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빨리빨리’란 단어를 검색하다가 한국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발견했다. ‘외국인이 뽑은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베스트 10’이란 글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몇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인들은 커피자판기에서 컵 나오는 곳에 손을 넣고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른다.’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안 열리면 그냥 닫아 버린다.’
한국은 왜 ‘스피드’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전통적 패러다임에 따르면 경제 성장은 각 나라에 있는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 원유가 많이 생산되는 국가는 원유와 관련된 산업으로 발전을 하며 노동인구가 많은 국가는 제조업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발전을 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한계가 있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룬 점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부존자원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패러다임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국가다. 한국인은 부존자원의 열위를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더 빨리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 왔다. 한국 경제의 성장 요인을 심층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4호(10월 1일자)의 글을 요약한다.
○ 만족 못하는 토끼-한국 기업
올해 8월 9일자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삼성전자가 애플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회사로 올라선 것은 ‘스피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급성장한 이유가 위기의식에 자극받아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스피드는 한국 사회, 정부, 기업은 물론 개인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스피드는 중소상인들이 모인 기존 산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주축이 돼 세운 동대문 의류 시장은 1960년대 말∼1990년대 말 크게 성장했으나 이후 경제위기와 해외 저가 브랜드의 국내 진출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동대문 의류시장은 다음과 같이 해결했다. 먼저 수많은 의류 관련 업체들이 반경 1km 내에 집중해 의류의 기획부터 생산, 그리고 판매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이러한 클러스터는 의류유통을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게 할 수 있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한류와 더불어 한국의 패션과 화장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동대문 의류시장은 세계 최대 패션시장 중 하나로 성장했다. 결국 스피드라는 경쟁력을 기초로 해서 다시 일어선 것이다.
○ 민첩성: 스피드를 기본으로 한 정확성
너무 스피드만 강조한 나머지 정확성을 등한시하면 사고가 일어난다. 성수대교 붕괴 등 과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각종 사고는 일을 정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량품이 발생하는 것은 제조과정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가 만연하는 것은 인간관계 또는 사업상의 관계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력만 갖고 일이 성사될지, 아니면 뇌물을 줘야 일이 될지 확실하지 않으면 뇌물을 주게 된다. 뇌물에 관한 절차와 규정이 미비하면 뇌물을 받는 사람도 늘어난다. 경제 정치 및 사회 모든 분야에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피드에 정확성이 추가돼야 한다.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인력 또한 변변치 못했던 싱가포르가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적극적인 대외 개방과 더불어 사회 전반적으로 투명성을 통한 정확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빨리 간다고 우려하면서 천천히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를 버릴 것이 아니라 ‘정확성이 수반되는 빨리빨리’로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은 스피드를 기반으로 한 정확성이고 이 두 요소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 바로 민첩성이다.
○ 빠르면서 정확한 토끼로 거듭나야
스피드와 정확성은 스포츠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올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매우 좋은 성적을 거뒀다. 많은 스포츠 종목이 스피드와 정확성을 중시하지만, 특히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펜싱이다. 펜싱은 정확성이 매우 중요한 경기다. 유럽 선수들은 뛰어난 신체조건과 더불어 바로 이러한 정확성으로 그동안 세계 펜싱계를 주도해 왔다. 그런데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신체에서 오는 불리한 조건을 빠른 발 움직임, 즉 스피드로 극복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에서 평소에 빨랐던 토끼는 자신의 능력을 맹신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지만 한국은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다. 거북이는 신중하고 정확할지 몰라도 절대로 빨리 뛸 수 없다. 한국은 토끼처럼 빨리 뛰면서 거북이의 신중함과 정확함도 갖춰야 한다. 앞으로 이러한 요소를 잘 배합한다면 한국은 빠르면서도 정확한 토끼가 돼 계속적인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cmoon@snu.ac.kr
정리=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