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반성문
중앙일보 | 김정하 | 입력 2013.06.12 00:57 | 수정 2013.06.12 09:17
김정하정치국제부문 차장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11일 진보정치의 반성문을 발표했다. 심 의원은 이날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진보정치는 분단체제와 거대양당 정치체제라는 척박한 정치환경 속에서 진보정치의 생존전략을 세우는 데 철저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진보정당은 노동중심성 패러다임에 경도됐다는 비판, 대기업 정규직 정당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는 근거 있는 비판"이라고 인정했다. 또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들이 가질 수 있는 이념적 트라우마와 안보불안을 깊이 주목하지 못했고, 이에 성실히 응답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했던 진보가 정작 스스로는 민주주의 운영능력을 갖추지 못해 패권적 행태를 보이며 국민 불신을 자초한 사실은 진보정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반성했다.
대표적 진보정치인인 심 의원의 솔직한 자기비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심 의원은 이미 5년 전에 똑같은 반성문을 쓴 적이 있다. 심 의원은 2008년 1월 민노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 친북당 등 민노당에 쏟아지는 질책과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편향적 친북당이라는 이미지와 단절하고 책임 있는 평화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종북(從北)주의 노선인 NL(민족해방) 계열과 극심한 마찰을 빚은 끝에 민노당을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그러더니 19대 총선을 넉 달 앞두고 슬그머니 다시 NL(민노당)과 손을 잡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심 의원은 다시 금배지를 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치공학적 계산에 입각한 어정쩡한 동거는 결국 대재앙을 일으켰다. 총선 이후 터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는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 인식을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지금 국회엔 진보정치를 자처하는 의원이 11명이나 되지만 진보정치의 대중적 기반은 붕괴한 거나 마찬가지다.
심 의원이 무너진 진보정치를 일으켜 세우려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또다시 종북주의 세력과 손잡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원전 건설을 반대하면서
북한 핵실험은 감싸고, 재벌의 세습 경영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은 옹호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엔 눈감아버리는 집단이 어떻게 진보인가. 많은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는 '진보=종북'의 이미지를 극복하지 않고선 진보정치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또 진보정치는 파이를 쪼개자는 타령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성장을 생각하지 않는 진보는 집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진보정치의 약점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남북 대치의 현실에서 안보 분야도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덕분에 집권에 성공했다. 진보정치도 성장·안보 담론을 보수진영의 손에 방치할 이유가 전혀 없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심상정 대표의 자기反省..'합리적 진보' 출발점되길문화일보 | 기자 | 입력 2013.06.12 13:51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가 11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자기 반성(反省)을 내놨다. 종북(從北) 경향과 당내 경선 부정(不正)으로 국민적 지지를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연설이라는 대(對) 국민 약속을 통해 '자칭 진보'의 오류에 스스로 회초리를 들었다. 특히 핵심 지지세력이자 자금원이기도 한
민주노총을 비판한 것은 당의 존립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심 대표는 "분단과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이 가질 수 있는 이념적 트라우마나 안보 불안을 깊이 주목하지 못했고, 이에 성실히 응답하지 못했다"며 종북의 오류를 지적했다. 심 대표는 이어 대기업 노조의 이해만 대변한다는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도 받아들였다. 또 "민주화에 헌신했던 진보가 정작 스스로는 민주주의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및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의 부정선거를 반성했다. 그런 과정에서 드러난 패권적 행태도 지적했다. 종북과
패권주의, 대기업 노조 편향성 등 진보정당이 금기시해 왔던 3가지 문제를 모두 꺼낸 것이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창당을 계기로 본격화한 제도권 진보정치는 노동자와 사회적 소외계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어 국회 진입에 성공했다. 민족해방(NL)과 민중민주(PD) 노선 간의 갈등으로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다 지난해 19대 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으로 민주당과의 연대에 힘입어 13석이나 얻었다. 그러나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경기동부연합의 종북 민낯이 드러나면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으로 갈라섰다. 진보정의당은 오는 16일 혁신당대회를 열어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진보정치가 제대로 서려면 프랑스 좌파가 반세기 전 '종소(從蘇)'
교조주의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표방해 집권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심 대표의 이번 연설이 국민을 안심시키고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합리적 진보'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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