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민주주의와 시민단체, 시민운동
김 동 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1. 시민운동과 민주주의
민주주의 = 다수자의 지배
( 권력의 행사,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다수자인 민중들의 참여, 민중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과정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하는 것)
민주주의의 길은
1) 혁명 혹은 체제변혁을 통한 길
2) 정당, 자발적 결사체(associations), 조직에의 참여 등 시민사회의 밀도(density)의 강
화를 통한 길이 있다. 전자의 경우. 봉건제 혹은 식민지 체제의 붕괴의 과정에서 요청되는
데, 70년대 이후 남미나 아시아의 군사독재 붕괴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양자는 역사적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억제하는
기존의 지배구조, 특히 재산 소유자들이 자신의 재산, 권력과 권위를 어떤 던 방식으로 유
지하려 하는가에 따라 길이 선택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대체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여론의 형성이 가능해야 하며, 법과 제도가 어느정도 합법성을 지닐 경우 가능하다.
2)에 속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과거) 유럽식의 정당정치의 강화를 통한 길과
미국 식의 이익집단(interest group), 혹은 법률적 쟁송을 통한 길이 있을 수 있다.
정당을 통한 정치참여, 정치적 관심을 통해 권익을 향상하려는 경우는
의회가 권력배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을 경우 가능
반면 이익집단 혹은 법률적 쟁송을 통한 구제의 길은 개인의 높은 권리의식과
절차적 합리성 혹은 법의 형평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경우에 가능.
(노동자 부당해고 구제, 소비자권리구제, 기업에 대한 감시감독, 배심원 제도 등 )
한국의 경우 민주주의의 확대 발전은 기본적으로는 1)의 유형 즉 후발국가의 민주화 과
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지니고 있다.
- 제도적 정치, 법적 중립성이 존재하지 않는 분단, 군사독재, 반공 이데올로기
- 민주화 운동은 4.19 이후 정권의 교체라는 권력담당세력의 개편을 통해 민주화를
진척시켜왔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당정치 혹은 법적 쟁송을 통한 민주화시도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으며 국가안보의 논리가 권력의 통제와 감시의
가능성을 제약하였음
- 정당의 발달뿐만 아니라 이익집단의 형성도 지지부진하였다.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은 집단 동원과 근본주의적인 저항의 방식에 호소하기 보다는 정
책입안, 소송, 입법화 촉구 등의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려 한 점에서 2)의 유형 중
에서 미국식의 시민운동, 자발적 결사체과 개인권리 찾기 운동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으
나, 부분적으로 정당정치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유럽식의 신사회운동이 지향하는 생활정치
(life politics), 생활세계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흐름(뿔뿌리 시민운동)과 여론주도형 정치권
력에 대한 도덕적 비판과 감시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대시키려는 전통적인 1) 유형의
운동을 지향하는 흐름(정치적, 종합적 시민운동)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90년대 한국의 시민단체, 시민운동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두 세력인
정부 혹은 정치권력과 대기업에 대한 감시, 통제활동을 통해서 시민의 참여를 제고시키고,
정치적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보다 직접적인 역할
과, 시민단체의 활동과 교육을 통해서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제고시키는 간접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활동 영역은 중앙정부, 중앙정치의 정책결정과 입
법화 과정에 개입하는 전국적인 영역과 지역사회에서의 지방자치 단체와 지방의회와 주민
의 이익에 맞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적인 차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시민운
동은 전통적인 정치활동에 개입하기도 하며, 풀뿌리 차원의 '삶의 정치'에 개입하기도 한
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강화와 확대, 그리고 각종 지방자치
단체 차원에서의 주민참여에 바탕을 둔 참여민주주의의 확대,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
시민단체, 시민운동이 민주주의의 진척에 기여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은 다음과 같다.
1) 정부의 활동, 의회의 활동 등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각종의 부정과 부
패를 고발하고, 정책결정의 오류들을 공개적으로 시정하도록 요청함으로써 권력이 특정 이
익집단의 요구에 맞게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막는다.
2) 기존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 정부 차원의 위원회, 특위 등의 비상설적 기구에 참여하거
나 그렇지 않으면 외곽에서 반대를 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그 정책
결정이 소수의 지배집단의 의사대로 관철되는 것을 막고, 다수의 대중들의 이익에 기여하
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3) 시민들의 불만과 요구에 부응하는 법안을 입안하여 입법을 청원하고, 의원들이 그러한
입법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4) 각종의 시민참여와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민들로 하여금 공적인 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들의 의식을 발전시킨다.
5) 기업활동에 대한 감시와 통제, 각종의 소송과 집단행동을 통해 오늘날 모든 정책결정이
나 대중들의 삶의 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자신의 이윤추구활동을 함에 있어
서 공공의 복리,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진행되도록 한다.
6)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의 주도성을 견제하고
시민의 삶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다.
이 글에서는 지역, 뿔뿌리 차원의 시민운동과 지역정치, 지역자치 등에서 제기되는 민
주주의의 문제는 제외하고, 주로 중앙정부, 중앙정치의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의 시민단체
들이 어느정도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 어떤 한계를 갖고 있는가를 주로 살펴본다. 특히
올해 전개되었던 총선연대 활동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2. 90년대 한국 시민운동, 시민단체의 성격
89년대 말 경실련의 창립을 필두로 본격화된 한국 시민운동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
을 고려할 때 그 성격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시민(citizen)은 계급, 계층 범주
라기 보다는 운동의 지향과 과제를 집약한 개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체제변혁적, 계급
투쟁적운동에 대한 반정립이자 동시에 그것으로 포괄되지 않는 민주화 영역을 정치사회,
경제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시민운동은 분명히 중간계급적 이
해, 관심과 선택적 친화력을 갖고는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80년대 이전까지 계속되었던
초계급적 민주화 운동의 과제, 혹은 민족, 민주라는 공공성 확보를 위한 지식인 운동과 더
깊은 연속성을 갖고 있다. 물론 한국 시민 담론이 사회주의 실패이후 지성적 공백을 채운
서구에서의 NGO 운동과 유사한 시대적 맥락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서 시민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계급성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의 역사에
서 본다면 이제 남북한의 경제력 경쟁에서 남이 확고한 우위에 서서 민족문제의 성격이
변화되고( 즉 통일운동이 더 이상 진보적, 반체제적 운동의 성격을 지니지 않게 되는 조
건), 정치권력의 교체로서 그친 정치적 민주화 운동을 이제 의회, 법, 행정, 기업 등 각 부
문 영역으로 확대해야 할필요성이 제기되는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시민운동에는 1) 앞의 1) 유형을 계승하는 정치적 혹은 종합 시민운
동과 2)의 유형에서 발생한 신사회운동적 시민운동이 함께 포한되어 있다. 전자의 시민운
동은 여전히 7,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이 주도하고 있으며, 현장의 실무자들은 대부분 학
생운동 출신의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과거 전선운동(전국연합), 노동운동에 종사하다가
그러한 운동에서 전망을 상실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상징으로 결집한 것이다. 한국의 시
민운동단체는 그 수에서는 신사회운동적 시민운동이 훨씬 더 많지만 운동의 주도권은 여
전히 중앙에서 활동하는 이들 정치적 시민운동단체가 갖고 있다.
이들 종합 시민운동 단체는 운동의 주요 과제와 지향, 주도세력의 측면에서 보면 주로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운동의 과제가 총체적 , 공익적,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
하는 점, 그리고 지식인 집단이 주도하는 엘리트 운동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는 전자와
유사이다. 즉 한국의 시민운동은 서구의 이익집단 정치, 정당정치의 실험 이후 새롭게 모
색된 참여민주주의 모델의 양상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前) 이익집단적 성격을 갖
고 있다. 운동방식에을 살펴보아도 민의 실질적 참여와 동원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지식
인적인 정책대안 제시 혹인 권력 비판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방식에서는 대중동원형의 과거와는 달리 소송, 정책제시, 민원 해결
처리 등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즉 권력의 재생산의 집약체인 국가권력 혹은 정권의 재편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를 인정하되, 정부의 권력행사 과정에서의 자의성, 불법
성, 비합법성의 고리를 치고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구축해
놓은 의회와 법원, 정부에서의 권력독점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운동 방법에서 개인적 권리구제,
법률적 쟁송의 방식을 주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 점에서 90년대의 시민 운동은 신사회운동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90년대 중
반 이후 환경, 여성,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신사회운동적 시민운동이 크게 늘어났는데,
후자의 시민운동의 경우 새로운 영역의 정치, 새로운 권리의 개념, 탈정치의 시대에서의
새로운 지방의 중앙에 대한 견제, 행정권에 대한 민간차원의 문제제기, 그리고 언론감시,
기업 감시 등 새로운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려 한다. 그리고 운동의 국제 연대활동
을 통해 약화된 국가주권 시대에 국가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구적
시민사회의 형성을 통한 문제해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적 시민운동은 민주화의 목표에 비추어 이중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하나는 과거 민주화운동이 갖는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측면이 있고, 또 미국식의 자
발적 결사체 혹은 신사회운동이 갖는 한계도 함께 갖고 있다.
전자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 민주화 운동이 그러했듯이 학생, 지식인등이 주도하는 정치
적 도덕적 비판운동에 그침으로 권력의 물질적인 기반을 약화시키는 못하고, 따라서 대안
적인 질서의 창출에 실패한다는 점이다. 특히 대자본이 실질적인 사회적 지배자가 된 오늘
의 정치경제질서 하에서 이러한 운동은 자본의 힘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지 못함으로써
기존의 권력을 재생산하고 민주주의를 극히 형식적인 차원에서 머물게 한다는 한계를 갖
고 있다. 한편 시민운동은 서구적 시민운동, 신사회운동이 갖는 한계 역시 동시에 갖고 있
다. 그것은 법률적 쟁송, 정책건의, 정책 비판의 양상을 지님으로써 권력행사의 핵심에 접
근하지 못하고, 집단 동원과 참여를 유도하는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의 권리의식
과 민원의 해결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실제 권력의 근원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가 정부와 결탁하는 등 새로운 권력체로 등장하여 시민참여와 풀뿌
리 민주주의의 확대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수적 시각에서의 비판도 있고,
반대로 시민단체는 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파트너로 기능하여 실제로는
민중의 배제와 무권리 상황을 초래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급진적인 시각에서의 비판도
있다. 이러한 좌.우 양측에서의 비판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는 시민
단체의 실제 활동을 통해서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3. 총선연대 활동과 민주주의
총선연대 활동은 6월 항쟁과 과거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극히 형식적인 민주주의 절
차만을 부활시켰으며, 군부독재 하에서 만들어진 제반 악법들은 여전히 존속하였으며, 군
부 독재권력에 편승했던 정치세력이나 기득권 구조는 건재하고 있어서 90년대 들어서도
민주주의의 질적인 심화가 계속 지연되어 왔다는 각 시민운동 내부의 누적된 위기의식에
출발하였다. 90년대 들어 급성장한 시민운동은 입법자인 정치가가 교체되지 않고서는 제
도와 법의 부분적인 변화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정치개혁을
성취하지 않고서는 각 시민단체가 추진해온 경제개혁, 사회개혁의 과제가 계속 장벽에 부
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즉 총선연대는 문제제기와 여론화,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 설정, 구체적인 실행(언론을
통한 폭로, 외국 사례 연구, 정책대안 제시, 피해자의 동원과 법률적 쟁송, 시위와 호소, 연
대활동)의 방식에서 본다면 기존의 의회활동의 완전한 참여와 공개(국감연대), 그리고 입법
활동을 통한 문제해결의 노력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시도되었다. 그것은 국회를 권력
재생산의 중심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직접 정치참여 즉 정당의 조직화, 정치질서의 근본적
재편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정치참여 즉 기존의 부패한 정치가를
개인적으로 퇴출시키기 위한 의정활동 공개운동(정보공개운동), 국민들의 진정한 참여와 의
사표시의 길을 터주기 위한 매개활동. 그 자체로는 법과 제도의 개정이 전제되지 않은 채
중간층 여론호소, 도덕성 공격의 측면에서는 과거 6월 항쟁의 연장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4.13 총선 이전까지 전개되었던 총선연대 활동은 대단히 특이한 사회운동
이었다. 그것이 특이한 이유는 우선 한국 정치사의 가장 뚜렷한 양상이었던 대중시위를 통
한 정치권력의 교체운동과도 상이하며, 정당제도가 발전된 유럽식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정
당 참여를 통한 정치변혁과 민주주의 확산 운동과도 상이하며, 선거 과정에서 특정 정당이
나 후보를 선택적으로 지지하거나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책대안으로 제시하는 운동과도 상
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기존 정당의 후보자 공천과정에 개입하여 정당의 선거참여가 시민
의 요구에 부응하여 진행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이며, 또 공천된 후보를 부정적인
선거운동 방식으로 개입하여 낙선시키려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시민운동이 비민주
적이고 반민중적인 정당의 변혁에 직접개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민주적 정당의
건설에 기여를 할 수 없는 제약 하에서 보다 민주적인 인사가 정치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려는 제도 내적 유권자 운동 혹은 선거참여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낙천, 낙
선의 대상을 그 정책적 능력보다는 도덕성에 비중을 두었으며, 새로운 질서의 창출보다는
구정치인 혹은 과거 질서의 청산에 두었다는 점에서 과거 6월 항쟁와 같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대중시위의 방식보다는 후보자에 대한 정보공개, 여론의 조성과 압
력 행사의 방법을 주로 동원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80년대 식의 거리의 정치와는 차별성을
갖고 있었다.
총선연대 운동은 애초에 그 운동을 추진했던 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 외형적으로 보면 112명의 공천반대자 중에서 59
명이 실제로 낙선되었으며, 낙선 후보자 86명 중에서 66.3%가 낙선하였고, 중점 낙선대상
자 22명 중에서 15명인 69.2%가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특히 수도권에서 높은 낙선율을 기
록하였으며, 서울의 강동을, 부천의 원미을, 전북 임실, 원주 등지에서처럼 애초에는 당선
권에 있었던 후보가 패배하였다.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총선연대의 활동의
압박 속에서 선관위는 후보자들의 병역, 납세 전과 사실들을 공개하여 시민들이 지난 어떤
선거보다도 정확한 자료를 갖고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운동은 대의제 민주주의 혹은 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제도정치를 "어떻게 대표하는
가", "누구를 대표로 하는가"의 고전적 문제에 대해 시민운동이 개입한 첫 사례가 된다. 된
한국의 지배권력의 중심이 정당은 아니지만, 정당 정치가 권력의 중요한 재생산 메카니즘
이라고 본다면 기존의 정당이 후보 공천을 독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권력의 행사가
시민사회와 절연되어 있었던 점을 문제삼음으로써 정치사회가 시민사회에 제한적으로나마
호응할 수 있는 계기를 열었다. 다음 선거에서 이러한 운동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향후의 정당운영이나 후보자 공천에서는 비조직적인 시민들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
을 수 없게 된 것이 이 운동의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운동은 자유주의적 민주주
의의 공리를 의문시하고 참여민주주의의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고 있다. 그
것은 시민단체라는 집합체가 선거시장에 하나의 행위자(actor)로서 개입함으로써 선거 시장
에서 개인의 선택만이 '정당화된' 선거참여라는 공식을 물신화하여 그것을 강조해온 그 간
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한 의의를 갖고 있다. 총선연대의 공격을 받는 일부 보수적
정치가들이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문제삼은 바 있지만, 자발적인 사회조직인 시민단체가
'개인적'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여론을 통해서 유도했다는 점에서 후보자와 시민의
1대 1의 관계를 부호자, 시민단체, 개인의 3자의 구도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선거참여 운동은 대의제 민주주의, 선거 정치의 기본골격을 전혀
의문시하지는 않았다. 시민단체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과거청산운동이었으며, 일종의 정보
공개 운동이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완전한 정보의 공개, 시민의 의사표
현의 자유, 정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의 자유 등 대의제의 전제가 되는 조건을 원칙대로 확
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총선연대 활동은 개인이 투표행위를 함에 있어서 후보를 제
대로 선택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장벽들, 즉 선거법, 정당의 공천, 신상 정보의 공개 등에
개입하였기 때문에 기존의 정당제도나 선거법이 이러한 원칙을 잘 준수하는 경우라면 애
초부터 별로 관심을 끌만한 운동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총선연대 활동이 각 시민단체가
그간 추진해온 권력감시나 사회개혁 운동의 연장으로서 후보자들의 입법활동을 평가하고,
그들의 정책적 입장을 평가한 다음 낙선, 낙천 운동을 편 것이 아니라 과거 전력과 부패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유권자운동으로서도 상당한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이번 4.13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의회에 진입하여 계급정치의 씨를 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정적(negative)인 전략을 기조로 하였던 총선
연대의 활동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시민들의 관심을 후보의 도덕성 문제에 고정시
키고, 기득권 층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부르주와적 정치게임을 정당화해주었다
는 비판을 하고 있다. 더욱 심하게 말하면 총선연대 활동은 정책선거의 분위기를 실종시
키는데 일조하여 노동자 후보의 진출, 계급정치의 등장에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사실 80년대부터 계속되어온 바 계급정치의 실현을 위해 중간층의
입장을 표현하는 담론이나 시민운동이 노동자들의 관심을 혼란시킴으로써 그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해체시키고, 결과적으로 기존 지배질서의 유지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시민운동 혹은 이번의 총선연대 운동이 신자유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하게
되며, 김대중 정부의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동력의 형성을 저지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들, 심지어 총선연대는 김대중 정부의 2중대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주요 타격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도 이와 동일한 입지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총선연대 활동 초기에 이미 민주노총의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며,
결국 지지운동을 병행하는 민주노총의 참여는 거부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진영과 총선연
대 간에는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었으며, 그 기류는 바로 우리사회에서 시민운동으로 대표
되는 일반민주주의 지향, 중간층 중심적인 담론 혹은 실천과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계급
정치 지향, 노동계급 중심적인 담론 혹은 실천 간의 큰 거리감이 또 한번 드러난 것이었다.
즉 오늘의 정치사회에서 과거 민주화 운동을 계승하고 있는 시민운동이 여전히 정치변혁
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주도권을 쥐고 있으나, 그러한 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이 그러했듯이
언론 혹은 '무정형의 시민'의 지지에 기초하고 있어서 그 토대가 대단히 취약한 형편이며,
반대로 나름대로의 대중적인 기초를 갖고 있는 노동운동은 여전히 탈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어서 결정적인 정치변동 과정에 별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또 한번 반복된 것이
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측의 비판 혹은 문제제기는 시민운동이 안고 있는 한계를 적절히
지적한 것이다. 그것은 그간의 시민운동이 분명히 정치,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선상에 서
있기는 하나 중간층적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리고 지배질서를 건드리지 않는 개량
주의적 성격, 그리고 기존의 지배질서가 설정해 놓은 허용된 담론제기의 틀, 즉 시민운동
을 도덕운동 혹은 탈정치화된 운동으로 고정시키는 담론 구조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틀을 더욱 합리화 안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이번의 총선연대 역시 선거법, 정당법 개정 등
기존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에는 소극적이었으며, 대중들의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인적인 청산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함으로써 정치개혁을 밑으로부터
추동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열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사회와 시민
사회의 분리,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높은 진입의 장벽, 정당구조와 제도의 비
민주성 등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기성 반민주적이고 부패한 정치가의 개인적 퇴출에만 초
점을 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총선연대 방식의 시민운동의 정치참여가 갖는 한계는 지금까지의 한국의 시민운
동이 많은 시민의 직접 참여와 시민의 동원을 통해 역량을 육성해왔다기 보다는 소수 엘
리트집단의 선도적인 문제제기 및 여론의 주목을 끄는 프로그램적 사업을 통해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받아서 성공해 온데도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그러하였듯이 기존의 지배질서나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그
이후의 결과는 60년 4.19 이후 수십년동안 그러해 왔듯이 기존의 정치세력의 역학에 의해
정국의 장래가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간 것이다.
결국 외형적으로는 16대 국회가 상당한 물갈이가 된 것처럼 보이나, 의정활동 과정에
서 나타난 보습은 15대 국회와 어떤 차별성을 드러내주지 않고 있다. 즉 정당의 지도이념
과 성격, 선거라는 게임의 툴 자체를 바꾸지 못하는 선거참여라는 것은 정치적 민주화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총선연대 활동을
통해 장기적으로 시민의 선거참여의 한 모델을 만들었으며, 시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우회
적 감시 기능 강화라는 성과를 얻어냈지만 역시 신자유주의 질서 하에서 민중들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16대 국회가 민중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고통에
호응하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국회개원 이후의 국회의 거듭된 공
전, 의사폐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국회가 보여준 무기력증, 롯데호텔. 사회보험
노조 파업 과정에서의 국회의 무대응,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국회의 입장의 결여 등으로 표
현되었다. 이점에서 본다면 10 명의 낙선보다는 1명의 노동자 후보의 당선이 민주주의의
진전에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완전히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운동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진출과 계급정치 구도가 정착되지 못했다고 보
는 것은 적절치 않은 판단이다. 노동자의 직접 선거참여 혹은 계급정치의 방향과 시민운동
의 낙선.낙천 운동이 헤게모니를 다투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판단은 적절하지만, 실제로 전
자의 방향은 2,3지역의 선거구를 제외하고는 두드러지지 못했다. 즉 4.13 선거 국면을 정책
선거의 구도로 몰아가는데 노동진영은 여전히 대단히 취약한 역량밖에 갖지 못하고 있었
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진영의 일부가 노동진영에 가담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며,
시민운동은 현재와 같은 관성대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
선 '이직 투쟁' 혹은 '동원적 항의'운동에만 관성화된 민주노총 및 노동운동 일반, 그리고
민중운동이 보다 제도정치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와 조직화의 필요성이 있으며, 선거국면에
서 후보전술, 정책연합 등을 통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활동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보수정치의 독점구조에 흠집을 내지는 못했다.
총선연대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던 시민단체는 총선당시 제기되었던 정치개혁 과제를
동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가칭) 개혁연대를 출범시키기로 약속했으나 일정이 계속 지연되
었고,결국은 (가칭)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내년 2년 출범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 조직은
정치관계법 개정등 모든 시민단체가 공통으로 직면하는 개혁과제를 해결하기위한 연대기
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 기구는 경실련, YMCA 등으로 구성된 보수적 시민단체들
의 연합체인 시민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반대로 민주노총 주도로 결성을 추진하
는 민중연대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된 연대조직의 출범은 2002년 지자체 선
거를 둘러싸고 또 한번 정치사회에 부상할 것이다.
4. 맺음말
90년대 시민운동은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중요한 세력이었고, 이들 시
민운동단체의 활동은 새로운 실험이었다. 만약 이 단체들이 보다 강한 영향력을 갖추어나
간다면 그리고 노동운동 진영과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는 획기적으로 진척될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쟁점,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노동자, 경영합리화, 사회복지 확충, 연기금 문제 등의 사안
과 시민의 정치참여를 봉쇄하는 각종의 선거법과 정당법의 개정, 여성의 의식화와 참여를
봉쇄하는 가족법과 가족제도, 그리고 언론이 소수의 소유자에 의해 독점적으로 소유되고
있는 현상을 타파할 수 있다면 민의 참여와 민의 지배로서 민주주의는 한 걸음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시민운동과 탈정치적 노동,농민운동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시민운동은 과거 민주화 운동이 갖고있는 한계,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갖
는 한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즉 6월 항쟁이 군부독재의 퇴진에 그쳤듯이, 총선연대
운동에서는 의회정치 안에서 합법적인 선거과정을 통해 선출된 권력기반을 문제삼지 않은
채 개인적으로 반민주적인 인사를 선거를 통해 퇴진시키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엄청난 파장, 도덕적 지지를 받았으나 과거 4.19나 6월 항쟁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민주화운동처럼 저항운동의 연
장이지 실질적인 권력쟁취 운동 즉 민주주의의 획기적 진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결국 한국의 시민운동은 여전히 시민의 자발적, 주체적 참여를 조직화하는데 한계를 갖
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이 된다는 것을 "자신의 특이한 경우를 초월하려 시도하는 것이고
자신의 조건에 대해 초연하여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공공생활의 관리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들과 함께 나누고 공공생활의 관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노동자와 중간층으로
구성된 한국의 시민들은 여전히 권리는 누리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인간형에 속하고 있
으며 선거참여를 제외하고는 공공영역에 참가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는 가족개인(family
individual)이다. 특히 90년대 도시 중간층은 다른 소비자본주의 국가의 시민들이 그러하
듯이 자유보다 안락한 삶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은 물질적 차원에서 결코 지금보다 더 잘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때 보다 더 명분을 위하여 자신의 희생하거나 양보할 준
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아니 명분을 위해 자신의 물질적 안락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대중문화는 이들의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다. 대중문화는 우리
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지만 우리의 참여를 유도하고 우리를 해방시키지는 않는다.
이제 과거와 같은 대중동원적 저항적 민주화 운동이 구시대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러
나 힘있는 정당의 육성, 대중들의 실질적인 참여에 바탕을 둔 시민운동이 아직 일천한 조
건 속에서 법률적 쟁송이 대단히 매력적인 권력견제의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만약 타성
적으로 이러한 방법에 집착할 경우 미국에서 그러한 것처럼 '법률의 폭발'이 복지국가의
결함을 보상해 줄 위험성도 없지는 않다. 최근 노동운동 진영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절차
적 민주주의에의 과도한 집착이 노동자의 계급권력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는 것은 분명하
며, 한국의 재벌기업의 흥망성쇠를 이제 다국적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조건에서 노동자의
참여도 상당한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식의 반
영으로서 법률적 쟁송 역시 민주주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것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
시민운동은 국민국가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대
상, 투쟁의 대상을 설정함에 있어서 큰 혼란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권력의 제고를 위해서 여전히 국민국가 단위의 정치
적 지배질서의 재편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은 향후의 민주화 운동이 총
선연대 활동의 답습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은 각 영역에서 정부나 국회의
정책, 법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작업을
통한 시민의식과 동원, 참여의식의 제고 없이는 이 지구적 자본주의 하에서 시민이 처한
생존권 위협의 현실과 권리침해의 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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