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페이스북 인터뷰를 하게 되었나?
책을 원체 좋아하는 데다 시민기자, 블로거를 하다 보니 운 좋게 작가를 지척거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때로는 별도의
인터뷰 기회가 찾아올 때도 있어지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그것은 인터뷰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화의 방식"이다. 도대체 작가와
기자가 한두 시간 만나서 뽑아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기자와 리뷰어로서 어느 정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전형성'도 따분함에 한몫 하는 부분이다. 모 출판사의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1~2시간
정도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기자들은 분명히 꼭 필요한 질문을 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거기서부터 거기까지"인 질문을 계속 듣느라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든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책을 둘러싼 기존의 이야기 방식은 한계가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주제에 관해 "책"이라는 매개체는
지금도 훌륭하다. 하지만 리뷰어, 기자(언론)가 필터링해주는 방법보다 일반 독자나 네티즌이 직접 주도하는 이야기 방식이 요구된다. 그래서
'페이스북'이라는 소통매체를 활용해 독자들을 모았고 책을 함께 읽었다. 출판사는 소정의 책 후원과 작가들의 섭외를 담당했다. 페이스북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되었다.
좌충우돌 페이스북 인터뷰 체험기
"출판사, 독자, 작가가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소셜북스(http://www.facebook.com/socialbooks)라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페이스북에 책 관련 페이지를 열었다고 해서 손님들이 방문할 리가 있을까? 책을 읽고 토론을 하려고 해도
책과 책 읽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출판사 관계자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때마침 전태일 40주기에
맞춰 철수와영희, 후마니타스 등 4개 출판사에서 공동으로 출간한 <너는 나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무턱대고 설득한 끝에 20권의
협찬도서를 확보했고 페이스북 상에서 이벤트를 걸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단지 책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책을 가지고 노는
방식이 신선하다는 반응이었다. 소셜북스에 가입한 양김진웅 씨는 "정보의 확장과 공유를 위한 이색 시도"라고 평가했고, 주성현 씨는 "제가 찾고
있던 페이지"라고 글을 남겼다.
하지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작가와 독자가 이야기를 나누기는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다. 출판사를 통해서 작가들에게 참여하는 링크 주소를 일일이
알려주기도 어려웠고, 페이지에 가입한 회원들도 어디다 댓글을 남겨야 하는지 몰랐다. 페이지는 쪽지 대신 업데이트라는 공지를 보낼 수 있는데
페이스북 가입자들은 업데이트를 잘 안 보기로 소문이 나서 홍보도 쉽지 않았다. 쪽지 기능은 개인 계정으로밖에 쓸 수 없었는데 그러자면 회원은
페이스북 페이지와 운영자와 친구맺기를 해야 했다. 작가 3명을 포함해 12명이 대화에 참여했다.
페이스북 인터뷰의 다르고 재밌는 점
전태일 40주기를 기념하며 출간된 <너는 나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전태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전국의 전태일을 찾아 인터뷰한 르포 '전태일 열전,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며, 2장 '만화 나태일&전태일'은 인간보다 우월한 우주
생물체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노동현실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3장 '열혈청춘'은 대학생 알바생을 중심으로 고단한 노동현실에 대한
수기와 방담을 묶었다. 4장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는 노동전문가 하종강 씨가 노동 문제 전반에 대해서 대중들이 궁금한 점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풀어썼다. 인터뷰에는 1부의 손아람 씨와 3부의 조성주 씨가 페이스북의 댓글로 직접 참여했고, 2부의 만화가 이창현 씨는 출판사
후마니타스를 통해서 답변을 전해 왔다.
페이스북 댓글인터뷰의 특징은 문답식이 아니라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자 김복기 씨가 1부 작가 손아람 씨에게 "인터뷰이(그러니까
인터뷰당하는 사람.^^)들이 낙천적이긴 하지만 인터뷰어(그러니까 인터뷰하는 사람)가 그들의 우울한 단면을 주되게 담은 것 같다"고 질문하자
손아람 씨는 주위로부터 오히려 '너무 경쾌한 거 아니냐'는 평을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르포의 기획 취지를
들려줬다.
"제가 만난 전태일들은 결코 우울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누구보다 노동에 열심이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았고, 투쟁적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기보다는 스스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소박한
분들이었습니다."(손아람)
이에 대해 김복기 씨는 40년 전과 다른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며,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경쾌한 변화를 시사하는 쪽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전했고 손아람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소극적인 면을 글 속에서 읽어낸 것이라고 고백했다. 제3부 열혈청춘을 인상깊게 읽은 권광선 씨는 조성주
작가에게 세대 간의 문제에 대해서 기록한 인터뷰를 읽고 희망을 봤다는 평가와 함께 토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기 세대가 자신을 드러내놓고
다독이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성주 작가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복잡한 사회구조의 문제도 있겠지만 저는 일단은
우리가 옆에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좀더 귀기울이지 못한 면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노동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낸 만화 <전태일&나태일>의 이창현 작가와는 유쾌한 질문이 오갔다. "만약 우리보다 수준이
높은 외계인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얼마간 살고 자기 별로 돌아간다면 뭐라고 보고했을까요?'저 별은 침략해도 되겠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까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그 외계인이 반드시 한국을 공략지에서 제외할 것을 주장했을 거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정복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당장 식민지 사령부 건물을 짓는데도 토건 세력과 투기 세력의 개입으로 인해 큰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또, 외계 언어를 공용어로 쓰자고 제안하면 '기존의 토익 시험은 무엇으로... 대체할 것이냐', '대학 입학에서 영어의 비중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등 영어에 몰입한 이들의 거센 반발을 살 것입니다."
페이스북 작가인터뷰, 과연 소셜한가?
페이스북 인터뷰에 참여한 김복기 씨는 한자리 모이기 힘든데 여러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저자와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은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직접 만나 대화하는게 아니여서 글로 담지 못한 감정 등 정확한 의미 전달이 안 되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페이스북으로 작가를 만나는 데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양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윤영민 교수는 페이스북 상의 작가 인터뷰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없는 소셜미디어에서
작품은 수평적 토론을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중심이 없어야 대칭적 토론이 가능하며 작가가 등장하면 작가와의 대화라는 기존의
틀이 되어버린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작가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소셜북스 회원인 김재원 씨는 페이스북 인터뷰라는 거창한 형식보다는 노트나 토론이라는 메뉴를 이용해서 읽은 부분을 인용하거나 짧은 의견을
공유하는 친근한 방식을 권장했다.
페이스북 인터뷰라는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것은 작가와 독자의 구분을 없애고 뜻하는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 가장 소셜한 대화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