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구용희 기자 = 여유와 치유를 부르는 '느림의 미학' 슬로시티(Slow City).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국내 일부 슬로시티가 국제연맹에서 퇴출된 가운데 최초 발상지이자 국제슬로시티연맹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영국, 미국, 호주, 중국 등지의 슬로시티를 전남발전연구원 및 한국슬로시티본부(슬로시티 e-뉴스레터)의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10일 한국슬로시티본부에 따르면 올 6월 말 현재 국제슬로시티에 가입된 지역은 27개국 174개 도시에 이른다.
최초 발상지이자 국제슬로시티연맹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이 18개국으로 가장 많다. 아시아는 한국, 중국, 터키에 이어 일본이 새롭게 가입하면서 4개국으로 늘었다. 나머지는 북미 2개국과 오세아니아 2개국, 아프리카 1개국 등이다.
국가별로는 이탈리아가 오르비에토를 포함해 72개 도시로 가장 많다. 독일이 12곳으로 뒤따랐다. 지난해까지 2위였던 한국은 장흥이 탈락하고 신안이 보류되면서 10곳으로 줄어 폴란드와 함께 세 번째다.
이어 터키(9곳),
프랑스(8곳), 포르투갈(6곳),
스페인(6곳), 영국(5곳),
네덜란드(5곳) 등이다. 일본과 중국은 각각 1개 도시가 가입돼 있다.
◇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
피렌체에서 1시간 거리로 면적 169㎢, 인구 1만4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1999년 슬로시티 선언 이후 2002년 공식적으로 인증된 세계 최초의 슬로시티이다. 연간 7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생태휴양도시로 잘 알려졌다.
그레베 지역에서는 대량생산이 아닌 이탈리아식 전통요리법으로
슬로푸드를 조리한다. 피자를 만들며, 상점에서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식품들을 판매한다.
해발 500∼700m 산간에서 계단식 경작을 통해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한다. 그레베의 전통산업인 포도주·스파게티·올리브유를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한다. 전통방식으로 올리브기름을 짜고 스파게티를 만들며 포도주를 발효시켜 생산공정에서 공해나 쓰레기 발생량이 적다. 첨가물도 첨가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식 슬로푸드는 주로 지역 내에서 소비된다.
증가한 관광객 수용을 위해 별도의 숙박시설을 신축하지 않은 대신 기존의 민가를 고쳐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마을의 주요 사안 결정은 협의회를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어 외부인의 토지매매·거래·거대자본의 유입·대형 쇼핑몰과 음식점·대형공장 등의 입점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레베 지역은 지역경제 및 산업의 주체가 지역주민이다.
애초 많은 주민의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구역에서의 주차금지나 차량진입 금지, 전통방식을 강요하는 농축산물 재배·사육정책은 지역민의 반발을 샀다. 강력한 항의 소동과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그레베 시장이었던 파울로 사투르니니는 '슬로'라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순리를 기다릴 줄 아는 것임을 강조했다. 때마침 유럽 전역에 광우병 파동이 일어 많은 지역민이 그의 뜻을 지지하게 됐다.
◇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피렌체와 로마의 중간에 있다. 인구는 2만1000명 정도이지만 연간 관광객이 200만명에 달한다.
이탈리아 내에서도 화이트 와인의 대표 산지다. 그레베 인 키안티와 마찬가지로 1999년 슬로시티 선언 이후 2002년 공식적으로 인증된 슬로시티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은 유기농으로 재배된다. 지역생산·지역소비의 원칙에 따라 지역 내 재래시장을 거쳐 가정·학교 등지에 슬로푸드로 제공된다.
1980년대부터 버스와 자동차 무게 때문에 지반에 문제가 생겼다. 오르비에토는 도시지반을 보호하기 위해 케이블카 운행·번화가의 통행금지·도심 외곽 주차장 설치·무빙워크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지하주차장과 지상의 연결·도심부 전기버스 운행 등 친환경 교통체계가 구축돼 있다.
100년 이상 된 제과점, 정기적으로 열리는 재래시장이 있다. 오르비에토 시청은
슬로라이프 전략을 수립하여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오르비에토 휴식시간 '시에스타'를 시행하고 있다. 오후 6시부터 8시에는 오르비에토의 전통인 저녁 산책 '파세쟈타'가 시행된다.
초기에는 시 정부가 앞장서서 슬로시티를 추진했다. 이후 지역 주민으로부터 호응을 얻어 자발적 주민참여가 이뤄진다.
◇ 영국 러들로
러들로는 영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다. 인구 약 1만500명의 소규모 도시이다. 러들로는
지방의 제21·
상공회의소·지방의회에서 슬로시티 신청비용의 공동부담을 통해 2003년 영국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현재 슬로시티 영국본부가 있다.
러들로는 지역생산품 생산의 전통적 방식을 존중한다. '산지생산 산지소비'를 고수하고 각종 전문 장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그들의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잘 형성돼 있다.
또 환경친화적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들로 변두리에 있는 생태업무공원은 친자연적 설계로 유명하다. 이는 생태업무공원 내 모든 건물이 'BREEAM'(Building Environment Assessment)의 기준에 맞춰 설계·건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들보다 온실가스 방출을 반으로 줄이고 있다.
◇ 영국 에일셤
영국 동부 노퍽에 있는 브로드랜드의 에일셤은 반 전원지구로써 오래갈 새로운 생태공동체(New eco-Community)를 지향한다. 에일셤 슬로시티는 마을 주민의 웰빙으로써 지역민과 방문객의 복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슬로시티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를 위해 마을 주민과 관리자(시장·시의원·공무원)를 잇는 진정한 연대감, 사람들이 계속해서 진정한 삶의 질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창출하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지정한 웰빙적 에코-타운(Eco-Town)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기존 마을과 떨어져 있되 잘 연계된 새로운 정착지 ▲탄소제로 기준을 달성하는 타운 ▲환경지속 가능성의 모범 타운 ▲주민을 위한 쾌적한 시설을 제공하는 타운 등이다.
◇ 미국 소노마
2010년 미국의 첫 슬로시티로 가입된 소노마 계곡은 인디언들과 스페인이 지배했던 곳이다. 소노마란 말은 인디언 말로 'Many Moons'이다.
매년 내외국인의 방문자 수는 47만5000여명에 이른다. 소노마 계곡에서 느끼는 철 따라 다양한 자연환경의 변화는 찾는 이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소노마는 나파와 더불어 포도주 농장지대로 더 잘 알려진 지역이다. 지중해성 온난 기후로 일년 내 내 기온이 한국의 초여름과 같다. 소노마 밸리의 뛰어난 생태와 풍요로운 자연유산은 주민과 방문자에게 수준급의 삶의 질적 체험을 제공한다.
소노마밸리는 창의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촉매적 미래를 염두에 둔 지속성과 함께 장기적으로 소노마의 삶의 질을 보존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밸리는 가치와 정체성의 보호를 존경하며 표준화는 반대한다. 또 환경과 인간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 대체·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며 자연을 보호한다. 소노마는 슬로-노마(Slow-noma)라는 별명에 따라 슬로라이프를 생활하고 있다.
◇ 호주 굴와
굴와는 2007년 호주의 첫 번째이자 비유럽의 첫 슬로시티이다. 남애들레이드 주도에서 80㎞가량 떨어져 있다. 머리(Murray) 강 하구에 있는 인구 6000명의 작은 타운이다.
굴와는 남호주의 도시수도인 남애들레이드 관광지의 한 자락이다. 방문자 대부분은 당일 여행자이거나 단기 체류자이다. 외래 방문자 중 아시아계는 중국과 한국 여행자가 증가 추세다.
굴와는 150년 전통의 목조 보트 건조 센터이자 증기 기선 노(paddle)와 증기 기차가 도입된 중심지이다. 토산품으로는 와인·치즈·올리브·과수원·생선을 들 수 있다. 지역 공예품은 유화·목제품·전통 활 만들기·직조 바구니가 있다. 굴와는 느린 삶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 중국 가오춘(高淳)
중국 최초 슬로시티 가오춘 야시는 인구 2만명의 농촌마을이다. 난징에서 90㎞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중국 최초 슬로시티의 탄생은 세인을 놀라게 했고,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주목을 받게 했다. 공업화가 범람하는 도시들이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고장의 수입원은 생태농업과 생태관광에 의존한다. 30여㏊의 죽원림, 40여㏊의 유기농 녹차원, 50여㏊의 과수원 등 대규모의 경제농장이 형성돼 있다.
특히 가오춘은 9세기 신라의 석학 최치원의 유적과 스토리도 있다.
가오춘은 중국 창장(長江)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촌이다. 3분 산·2분 수·5분 밭이라는 생태계의 황금비율을 자랑한다. 국가 생태계 시범구역이기도 하다. 공업 위주의 기업이 한 곳도 없다. 에너지 소비가 높은 항목들은 무조건 제한하며 생태농업을 위해 국가급 농업 우수기업 2개, 유기농·녹색상품 44개, 각종 농산품 브랜드 200여개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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