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서]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CD1장포함)
필리프 사시에
이상북스 | 201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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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武器, 싸워서 이기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도구라는 의미가 그렇다. 민주주의 ‘무기’가 아닌 ‘정신’으로 했다면 더욱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똘레랑스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들이 목차에 몇군데 나와있다. 眞理愛를 버리지 말고, 自己愛를 버려라(73쪽) 이웃 사랑이 시작이다(83쪽) 세계의 조화는 대립되는 사물로 구성된다(104쪽) 필수적이지 않은 것에는 똘레랑스하라(131쪽) 공익에 관련되지 않는 것은 똘레랑스하라(143쪽) 이성의 모든 수단을 행사하여 스스로 결정한다(208쪽) 똘레랑스, 가장 숭고한 베풂과 창조의 표현 행위(234쪽)
편집인도 서문을 ‘왜 다시 똘레랑스인가’로 결정했을만큼 한국사회가 그 만큼 앵똘레랑스 하다는 말인가.
이 책의 저자인 필리프 사시에는 똘레랑스에 관한 토론이 16세기 서양에서 시작된 것은 종교적 맥락에서였다고 말한다. 당시의 질문은 하느님의 신성과 계명에 관한 잘못된 의견을 참고 견뎌야 하는가에 있었고 한다. 현대에 이르러선 똘레랑스라는 개념은 ‘나의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똘레랑스는 나의 자유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남의 자유도 인정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학대받는 사상은 고통을 당하면서 더욱 살찌고,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번져 나가지만 참을성과 선함으로 이루어진 평화적인 방법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70, 80년대 한국사회를 보더라도 민중들을 억압하면 할수록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표출되었다. 2008년부터 오늘 한국사회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앵똘레랑스한 온갖 비상적인 사건들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하루라도 앵똘레랑스한 날이 없는 것 같다.
책의 앞부분은
사익 추구 집단이 성찰이성이 성숙되지 못한 사회 구성원들의 위에서 진실에 위배되는 것을 앵똘레랑스를 통해 관철시키는 집단이 문제라고 말한다. 똘레랑스는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반대를 요구하지만 한국의 집권우파세력은 앵똘레랑스 행위를 제어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똘레랑스가 초기 종교문제로 나타났듯이 복음서를 요약해 주는 것이 ‘이웃에 대한 친절과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16세기 똘레랑스라는 종교적 의미에서 18세기에는 모든 사고에 대한 똘레랑스, 예컨대 정치적 사고에 대한 똘레랑스로 쉽게 옮겨갔다(122쪽).
16세기 이후 똘레랑스는 흔히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제시되고, 자신의 견해에 너무 집착하지말 것을 요구했다. 에라스무스 등은 똘레랑스를 베풂과 용서의 제스처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볼테르는 불완전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박애속에서 이웃을 용서하도록 이끄는 호의와 순전히 동일시했다(234쪽).
가브리엘 마르셀은 ‘자기중심주의의 포기(236쪽)’라고 말했고,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똘레랑스 한다는 것은 그의 권력, 그의 힘, 그의 분노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클로드 사엘은 ‘짓밟을 권한이 있음에도 그 권한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강자의 똘레랑스가 지닌 무상성을 상기시켰다(241쪽).
그러면, 어디까지 똘레랑스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자연히 제기될 수 있다. ‘무제한인 똘레랑스의 권리는 약자들을 헤치고 강자들게게 도움을 준다. 강간범들에 대한 똘레랑스는 여성들에게는 앵똘레랑스를 의미한다. 체력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약자는 무제한적인 똘레랑스의 희생자이다. 약자를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앵똘레랑스는 약자들의 권리이지 강자들의 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오늘날의 똘레랑은 모든 자유방임을 부인하는 것을 첫번째로 신경쓰고 있다(244쪽).
‘무관심에 대해서는 앵똘레랑이 되어야 한다. 앵똘레랑스에 앵똘레랑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앵똘레랑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 애똘레랑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성을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똘레랑스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정신이다(245쪽).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 2부는 똘레랑스의 기원과 그 흐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자칫 지루한 면도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시작된 똘레랑스 개념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3부인 ‘자유의 이름으로’만 읽어보아도 똘레랑스에 대한 개념은 충분히 잡을수 있다고 본다.
2010년 오늘, 똘레랑스한 한국사회를 그려본다. 비기독교, 이주민, 새터민, 권력이 없는 일반 서민, 비수도권 등등 ‘和而不同’하는 사회를 말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인간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메달 색깔에 관계없이 즐거워하는 숭고한 스포츠 정신에도 똘레랑하기를 희망한다. 그 스포츠 정신을 이용할려는 세력에 대해선 앵똘레랑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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