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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

경제/경제와 경영, 관리

by 소나무맨 2013. 6. 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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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선대인의 맨발의 경제학](7) SBS CNBC 녹화장에서

우석훈 |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경제학 박사                  

ㆍ‘종목 찍기’보다 정론… 사람 냄새 나는 경제채널을 기다린다

최근 김탁환의 세 권짜리 소설 <뱅크>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엇갈린 운명의 1868년생 세 친구가 만들어내는 기괴한 삼각관계를 축으로 얘기가 풀려나간다. 제목 뱅크는 말 그대로 은행을 의미한다. 우리의 중앙은행을 갖지 못한 구한말, 조선제국의 중앙은행을 만들기 위해서 숨 막히게 움직이는 개성상인과 인천상인 그리고 서울상인들이 얘기의 주요 배경이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취재하는 김탁환답게, 상당 부분 실화와 실제 모델들을 소재로 얘기를 엮어냈다. 간만에 장편 소설에 빠져들어 소설이 만들어내는 신화적인 공간 속에서 즐거웠다. 김탁환이 누구던가! 무명이다시피 한 김명민을 ‘영원한 이순신’으로 만들어낸 바로 그 <불멸의 이순신>의 작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뱅크>는 최근 판매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큰 돈이 걸려 있고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을 가진 것이 바로 경제의 세계이지만, 정작 경제 얘기로 대중적인 접근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 시청률·인지도 낮지만 영향력 만만찮은 채널들

이순신과 뱅크 사이의 거리 그리고 임진왜란과 대한천일은행 사이의 거리가 일반 방송과 경제 방송의 관계라고 할 수도 있다. 원균이 뭘 했는지, 어떤 사람인지 시시콜콜하게 따져 묻고, 판옥선의 위력과 특수 설계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대한천일은행에 대해서 물어보면? 뭐, 뭐라고? 도대체 이 오래된 이름을 누가 알겠는가? 그렇지만 기원을 따지자면 국민은행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금융의 전신이 바로 이 대한천일은행이다. 이러한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송이 SBS CNBC라는 이름의, 상암동의 SBS 프리즘 타워에 있는 경제채널이다. 내가 요즘 방송 작업을 같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SBS를 아는 사람 중에 SBS CNBC도 알고 있는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SBS는 한국인은 누구나 아는 방송이고, 미국의 경제전문 채널인 CNBC도 어지간한 식자라면 적어도 이름 정도는 들어서 알 것이다. 두 개의 방송이 절반씩 투자해서 만든 조인트 벤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SBS CNBC를 안다면, 엄청나게 경제 지식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손잡경’이라고 우리가 애칭으로 부르는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였던 홍종학 교수가 이 채널을 아는 내 주변의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객관적인 시청률과 인지도 같은 지표에 의하면 아무런 사회적 영향력이 없을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방송이지만, 케이블에 있는 경제채널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사태의 복잡함이 있다.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골프, 스포츠 등 SBS 미디어그룹의 자회사 중에서 현실적으로 회사의 역할을 하는 채널이다. 그뿐이 아니라 공중파 SBS의 방송 기조인 ‘착한 성장 대한민국’이라는 방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SBS CNBC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착한 성장? 갸우뚱하게 만드는 개념이 아닐 수 없지만, 어쨌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는 그런 말이 SBS 방송 기조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 기획작업을 했던 사람이 SBS CNBC의 신동욱 대표이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은, SBS CNBC가 주도해서 SBS 그룹 전체의 기조로 끌고 나가는 착한 성장이라는 단어가 진심인가, 아니면 악어의 눈물과 같은 치장인가? 물론 잠시 인터뷰한다고 해서 그 깊은 속사정까지 다 알 수 있겠느냐 싶지만, 만나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경제부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신동욱 대표는 SBS 내에 ‘미래부’라는 이름으로 장기 아젠다 발굴을 하는 새로운 부서가 생겨나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SBS 그룹 차원에서 사회통합에 관한 고민을 최근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단어 자체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것저것 막 집어던졌던 개념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보수든 진보든, 언제 말을 거칠게 해서 한국 경제가 지금처럼 어려워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와 나누었던 얘기 중에서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 드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지혜’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경제 방송에서 지금까지 지식만 얘기하려고 했지, 지혜를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이젠 좀 지혜를 얘기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혜라!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지혜라는 단어를 본 것은 녹색당 국제 네트워크의 강령에서 ‘생태적 지혜(ecological wisdom)’라는 표현을 본 것 외에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경제라는 단어는 지식, 계산, 균형, 이런 말들에 잘 어울리지만 지혜와 같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별적 주체의 차원에서는 지식이라는 단어를 쓰고, 생태계의 문제를 다루는 생태적 질문 즉 시스템 전체의 안위에 해당하는 얘기를 할 때 비로소 지혜라는 말을 쓰게 된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경제라는 단어와 지혜라는 단어, 그게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돈 버는 지혜’, 이것도 어색하다. ‘생활의 지혜’라는 표현을 쓸 때 매출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런 비즈니스 세계와는 전혀 다른 어감을 준다.

■ 장중 종목 추천 등 선정성 탈피, 새 활로 모색 중

종편이 출범한 이후, 정치적 편향성과 선정주의 같은 논의들이 요즘 많아졌다. 선정성만을 놓고 보자면, 한국에서 으뜸 선정성은 토건 일변도로 달려 나가는 지역 채널, 그리고 그 다음이 경제 채널일 것이다. 장중방송이라고 부르는, 증권 시장이 열려 있는 동안에 시황을 알려주는 방송은 그래도 좀 낫다. 그때 그때 상황과 함께 특정 기업의 장단점을 분석해주는 장중방송은 어쨌든 형식적인 측면에서 좋은 점과 나쁜 점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장이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소위 종목 찍어주는 방송의 선정성은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물론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개미’라고 부르는 개인 소액투자자들은 이러한 방송의 열혈 시청자이며, 강력한 본방 사수자들이다.

내가 농담 삼아 자주 하는 얘기 하나 해보자. 만약 하와이에서 전화로 이것저것 코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말은 믿을 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벽부터 출근해서 시황과 주가 전망에 대해서 얘기하는 투자 자문가, 아니 그렇게 잘하면 자기부터 먼저 부자가 되고 하와이에서 편하게 살면 되잖아? 경제 방송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어떻게 믿어? 이런 게 주식방송의 딜레마이다. 마찬가지 딜레마는 역시 경제 채널로 분류할 수 있는 부동산 채널 같은 데에서도 발생한다.

“이 지역 아파트는 절대 믿을 만합니다.”

그걸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공중파에 비해서 턱없이 적은 출연료와 열악한 스튜디오 상황을 감내하면서 주택시장 분석을 하고 있을까?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쨌든 10개 정도의 경제 채널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경제신문에서 분화해서 나온 채널도 있고, SBS CNBC처럼 공중파 계열사로 작동하는 채널도 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단위인 채널도 있다. 누군가 보거나 말거나, 여전히 방송은 만들어지고 있고, 주가나 비즈니스의 민감한 사안을 다루기 때문에, 실제로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이 작지는 않다.

주식 혹은 재테크 같은 경제활동이 가치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 이념은 정치 이념보다 더 강력하다고 할 정도로, 이념성도 강하다고 하면 강할 수 있고, 선정성도 엄청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제 채널에 장중방송이나 종목방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논평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심지어는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아주 강력한 이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신문에도 수준 높은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종종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제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그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꼭 그렇게 누군가의 이념을 전달하거나 기가 막히게 급상승하는 종목을 추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만났거나 같이 작업을 해본 경제 채널의 방송인들은 그렇다.

만약 이런 채널이 지금의 종편처럼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면서 출범했고, 또 그 정도의 시청률을 가지고 있다면 선정성에 대해서 사회적 논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만 보고, 소수만이 마니아처럼 채널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억원 심지어는 수천억원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경제 정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조작이나 작전과 같은 유혹에 노출될 위험이 상존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주식 작전이 실제 사건으로 되면서 스캔들이 생겨난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 아닌가? 많은 경우, 증권방송의 진행자들이나 패널들은 자신들은 주식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방송사에서 각서를 쓴다. 그리고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좀 넓은 눈으로 본다면, 한국 정도의 경제에서 10여개의 경제채널이 방송되고 있는 것은 특수한 상황이다. IMF 경제 위기 이후에 계속된 외형적 성장 그리고 신자유주의라고 표현하는 지독할 정도의 경제 근본주의가 만들어낸 재테크 신화 속에서 이 많은 경제 채널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경제적 근거가 생긴 셈이다. 2008년 이후, 외형적 팽창의 경제는 세계적으로도 한 풀 꺾였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버블의 조정과 함께, 외형적 고도성장에 따른 주가 팽창 시대가 지나갔다. 2013년, 이제 경제 채널은 어떤 기조로,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한국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이들에게도 질문은 던져진다.

■ 정론 펼치는 경제 채널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그냥 내 눈에 비친 경제 채널들은 요즘 방송 기조가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바꾼 건지,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에 내가 하던 얘기와 똑같은 얘기들을 다른 경제 채널의 패널들 입에서 듣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말하는 톤과 인용하는 경구의 종류만 다르지, 이제 한국 자본주의의 양상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무턱대고 주식을 사지 말고, 이것저것 잘 살피면서 사려깊게 하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정부에서 뭐라고 하든, 일본식 장기 불황이 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1~2년간은 예의 주시하라, 그런 얘기를 경제 이데올로기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경제 채널들에서 종종 듣게 된다. 밖에서는 모르겠지만, 내부에서는 분명 뭔가 변화가 생기는 중인 듯싶다.

경제 채널이 공중파와 달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그야말로 선수들끼리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100분 토론 같은 데에서 만나면, 이것저것 예의도 차려야 하고, 경제와 상관 없는 맥락에 대한 얘기들도 해야 하지만, 경제 채널에서 만나는 전문가끼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일종의 경제 공론장 역할을 하기는 한다. 비즈니스와 학계 그리고 투자자들이 일반인들이 별로 돌리지 않는 채널에서 매일 같이 만나고, 서로 다른 입장을 확인하면서도 정보를 주고 받는다. 물론 너무 날것이라서 지나치게 선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경제 공론장인 것은 사실이다.

희망한다면, 지금의 경제 채널 중 누가 ‘경제 정론’의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인가 하는, 그런 경쟁으로 갔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선정성 경쟁을 한 셈인데, 조절 국면의 한국 자본주의에서 경제 채널도 좋든 싫든,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소위 전문가들이라고 부르는 선수들이 나와서 종목 찍어주는 방송, 이 길로만 매진해서는 계속해서 스캔들이 나올 수밖에 없고, 결국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쓰레기통처럼 전락한다. 누군들 경제 정론의 위치에 가고,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에도 경제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스튜디오에서 하는 원맨 증권방송은 제작비가 싸다.

그러나 집단 MC 방식을 도입한 예능형 토크쇼나 본격 토론 프로그램 혹은 심층 경제취재 같은, 그야말로 경제 채널 아니면 시도해보기 어려운 제대로 된 경제방송은 제작비가 비싸다. 증시에 포착되지 않는 새로운 경제 현상이 한국 자본주의에서 지금 등장하는 것을 제일 먼저 알고 있는 사람들이 경제 채널의 제작진들 아니겠는가? 그러나 제작비라는 단순 명료한 경제성의 문제로, 새로운 주제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을 잘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상업방송에서 비상업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송에서 비자본주의적인 관계를 다루는 것, 그게 한국 자본주의가 가고 있는 다음 길이 아닌가? 마치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자본주의 양상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경제 채널들도 뭔가는 계속 시도를 하려고 한다. 사람 냄새 나는 경제 채널, 그것이 한국에서 등장한다면, 한국 자본주의도 비로소 모색을 끝내고 다음 경로를 찾아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새로 일하게 된 한 여성 PD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려서 한국을 떠난 그녀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날, 리먼 브러더스의 직원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직접 겪었다. 마침 ‘빅이슈’라는 노숙인을 위한 잡지를 주제로 하는 방송을 제작하는 날, 현장을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렀다. 그 눈물을 보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라는 질문에 우리가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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