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니 넝쿨째 굴러오더라충청권이 실리 챙긴 오송분기역, 세종시, 과학벨트, 첨복단지

2013. 5. 27. 21:23시민, 그리고 마을/지방 시대, 지방 자치, 주민자치

뭉치니 넝쿨째 굴러오더라충청권이 실리 챙긴 오송분기역, 세종시, 과학벨트, 첨복단지
“몰락한 양반”이라고 폄하한 MB정부, 결국 양반에게 당했다

충북인뉴스 박소영 기자  |  parksoyoung@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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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1.14  21: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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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공조와 대립의 역사]

충청도는 ‘이웃사촌’이다. 행정구역 안의 금안에서 각자 살림만 챙겼던 충청권이 금을 넘나들며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은 최근 10년이다. 10년의 세월동안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열망을 깔고 벌인 충청권의 싸움은 명분과 연대에서 모두 승리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민심을 동요하기 위해 내건 ‘충청도 핫바지론’보다 더욱 강력한 의제로 작용한 것은 바로 ‘힘이 없으면 뭉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세종시 건설, 과학비즈니스벨트, 호남고속도로 오송분기역유치, 첨단복합산업단지 오송 유치 등 일련의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웃사촌은 본질상 ‘사촌’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 국책사업을 충청권에 끌어왔지만 입지선정을 놓고 갈등은 여전히 유효했다. 충청권의 공조와 대립의 역사를 조명한다. /편집자

   
▲ 세종시 정상추진 충청권 비대위가 지난 2009년 3월 26일 대전역에서 벌인 행정수도 사수 결의대회 모습.

충청권은 선거의 바로미터다. 충청도는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대전광역시를 통칭한다. 정치인들은 충청권의 표심을 잡기위해 공약을 내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행정수도’를 내세웠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신행정수도는 행정복합도시로 축소됐고,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면서 ‘세종시 수정안’ ‘과학비지니스벨트 무산’ 등 충청권에 내건 공약은 쪼그라들었다. 2011년 신년 대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에 붙고 싶으면 무슨 말을 못하냐”“과학벨트 관련 공약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멘트를 날렸고 원점 재검토를 시사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이웃사촌이 함께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꺼리’를 제공했다. 충청권은 공약이행이라는 명분과 이웃사촌이라는 연대의식을 통해 뭉쳤고, 이긴 싸움을 했다. 지역기반으로 한 자민련의 몰락으로 정치적 세력기반을 갖고 있지 않는 충청권은 소외감이 근저에 깔려있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가 조직적으로 심리학자를 내세워 충청도를 ‘몰락한 양반’이라고 정의한 것까지 알려지자 민심은 들끓었다. 반 MB정서와 국책사업 유치는 동일선상에 놓이게 됐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내세우면서 진행됐던 세종시 수정안 프로젝트가 실패했고, 2011년 석 달 넘게 끌어온 과학비즈니스벨트 논란도 지역 갈등만 증폭시키다가 결국 충청권에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충청권 내에서는 지역주의 논리와 실리를 챙기기 위한 갈등은 여전했다.

   
 

<공조>그러기에 이웃은 사촌이라 하지요

충청권 공조의 시작과 끝은 ‘세종시 건설’이다. 2001년 지방분권국민운동이 출범하면서 대국민협약을 발표했다. 당시 대선주자였던 노 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받으면서 세종시 윤곽이 그려진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 당시 2003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3대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탄력을 받지만 2004년 수도분할반대위헌소송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이후 행정도시 위헌소송 제기와 합헌운동이 제기됐고 2005년 합헌결정이 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종시 건설은 좌초위기에 놓인다. 대전 충남북 단체장이 모두 한나라당 출신이 당선된데다 2010년에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원안의 취지를 뒤흔들어놓았다. 하지만 이미 2008년 2월 세종시 정상추진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충청권 비대위)가 출범해 세종시 원안 사수 지키기 운동이 전개됐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패배로 상황은 역전된다. 일단 수정법안 통과가 부결됐고 그해 12월에는 세종특별자치시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을 밀어붙이느라 애매한 시점에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았고, 지방선거가 맞물리면서 세종시 건설은 충청권의 바람대로 원안 추진이 이뤄지게 됐다.

충청권이 세종시를 지킨 싸움은 이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 과학비즈니스벨트 등으로 옮겨가면서 공조의 힘을 발휘해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과학비지니스 벨트는 충청권 공조라는 대원칙에 따라 “쪼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따라서 거점지구는 대전과 대덕, 기능지구는 천안, 오송, 연기(세종시)가 골고루 나눠가지게 됐다. 호남과 TK(대구 경북)에 ‘성의 표시’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충청권 비대위는 첨단산업복합단지 오송유치에도 힘을 보탰다. 비록 대구와 오송으로 쪼개졌지만 분산배치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앞으로 국립암센터 오송분원유치에도 충청권의 기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제는 충청권이 단일대응체제로 나섰고, 이로 인해 지역발전과 정치적 열세를 극복하게 된 것이다. 충청권이 지난 10년간 싸움에서 가장 큰 성과는 자신감 회복과 공조의 학습효과다.

   
 

<대립>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유치를 놓고 충청권은 긴 싸움을 했다. 과거 자민련 시절 DJP연합정권시절 건교부 장관은 충남출신이었다. 충남은 천안, 충북은 오송, 대전은 공주를 각각 밀었다. 당시엔 정치적인 입김으로 천안결정이 우세했다.

그러다가 3개 시도의 이해관계 대립은 충청권이 세종시 건설을 두고 공조하면서 풀리게 된다. 결국 2005년 6월 30일 오송분기역이 최종확정된다. 세종시라는 새로운 변수의 등장은 오송분기역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세종시가 충청권에 건설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입지를 놓고는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당시 충남은 논산, 연기, 공주를 후보지로 내놓았고 대전은 대전 서남권과 계룡, 충북은 오송과 진천, 음성을 밀었다. 결국 세종시는 충남은 연기군과 공주 일부, 충북은 부용면이 편입됐다.

또한 이완구 전 충남지사는 세종특별자치설치법안을 제정할 때 브레이크를 걸었다. 세종시를 충남도 산하 기초자자체로 두려고 한 것이다. 땅, 사람, 인구를 떼어주는 대신 세종시의 지휘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이후 안희정 씨가 당선되면서 세종시 건설은 원안대로 추진된다.

건설사 참여문제를 놓고는 갈등을 빚었다. 현행 건설법상 공개입찰 방식에 따라 해당지역의 주소지를 두고 있는 건설업체가 참여하게 돼 있어 충남 건설업계가 발빠르게 움직이자 제외된 충북과 대전이 반발한 것이다. 이 후 충북은 세종시에 부용면이 편입되면서 건설사가 참여하게 됐고, 그러자 땅이 제외된 대전지역에서 반발했다.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은 “건설업체 참여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와 관련한 법적인 기반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세종시건설청에서 제정한 법이 통과돼 분할발주가 가능해졌다. 다른 큰 싸움을 하느라 세세한 것을 놓쳤다”고 말했다.

세종시 입지를 놓고도 한나라당과 지역정서, 주민 의견은 충돌했다. 충북만 해도 한나라당은 “세종시에 땅 한 평이라도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충북은 주민여론조사를 통해 강내면은 빠지고 부용면만이 포함됐다. 대전은 땅이 한 평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전은 이른바 ‘빨대현상’으로 세종시로 인구가 몰릴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