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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 “月 1200달러 주는 美떠나 ‘80달러’ 서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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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3. 5. 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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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 “月 1200달러 주는 美떠나 ‘80달러’ 서울대로…”

 “한국의 과학 걱정돼 귀국… 다들 미쳤다 했죠”

 
■ 물리학계 ‘살아있는 역사’

 

동아일보 | 입력 2012.04.20 03:25

 

 

[동아일보]

6·25전쟁 휴전을 몇 달 앞둔 1952년 12월 7일. 임시수도였던 부산의 한 건물에 물리학자 34명이 모였다. 한국물리학회의 창립 순간이다. 올해는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물리학회 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물리학회 12대 회장과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한 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85)를 만났다.





"벌써 60년이 흘렀나요?" 한국물리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물리학계의 원로인 고윤석 서울대 명예교수가 옛일을 회상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

1927년생인 고 교수는 광복이 되던 1945년 경성제국대 예과에 입학한 뒤 1947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상태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피란을 가지 못해 숨어 지내는 등 고생하다 결핵을 앓기도 했다.

"1953년 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강단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때마침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난 고 교수는 1963년 미국 네브래스카대에서 이론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가 됐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돈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을 후배들 걱정 때문이었죠. 그런데 당시 한 달에 1200달러를 받는 미국을 떠나 80달러밖에 못 받는 서울대로 가겠다니까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막상 돌아오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여전히 물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학생들에게 더 큰 곳에서 공부하라며 유학을 '종용'했다.

"어떤 해는 졸업생 40명 가운데 30명이 유학을 가기도 했죠. 임지순 서울대 교수,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도 제가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한국물리학회는 1961년 우리나라 첫 학술지인 '새물리'를 발간했는데 고 교수는 1964년 편집간사를 맡았다. 그는 "당시에는 학술지에 실을 논문이 없어 항상 고민이었다"며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물리학계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교수는 이휘소 박사를 회상했다.

"유학하던 1963년으로 기억하는데요, 한 학회에서 이휘소 박사를 봤습니다. 당시 28세인 '벤저민 리'란 청년이 발표를 하는데 대단합디다. 처음엔 중국계인 줄 알았어요."

당시 깊은 인상을 받은 고 교수는 이 박사와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그의 추천으로 이 박사는 1974년 서울대에 대한 국제개발처 교육차관 타당성조사단의 일원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깝게 지내던 이 박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고 교수에게도 충격이었다.

포항공대(포스텍) 초대 총장인 김호길 교수에 대한 기억도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였던 김 교수는 귀국 후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을 설득해 세계에서 5번째로 제3세대 가속기를 건설토록 했다. 그러나 완공을 몇 달 앞둔 1994년 김 교수는 사고로 세상을 떴다. 고 교수는 김 교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포항방사광가속기가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전을 '가속'시켰다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1992년 강단을 떠났다. 지금은 우리나라 물리학계를 뒤돌아보는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니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살아 계신 분들도 건강이 안 좋더군요. 그래서 저라도 험난했던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자취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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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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