창림씨는 “정당 공천을 하게 되면 지자체 의원이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을 돕는 사람으로 역할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있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정당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표를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천제를 없애는 게 시민들에게 좋다. 그런데 정당 공천을 하지 않을 경우 지역 기득권 인사들이 기초의회에서 사고를 쳤을 때 책임질 주체가 없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전상봉 위원장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반드시 풀뿌리 후보에게 유리하다고만 말할 수 없다. 기존 정당과 연계돼 있는 인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지역 토호들이 결탁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며 “당선자를 4명 낼 수 있는 중대선구제를 도입해 풀뿌리 후보들이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거나 풀뿌리 단체들의 정당 설립을 허용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집단지성 추구하는 ‘더 체인지’ 운영방식
최근 주목받고 있는 협동조합에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풀시넷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은 협동조합 형태로 서울햇빛발전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협동조합기본법 발효 직후인 지난해 12월 18일 출범한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은 올해 초에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 20㎾ 규모의 태양력발전소를 설치한다. 임원과 조합원은 학교 구성원과 지역 주민이 맡는다.
개별 풀뿌리 단체나 단체들의 연대체 차원을 넘어 일반시민들의 참여를 온·오프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조직하려는 노력에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8월에 출범한 ‘더 체인지’는 시민정치를 위한 열린 플랫폼을 지향한다. 더 체인지는 하승창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과 서왕진 전 환경정의 사무처장 등 시민사회 활동가 5∼6명이 시작했다. 더 체인지는 참가자들과 함께 특정 주제에 강연과 대화를 하는 오픈 콘퍼런스와 싱크카페 콘퍼런스, 풀뿌리 활동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풀뿌리 활동가를 위한 단기 교육 프로그램인 ‘모떠꿈’ 등 세 부문의 활동을 한다. 상근자는 따로 두고 있지 않다. 2012년 싱크카페 콘퍼런스에서 오고간 대화는 지난해 11월 <왜 우리는 더불어 사는 능력이 꼴찌일까>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더 체인지에 참여하고 있는 풀뿌리 자치연구소 이음의 오관영 운영위원은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은 전문가들이 정책을 제안하는 방식이었다면 더 체인지는 시민들 누구나 의제와 정책 대안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종의 집단지성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생활밀착형 의제를 끄집어낼 수 있다고 본다. 기존 시민단체 중심 시민운동 방식에 대한 풀뿌리식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25일 중랑구 민중의 집에서 지역 주민들이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있다. | 중랑구 민중의 집 제공
더 체인지의 2013년 활동계획은 확정되지 않았다. 대체적인 공감대는 있다. 오 운영위원은 “지역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데서도 알 수 있듯 협동이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런 흐름이 모이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더 체인지는 그런 활동이 잘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풀뿌리 시민정치의 흐름 중 하나로 ‘민중의 집’이 있다. 민중의 집은 풀뿌리 민중운동의 거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에서 생겨났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서로 가꾸고 나눔으로써 지역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따뜻하게 바꾸기 위해 만든 주민들의 자치공간이자 공동체’를 지향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에서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지만 한국에서는 2008년 11월 서울 마포구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후 2010년 중랑구, 2011년 구로구에 민중의 집이 들어섰다.
박원순 시장 풀뿌리 의제 주도 ‘양날의 검’
민중의 집은 지역 밀착형 풀뿌리 운동의 거점이자 진보신당의 지역거점이기도 하다. 마포구, 중랑구, 구로구 민중의 집은 모두 진보신당 당원들의 힘으로 마련됐다. 민중의 집은 지역별로 활동성에 편차가 있다. 성미산 마을 등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돼 있는 마포구 민중의 집이나 생활 근거지로서의 기능이 강한 구로구와 달리, 도심으로 출근하는 이들의 베드타운 성격이 강한 중랑구의 경우 민중의 집 운영이 수월치 않다. 박수영 중랑구 민중의 집 운영위원은 “중랑구의 경우 일터와 삶터가 분리돼 있어 지역공동체 문화가 약하고 구청장도 11년째 보수정당 출신이 맡고 있어 형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중랑구 민중의 집은 건물의 한 층을 월 50만원에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데, 회원 40여명으로부터 들어오는 회비는 30여만원 수준이다.
박원순 시장이 시정을 책임진 이후부터는 사정이 그나마 좋아진 편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미디어문화교실 위탁운영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중랑구 민중의 집은 현재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20대 청년층, 30∼40대 장년층, 60대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해당 연령대의 주민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1월부터는 지역공동체 라디오 네트워크를 출범할 예정이다.
박수영 운영위원은 2014년 지방선거 출마도 고려 중이다. “민중의 집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그 돌파구로 지방선거 출마를 생각하게 됐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선거과정을 통해 활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예산과 관련해서 중랑구 공무원들의 업무 진행에 실망한 부분도 있어 벌써부터 출마할지를 두고 고민해 왔다.”
그도 정당공천제 폐지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금도 학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는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부작용이 더 심해질 것 같다”는 게 그 이유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의 서울시는 풀뿌리 시민정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양날의 검이다. 전상봉 서울풀시넷 정책위원장은 “박 시장이 풀뿌리 활동가들보다 더 강하게 풀뿌리 의제들을 주도하는 측면이 있어 풀뿌리 단체들의 입장이 애매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오관영 이음 운영위원은 “서울시가 마을만들기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해야 할 풀뿌리 활동가들이 마을만들기 지원센터 같은 곳으로 흡수되는 문제가 있다. 지역의 풀뿌리 역량과 행정의 추진력을 균형 있게 결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특집| 대안으로서의 시민정치]정계로 간 활동가들, 고민하는 시민단체
2013 01/15ㅣ주간경향 1009호
김기식·박원석 등 10여명 국회 진출…
특정 정당 유착 의심받아 신뢰도 하락 우려
‘시민정치’는 선거의 해 2012년의 화두 중 하나였다. 2011년 서울시장 재선거에서 참여연대 출신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것을 필두로 많은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에 결합했다. 한편으로는 기존 정당에 실망한 시민들의 정치참여 열기가 생겨났고, 이것이 ‘안철수 현상’과 투표율 상승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정치검사’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민단체 인사들의 정치참여도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해 4월 총선을 계기로 10여명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국회로 들어간 것이다.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학영 전 YMCA 사무총장, 최민희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 등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됐고, 박원석 참여연대 전 협동사무처장, 김제남 전 녹색연합 정책위의장은 통합진보당 의원(현재는 진보정의당)이 됐다.
진선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 여성인권위원장(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문재인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송호창 민변 전 사무총장(현 무소속 의원)은 안철수 전 대통령후보 캠프의 유일한 현직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좌관, 특보단에도 여러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왜 정치에 뛰어들었을까. 가깝게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이 영향을 줬지만, 조금 멀게 보면 2008년 촛불집회가 이들의 등장 배경이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촛불집회에서 정치의 부재, 정치의 무기력함을 느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시민과세계> 21호(지난해 7월 발간)에서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기존의 정당구조나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포괄할 수 없는 행동하는 시민의 거대한 존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때 정치무능 보고 정계 진출
김 전 처장은 같은 글에서 이명박 정부를 “특권세력의 노골적 이익 챙기기와 민주주의의 퇴행, 남북대결 정책으로 일관했다”고 평가하며 “감시와 정책 제안에 주력하던 기존의 시민운동으로는 집권세력을 도저히 막기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행정과 반대자들과의 불통이 시민단체들, 특히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정치권으로 이끈 힘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민단체 출신의 여러 인사들이 기성 정치권에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에서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좋은 소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는 “특히 시민단체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분이 정당에 들어가면서 단체 전체가 ‘민주당 외곽조직’처럼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시민단체 내부적으로는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람과 단체의 활동을 명확히 구별하지만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이 유착된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 현재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에 대해 비판적이며, 오히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48)은 “시민정치는 시민운동을 통해 공익적 목적에서 정부나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광의의 정치활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게 되면 개인의 활동이 단체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당에 들어가 선거 때 입후보를 해놓고 슬그머니 시민단체에 돌아오는 등 절차적인 투명성이나 윤리성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정체성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47)은 “참여연대는 진보적 시민단체”라며 시민단체가 정치적인 성향이 아예 없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시민단체는 특정 정당과 조직적인 연관을 갖지 않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등이 있었을 때 우리는 정권 퇴진까지 주장했다”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은 비정부기구로서의 시민단체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경실련 출신인 정치권 인사들과는 가능하면 만나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출신인 현직 의원으로는 홍종학 민주당 의원,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고 총장은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면 몰라도 사적인 자리에서 경실련 출신 인사들과는 의식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운동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사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계 진출은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안철수 현상, 나꼼수 열풍 등 시민정치현상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시민단체의 역할은 축소된 상황에서 정계 진출만 늘어났다. 이 사무처장은 “예전 시민단체에 낀 거품의 마지막이 정계에 진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가장 활발했던 것은 이들이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이 사회적 영향력과 신뢰를 가졌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일례로 2004년 성균관대와 삼성경제연구소의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시민단체는 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05년 파워집단 실태조사’에서 참여연대는 8위를 기록해 검찰, 국세청, 전경련, 청와대보다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 동아시아연구원의 같은 조사에서 참여연대의 순위는 조사대상 26개 기관 중 16위로 대폭 낮아졌다.
비판·감시 역할 부재 신뢰도 하락 원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시민단체의 신뢰도 하락에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고계현 사무총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일부 시민단체가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라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신뢰도 하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고 사무총장은 “참여정부 시절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에 유착돼 있었다”며 “이른바 진보·개혁적 NGO들이 청와대에 다녀오면 입장이 바뀌거나 비판보다는 협력을 많이 한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오히려 과거에 신뢰도가 지나치게 높게 나왔던 것”이라며 “한때 참여연대와 같은 종합형 시민단체가 준정당적 조직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당시 상황이 굉장히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가 융성했던 10여년 전 상황과 달리 현재는 시민들 스스로가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생겼다며, 2012년 대선국면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과정에서 시민단체가 주도한 것이 얼마나 있나. 그나마 투표참여 캠페인이 잘 된 편이었지만 온전히 시민단체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여러 중심적 인사가 정치권에 진입하고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시민단체의 길은 무엇일까. 한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는 “주요 단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인물들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갑자기 시민단체 회원이 줄어든 것도 늘어난 것도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비판과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 정답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인터넷 등으로 폭발하는 시민정치는 일시적으로 확 타올랐다가 금세 꺼지기도 한다. 시민단체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시민단체가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고, 시민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전히 자신의 의사를 대변받을 수 없는 더 낮은 현장으로 시민단체가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