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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식민지에 총알받이에 군사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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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3. 6. 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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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식민지에 총알받이에 군사기지로

[변상욱의 기자수첩] 노컷뉴스 | 입력 2013.05.17 10:13

 

[CBS 변상욱 대기자]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 김현정의 뉴스쇼 >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분쟁 중이다. 그런데 중국이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오키나와 귀속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예 오키나와 독립 단체를 지원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 오키나와, 류큐인의 아픈 역사

오키나와의 옛 이름은 '류큐'이다. 이는 대만 열도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중국의 주장. 오키나와는 일본 큐슈와 대만 열도 사이에 자리 잡은 섬의 군락이다. 그래서 류큐제도라고 부른다.

원래 오키나와는 여러 개의 부족국가이다가 1429년 통일된 왕국, 류큐왕국을 세웠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반독립국 정도의 지위를 유지해 가던 중 160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총부대로 류큐를 공격해 정벌했다. 이후 류큐 왕국은 일본.중국에게 동시에 조공을 바치는 형식으로 존속한다. 하지만 1879년 메이지유신을 치른 일본은 다시 류큐왕국을 점령하는데 이번에는 류큐왕을 폐위시키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해 버린다. 류큐왕국이 일본령 오키나와가 된 것이다.

오키나와의 근대 역사는 참혹하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가 확실해 지자 정전협정을 염두에 두고 지연작전에 들어가기로 한다. 군국주의 천황체제와 군부의 기득권을 보존하기 위해 본토에 강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장기전에 들어가 시간을 끌며 협상을 벌이기로 한 것. 그러기 위해 일본은 오키나와와 우리 제주도에 방어진지와 비행장 등을 만들어 미군의 진격을 늦추려 했다.

1945년 3월 26일 새벽, 미군이 오키나와 본섬 동쪽에 있는 "게라마"에 상륙하면서 전투가 시작됐고 3개월간 54만 명의 미군이 오키나와 전투에 뛰어들었다. 이에 비해 일본군의 병력은 겨우 7만 여 명 정도였다 한다. 일본은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하여 만 14세에서 70세까지의 오키나와 남성과 여학생까지 전쟁에 강제 동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 총 20여 만 명 중 오키나와 주민이 12여 만 명, 미군이 약 1만 2천명, 일본군이 약 5만 5천명, 징용이나 종군위안부로 끌려온 한국인이 1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점령한 오키나와에 대해 일본은 1948년 2월에 히로히토 일왕의 메시지를 맥아더 점령군 총사령관에게 전달한다. 내용은 미국이 오키나와가 일본 땅인 걸 인정하면 25년에서 50년, 원한다면 그 이상 오키나와를 지배해도 좋다는 것. 그렇게 오키나와는 태평양 최고의 전략 요충지로 미국 군사기지가 된다. 일본의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법인 셈.

◇ 영토분쟁의 일본, 뒤에서 웃고 있는 미국

류큐, 오키나와의 새 주인이 된 미국은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오키나와'란 일본 용어 대신에 원래의 '류큐'를 쓰도록 했다. 일본왕의 연호사용도 금지했다. 그러다 1962년 사모아가 미국령에서 독립하고, 1970년 피지와 통가도 독립국이 되는 등 태평양 섬나라 사이에 독립의 열풍이 불었다. 류큐인들은 당연히 독립국이 될 줄 알고 1970년 '류큐독립당'까지 만들고 공화국을 세울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1972년 5월,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었던 때여서 미국이 오키나와에 건설한 사회간접자본 (수도, 전기, 도로, 공항 등)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해 일본으로부터 3억2천만 달러를 받아냈다. 어쨌거나 류큐는 다시 '오키나와'가 됐고, 일본 본토를 오가는 비행기는 국제선에서 국내선이 되고, 미국식으로 우측통행하던 자동차는 일본식으로 좌측통행을 시작했다.

일본의 속국이 되고 총알받이가 된 다음 미국에 팔아넘겨졌다 다시 배신당하며 일본에 넘겨진 것이 오키나와 류큐인의 역사이다. 중국이 이런 아픈 곳, 빈틈을 노려 오키나와 독립을 부추기지만 오키나와 주민 중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은 20% 정도이다. 반미 반일본 운동이 성공하면 높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쉽진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독립파, 미국령 잔류파, 일본 귀환파 등으로 나뉘어 여론이 분열되어 왔기 때문에 통일된 여론 형성은 어려워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싸우고 있는 중국,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동아시아 여러 영토분쟁의 배경에는 항상 미국이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은 영토분쟁에는 일본을 앞세우고 뒤로 빠져 관망하며 실익만을 노린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독도 문제도 미국이 오락가락하며 우리와 일본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snip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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