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vs.부화뇌동(附和雷同 그리고 똘레랑스

2013. 5. 4. 20:18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 의제21, 거버넌스

 

 

화이부동(和而不同) vs.부화뇌동(附和雷同)


주지하다시피,
"화이부동"은 <논어>의 '자로(子路)'편 23조에 나온 말이다.

"군자는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끼리의 조화를 도모하는데,
소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엇이나 같게 만들거나 혹은 같아지려고 한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데서 나왔다.


중국 전통 철학의 현대화를 주창해온 대표적인 학자인
베이징(北京) 대학교 탕이지에(湯一介)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는 현재 중국 교육부가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국가사업
'유장(儒藏)' --- 불교의 팔만대장경과 도교의 도교대장경과 같은, '유교대장경' --- 편찬을 총책임지고 있는데,
유불도 삼교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병행해온 그는
유불도 가운데 어느 한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전통적 중국 철학의 특징이라고 하면서
중국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정신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꼽았다.

탕이지에 교수는 "중국 철학 정신의 핵심적인 방법이 바로 '화이부동'"이라면서,
중국 고전 가운데 하나인 <국어(國語)>에 나오는
"다른 것들끼리 만나서 조화를 이루고 협조하면 만사 만물이 번창하지만,
차이를 말살하고 동일하게 해버리면 지속되지 못한다
(和實生物, 同則不繼)"는 말로 그 의미를 다졌다.


한편, '똘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이 있다.

'똘레랑스'는 유럽의 종교 전쟁에서
'신의 이름'으로 같은 인간을 죽이는 비극에서 탄생한 회개의 눈물이다.

프랑스 말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내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닌,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역사의 교훈'이 바로 똘레랑스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똘레랑스'는 드물다.
그래서 '똘레랑스'는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야 할 삶의 관점이자 태도다.

흔히 '(상대방에 대한) 관용'이라는 말로 '똘레랑스'를 번역하지만,
똘레랑스는 '관용'이라기보다 '용인(容忍)'이며,
따라서 결국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치열하고 살벌한 생존경쟁의 정글인 대한민국에
'관용', '용인', '배려'라는
아름다움 품격을 호소하기 위해선지,
갈등 극복과 화합을 위해선지,
교수신문은 2009년을 맞아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정했다.


간혹 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부화뇌동(附和雷同)으로 착각하는 이도 보이고,
부화뇌동(附和雷同)에서 더 나아가 난만동귀(爛漫同歸)하는 소인배들이 종종 보이길래
소개 삼아 적어봤다.

쉼터 역시 올 한 해,
동이불화(同而不和), 부화뇌동(附和雷同), 난만동귀(爛漫同歸)에서 벗어나
'화이부동(和而不同)'할 수 있기를...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和實生物 同則不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