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이제는 혁신이다

2013. 5. 22. 13:58시민, 그리고 마을/지방 시대, 지방 자치, 주민자치

지방자치 이제는 혁신이다

 

1.  지방자치 혁신이 살길이다

 

여러분은 지방자치가 위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서 1991년 부활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지방자치가 스무 살 성년입니다. 특히 올해는 6·2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반쪽짜리입니다. 오히려 후퇴하는 꼴입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최상의 학교', '민주주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뿌리 지방자치가 발달한 서구에서 나왔으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지방자치,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내가 사는 지역의 일을 내가 결정하는 것, 이게 민주주의 기본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올해 신년기획에서 '지방자치 20년, 위기의 지방자치'라고 진단했습니다. 지방자치 양대 축인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현주소, 국회의원에 휘둘리는 지방자치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행정·의정감시자, 새내기 유권자, 지방의원, 3선 퇴임 자치단체장이 본 지방자치 실태와 바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바람직한 지방자치와 올해 지방선거에 유권자가 정치 소비자뿐만 아니라 생산자로서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지방자치가 위기라고 결론 내린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지방자치의 기본이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해 시끄러웠던 마산·창원·진해시 통합추진만 봐도 그렇습니다.

 

통합 논의 과정에서 주민의 뜻은 없었고 끼어들 틈도 없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밀어붙이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정부는 주민의 뜻을 직접 묻는 주민투표를 배제했습니다. 주민투표는 대의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도입된 직접민주주의 제도입니다.

 

그 과정에 우리가 뽑았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행태는 어떠했습니까? 주민 무서워하기보다는 '중앙 해바라기'를 했고 자기 정치적 생명을 따졌을 뿐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지역갈등을 조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위기의 지방자치를 혁신해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혁신은 지금까지 시장원리에 초점을 맞춰 흔히 말해왔던 효율성의 극대화, 행정의 경영화를 통한 서비스 개선이 아닙니다. '지방자치 20년, 이제는 혁신이다'에서 말하는 혁신은 지방정부 운영 체계 전환 등 행정의 공공성 강화와 복지, 인권, 문화, 환경 등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물, 정책,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특히 선거는 후보자들이 내건 정책을 보고 인물을 선택하는 기회입니다. 제도의 변화는 사람이 합니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작동하는 지역정치의 권력구조 변화에 대한 갈망도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지방자치 20년 현실을 시작으로 인적구조로 본 지역권력 구조, 지역주권을 실현하는 지방자치를 풀어봅니다. 또 '삶의 질' 1위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런던시의회 지역사회주의 실험,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시민참여 예산제' 등 사례 소개를 거쳐 지방자치 혁신을 위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지방자치 20년째 치러질 올 지방선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선거혁명입니다.

 

  2.  지역권력의 인적구조 현상

 

지방자치 20년을 극단적으로 평가하면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닌 '풀뿌리 보수주의' 강화로 정리된다. 이는 주민이 주인인 풀뿌리 자치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차지하며 사익을 챙기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와 <경남도민일보>가 지난 20년 동안 지방선거 결과와 지방의원의 인적구조를 분석한 결과, 경남에서 풀뿌리 보수주의는 더욱 튼튼해지고 있다. 마창진참여자치연대 조유묵 사무처장은 "지방자치 20년, 특히 지역사회 지방정치 현실을 보면 지방자치가 그 자체로 지역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닌 '풀뿌리 보수주의 아성'으로, 민주주의 학교가 아니라 지역 기득권 세력의 '경쟁적인 사적 이익 추구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견제 없는 독점권력 구조 = 경남은 줄곧 한나라당(민주자유당)의 아성이었다. 민선 4기까지 도지사는 모두 한나라당 독차지였다.

 

갈수록 보수 집권구도가 견고해지는 흐름이다.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 결과, 21곳 시장·군수선거에서 무소속이 52.4%(11명), 도의원선거 94명(비례 9) 중 야권(무소속 33명, 민주당 3명)이 38%를 차지했다.

 

 

그러나 선거를 거듭할수록 보수의 힘은 강해졌다. 기초자치단체장 야권비율은 1998년 30%(무소속 6명), 2002년 20%(무소속 4), 2006년 30%(무소속 4, 열린우리당 2)에 그쳤다. 2006년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당선된 데 따른 것으로 결국 이들 대부분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으로 뽑혔던 밀양시장과 함양군수도 최근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갈아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도의원선거도 마찬가지다. 1998년 51명 중 7명(무소속 5, 국민회의 2)이 뽑혀 13.7%(7명), 2002년 6%(민주당 1, 민주노동당 1, 무소속 1), 2006

 

년 9.4%(열린우리당 1, 민주노동당 1, 무소속 3)로 집계됐다. 또 중선거구제 전환과 함께 정당공천제가 처음 도입된 2006년 기초의원선거에서 야권이 일부 지역구 당선, 비례대표 의석을 얻었지만 259명 중 25.9%(67명-무소속 35, 열린우리당 17, 민주노동당 15)에 그쳤다.

 

일당이 독점한 지역정치 권력구조는 견제와 균형 없는 지방자치를 만들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부패가 발생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유권자의 무관심은 독점구조를 고착화하고 독점구조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부패로 유권자는 지역정치를 불신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셈이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하승수 운영위원은 "풀뿌리 보수주의는 민주주의 성장을 저해하고 보수독재 기반을 만들고 있다"며 "이게 가능한 것은 유권

 

자의 관심이 낮기 때문인데 일상에 퍼진 무관심은 지방선거에서 낮은 투표율을 가져오고 낮은 투표율은 조직화 된 이익단체, 보수적 사회단체 영향을 키운다"고 말했다.

 

◇지역토호가 장악한 지방자치 = 지난 20년 동안 지방자치와 지방선거는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기득권 세력이 지방의회에 대거 진출하면서 지역사회 풀뿌리 보수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는 낳았다. 지방의원의 소속 단체를 보면 지역 보수층의 강고한 틀을 엿볼 수 있다. 3대 관변단체로 꼽히는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새마을운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 소속 의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의회홈페이지에 게재된 도의원과 20개 시·군의회 의원들의 경력을 분석한 결과 이들 3대 관변단체 전·현직 임원인 의원이 72명(중복 포함)으로 분석됐다.

 

이는 도의원(53명)과 시·군의원(259명) 의원정수(313명)의 23%나 된다. 일부 의원은 3개 단체 모두 임원을 맡고 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각 지역 생활체육협의회나 체육회에 속한 의원들도 28%(88명)에 달했다. 지역 유지, 기득권 세력이 각종 관변단체를 통해 인적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재생산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조유묵 사무처장은 "지방자치단체장은 선심성 행정과 예산지원을 등을 통해 지역 토호 등 기득권 세력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확정해 '후견인-피후견인' 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지역정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자치단체로부터 많은 재정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에 지방의원이 임원을 맡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단체 임원으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산배정에 압력을 넣기도 하기 때문이다.

  

 

  3. 지역분권을 넘어 지역 주권으로

 

지난해 12월 마산·창원·진해시의회 앞이 시끄러웠다. 시민들의 항의가 거셌다. 3개 시의회가 마창진 통합안 처리를 강행했다.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지만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은 스스로 중앙권력의 거수기 노릇을 했다.

 

5년 전, 2005년 12월 경남도의회가 난리였다. 기초의원선거가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 시행을 앞두고 도의회가 소수정당 진출 가능성이 큰 4인 선거구를 2~3인 선거구로 나눠버렸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소수정당들이 본회의장을 봉쇄하자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이 버스 안에서 날치기를 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지만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대표로 뽑힌 이들은 주민대표이기보다 권력에 휘둘렸다. 주민의 뜻을 무시한 대의정치의 부실이자, 심각한 변질이다.

 

지방자치시대라고 하지만 주민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책결정이나 예산편성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정보접근조차 쉽지 않다. 지방자치, 주민자치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준 권한도 미약하지만 이마저도 주민에게 돌려주지 않고 한통속인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정부의 행정·재정적 권한을 자치단체에 이양하는 분권도 중요하지만 주민이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민자치, 지역주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분권 없는 지방자치는 상상할 수 없으며, 주민이 자치권의 주체가 되지 않은 지방자치는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방자치는 지방정부 정책결정의 중요한 행위자로서 정치인·관료 등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 지방정부가 운영되는 것"이라며 "주민참여 없는 지방자치는 허구"라고 말했다.

 

주민자치의 중요성은 지방자치 부활 20년째인 현재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시됐던 의제다. 민주노동당 전신인 국민승리21은 1998년 민선 2기 지방선거에서 '주민참여에 의한 자치의 혁신'을 내걸었다. 이러한 기치는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노무현 정부, 참여정부의 성과로 지방분권을 꼽는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자문기구로 '정부혁신·지방분권추진위원회'를 만들고 2004년 지방분권특별법을 만들어 시행했다. 이에 따라 권한과 사무이양, 교육자치제도 개선을 위해 직선 교육감제, 주민참여확대 방안으로 주민투표, 주민소송, 주민소환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성과 이면에 한계도 있었다. 주민참여 제도는 대상과 요건 등에서 주민 참여에 제한을 뒀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시민사회에서 요구됐던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는 실효성이 있는 주민참여 방안보다는 단체장에게 경찰력까지 부여하는 쪽에 치우쳤다.

 

이에 대해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하승수 운영위원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 없는 분권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지방자치 혁신은 주민의 참여와 권력을 주민에게 돌려주는 쪽으로 '틀'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방분권 운동과 함께 지방자치혁신 운동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방자치혁신은 주민참여활성화, 주민주권 실현이 핵심이다.

 

하승수 운영위원은 지방자치혁신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지방권력 감시운동 복원·활성화 △올바른 지역여론 형성을 위한 풀뿌리 언론 활성화 △중앙정치권과 정부에 혁신입법을 위한 지역 모범사례 창출 △제도개혁 등을 꼽았다.

 

이런 과제가 지역에서 진행되고 성과를 낼 때 지역정치가 변하고 제도변화와 지방자치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특정세력과 정당의 권력독점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변화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하승수 운영위원은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지방자치 혁신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는 정치세력이 등장할 때에나 제도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며 "지역에서부터 올바른 지방자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때 비로소 지방자치 혁신이 중앙정치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역에서부터 지역의 기득권세력과 기득권 정당들과의 유착 고리를 끊고 새로운 시민정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4.  지방자치의 실험사례들

 

권력을 내놓기 싫어하는 이에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주민자치권이 높은 스위스를 보면 단박에 억지라는 걸 알 수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경제학자 라르 펠트 교수와 겝하르트 키르쉬게스터 교수가 연구한 '직접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스위스에서 강력한 주민 참여권이 부여된 주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런 주의 세금회피율이 30% 낮았고, 부패비율도 낮았다.

 

스위스가 '삶의 질 1위'인 이유가 바로 주민자치, 직접민주주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정부·의회·국민 3자 공동 정책 결정

 

스위스는 풀뿌리 공동체인 '코뮨'을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가 활성화돼 있다. 행정뿐만 아니라 세금부과 등 재정 자치권을 가진 코뮨(2867개)은 절반 이상이 인구 840명 미만이며, 주민이 투표로 입법·예산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스위스는 정부·의회·국민 3자가 공동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틀이다. 국민발안·의회발안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 데 유효투표 수의 과반 찬성과 26개 칸톤의 과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헌법에 국민투표가 도입된 1848년부터 1992년까지 398건을 시행했다. 이는 같은 기간 세계 각국이 시행한 국민투표(799건) 절반 이상이다.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는 시민이 선호하는 정책결과를 만들어낸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1986~1997년 칸톤의 재정 수입과 지출 21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의무적 주민투표를 거친 칸톤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수입과 지출 모두 각 7%, 11% 낮았고, 적자규모도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스위스 국민은 대의민주주의인 선거에는 참여율이 낮다. 이에 대해 <직접민주주의-풀뿌리로부터의 민주화>를 쓴 한양대 주성수 교수는 "정당이나 후보들이 아무리 격렬한 선거경쟁을 해도 후에는 서로 타협하고 조정하기 때문에 정부 구성이나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대신 유권자들은 국민투표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히 갖기를 바란다"며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주의 결핍'을 보완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시의회 지역사회주의 실험…시민 '재개발 계획'에 정책·재정적 지원 영국 노동당이 집권한 런던광역시의회(1981~1986년)의 지방자치 사회주의 전략은 보수당 정부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풀뿌리 자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노동당의 신좌파는 1981년 지방선거에서 런던광역의회를 집권하며 △요금 25% 인하 대중교통 정책 △런던기업위원회 설립, 1만 개 일자리 창출 △집권 첫해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등 주택정책 △도시 대안적 개발 △도로 건설 억제 등 정책을 내세웠다. 인종문제를 담당하는 '인종적 소수자위원회', 런던 경찰청을 감시하는 '경찰위원회', 대안적 경제정책과 민중계획 제시를 맡은 '경제정책팀'을 구성했다. 시청건물은 시민에게 공개되고 권력은 고위 공직자의 사무실에서 각 위원회 의원석과 방청석으로 옮겨졌다.

 

런던시의회는 공공요금정책에 걸고 넘어진 보수당의 소송에 지자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포괄한 '티켓 하나로'라는 교통카드 제도 도입으로 요금인하를 이뤄냈다. 그 결과 1984년까지 런던 중심부 승용차 이용 15% 감소, 대중교통 16% 증가라는 성과를 거뒀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수립과 시행에서 시민이 스스로 표현하고 합의에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와 결합한 대목이다. 런던시의회는 재량권을 활용해 각종 정보네트워크, 지역 정보센터 등을 통해 지역주민 스스로 '도크랜즈 재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정책·재정적 지원을 했다. 이는 보수당 정부가 경제적 중심지였으나 쇠퇴한 선착장과 부두를 일자리 창출과 첨단기술기업 유치를 내세우며 단거리이륙공항 계획 추진에 맞선 것이다.

 

일명 '민중계획'의 내용은 선착장 주변 비어 있는 공간에 공공주택 건설, 공동체 연결을 위한 보육시설 대규모 확대, 보트시설과 보트생산을 위한 훈련시설을 건립해 주변 상업적 보트생산활동과 결합 등이다. 그러나 민중계획은 대처 보수당 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시민참여예산제…재정운영 투명성·공정성·효율성 높여 참여예산제는 행정부나 자치단체의 예산편성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목적은 주민참여로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하나로 참여예산제가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됐다. 당시 브라질 노동자당이 시정부를 집권하면서 주민단체가 참여예산제를 요구했고 시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포르투 알레그레 참여예산제는 20여 년 동안 행정 시스템화됐고 성과도 많이 이뤄냈다. 주민 스스로 시의 예산을 결정한다는 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에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2000년 기준 주민참여로 결정한 예산규모는 시 예산의 25%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도시 주택 하수도 연결비율이 10년 후 83%(1989년 48%)로 늘었고, 참여예산제 시행 이후 2004년 주민공동체(3000여 개)가 40% 증가할 정도로 시민사회 활성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성과는 브라질 다른 지역(2006년 기준 6000개 시정부 중 100개)뿐만 아니라 인근 남미국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민주노동당이 2002년 지방선거에서 공약화하면서 전국으로 알려졌다. 이어 2004년 광주시 북구가 국내 최초 조례를 제정했고, 2006년 행정자치부가 표준조례안을 만들었다.

 

5. 혁신의 지역 매뉴얼

 

지방자치 20년은 '중앙정치 예속화'와 '더딘 분권화'로 요약된다. 지역 내부를 본다면 특정정당이 권력을 독점한 '풀뿌리 보수주의'가 강화됐다.

 

지방자치와 지방정치를 혁신하려면 제도의 개선이 중요하다.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마산시의원을 대상으로 지난달 벌인 '지방자치 20년 평가와 발전방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21명 중 11명)들은 지방자치 발전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방의회 권한부족(33%) △중앙정부 의지 부족(25%) △자치단체장 강한 권한·독주(16%) 순으로 꼽았다. 단편적인 결과이지만 제도의 문제를 지방자치 걸림돌로 본 것이다.

 

제도 개선은 사람의 몫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 혁신에 앞장설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의미다.

 

◇자치분권 강화 = 중앙정부가 권한을 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성년이 됐지만 반쪽짜리에 머문 것은 중앙정부가 힘과 돈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광역자치단체 행정부지사에 국가공무원을 내려보내는 것을 없애고, '상위 법률에 근거'라는 벽에 막힌 자치입법권도 강화해야 한다.

 

재정 분권도 필수다. 정부는 자치단체가 돈을 타 쓰도록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특별교부세를 삭감하겠다며 통제한다. 최근 전국공무원노조 징계를 강요하면서도 그랬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는 "특별교부세를 정권유지차원에서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인 지방자치를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재정 분권을 위해서는 정부가 개별사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은 복지 같은 필수부분으로 제한하고, 포괄보조금제로 바꿔 자치단체가 용도를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하승수 운영위원은 "입법권과 재정권을 포괄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의 분권이 필요하다"며 "그런 분권만이 실질적으로 중앙관료 집단의 영향력을 줄이는 분권이 될 것이고 지역 정책을 둘러싼 정책 경쟁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참여 확대 = 주민투표, 주민발의, 주민소환, 주민소송제가 도입됐으나 현행대로는 주민이 참여하고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민투표제는 6년이 됐으나 무용지물이다. 주민소환도 지금까지 2번(경기도 하남시, 제주특별자치도) 진행됐을 뿐이다. 경남에서는 함양군수, 밀양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움직임이 있었지만 투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3분의 1 투표율 상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승수 운영위원은 "요건이 너무 엄격해 주민이 할 수 있는 견제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주민이 대표자를 견제할 수 없다면 지방자치가 변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민이 주민투표를 발의하려면 서명인원(유권자 5분의 1~20분의 1 이상) 조건도 과하다. 특히 주요 공공시설 설치·관리, 행정기구설치·변경, 자치단체 예산·회계·계약·재산관리 사항, 국가정책 등에 대해서는 주민이 주민투표를 발의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그래서 마창진 행정통합 과정에 주민투표를 뛰어넘었다.

 

◇독점 막는 선거제도 = 풀뿌리 주민자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특정정당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장악한 권력독점 구조가 근원이다.

 

마창진참여자치연대 조유묵 사무처장은 "지역사회에서 경쟁과 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독점적 지역정당체제와 그에 따른 일당독점 지배구조"라며 "현행 정당제도와 선거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천권으로 지역정치 '줄 세우기' 폐단을 키운 정당공천제 폐지 등 종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정당공천의 민주화가 우선이다. 정당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참여공천을 앞세웠지만 시민참여는커녕 여전히 국회의원의 입김이 강했다.

 

광역의원선거구를 소선거구제(1명)에서 중선거구제(2~4명)로, 기초·광역의회 비례대표 비율(현행 10%)을 늘리자는 시민사회의 요구도 있다. 또 전국정당만 가능한 틀에서 벗어나 주민과 유권자, 시민사회가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풀뿌리 생활정치를 할 수 있는 지역정당을 인정해야 한다.

 

◇의회 견제기능 강화 = '강 단체장-약 의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견제와 균형이 성립할 수 있다. 무능력, 무기력한 의회도 문제지만 자치단체장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취약하다. 마창진참여자치연대 마산시의원 설문조사에서 자치단체장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점으로 '단체장 막강한 권한(27%)', '단체장 독주(27%)', '지방의회 약한 권한(27%)'이 82%를 차지했다.

 

지방의회 권한 중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의회사무직 인사권(72%)', '집행부 위법에 대한 제재·처벌권(27%)'으로 나타났다.

 

자치단체장이 독점한 예산편성권과 인사권부터 혁신해야 한다. 지방의회 견제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의회 사무처 인사권을 독립하고, 전문위원실을 강화해야 한다. 자치입법권 강화, 지방의회가 단체장이 임명하는 부단체장, 출자·출연 등 산하 기관장에 대한 인사 청문회나 임명동의를 할 수 있게 법률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하승수 운영위원은 "행정사무감사·조사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지방의회에도 국회처럼 위증에 대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6. 혁신을 위한 정책과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과 시민사회 중심으로 '공동지방정부'가 뜨고 있다. 승자의 독식이 아닌 시민사회와 야권연대의 큰 틀을 선거 이후 집권기간 동안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도 이어가겠다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특정세력이 독점한 폐쇄적인 구조를 바꿀 새로운 지방자치단체 운영구조가 될지 관심을 끌 만하다.

 

유권자에게는 누구를 뽑을 것인지 최대 관심사다. 이번 지방선거의 중요한 의제인 지방자치 혁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당과 후보자가 지방자치·분권과 주민참여를 추구하느냐, 중앙집권을 대변하느냐 나눌 수 있겠다. 주민의 대표자,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권의 대리인으로 구분된다. 지방자치 혁신을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중요하지만 지역내부에서 지방자치 혁신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 중앙집권 강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주민참여 활성화 =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주민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 현행 제도가 한계가 있고 제한적이지만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다.

 

도내 대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학자금 대출이자를 경남도로부터 지원받았다. 도내 23개 대학 재학생 2418명이 2008년도 2학기분 2억 1600만 원을 지원받은 것을 시작으로 7792명이 2009년도 1·2학기분(6억 5900만 원)을 받았다.

지난해 만들어진 대학생 학자금 이자지원 조례에 따른 것으로 시민사회와 도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등록금 대책을 위한 경남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는 2008년 5월 도의회에 학자금 이자지원 조례 청원을 했다. 도의회 조례청원 1호, 전국 첫 학자금 이자지원 조례청원이었다. 경남등록금네트워크는 도가 조례제정을 거부하자 주민발의에 나섰다. 도는 이듬해 조례 제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경남의 학자금 이자지원조례 주민발의는 전국으로 퍼졌다. 또 새로운 시도

 

도 진행 중이다. 지난 3일 전국농민회 총연맹 부경연맹을 비롯한 농민단체가 쌀값 폭락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쌀재배 농가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청구했다.

 

자치단체 예산에 대해서도 주민이 직접 제동을 걸었다.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은 도민 서명을 받아 지난해 경남도가 월드콰이어챔피언십으로 예산을 낭비했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주민감사 청구를 했다. 80억 원이나 든 이 합창대회는 도의회에서도 행사 전·후 논란의 대상이었다. 감사결과 '위법은 맞지만 예산낭비는 아니다'라는 데 그쳤지만 주민이 직접 자치단체장 예산 전횡에 경고를 한 것이다.

 

◇주민참여 거버넌스 구축 = 주민이 주인인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주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협력적 통치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지역사회 권력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가치의 다원적 배분과 네트워크에 기초한 다양한 참여구조를 형성해 참여민주주의에서 나아가 공개적인 논쟁과 대화로 정책을 결정하는 심의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참여와 자치활동, 지역공동체를 위한 주민자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읍·면·동장이 위원회 구성 권한을 행사하는 '관제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주민자치위원회'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시민사회와 협력적인 네트워크 강화가 중요하다. 단체장 중심의 지방권력구조를 네트워크형 거버넌스(협력적 통치) 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도지사선거 야권 단일후보인 김두관 예비후보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주도정협의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역 거버넌스 체제 형성과 관련해 시민사회가 공동 참여하는 인수위원회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재정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참여예산조례 제정과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운영이 중요하다. 2004년 광주 북구에서 첫 주민참여예산 조례를 제정·운영하고 있으며, 2004~2006년 3년간 참여예산제를 통해 주민의견 268건 중 72%(194건), 예산기준 251억 6800만 원 중 29%(74억 7800만 원)를 반영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2006년 정부가 표준조례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 246개 자치단체 중 관련 조례를 만든 곳이 경남도, 거제시·의령군 등 도내 3곳을 비롯해 30%나 되지만 대다수가 시민참여예산위원회도 만들지 않고 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주민 직접 참여를 가로막고 알맹이 빠진 껍데기 조례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독점한 자치단체장의 힘을 흔히 '제왕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자치단체 조직 내에 독립적인 감사조직이 필요하다. 자체감사 조직이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위원장 의회 임명동의를 받는 독립기구인 감사위원회가 있다. 자치단체장의 인사권 남용 차단을 위한 인사위원회 도입 요구도 있다.

<경남도민일보>와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