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치 경제 발전
1. 서 론
이 단락에 대한 소개로써 국가는 사회와 경제 이익들간의 균형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생산과 교환간에 평형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 공화국은 핵심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의 네트워크그룹간의 강력한 상호 협력적인 작용을 강조하는 발전경로를 택하여 왔다.
2차대전 후의 독일은 많은 국가들을 강력한 사적 이익들이 국가 정책들을 포위 혹은 지배하거나 그 반대의 불균형 두가지를 피하여 왔다.
우리가 이 단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시장경제와 결합된 조직화한 자본주의의 독특한 형태에 의해 독일은 예측불가능한 변화와 국가 경제 정책의 불균형을 피하여왔다.
2.전후의 청산과 그것을 넘어서
독일은 두가지의 것들로 구성된 일련의 구조와 제도들을 발전시켰다. 첫째, 조직화된 자본가, 노동조합과 깊이 관련된 혼합경제 복지국가이고 둘째, 안정적인 다수당 민주주의이다.
새로운 정치 경제 : 전후의 청산을 초월하기
전후의 청산을 초월하는 것은 1980년도 초반과 중반의 변환기에 일어났다.
(1) 25년의 헬무트 슈미트 수상에 의해 이끌어진 사민당과 자민당의 중도 좌파 연정은 1980년대 초반에 결정적으로 경제 정책에 대한 논쟁으로 붕괴되었다. 자민당은 연정 파트너를 바꾸고 헬무트 콜 수상에 의해 지도되는 기사/기민당과 자유민주당 연정이 1982년에 수립되었다.
(2) 새정부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비용문제보다 연방공화국의 직업교육과 견습 훈련 시스템이 모든 사회초년병들을 노동시장으로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술력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독일 경제의 강점중의 하나이므로 큰 문제를 나타내었다.
독일 연방 공화국은 전후기간 내내 숙련된 불루 칼라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해체는 거의 없었다.
높은 생산성과 고임금, 단일화된 고용에 대한 계획이 수년동안 경제를 지탱해왔다.
(3) 조직화된 잉여 노동력이 노조의 힘의 침식을 방해
(4) 독일 통일
사회시장 경제에 대한 긴장들은 통일의 막대한 비용에 의해 악화되었고 유럽 연합의 단일 시장도 실현하기어렵다것을 깨닫게 했다.
(5) 동독과 서독 사이의 긴장
동독인들이 느린 변화와 높은 실업에 대해 분개하는 반면,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에게 직업을 잃어버린 것에 매우 쓰라려 하고, 늘어난 세금을 통해 옛 동독 지역에서부터 넘어온 생태학적이고 구조내적인 재난에 대해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에 긴장하고 있다.
3. 정부와 경제
(1) 독일의 경제 특징
국가 내에서 산업을 대표하는 두 그룹이 매우 힘이 있고, 대등한 조직화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라는 것이다.
소규모 대규모 사업 - 조직화된 네트워크에 의존해 왔다.
은행 - 경쟁력있는 산업의 건강성과 경제의 기초 설립을 위해 장기투자를 함
정부 - 간접적이고 부양적이다. 그것은 폭넓은 지침들을 제공한다. 유연성
독일의 규제방식은 상세한 것들보다는 경쟁력있는 큰 골격만 잘 만들어 놓는다.
(2) 독일의 1871년 통일 이전 경제
지방정부는 정부와 시장간의 불분명한 구분속에서 개인의 경제이익을 위해서도 일함
경제성장에 대한 기초와 산업 근대화의 가장 초창기 경향은 1834년에 2300만의 인구를
가진 18개국가가 관세동맹을 맺은 것이 큰 자극이었다.
각각의 정부들이 다른 물질적 필요와 사회적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지역 정부는 아마도 중앙 정부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들을 수행하여 왔을 것이다.
(3) 독일 사회시장경제
∙일본과 프랑스의 강한 정부도 영국과 미국의 자유방임주의도 모두 배격
∙사회시장경제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적 공적 제도를 상호관통시키는 시장시스템
∙정부의 정책은 일반적인 규제의 한계만을 공급
∙고임금, 고사회비용, 독일 생산품들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게 만드는 필요성들의 결합
∙복지혜택은 부의 재분배 이상의 것
∙독일은 고임금 고복지 국가의 우수한 경우이다. - 견습훈련과 직업교육 시스템
∙모든 직업의 1/3이 수출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독일 노조에게 보호무역주의는 스스로
패배하는 것이다.
∙분데스뱅크 - 정부의 충돌
정부가 경제의 팽창을 바랄 때 분데스 뱅크는가 통화 억제책만을 고집
독일은 국가와 시장을 통제하는 유동성있고, 상호보완적인 정책들을 적용시켜 왔다. 공공 정책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코포라티즘과 이익집단의 역할은 두가지 예들이다.
∙ 1990년대 초반의 문제점
- 우선 콜 정부는 통일의 비용과 통합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자원들을 잘못 판단했다.
- 독일 정치 경제가 1990년대 중반에 직면한 구조적인 도전은 다른 연방 공화국들이 1950 대 이후에 경험 했던 것보다 더욱 강렬한 것이었다.
- 서독의 통합된 제도들은 동독에 대한 모델로 변형시키기 어렵다.
4. 사회와 경제
인종적 소수
구 동독 시민은 우선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토론에 대한 서구민주주의 습관에 완전히 적응하여야 했다. 둘째, 그들은 또한 충분히 많은 일자리가 공급되지 않는 노동시장에 대해 적응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셋째, 그들은 그들이 알아왔던 것보다 더 다양한 사회에 직면해야 했고, 그들은 종종 이민자나 망명자에 대해 고용의 부족으로 힐난했다.
사람들은 단기간에 있어 발생하는 주요한 변화들을 소수 인종탓으로 돌리는 선동가로부터 인종차별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1990년대 독일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종적인 것이다.
작업장과 사회에 있어서의 여성
1960년대까지 유전자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분열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1960년대의 사회적 폭발적 인구 증가 때까지 거의 모든 여성들은 사회적인 지위는 없었다. 심지어 70년대 페미니즘이 확산될때도 최소한 개인적 수준에서 경제와 정치적 발전면에 있어서는 5~10년정도 미국여성들보다 더디었다. 동독과 서독의 여성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정책에 있어서의 차이는 통일 후에 큰 논쟁을 일으켰다.
경영보다는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여성드의 참여가 더욱 많았다. 공식적인 작업장에서 동독법과 서독의 통일 이전법의 차이는 논쟁의 불신을 일으켰다.
1990년대 초반 독일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서독법의 지배이다.
노동운동 : 결집과 통합
독일에 있어서의 노동은 이익집단을 넘어선 것이다.
극도로 산업화된 나라들에서처럼 독일의 노동운동은 1950년대에 후 1960년대부터 나타났다.
강력한 협상집단 - 사회변혁보다 임금 강조 - 노동의 질 문제를 강조하는 순으로 변화
독일의 노조는 같은 수준의 다른 나라에서의 노조운동보다 덜 분열된체로 남아있었다.
새로운 사회운동
새로운 사회운동은 독일에서 우경화된 사민당에 반기를 들고 60년대 후반에 나타났다.
60년대 대연정에 사민당이 참여한 후에 중요한 것은 독일의 어느정도 규모의 반대당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외 반대파들이 60년대 후반에 형성되었다. 1970년데 브란트 정부의 우경화된 조치로 사민당원들로 하여금 당체제 밖에서 행동하는 비공식적인 그룹으로 남게 하였다. 이들 시민운동 그룹은 원자력 반대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서독. 이들 사회운동은 80년대 초반 영향력이 커져갔다. 시민 운동가들은 녹색당원이 되어갔다. 82년 이들 그룹들의 출현 정부의 당으로서 사민당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포스트 유물론자들
5. 독일과 국제질서
지역적 국가적 정치경제에 대한 독일의 관계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유럽연합과 독일의 세계무대에서 독일의 역할
독일은 유럽국가의 지도자로 정치적, 경제적 역량에 맞는 책임감을 지기를 계속 요구받음
일본과의 무역, 경제적 경쟁, 유럽연합의 통화정책, 그리고 경제통합의 일반적인 국면등의 다른문제들도 주요 관심사로 아직 남아있다.
특히 독일은 이들 산업들이 고기술 고가치의 접근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성공적이었고,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쉴틈을 찾았다.
∙응집력있는 전유럽의 구조에 대한 노력이 있어야만 국내 혹은 국제 유럽통합 문제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고숙련노동력이 국제시장에서 저임금 노동 높은 교육열 결합의 전략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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