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그나라 ---머니 투데이

2019. 7. 10. 10:23시민, 그리고 마을/도시, 마을, 농촌, 삶의 질 농업






'성인용품 리얼돌 판결'과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



[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성매매합법화 ①] 독일, 문제해결의 주체를 국가 아닌 사회로 봐… 국가가 개인의 삶 간섭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성매매 합법화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지난달 여성의 신체 형상을 모방한 성인용품 수입을 허가해야 한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을 보고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 과정이 떠올랐다.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대법 판결이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 과정 드러난 독일의 국가관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서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국내 성인용품 수입업체인 엠에스제이엘이 인천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수입통관보류처분취소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엠에스제이엘은 2017년 여성의 신체를 실리콘 재질로 형상화한 '리얼돌'에 대한 수입 신고를 했지만, 세관으로부터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며 반려당하자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물품을 전체적으로 관찰했을 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묘사했다"며 세관의 수입 금지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 1월 2심 재판부는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원심을 뒤집었고 이어 대법원도 2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의 시각은 독일인들의 국가관과 맞닿아있다. 독일은 나치시대 히틀러의 기억 때문에 국가가 지도자 원칙에 따라 개인생활을 모든 차원에서 간섭하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따라 독일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중앙국가 보다 주정부 자치를 중심으로 한 연방국가 체제를 형성하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동을 이렇게 하라'거나 '저렇게 하라'고 지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의 주체도 국가가 아닌 사회라고 본다.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구성할 수 있어야한다고 믿으며,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범위라면 그 형태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어야한다고 여긴다. 작은 삶의 단위(개인과 사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국가는 나서지 않아야하며, 국가는 작은 삶의 단위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해 도움만 줄 뿐이다. 독일은 이 같은 시각에서 평등한 계약관계에 토대를 둔 취업활동과 사회보장, 권리보장을 국가가 해주면 성매매여성 대부분이 탈성매매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성매매 합법화를 추진했다. 독일의 국가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타국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었던 관계로, 합법화 논의 과정도 다른 국가들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성매매를 금지하는 국가인 스웨덴(성매매 구매 금지)과 한국(성매매 구매 및 판매 금지)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착취'를 반대하는 맥락에서 법안이 만들어진 반면 독일은 성을 판매하고자하는 여성들의 자유를 보호해야한다는 맥락에서 법안이 만들어졌다. 성매매 합법화 진행 과정에서 성매매가 논쟁의 이슈로 부흥하기 전, 세 국가에선 모두 다 도덕 프레임이 대두했다. 신체는 인간의 존엄과 직결됐기에 이를 매매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라는 시각이다. 이 같은 시각에 따라 한국과 스웨덴에서는 여성시민단체들이 인신매매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성매매는 비도덕적이고, 여성 젠더에 대한 사회 구조적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는 전체 여성의 문제라면서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스웨덴과 한국에선 반대 여론이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부상했다. 독일에서도 이 같은 프레임이 지속됐다.1901년 제국법원이 성매매를 민법 138조의 부도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이후 일관되게 성매매는 부도덕한 행위로 취급됐다. 하지만 2000년대 본격적 성매매 합법화 논의가 시작되면서 '개인에 대한 차별' 부분이 크게 부각됐다. 국가에 대한 관념 때문이기도 했지만, 성판매 기업인 '하이드라'(Hydra)가 이 논의의 중심축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하이드라는 "성매매자가 받는 사회적 차별을 제거해야한다" "성매매는 다른 직업과 같다" "국가는 성매매자가 받는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나서야한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런 견해는 스웨덴이나 한국이 그러했듯, 성매매를 전체여성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단순히 '성매매자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효과가 있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 담론이 부각되면서, 차별을 없애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이 같은 여론이 조성됨에 따라 2000년11월 독일 최대민간보험회사인 독일의료보험조합(DKV)은 차별을 없애는 맥락에서 성매매를 직업으로 인정하고, 성매매 여성들도 특별계약조건이나 더 많은 보험료 등 차별 없이 의료보험 가입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성매매여성임을 고지하지 않고 의료보험에 가입했다가, 성매매 행위가 드러난 경우 불이익(보험료 폭등, 지급 거절, 가입 해지 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후 2001년 '성매매자의 법률관계의 규율에 관한 법'이 통과되면서 2002년 본격적으로 성매매가 합법화됐다. △미성년자와의 성매매를 한 자 △그를 알선한 자 △성매매 여성의 수입에 의존해 생활하며 성매매 여성을 감시하는 자 △성매매 시간이나 장소 등 환경을 결정하는 자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알선하는 자 등은 여전히 처벌대상으로 남았지만 이외에는 대부분 합법인 행위가 됐다. 성매매 합법화에 따라 성매매 여성은 인신매매 상황에 놓였을 때 국가에 이를 고발할 수 있게 됐고, 누군가 자신을 강요할 경우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국가에 호소할 수 있게 됐다. 성매매는 연금, 의료, 실업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이 가능한 직업이 됐다. 재취업훈련 등 사회보험에서 제공하는 취업지원프로그램에 대한 권리 확보도 가능해졌다. 또 장해연금 수급권도 확보돼 취업활동을 못하게 됐을 때 연금수급도 가능하게 됐다. 독일은 이 같은 법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성매매 여성이 자활에 성공, 성매매 여성의 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그럼 독일이 처음 합법화를 했을 당시의 취지처럼, 성매매 여성 수는 감소했을까. 또 성매매 여성들은 합법이라는 법망 아래,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을까? 일단 성매매 합법화에 따라 성매매 산업은 확장됐고, 성산업 종사자 수도 두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곳곳에서 백화점형 성매매 업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됐고, 일정 가격에 무제한으로 음식을 먹고, 사우나를 하고,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뷔페식 성매매 업소까지 등장했다. 거리 곳곳과 대중교통에 "성매매 하러 오라"며 유혹하는 광고판이 붙은 것도 물론이다. 다음 편에서는 독일에서 성매매 합법화에 따라 어떤 현상들이 나타났는지, 이게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추가적으로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성매매합법화 ②] 계속 참고문헌 절망 너머 희망으로, 에이지21,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셰릴 우던 EU에서의 성매매와 한국의 성매매 규제에 관한 연구, EU연구 제23호, 김학태 독일 성매매 합법화 이후 실태와 정책 효과, 이화젠더법학, 정재훈 한국, 스웨덴, 독일의 성매매 정책 결정과정 비교분석, 한국여성학 제23권 4호, 유숙란·오재림·안재희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7.08 06:30



  • "중국은 대국(大國)… 너희도 부럽지?"



  •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③] 사회주의·공산주의 경험한 중국인과 영국 식민지배 하 합리적·민주주의 사회시스템 길들여진 홍콩인 간 간극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내게는 한 광저우 출신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와 대화할 때면 내가 알던 상식이 사실이 아닌가 의심해봐야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홍콩인들은 다 본토 중국인을 부러워하거든. 본토 중국인은 대국인이고 홍콩인은 소국인이니까, 대국의 일부가 되고 싶은거야. 그래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홍콩인들이 정말 기뻐했어." 그러면서 친구는 "대만 역시 마찬가지야. 대만인들도 중국의 일부가 되길 바랐고, 그래서 중국 당국이 더 노력중이야"라고 말했다. 정말 이상했다. 내 주변의 모든 홍콩인 친구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부르면 인상을 찡그리며 "나는 홍콩인"이라고 정정하고, 중국의 SNS, 미디어 규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에 강한 열망을 보이는 등 중국 본토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 차례 중국인 친구에게 "정말 그래? 홍콩인들 얘기는 다른 것 같은데"라고 물었는데, 그는 "내가 광저우 사람이잖아. 홍콩이랑 가까워서 홍콩엔 영화보러도 자주 놀러가서 잘 아는데 정말 그래"라며 잘라뗐다. 그의 단호한 확신에 잠시 현실이 정말 그러한가 생각해야했지만, 다시 홍콩인 친구들과 대화한 뒤엔 그의 확신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온 일종의 '세뇌'였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훗날 "(상대적 소국민인) 한국인 역시 중국인을 부러워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중국인의 '대국'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로 막강한지, 또 그들이 얼마나 대국적 논리에 기반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일견 알 수 있었다. 이처럼 홍콩인과 중국인 사이에는 엄청난 생각의 간극이 있다. 먼저 홍콩인은 영국 지배 하(1841~1997년) 156년 동안 영국식 사회 시스템에 오래 길들여졌다. 영국은 행정제도, 사회기반시설, 공공서비스 등을 그대로 홍콩에 이식했고, 홍콩은 세계 최고의 무역항으로 거듭났다. 경제적으로도 본토에 비해 매우 풍족해졌으며 민주주의 의식도 발달했다. (☞'천안문 사태' 강력대응 中, 홍콩엔 한발짝 물러선 이유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②] 참고) 이는 단순한 차원의 차이가 아니었다. 일상 곳곳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영국 식민 경험을 통해 홍콩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 자연히 국제적 감각도 높아졌다. 홍콩인들의 눈에 중국인은 국제적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게 비춰졌다. 홍콩 경제는 세계자본주의 발전의 지표가 됐을 정도로 선진국 수준에 이미 도달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소비수준이 다르니 사용하는 제품도 달랐다. 홍콩의 중산층은 벤츠, BMW, 볼보, 아우디, 혼다, 도요타 혹은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등 외제차량 브랜드에 익숙했지만 중국인은 상하이나 베이징에 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것들에 익숙지 않았다. 앞서 홍콩의 중국 반환 전 '중국인 정체성'을 강조하던 홍콩인들이 이젠 중국인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며 '홍콩인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의 일부 민족주의·민주주의 인사들은 영국이 센트럴 등 영국인이 다수인 지역만 개발시키고, 홍콩인 밀집지는 등한시한다는 등 영국 정부의 상대적 차별에 대해 항거하며 당시 이들은 영국인이 아닌 '중국인 정체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중국 반환 후 홍콩의 민족주의·민주주의 인사들의 항거 대상도 달라졌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말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우리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중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기저에는 공산주의 사회 중국 회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중국 반환을 전후로 당시 홍콩 인구의 10%인 65만명에 달하는 홍콩인들이 캐나다, 미국 등으로 해외 이민을 떠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홍콩에 남아 사회운동을 일으켰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홍콩에서는 사회운동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1997~2016년 20년 동안 홍콩에서는 6만4677건의 집회가 벌어졌다. 홍콩인들은 '중국 통합'에 대한 두려움을 집단의 연대와 통합으로 대응했으며, 또 이를 통해 '홍콩인 정체성'을 키워나갔다. 이전까지 홍콩인들에겐 국가 정체성이 크게 자리잡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중국과 분리되어 있었고, 이주민들로 구성된 다문화·다지역성의 사회였기 때문에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공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배 하의 자유무역항과 국제화된 도시사회의 발전에 따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정체성은 홍콩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권 반환과 함께 홍콩의 역동성과 다원성이 침식당하고, 중국의 민족 국가와 애국주의로 대체당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이 같은 국가 정체성은 오히려 커졌다. 홍콩인들에게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은 기획된 '신화'처럼 느껴져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이 같은 정체성의 갈등은 정치적 시위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도 빚어졌다. 홍콩인은 홍콩인 정체성을 키워나가며 이를 침범하려는 중국과 중국인에게 날카롭게 대응했다. 2004년 홍콩 피크트램(Peak Tram)에서 중국인-홍콩인 갈등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피크트램은 빅토리아 산 정상에 올라 홍콩 시내와 바다를 굽어볼 수 있어 외국인과 중국 대륙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다. 2004년1월24일 춘절연휴 중 중국 광둥성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 캉모씨(25) 가족, 친지 10여명이 하산하는 길에 싸움이 붙었다. 캉씨 일행 중 두명이 길게 늘어선 줄에 살짝 끼어들었다가 홍콩인 황모씨 가족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황씨가 "대륙인들은 매너가 없다"며 비난하자 캉씨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변해 네명이 병원에 실려가고 여섯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중국 대륙에서는 웬만한 새치기를 눈감아 주지만 홍콩인에게 줄서기는 몸에 밴 질서다. 이처럼 양측의 줄서기 문화가 달라 빚어진 갈등이기도 하지만, 황씨가 한 말에 기반해 홍콩인이 중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고 또 이게 어떤 갈등을 빚는지 알 수 있다. 홍콩 언론이 중국인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 홍콩 언론은 중국 관광객들이 명품 가게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거나 대로에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는 꼴불견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보도한다. 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다가 벌금을 내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도 빈번하게 전한다. 2014년 4월에는 홍콩 공중화장실의 줄이 너무 길어 중국 여행객 부모가 거리 한복판에서 아이에게 소변을 보게 한 사건이 화제되면서 홍콩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을 막아야한다"는 여론이, 중국에서는 "중국인 차별이 막심하니 홍콩 관광을 가지말자"는 여론이 급증하기도 했다. 칼럼 등에서도 홍콩에 취직 등을 위해 몰려오는 중국인들을 가리켜 (홍콩) 생태계를 파괴하는 '메뚜기떼'라고 언급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베리 사우트먼·옌하이롱은 '홍콩 본토파와 메뚜기론: 신세기의 우익 포퓰리즘'에서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홍콩은 약소집단으로 전락했고 홍콩의 대홍콩주의도 약화됐지만 여전히 의식 속에서 홍콩의 우월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홍콩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이분법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홍콩의 중국에 대한 우월감이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에 따르면 홍콩의 우월감은 서구화된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발전 경험과 글로벌 시대에 맞는 세계 시민이라는 인식, 그리고 반중이 곧 민주의 수호라고 인식되는 것처럼 비록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를 경험했다는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사우트먼·옌하이롱은 "홍콩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본토주의를 형성한 조건은 '식민 현대성'과 '냉전에서의 승리'라는 두 요인"이라면서 중국을 상대화해 홍콩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지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인들이 중국 대륙인을 향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고, 또 시위를 통해 반중정서와 홍콩의 독립 요구가 부각되고 있지만, 이게 전체 홍콩인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수 시민은 '독립' 보다는 중국과의 '공존'을 원하고 있다. 2017년 3월에 있었던 홍콩행정장관 선거에서 캐리 람에 밀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50%가 넘는 높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온건 친중파 존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은 선거 구호로 '개방, 조화, 포용, 공존의 홍콩'을 강조했다. 이런 가치들이 홍콩사회가 구성하고자 하는 홍콩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인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같은 집단 기억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홍콩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독립보다는 다양성의 존중과 중국과의 평화로운 공존, 즉 '일국양제 유지'로 추측된다. 2017년 6월7일에 실시된 '홍콩 민의와 정치발전'(15세 이상 1028명 대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2047년 이후에도 중국과 홍콩 간에 일국양제가 유지돼야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1.2%였다. 14.7%는 중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지지했고, 11.4%만이 홍콩의 독립을 지지했다. 결국 홍콩과 중국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로 통합될까. 혹은 차이를 인정하고 두개의 제도를 가진 하나의 국가로 남게될까. 참고문헌 홍콩의 집단 기억과 시위 그리고 정체성 정치, 중소연구, 이종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 분석, 서울교대, 박서현 1997년 이후 홍콩인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 한국인문과학회, 홍석준 우리의 기억, 우리의 도시, 집단기억과 홍콩 정체성, 동북아문화연구, 장정아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7.01 06:01


  • '천안문 사태' 강력대응 中, 홍콩엔 한발짝 물러선 이유

  •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②] 베이징, 중국인들에게 상징적인 데다가 시위 확산 가능성 높아 강력 진압… 홍콩 우산혁명 시위는 내부서 분열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몇년 전 중국 베이징에 놀러가서 천안문 광장을 둘러봤다. 11월이라 쌀쌀했는데, 마침 비까지 내려 어딘가 씁쓸했다. 관광객 수 보다 월등히 많은 공안 수는 을씨년스러움을 한결 고조시켰다. 추적추적비를 맞으며 천안문 사태를 생각했다. 이후 광저우 출신 중국인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천안문 사태 알아?"… 모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안다"고 답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얘긴 하기 좀 그런데"라고 말을 흐렸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교과서에서 배우나?"라고 묻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해보진 않았으나 검색을 하면 잘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국인 모두 어떤 좋지 않은 일(천안문 사태)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는 마치 '금기'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6월4일 베이징 중앙에 있는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한 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다. 1989년 4월말부터 계엄령이 선포된 5월20일까지 천안문 광장에는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덩샤오핑(1978~1983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1981~1989년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역임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은 민주화 투쟁을 위해 모인 인민들을 무력으로 짓밟았고, 이 자리에서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중국이 경제적 발전과 함께 민주주의도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영국 지배하 경제가 번영하고 민주주의 의식이 발달한 홍콩에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홍콩은 1841년부터 156년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다. 영국의 홍콩 지배 기간을 거치면서 홍콩은 세계 최고의 무역항으로 거듭났다. 영국은 행정제도, 사회기반시설, 공공서비스 등을 그대로 홍콩에 이식했고, 꽤 합리적으로 식민지를 운영했다. 많은 홍콩인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적고 이 시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홍콩은 이 시기 경제적으로 번영하며 아시아의 중심 무역축으로 성장했고, 영국이 만든 사회 기반에 따라 민주주의 의식도 높아졌다. 이에 중국 반환 직전 홍콩에서는 불안감이 고조됐다. 영국식 사회 시스템에 오래 길들여진 홍콩인에게는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으로의 회귀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다. 천안문 사태를 지켜봤었기에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컸다. 수 많은 중산층 홍콩인은 불확실한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민을 떠났다. 중국 반환을 전후로 당시 홍콩 인구의 10%인 65만명에 달하는 홍콩인들이 캐나다, 미국 등으로 해외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7월1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인수인계됐다. 홍콩은 중국에 반환됐고, 홍콩특별행정구가 탄생했다. 중국 정부는 경제현대화의 첨병인 홍콩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었다. 홍콩 반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이후 마카오 반환과 대만과의 통일 등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도 봤다. 장쩌민(1993~2003년 중국 국가 주석)은 1997년 6월30일 밤 홍콩 반환식 경축사에서 "1997년 7월1일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만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면서 "홍콩주권의 반환은 중국 민족의 축제이자 전세계 평화와 정의의 승리"라고 말했다. 당시만해도 홍콩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국이 비해 월등했다. 이에 중국 정부도 홍콩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고도의 자치를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장쩌민은 홍콩 반환식 경축사에서 "일국양제" "홍콩주민의 홍콩통치" "고도의 자치" "50년 불변" 정책을 확고하게 이행해 홍콩의 기존 사회경제체제와 생활방식 및 법률을 기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안은 이대로 진행됐다. 그동안 중국을 향한 우려는 기우였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이 어느 정도 경제력을 키우기 시작하고, 국제적으로도 발언권을 갖게되면서 상황은 달라져갔다. 2003년 후진타오(2003~2012년 중국 국가 주석)의 임기 시작과 함께 중국의 홍콩을 향한 태도는 급격히 달라졌다. 후진타오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홍콩과의 역학관계가 달라졌다고 봤다. 이에 '양제'를 강조한 기존의 홍콩 인식을 조정하고 그동안 '양제'에 놓였던 방점을 '일국'으로 조정하고자 했다. 중국의 홍콩에 대한 인식 조정 노력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았다. 중국이 '일국'을 강조할수록 홍콩의 반감도 커져갔다. 이때부터 홍콩에 반중국시위가 빈발했다. 2003년 7월, 기본법 23조를 근거로 중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안전법) 제정을 시도하자 5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2012년에는 친중 성향의 국민 교육과목을 필수 도입하려는 시도에 고등학생을 주축으로 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졌다. 중국의 국가주석이 시진핑(2013년~현재 중국 국가 주석)으로 바뀌면서 '일국' 지향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중국몽(시진핑이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직후 내세운 것으로, 봉건왕조 시기 조공질서를 통해 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전통 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의미)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진핑은 홍콩 민주화에 대해 특히 부정적이었다. 시진핑은 '백서'를 발간해 '일국양제'의 전제가 '일국'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홍콩의 자치 가능성을 축소했다. 홍콩 행정수반 선거 후보자 추천 방식은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제한했다. (☞ "물러날 수 없다"… 한국 '촛불혁명'과 홍콩 '우산혁명'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①] 참고) 그렇게 2014년 9월부터 약 79일간 '우산혁명'이라는 이름의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50만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들은 홍콩 행정수반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우산 혁명 시위를 벌였다. 우산혁명은 꽤나 오랜 기간 진행됐고(79일간), 또 많은 이들(50만명)이 참여하면서 전세계 이목을 끌었다. 당시 우산혁명 시위 참가자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보통선거를 달라" "우리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들(시위 반대자)은 대의 명분이 없다" 등의 주장을 했다. 이에 반해 중국 당국은 "이번 시위로 홍콩 시민들이 충격과 공포에 빠져 위협을 느끼고 있다"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사임 요구는 불합리하며, 시위대는 황색동란을 일으키고 있다" "과격함은 보통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콩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시위대의 점거가 홍콩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등의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우산혁명은 흐지부지 끝났다. 많은 수의 홍콩인들이 중국 정부의 논리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2014년 홍콩중문대 여론연구소의 우산혁명 지지여부 조사에 따르면 우산혁명은 홍콩 시민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고학력인 범민주파지지 성향의 10~20대 젊은이들에게서만 지지를 받았다. 40~50대 이상으로 이미 경제적인 기반이 있는 고소득층은 홍콩 도심지를 장기간 점거하는 시위가 초래하는 불편함에 주목했고, 홍콩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에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베니타이 교수 등 3인방은 2014년 12월3일 시위를 이끈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자수했다. 베니타이 교수는 또 뉴욕타임스에 기고해 시위 중단을 권유했다. 그는 글에서 "센트럴 점령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민주화를 위한 다른 전략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산혁명 시위가 대만과 마카오를 포함해 소수민족 분리시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시위 대응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우산혁명시 천안문 사태 때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진 않았다. 첫째는 이처럼 홍콩내 시위를 두고 홍콩인들 사이에서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엇갈려 중국 정부가 개입해야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었다.두번째는 중국 정부는 홍콩의 시위가 곧바로 대륙 전체로 확산할 것이라곤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홍콩이 '경쟁력 있는 지방정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의 대륙 중 아주 작은 섬에 불과하므로 베이징과는 그 중요성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베이징은 중국의 800년을 이어온 전통적·역사적 수도로서, 중국의 정치·행정·문화가 집약된 곳일 뿐 아니라 주요 상업·금융의 중심지다. 국가건설 전부터 무수한 정치투쟁과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이어져왔으며 베이징대(北京大)·칭화대(淸華大) 같은 국제적 대학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도시다. 천안문 사태 때도 그러했다. 서로 다른 도시의 학생 지도자들 사이를 전화 등이 연결시켜줘 어느 때 보다도 쉽게 소식이 전파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연락은 꼭 베이징을 거쳐야 이루어졌기에 실질적 중심지로서의 베이징의 역할은 더욱 컸다. 이에 중국은 천안문 사태가 다른 대규모 시위 보다 전국적 확산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보아 강력하게 진압했던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중국몽' 실현을 위해 더욱 홍콩을 중국 정부의 손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물론 최근의 '송환법 추진' 100만 반대 시위처럼 중국 정부에 대한 반발이 빗발칠 것이고, 이 과정 홍콩인의 홍콩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강해지겠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홍콩인과 중국 본토인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짚어보고 이들의 생각 차이를 알아 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③] 계속 참고문헌 반정부시위에 대한 중국정부의 대응, 연세대, 성별희 홍콩 민주화 시위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 분석, 서울교대, 박서현 홍콩의 반환과 중국의 장래, 배재대, 김소중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6.24 08:09


  • "물러날 수 없다"… 한국 '촛불혁명'과 홍콩 '우산혁명'

  •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①] 홍콩서 꾸준히 반중시위… 중국에 대한 불신이 근본적 원인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홍콩인 친구는 내게 한국이 가진 역동성에 대해 늘어놓길 좋아한다. K-POP, K-드라마 뿐만 아니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 한국의 민주주의라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그는 2016~ 2017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혁명에도 참가했다. 당시 그는 내게 홍콩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며 '우산 혁명'을 소개했다.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부터 약 79일간 진행된 민주화 시위다. 당시 50만명에 달하는 홍콩 시민들은 홍콩 행정수반 선거의 후보자 추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우산 혁명 시위를 벌였다. 주로 대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동참하면서 당국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쐈다. 무고한 학생들에게 마구 최루탄을 쏘자 초기엔 시위에 냉담했던 시민들 가슴에도 불이 붙었다. 시민들은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센트럴은 홍콩의 도심)고 외치고,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아내며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한국의 촛불혁명이 대통령을 탄핵시키며 성공적으로 끝난 것과 달리, 우산혁명은 허무하게 끝났다. 중국 정부가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무대응'으로 일관했으며, 홍콩 내에서도 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 악화를 이유로 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어 시위 중심지였던 몽콕과 애드미럴티의 바리케이드 등이 홍콩 당국에 의해 철거되면서 시위는 시작 79일 만에 허무하게 종료됐다. 사실 홍콩에는 '우산 혁명'에 비견될 만한 시위들이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 2003년 7월에는 기본법 23조를 근거로 중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안전법) 제정을 시도하자 50만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조항이 철회됐다. 2012년에는 친중 성향의 국민 교육과목을 필수 도입하려는 시도에 고등학생을 주축으로 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금 홍콩에 집중됐다. 지난 9일 홍콩 시민 103만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4만명)이 빅토리아 파크에 모여 가두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시위에는 "홍콩인 7명 중 1명이 참여"했으며,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다. 이번 시위는 왜 일어났으며, 홍콩인들은 무엇에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지난해 2월 시작됐다. 한 홍콩 출신 19세 남성은 휴가차 방문한 대만에서 임신한 20세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도피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만은 이 남성을 송환시키기 위해 홍콩의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홍콩 당국은 대만과 범죄인 인도 협정이 없기 때문에 이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성을 대만으로 송환하지 못함에 따라 홍콩 법원이 강제로 이 남성을 석방할 수 있게 되자, 홍콩 당국은 오는 7월 이전에 범죄인 인도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의회에 촉구했다. 얼핏 홍콩 당국이 합당한 법안을 추진 중인 것 같은데, 홍콩인들의 태도는 자못 비장하다. 홍콩인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면 홍콩의 미래는 없다"거나 "홍콩인들은 홍콩의 리더들을 전혀 믿지 못한다. 그들은 베이징 입맛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며 시위 현장에 나섰다. 홍콩인들은 이 법안이 반중국인사, 인권 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보내는 데 악용돼 홍콩 민주주의와 법치를 무너뜨리고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가 격화되며 법안 심사가 예정됐던 지난 12일에는 홍콩인들이 입법회 건물 등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고, 경찰 역시 최루탄, 고무탄 등은 물론이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충돌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홍콩 당국은 인권과 절차적 보호 등은 유지되며 탈세 등 9가지 범죄는 이 법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 행정장관이 홍콩인들을 배신했다면서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했다. 홍콩 당국이 9가지 범죄는 법안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한다고 물러섰는데도 홍콩인들은 왜 이리 절박하게 '반대'를 부르짖을까? 그 이면에는 홍콩인들의 캐리람 행정장관과 중국 본토에 대한 불신이 있다. 먼저 캐리람이 어떻게 행정장관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2014년 있었던 우산혁명 당시 홍콩인들은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대표적 '친중파' 캐리람이 당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켜 10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체포하는 등 강경대응하면서 우산혁명은 좌절됐다. 결국 간접선거제도를 관철시킴으로써 캐리람은 2017년 3월 행정장관에 선임됐다. 이후 홍콩의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중국 당국과 발맞춰 홍콩 독립운동파 단속을 강화했고, 지난해 9월엔 국가안보와 공공안전, 공공질서 등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사회단체의 해산을 가능케 한 '사단(社團)조례'에 따라 홍콩 정당 역사상 최초로 홍콩민족당의 활동을 금지했다. 지난 4월에는 킨만(陳健民·60) 홍콩중문대 교수, 베니 타이(戴耀延·54) 홍콩대 교수, 추이우밍(朱耀明·75) 목사 등 우산혁명 지도부 9인이 전원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당시 국제적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홍콩 법원은 권리를 추구하는 평화시위를 불법행위로 규정함으로써 향후 정부가 활동가들을 기소하도록 만들었다"고 강력 비판한 바 있다. 시위가 점점 격화되고 홍콩인들이 16일 대규모의 시위를 열 것이라고 예고하자 홍콩 당국과 캐리 람 행정장관은 한발 물러났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15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홍콩 당국이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법안 2차 심의를 보류하고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 심의는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16일 예정된 시위를 진행했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시민 인권 전선'에 따르면 16일 밤 11시 기준 시위에 참여한 홍콩인은 200만명(경찰 추산 33만8000명)으로, 지난 9일 시위 103만명의 두 배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이날 홍콩인들은 오후 2시30분쯤 빅토리아파크에서 모인 뒤 홍콩의 정부 청사가 있는 애드머럴티 인근으로 시가행진을 벌였다. 홍콩인들이 시민의 무서운 힘을 보여주자,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8시30분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홍콩인들의 반응은 싸늘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홍콩에서 이와 유사한 시위는 언제고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낮은 신뢰도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홍콩인들은 중국 반환 후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또 시위가 일어나지만 번번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스러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다음 편에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이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는 이들의 각 입장을 살펴보고, 왜 자꾸 홍콩과 중국 사이 갈등이 발생할수밖에 없는지 자세히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6.17 06:00


  • 미국판 '아프니까 청춘이다?'… 밥 굶는 美 대학생

  •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②] 과도한 등록금 부담에 배고픔 허덕이는 미 대학생… 36% "음식 제대로 먹지 못한다"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졸업생 여러분들의 학자금 빚을 내가 대신 전부 갚아주겠습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사립대학 모어하우스 컬리지 졸업식에 참석해 연설 중 2019 학년도 졸업생 전원의 학자금 융자액을 몽땅 갚아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졸업하는) 학생 여러분의 (학자금)대출을 없애주기 위해 보조금(grant)을 조성하겠다"며 "우리 모두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졸업생들에게 꿈과 열정을 좇을 자유를 선물한다"고 말했다. 스미스의 이 같은 결단은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등록금과의 사투' 중으로, 평소 스미스는 대학 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많은 학자금 빚에 억눌려 있는 것을 국가적, 사회적 문제로 보아 우려해왔다. 이에 따라 스미스는 축사하기 불과 며칠 전에서 졸업생들의 빚을 모두 갚아주기로 결심했다. 모어하우스 컬리지의 일부 학생(2019년 졸업생)만 따져봐도 빚을 지고 있는 학생은 약 400명이다. 이들이 지고 있는 대출금 총액은 약 4000만달러(약478억원)로 추정된다. 모어 하우스 컬리지의 등록금은 1년에 2만5368달러(약 3000만원)로, 기숙사비 등 다양한 비용을 모두 합치면 1년에 약 4만8000달러(약 5700만원)가 들어간다. 학교 측에 따르면, 학생의 약 90%가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으며, 1인당 평균 3만5000~4만 달러(4100만~4700만원)에 달한다. 이를 모어하우스 전체 학생, 모어하우스가 위치한 조지아주 대학생의 대출금, 미국 전체 대학생의 대출금 등으로 확대할 경우 얼마나 규모가 클지 대충 감이 온다. 억만장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대학 등록금 대출금 문제를 해결해보려해도 불가능할 지경이다. 문제의 기저에는 살인적인 미국 대학 등록금이 있다. SAT와 AP 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 단체 '칼리지보드'에 따르면 2013~2014년 사립 비영리 4년제 대학의 학비, 방세 등 평균 비용은 연간 4만917달러(약 4900만원)였다. 공립 4년제 대학의 학비, 방세 등 평균 비용은 연간 1만8391달러(약 2200만원)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2017년 졸업생을 기준으로 미국 대학생 한 명이 졸업할 때까지 들어간 평균 비용은 12만5000달러(약 1억4000만원) 수준이다. 미국 중간 소득 가구의 연간 소득이 6만 달러(약 7100만원) 수준이므로, 대학생 한명을 키워내는 건 일반 가정이 부담하기에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그래서 미국 공립대학생의 77% 그리고 사립대학생의 86%가 학자금 대출 등을 받는다. 문제는 졸업할 때쯤엔 다들 빚쟁이가 돼있다는 것이다. 졸업하는 대학생의 3분의 2에 달하는 학생들은 2010년 기준 평균 2만4000달러(약2800만원)의 빚을 지고 대학 문을 나선다. 금액이 상당하니 몇년 안에 떨칠 수 있지도 않다. 대학생 재정보조 전문가 마크 칸트로비츠는 2011년 뉴욕타임스에 "졸업하는 대학생의 상당수가 자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학자금 대출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어마어마한 상승률을 타고 미국 대학 등록금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져만 간다. 미네소타에 위치한 비정치적인 교육 기관인 인텔렉츄얼 테이크아웃(Intellectual Takeout)이 발표한 1978년부터 2010년까지의 대학 등록금과 주택가격 및 소비자 물가지수 비교 그래프에 따르면 주택 가격은 1978년과 2006년 사이 4.35배 증가한 반면, 대학 등록금은 주택 가격 보다 10.5배 증가했다. 결국 대학생들은 최대한 적은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대학생들은 슈가대디, 혹은 슈가마미를 만나 성적인 내용이 포함된 서비스를 제공한 뒤 재정적 지원을 받는 슈가베이비가 되기도 한다. (☞원조교제 어때?"… '검은 손'에 빠진 '슈가베이비'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①] 참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양 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 곤궁해지니 먹을 것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위스콘신 대학교의 '희망 랩'(Hope Lab)에서 연구한 결과, 미국 20개주 2년제 및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는 4만3000명의 학생 중 36%가 재정적 빈곤으로 인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나에 위치한 한 대학의 경우, 74%의 학생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끼니 걱정을 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대출을 받거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평범한 대학생들'도 이 같은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스콘신 희망랩 설립자인 사라 골드릭랩은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캠퍼스내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런 오해 때문에 대학생들이 굶고 있는 사실은 오랜 기간 주목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2016년 미국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 캠퍼스에서 1년간 식사하는 비용은 4년제 공립대학교 4400달러(520만원), 4년제 사립대학교 5600달러(660만원)다. 연간 6000달러(700만원)를 웃도는 곳도 적지 않다. 최근 대학생의 과도한 등록금 부담 문제가 조명되면서, 대학생의 '식량 안보' 문제도 함께 주목 받았다. 대학 등록금, 교재비, 월세, 생활비 등에 치여 먹는 데 돈 쓰지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끼니를 제공하는 '푸드뱅크'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대학들이 창고 형식의 장소를 빌려주고, 비영리 단체가 세금 지원이나 기부를 받아 음식을 배포하며,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형식이다. 학생들은 소득에 관계 없이 최대 한달에 3번 푸드뱅크를 방문해, 통조림콩, 참치, 스파게티 소스, 파스타면 등의 음식을 3일 분량 받아갈 수 있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각 지자체도 푸드뱅크 지원에 적극적이다. 2017년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캠퍼스 기아' 퇴치를 위해 푸드뱅크를 지원하는 내용의 750만 달러(89억원) 규모의 법안에 서명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그 어떤 학생도 굶지 않도록'(No Student Goes Hungry)이란 이름의 프로그램 일환으로 지난해 뉴욕주내 모든 대학에 푸드뱅크를 설치했다. 이에 모든 학생들은 신분과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누구나 캠퍼스 내 식료품 배급소에서 무료로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의 '대학생 문제'는 이를 겪고 있는 대학생 수가 엄청나고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빚의 규모가 커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미국은 결국 이를 해결해낼 수 있을까. 슈가베이비, 푸드뱅크는 미국 청춘이 겪고 있는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각 지자체가 문제를 인식하고 발벗고 나선 만큼 앞으로는 보다 나아지길 바라본다. 청춘에겐 아프지 않을 권리가 있다.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6.03 06:20


  • "원조교제 어때?"… '검은 손'에 빠진 '슈가베이비'

  •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①] 美 연간 5000만원 대학생 학비 부담, 슈가베이비 양산… 성매매 비판 나와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미국인 4명중 1명이 학자금 부채에 허덕이며 40대까지 대출금 상환 인생을 삽니다. 반면 슈가베이비 학생들은 월평균 3000달러(약 350만원)를 슈가대디에게 지원받기에 3개월이면 수업료 납부 고통(칼리지보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4년제 공립대 연평균 학비는 2001년 보다 2배 뛴 9510달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슈가베이비 관련 웹사이트의 홍보 문구) 무한 경쟁 사회, 아르바이트는 잘 구해지지 않고 시급도 그리 넉넉지 않다. 패스트푸드점, 레스토랑, 슈퍼마켓 등에서 하루 종일 진이 빠지게 일해봐야 등록금은커녕 월세도 감당하기 힘들다. 이런 때 누군가 자신과 데이트만 해준다면, 월세와 등록금은 물론이고 여윳돈까지 준다고 속삭인다. 미국 대학생들이 '슈가대디'를 만나는 '슈가베이비'가 된 이유다. 슈가대디는 여대생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아버지뻘 되는 남성들을 일컫는다. 미국 최대 슈가대디-베이비 매칭 사이트 시킹어레인지먼트(Seeking Arrangement)에 따르면 미국에 등록한 슈가대디들은 평균 38세이며 연평균 25만달러(약 3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슈가베이비들은 슈가베이비로 활동하며 매달 2800달러(약 335만원)를 벌어들인다. '슈가베이비' 활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함께 라떼를 한잔 마시는 것부터, 공식적인 모임에 동행하는 역할, 같은 침대에서 잠만 자는 것, 성관계를 하는 것까지 역할도 다행하다. 슈가베이비들은 보통 한 슈가대디 당 한 달 1만∼2만 달러(약 1200~2400만원)를 받거나, 슈가대디와 한 번 만날 때 마다 100∼500달러(약 10~50만원)씩을 받는다. 경제적 이유로 인해 미국 곳곳의 여자 대학생들이 '슈가대디'를 소개해주는 인터넷사이트에 가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시킹어레인지먼트' 뿐만 아니라 '마이슈가대디' '슈가데이터스' '슈가데이트' '슈가대디' '슈가대디포미' '뮤츄얼어레인지먼츠' 등의 슈가대디-슈가베이비 중개 사이트가 성업중이다. 이 중 2006년 시작돼 가장 규모가 큰 사이트인 시킹어레인지먼트에 따르면 이곳 회원 중 42%인 140만명은 대학생이다. 슈가베이비 중 36%는 슈가대디로부터 등록금을 받고 있고, 23%는 집세를 지불하기 위해 슈가베이비 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하버드대 같은 명문대생들도 포함돼 있다. 시킹어레인지먼트 대학별 회원 명부에 따르면 각 대학별로 1000명을 넘는 학생들이 슈가베이비로 활동 중이다. 가장 많은 회원 수의 대학교는 뉴욕대로 1676명의 슈가베이비가 등록됐다. 뒤를 이어 조지아주립대(1304명), 센트럴플로리다대(1068명), 컬럼비아대(1008명), 앨라바마대(968명) 등이 순서대로 올랐다. 킴벌리 델라크루즈 시킹어레인지먼트 대변인은 "우리 사이트에 등록한 회원은 135개국 총 2000만명이다"라면서 "특히 재정적 도움을 얻고자하는 대학생들이 슈가베이비로 등록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시킹어레인지먼트 역시 대학생들의 슈가베이비 등록을 장려한다. 그는 "학생들이 .edu 이메일을 사용해 등록할 경우 프리미엄 회원 자격을 준다"면서 "프리미엄 회원은 대시보드에 본인을 노출할 수 있고, 사진이나 승인된 프로필 없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학생들은 슈가베이비 활동을 통해 (인생에서 성공한 이들로부터) 학비 및 생활비 뿐만 아니라, 멘토링까지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생을 끌어모은 건 시킹어레인지먼트의 성공 비결이었다. 대학생은 어리고 젊은 데다가, 신분이 확실해 슈가 대디들도 선호했다. 시킹어레인지먼트는 대학생들에게 '슈가베이비'가 되는 길이 합리적이라고 유혹한다. 시킹어레인지먼트 홈페이지에는 "대학생 슈가베이비는 월 평균 3000달러를 받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파트타임 직종에서 귀중한 학습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대신 시킹어레인지먼트의 후원자들과 연락하세요. 학비를 대출하는 것 만큼 간편하지만, 이 돈을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쓰여있다. 이 같은 슈가베이비 등록은 친구 추천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안젤라 버무도 시킹어레인지먼트 대변인은 "대학 별로 회원 수가 급증하는 건, 친구 추천이나 입소문을 통해서다"라면서 "한 학생이 슈가베이비로 지내면서 얼마나 좋았는지를 친구에게 얘기하면, 그 친구가 슈가베이비로 가입하는 식이다"라고 설명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슈가베이비들은 만족감을 드러낸다. 특히 재정적 측면에서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경영학 MBA를 공부중인 애나씨(33·가명)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나는 낮에는 MBA 학생으로, 밤에는 안마사로 일했다. 그럼에도 슈가베이비 활동이 없었으면 나는 내 월세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음대생 크리스틴 모리스씨(24)는 미국 ABC방송에 "한번에 세 가지 일을 해도 학기당 1만 달러(약 12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을 감당할 수 없어 학업을 중단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 학생들이 슈가베이비에 들어서는 이유는 학비, 월세 등 재정적 이유와 함께 인턴십 등 직업적 기회다. 미국 언론들도 이처럼 대학생들이 슈가베이비가 되는 현상에 대해 과도한 학비 부담을 이유로 지적한다. SAT와 AP 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 단체 '칼리지보드'에 따르면 2013~2014년 사립 비영리 4년제 대학의 학비, 방세 등 평균 비용은 연간 4만917달러(약 4900만원)였다. 공립 4년제 대학의 학비, 방세 등 평균 비용은 연간 1만8391달러(약 2200만원)였다. 학비 부담이 심한 영국, 호주 등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은 2012년 9월 최대 3배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학생들의 학비부담이 심각한 수준으로 높아졌다. 영국의 대학 등록금은 연간 9250파운드(1400만원)다. 런던 킹스턴대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 친구 중 섹스 산업에 관련된 일을 하는 학생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4명 중 1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슈가대디-슈가베이비 중개 사이트인 시킹닷컴에 따르면 영국에만 47만5000여명의 슈가베이비가 있으며, 이들 슈가베이비들은 평균적으로 월 2900파운드(약 44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22일 호주 ABC와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호주에는 17만7000여명의 슈가베이비가 있으며, 호주 슈가베이비들은 평균 월간 2900호주달러(약 240만원)를 벌어들인다. 호주 멜버른 모나시대학교에서 유학중인 뉴질랜드인 사만다씨(26)는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서 연간 6만 호주달러(약 5000만원)를 벌어들였지만, 한달에 1800호주달러(약 150만원)로 월세가 나가고 학기당 8500~1만 호주달러(약 700~820만원)를 등록금으로 내야했다. 그는 이런 경제적 이유가 본인을 슈가베이비가 되게했다고 답했다. 사만다씨는 해외 유학생으로 부담이 더 크긴 했지만, 호주인 대학생들도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슈가베이비에 등록하고 있다. 디킨대, 그리피스대, 맥쿼리대, 모나쉬대 등 호주 명문대학생들의 슈가베이비 등록 증가추세가 매섭다. 하지만 슈가베이비 활동에 대해서는 늘 '성매매'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은 부유한 남성에게 여성성을 판매하는 것이며, 실제 성관계로 나아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가 "슈가대디 웹사이트가 여대생들의 성매매를 정당화한다"는 기사를 냈던 이유다. 시킹어레인지먼트 역시 "슈가베이비-슈가대디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은 오롯이 당사자들에게만 책임이 있으며, 성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고 사이트에 언급해뒀다. '성매매 전문가' 멜리사 페리(Melissa Farley) 임상심리학자는 "슈가베이비-슈가대디는 또 다른 형태의 성매매이자, 전형적인 성매매다"라면서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들은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에 나선다"고 분석했다. 벨기에는 슈가베이비를 아예 성매매로 규정, 광고한 광고주를 처벌했다. 리치밋뷰티풀 투자자 시거드 베달(Sigurd Vedal)은 벨기에 브뤼셀 내 대학 근처에서 슈가베이비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벨기에 법원에서 2만4000유로(약 3200만원)의 개인적 벌금과 6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그의 회사 역시 24만 유로(약 3억 20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슈가베이비들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은 성매매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한다. '슈가베이비' 라일씨(26)는 "나는 매춘부가 아니다"라면서 "나는 오히려 가정에 평안을 주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생활 후 아내가 살이 찌고, 화장을 더 이상 하지 않고, 항상 트레이닝복만 입고 있다면 남편은 이제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슈가베이비가 남편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면, 남편은 그 행복한 감정을 통해 아내와 가정에 더 충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 편에서는 슈가베이비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 이유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살인적인' 미국 대학 등록금이 미국에 어떤 영향들을 줬는지 살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5.27 08:06



  • 한 국가 내 세 <strong>나라</strong>… '조지아'의 눈물


  • [이재은의 그 나라, 조지아 그리고 인기 휴양지 ②] 2008년 러시아 무력 개입으로 남오세티야·압하지야 분리 독립 선언… 국토 20% 잃어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러시아는 과거 소비에트 유니언(소련)으로 전 세계 막강한 영향력을 뽐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끊임 없이 열강을 꿈꾼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한국 보다 훨씬 작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적 규제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은 이 열망의 한 사례로, '작은 투자'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러시아가 북한을 도울 수 있으니 러시아를 중요 역할로 고려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능력있는 한국, 한반도 넘어 세계 봐야" [2019 키플랫폼]딘 벤자민 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인터뷰 참고)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 열망에서 비롯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등 7개 국가 사이에 위치하고 흑해와 인접해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급소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 장악을 위한 치열한 다툼의 무대에서 중심에 서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강한 러시아의 꿈이 물거품이 된다고 보아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방과의 전략적 완충 지대로 남겨 놓고자했다. 이런 맥락에서 푸틴 대통령은 2014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 공화국과 합병 조약을 맺었다. '강한 러시아'로 복귀에의 열망은 사실 이전에도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조지아에서 벌어진 남오세티야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사한 사례인데, 러시아는 조지아가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후에도 조지아에 영향력을 떨치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조지아 영토 내부 분리독립 조짐을 보이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지원했고, 2008년 8월8일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무력 충돌했다. 이 전쟁으로 조지아 영토의 20%에 달하는 지역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으로 실질 독립했고, 러시아가 이 부분을 실효 지배하게 됐다.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당시 조지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점령지에서 군사력을 되레 증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고위대표도 조지아 주권과 영토 유지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러시아군의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주둔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끄덕 없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나라는 러시아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나우루, 시리아 등 5개국뿐이다. 이 같은 조지아-러시아 관계를 통해 조지아의 현재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는 구 소련 시절 러시아어가 사용됐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어 사용이 줄어들다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반러정책이 실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조지아는 러시아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MIT에 따르면 조지아의 주요 수출국가는 △러시아(3억3000만 달러 교역) △불가리아(3억2600만 달러) △아제르바이잔(2억6100만 달러) △터키(2억2900만 달러) △중국(2억9000만 달러) 등이다. 조지아가 물품을 수입하는 국가는 △터키(1억4000만 달러) △러시아(787만 달러) △중국(757만 달러) △아제르바이잔 (5억 7400만 달러) △우크라이나(451억 달러) 등이다. 즉 러시아는 주요 교역 국가로, 조지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지아가 늘 불안감에 떨고 있는 이유다. 실제 조지아는 이미 2006년 러시아의 조지아산 와인 수입 금지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러시아는 조지아산 와인 중 44%에서 살충제가 발견됐다며 2006년 3월말 조지아산 와인 수입을 금했다. 러시아는 조지아 와인 수출의 80~90%를 차지하던 시장이었기에, 조지아에 큰 타격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5월 러시아는 조지아산 생수도 수입을 금했다. 러시아는 "물에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조지아는 "러시아의 그늘을 벗어나 친유럽 국가가 되기 위해 2003년 장미혁명을 거쳤고, 친EU(유럽연합), 친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 러시아가 무역 보복에 나섰다"고 항변했다. 점차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온전한 독립국이 되고자, 조지아는 서구권 국가와 교역을 확대해 경제적 안정을 꾀하고자 한다. 조지아는 최근 세계 17개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고 매섭게 시장을 확대 중이다. 다양한 국가로부터 투자 받고 교역을 늘리기 위해 조지아 정부는 규제도 최대한 느슨하게 맞춰준다. 조지아는 사업 친화지수 전세계 6위, 유럽 2위이고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경제자유지수는 전세계 16위, 유럽에선 8위다. 조지아는 방위권을 확보하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토와 EU 가입에도 매달리고 있다. 미국 역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한다. 나토 역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과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지난해부터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에 병력 4000여명을 새로 배치하는 등 '동진정책'을 사용해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의 나토 가입이 쉽지만은 않다. 일부 유럽국가들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데 반대하면서 조지아의 가입은 늦춰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과거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과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킨 게 결국 러시아의 서쪽 무력 팽창에 명분을 줬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역시 러시아를 저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에 또 다른 팽창의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양한 외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저력을 보이고 있다. 조지아는 구소련 독립 이후 10%대에 가까운 고성장을 경험했고,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경제성장세를 이어갔으며 2017년에는 4%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가 적지만 지리적 특성 덕에 EU, 흑해경제협력기구(BSEC), 중동걸프협력회의(GCC), 독립국가연합(CIS)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잠재력도 매우 높게 점쳐진다. 물론 조지아 외부와 내부에서도 회의적 목소리가 나오긴 한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집단 지성 사이트 쿼라(Quora)에 "조지아가 가진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란 글이 게시됐다. 본인을 조지아인이라고 밝힌 답변자는 "조지아 사회는 현재 극도로 분화돼있다. 조지아 정부는 (EU 가입을 추구하는 등) 서구 사회의 일부가 되려고 노력 중이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와 견해들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인구의 약 90%가 믿는) 기독교 정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큰 조지아에서는, 성직자들이 공공연히 서구 가치에 대한 무지와 증오심을 퍼뜨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조장하고, 국가의 포부에 반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게 조지아에 외국인 혐오증이나 동성애 공포증, 여성 차별 사상 등이 퍼져있는 이유다"라면서 "매우 가부장적인 국가 조지아에서는 강간이나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여성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수도 트빌리시에 모든 게 집중돼있는 점이나, 빈부격차가 심한 점 등도 문제"라고 짚었다. 답변자가 지적한 한계에 더해 높은 빈곤율도 조지아의 한계로 여겨진다. 2014년 세계은행에 따르면 빈곤율은 4년 연속 감소했지만, 여전히 조지아 인구의 3분의 1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조지아의 빈곤층 인구는 32%로, 그중 28%는 어린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세계 빈곤율은 10%로, 조지아는 세계 평균 보다 훨씬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조지아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구 소련 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강대국을 향한 강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꽤나 번영하고 있다. 조지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①]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5.20 06:05



  • '저렴한 스위스', 조지아가 뜬다



  • [이재은의 그 나라, 조지아 그리고 인기 휴양지 ①] 저렴한 물가에 아름다운 풍광… 한국인, 무비자 장기체류 가능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럽 여행객들 사이에서 물가 싼 스위스로 불리며 유명해진 곳'이란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글에서 "유럽 사람들 사이에선 오래 전부터 유명했는데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졌다"면서 "이번에 여행가려고 찾아보니 근래 들어 국내 여행 다큐에도 많이 나왔고 한국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은 바로 '조지아'"라면서 "미국에 있는 조지아가 아니라, 유럽·아시아 대륙 사이에 걸쳐져 자리한 국가인데, 구 소련 국가였기에 러시아식 발음인 '그루지야'로 더 많이 불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위스에 알프스 산맥이 있다면 조지아에는 코카서스 산맥이 있어서 좋은 풍광을 만날 수 있다"면서 "전통 음식이 맛있고 와인의 발상지"라고 말했다. 때마침 나 역시 조지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있어 해당 글에 눈길이 갔다. 얼마 전 마무카 쎄레텔리 조지아미국비즈니스협회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 조지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고, 또 그에게 조지아의 다양한 매력을 자세히 들었기 때문이다.(☞신시장 찾고 있다면… "조지아로 오세요" [2019 키플랫폼]마무카 쎄레텔리 조지아미국비즈니스협회장 인터뷰 참고) 마무카 협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작성자의 글은 사실 그대로를 담았다. 조지아는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인구 약 400만명의 작은 나라로, 유럽, 아시아, 중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 아르메니아, 터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 코카서스 산맥 근처에 위치한 만큼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여기에 물가가 저렴하고 구 소련 시절 의학 중심지로 알려져있어 의료관광 목적으로 조지아를 찾는 이들이 많다.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아르메니아 등 인근 국가 사람들이 의료 관광을 위해 조지아를 찾는다. '조지아 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에만 1만3900명의 외국인이 의료 치료 및 회복 목적으로 조지아를 방문했다. 이는 2017년 같은 기간 보다 61.2% 증가한 수치다. 자연 환경이 좋으니 기후와 토지가 좋아 각종 차, 복숭아, 땅콩, 양파, 면화, 호밀, 멜론, 블루베리, 헤이즐넛, 피칸 등 상업작물도 잘 자란다. 좋은 재료를 가진 만큼 음식 역시 유명하다. 아시아 국가 중엔 태국 요리나 베트남 요리가 유명하듯 조지아 음식 역시 세계적 명성을 가졌다. 특히 러시아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은 대부분이 조지아 전통요리 음식점이다. 예컨대 한국인들이 요즘 자주 찾는 러시아 도시,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최고 평점 음식점은 조지아 음식점인 '수프라'(Supra)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와인 역시 조지아 것이 고급 종류로 여겨진다. 와인 자체가 조지아에서 태동한 음료로, 조지아가 와인의 최초 발생지라는 점은 흑해 연안에서 약 8000년 전의 포도씨가 발견되면서 입증됐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일반 와인과 달리, 조지아 와인은 땅에 항아리를 묻어 숙성한다.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무쿠자니(Mukuzani), 밀디아니(Mildiani), 치난달리(Tsinandali), 흐반치카라(Khvanchkara) 등이 대표 브랜드다. 더 좋은 점은 저렴한 가격이다. 좋은 와인도 만원 내외로 구매 가능하다. 조지아의 물가가 싼 덕분에 이 같은 가격이 나올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바구니 물가가 저렴한데 소비자는 △오이 800g 0.39라리(170원) △토마토 700g 1.16라리 (500원) △사과 800g 1.27라리(550원) 등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그렇다고 조지아를 '저발전국'이라며 무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조지아는 잠재력 있는 국가로서, 초고속 발전 중인 나라다. 조지아는 구 소련 독립 이후 10%대에 가까운 고성장을 경험했고,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경제성장세를 이어갔으며 2017년에는 4%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일대 지역 시장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한국보다 더 발전한 측면도 갖고 있다. 조지아는 디지털경제의 핵심 기술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자본주의인 토큰 이코노미 시대를 열 블록체인 기술에 선도적인 국가다. 이미 10년 전부터 블록체인 기반 공공 서비스를 도입했다. 예컨대 한국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는 건 몇 번의 과정을 거치는 등 골치아픈 일이지만, 조지아에서는 모든 일이 한 번에 해결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에도 블록체인을 적용해 불과 30분만에 모든 거래 절차를 마칠 만큼 디지털 경제 확산 속도가 빠르다. 안정적인 치안에 따라 높은 수준의 삶의 질도 보장된다. 2017년 해외 온라인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전세계 125개국 중 조지아는 범죄지수 20.83, 안전지수 79.17로 안전한 나라 7위다. 나는 조지아를 알게된 순간부터, 언젠가 은퇴한다면 이후 조지아로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은 비자 없이 1년을 통째로 조지아에서 체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아름다운 인기 휴양지 조지아가 가진 내부적 문제를 짚어본다. 구 소련 독립국으로서 아직까지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인 점, 불안정한 정치 상황, 높은 빈곤율 등 다양한 방면에서 조지아를 바라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조지아 그리고 인기 휴양지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5.13 06:30

  • 일본 '국민병', 이젠 한국 '국민병' 될까?
    일본 '국민병', 이젠 한국 '국민병' 될까?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②] 일본, 국가적·민간적 노력 통해 당뇨 인구 감소… 한국, 당뇨 환자 지난해 처음으로 300만명 돌파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일본 열도가 변화에 힘쓰고 있다. '국민병'으로 불릴 만큼 열도 전체가 당뇨병(일본인 당뇨병 환자의 약 95%는 2형 당뇨병)으로 신음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에 나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당뇨병 극복을 위해 각종 상품을 내놓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는 당뇨병이 일본의 국민병으로 발전한 데 따른 것이다.(☞옆 나라 일본의 '국민병'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①] 참고) 일본 후생노동성이 전국 2만4187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인구는 전체의 12.1%인 1000만여명으로, 1997년 690만명 이후 꾸준히 증가 중이다. 여기에 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거나 이미 당뇨병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 '예비군' 역시 1000만명으로, 당뇨병을 앓는 것으로 보이는 인구가 총 2000만명으로 거듭났다. 당뇨 인구가 계속 느는 데다가, 당뇨 환자로 인한 국가 전체의 의료비가 증가하자 당국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각 현은 당뇨병이 비만과 과식, 운동 부족 등이 주요 원인으로 평소의 생활 습관에 기인하고, 또 사전에 당뇨병을 진단해야 당뇨병으로 발전하기 전 손을 쓸 수 있다며 '국민병 탈출'을 목표로 사업을 시행중이다. 특히 후생노동성은 당뇨병이 자각증상 없이 중증화된다는 데 큰 우려를 나타내며 중증화 예방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중증화란 혈당이 높은 상태가 오래 지속돼 눈, 신장 등 모세혈관이 손상되면서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을 이른다. 2016년엔 후생노동성과 일본의사회, 당뇨병대책추진회의가 국가 차원의 대책인 '당뇨병 중증화 예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에는 △의료기관 미검진자 및 진료 중단자에 대한 진찰 권장, 보건 지도 △통원 환자 중에서 중증화 위험이 높은 환자를 의사가 판단, 개별 보건지도 등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후생노동성은 △각 현의 의사회와 협력해 중증화 예방 프로그램의 진행 상황과 환자 상황 등을 공유하고, △중증화 예방대책이나 관련 건강진단진찰율이 늘어날 경우엔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각 현도 당뇨병 환자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모범적인 예시는 히로시마현 쿠레시다. 쿠레시는 당뇨병 중증화의 위험을 가장 선도적으로 인식, 2008년부터 의료비 청구서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당뇨병 중증환자 중 투석 직전 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통원하는 의료기관과 협력해 개별 보건지도를 제공한다. 개별 보건지도에는 간호사가 직접 연락해 생활 습관 등을 점검하거나, 단백질 위주의 저염식 메뉴 요리 수업을 제공하고, 관련 문서 자료를 배포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우동현' 별명의 카가와현도 '당뇨병 유병률 3위의 현'이란 오명을 씻기 위해 노력 중이다. 카가와현은 매년 초등학교 4학년생 전원을 대상으로 '혈액 검사'와 '소아 생활 습관병 예방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어린 나이부터 생활 습관병의 실태를 파악하고, 향후 개선 방안 및 예방 조치를 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외에도 나가노현 마츠모토시, 사이타마현, 도쿄도 아다치구 등도 시내 건강보험과 지역의사회, 약사회, 영양사 등이 연초 마다 모여 '환자 증감 검토회'를 연다. 이들은 다 직종간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당뇨 환자 수와 환자의 상황을 감시하면서 당뇨병 환자 관리에 힘을 기울인다. 국가나 지방단체가 당뇨병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리고, 적극적으로 예방·해결 대책에 나선 배경에는 국민이 있었다. 일본 국민은 국가가 행동에 나서기 전 한발짝 먼저 당뇨병 위험성을 인지하고 당질제한식 등으로 식이습관과 생활습관 변화에 나섰다. 2005년 일본 당질제한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베 코우지 의사가 최초로 당질제한식이를 다룬 서적 '주식을 빼면 당뇨병은 좋아진다:당질 제한 다이어트'를 출간했고, 이후에도 관련 서적이 연달아 출간됐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당질(糖質) 제한 다이어트' '당뇨병 피하는 조리법' 등은 모두 일본에서 먼저 나와 인기를 끈 서적이다. 당질제한식이란 당질을 적게 섭취하고, 지방과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해 혈당을 낮추는 식단이다. '당질'이란 탄수화물에서 식이섬유를 제외한 전분과 단맛이 나는 성분(당류)으로 주로 밀가루, 빵, 떡 등의 가공 식품과 곡물류를 뜻하는데 이런 당질을 줄인다면 당뇨의 위험성도 함께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질제한식을 하는 이들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체질을 지방분해가 잘 되는 체질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당질제한식을 장려하는 일본 사단법인 '로카보'에 따르면 일본인은 하루 평균 300g정도의 당질을 섭취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이를 줄여야한다. 로카보협회는 한끼에 당 질량을 20~40g으로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일본인은 한끼 식사에서 주먹밥 2개와 야채주스 1잔을 마시는데, 이 경우 100g 정도의 당질이 한번에 섭취된다. 당질이 과다한 상태다. 꾸준히 '국민병' 당뇨병을 앓는 이들이 늘고 관련 인식이 높아지면서, 일본에서는 당질제한식이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브랜드에서도 당질제한식을 발매했다. 카레 전문점 코코이치방야는 지난해 12월 당질 제한 카레라이스를 발매했다. 기존 카레라이스 보다 당질이 절반에 불과한 메뉴다. 나가사키짬뽕체인점 링거하트(リンガーハット)는 당질이 30% 적은 컵라면을 발매했다. 패밀리레스토랑 로얄호스트는 저당질 빵을 제공하고 있으며, 가스토(ガスト)와 죠나단(ジョナサン)도 당질 제한 메뉴를 도입했다. 햄버거 체인점 프레쉬니스 버거(フレッシュネスバーガー) 역시 당질 제한 번(빵)을 개발, 모든 햄버거를 당질제한 버거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편의점 업계도 저당질 식단 도입에 열성적이다. 2013년 세븐일레븐이 '샐러드 치킨' 메뉴를 선보여 웰빙족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 패밀리마트도 피트니스 회사 RIZAP(라이잡)과 콜라보해 '패마에서 라이잡'이라는 슬로건으로 여러 저당질 식품을 출시했다. 망고 푸딩, 샐러드 치킨바, 초코칩 스콘, 초코칩 케이크 등 제품군도 다양하다. 제일 돋보이는 건 일본 편의점 브랜드 로손이다. 로손은 '탄수화물 제한'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며 로카보 협회와 콜라보했다. 로카보 마크가 달려있으면 당질제한식에 부합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저당질 빵, 간편식 뿐만 아니라 일반 도시락, 국수 요리 메뉴에도 당질 제한식을 도입, 전국 로손 점포에 출시했다. 이처럼 일본의 당뇨병에 대한 관심은 국가적이고, 전국민적이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다행히 당뇨 관련 인구는 그래도 감소 추세에 들어섰다. 당뇨병 환자수 자체는 1997년 690만명에서 2016년 1000만여명으로 꾸준히 증가중이지만, 당뇨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거나 이미 당뇨병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 '예비군'은 2007년 1320만명을 정점으로 2012년 1100만명, 2016년 1000만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일본이 이렇게 당뇨병 측면에서 앞서가는 사이, 한국은 어떠할까? 한국은 상대적으로 당뇨병 문제를 큰 문제로 보지 않고 있는 듯 하다. 탄수화물 중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기사 '떡볶이+핫도그 토핑' 죽이는 맛, 몸은 죽을 맛 참고) 그 사이 한국의 당뇨 인구는 늘어만 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당뇨병 환자는 302만8128명이었다. 처음으로 당뇨병 환자가 3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일본이 1990년대부터 당뇨병 문제를 인식하고 2000년대부터 국가적 차원의 변화에 나섰듯, 우리도 변화를 꾀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당뇨병은 우리 '국민병'으로 거듭날지도 모르겠다.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5.06 06:00

  • 옆 <strong>나라</strong> 일본의 '국민병'
    나라 일본의 '국민병'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①] 일본 당뇨 인구 2000만명 시대… 탄수화물 섭취량 높은 식단이 문제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일본이 병에 걸렸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생활 습관과 사회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생활습관을 바꾸라"고 호소했다. "과체중자와 비만 인구는 체중을 줄여야하고 다른 국민 역시 신체 활동을 늘려야한다"는 것이다. 연일 신문에서도 '국민병'이라며 늘어난 환자수를 우려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일본 후생노동성이 전국 2만4187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이 병을 앓고 있는 인구는 전체의 12.1%인 1000만여명으로, 1997년 690만명 이후 꾸준히 증가 중이다. 여기에 이 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거나 이미 병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는 '예비군' 역시 1000만명으로, 이 병을 앓는 것으로 보이는 인구가 총 2000만명으로 거듭났다. 이 병은 당뇨병(일본인 당뇨병 환자의 약 95%는 2형 당뇨병)이다. 이중 10%만 유전에 따른 것이고 90%는 식습관 및 운동부족에 따른 것인 만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짚어보고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당뇨병에 취약한 아시아인 인종적 특성… 일본인 당뇨병 낳았다 탄수화물은 단백질·지방과 함께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3대 영양소로, 일반적으로 섭취하는 에너지의 50~60%를 탄수화물에서 얻는 것이 이상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하루 섭취 영양분 중 50~70%를 탄수화물에서 섭취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는 인슐린 과다분비로 생리현상에 불균형을 낳는다. 인슐린은 혈중 포도당을 세포 속에 흡수시켜 에너지원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지만 과도하게 분비될 경우 사용 후 남은 포도당을 체지방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결국 탄수화물 중독은 비만·당뇨·고혈압·뇌졸중·심장병 등 대사증후군성 질환으로 연결된다. 일본인의 경우 기본적으로 흰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데다가 빵이나 면류 등 밀가루 음식을 간식으로 즐긴다. 여기에 음료수나 쿠키, 사탕, 빙과류 등 설탕이 들어있는 다른 탄수화물 공급원을 추가로 섭취해 탄수화물을 과다섭취하기 쉽다. 특히 설탕은 탄수화물 이외 영양소가 거의 포함돼있지 않아, 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 설탕 섭취를 에너지의 5% 미만(약 24g)으로 줄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의 설탕 섭취는 과다한 상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일본인이 하루에 섭취하는 설탕의 양은 하루 69g으로,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성인 하루 필요 에너지 섭취량(2200kcal)의 17.25 %에 해당한다. 이 같은 일본인의 식습관은 아시아인의 인종적 특성과 합쳐져 당뇨병을 국민병으로 발전시켰다. 2012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채닝 연구소와 브리검 여성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미 섭취량이 많지 않은 호주인과 미국인보다 섭취량이 많은 중국인과 일본인에게서 제2형 당뇨 발병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아시아인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백미를 섭취하기 때문에 다른 탄수화물 공급원을 추가로 섭취한다면 서양인들보다 제2형 당뇨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인은 인종적으로도 당뇨병에 취약하다. 아시아인은 근육이 적고 복부지방이 많아 인슐린 저항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대한 몸의 반응이 감소해 근육 및 지방세포가 포도당을 잘 저장하지 못하게돼 고혈당이 유지되고, 이를 극복하고자 더욱 많은 인슐린이 분비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에 따라 아시아인은 BMI지수가 낮더라도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2013년 국제당뇨병연맹(IDF)에 따르면 전세계 약 3억8200만명의 당뇨병 환자 중 60% 이상이 아시아에 거주한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등 아시안의 당뇨병 유병률과 백인간의 유병률은 약 2배가 차이난다.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남아시아 여성은 당뇨병 빈도가 27.5%, 남아시아 남성은 26.7%, 백인 여성은 2.9%, 백인 남성은 5.9%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탄수화물에 빠진 일본 일본인의 탄수화물 사랑은 익히 알려져있다. 일본인은 흰 쌀밥에 우메보시(梅干し·매실장아찌)나 명란젓 등 짠 반찬을 즐겨 먹는다. 반찬을 짜게 먹을 경우 흰쌀밥을 더 많이 먹게되고, 혈압도 높아져 당뇨병이 발생하기 쉽다. 별도의 반찬 없이 흰 밥에 후리카케(ふりかけ·어분(魚粉)·김·깨·소금 등을 섞어 만든 가루 모양의 식품)를 뿌려 먹거나, 오챠즈케(お茶漬け·쌀밥에 녹차와 가쓰오부시 다시를 부어 먹는 음식)을 즐겨 먹기도 한다. 우동, 소바, 라멘 등 탄수화물 지수(GI지수)가 높은 면 요리도 일본인이 사랑하는 음식이며 감자가 들어있는 고로케빵이나, 야끼소바빵(빵에 야끼소바가 들어있는 것)처럼 탄수화물이 거듭 들어있는 식품도 인기다. 이 같은 탄수화물 사랑이 당뇨병 유병률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일본 내 중론이다. 예컨대 '달콤한 간장'이 특산품으로, 음식이 달콤한 것으로 유명한 가고시마현은 당뇨병 유병률 5위다. 타카미네 카즈노리 가고시마대 농학부 교수는 "가고시마현민은 '달콤함'을 맛있다고 생각하고, 이게 음식문화로 뿌리내려있다"면서도 이 같은 음식 문화가 당뇨병 발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일본 내 밀가루 소비량 최대인 지역으로, '우동현'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가와현 역시 당뇨병 유병률 3위의 현이다. 카가와현에만 우동집이 600개가 있을 정도로 우동 소비율이 높은데, 이 같은 '우동'과 여타의 탄수화물 소비가 당뇨병의 이유로 지목됐다. 2016년 일본 뉴스24는 "'우동현' 카가와현의 당뇨병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우동 과식"이라면서 "카가와현민은 우동과 함께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을 섭취한다"고 보도했다. 즉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 문제가 카가와현의 당뇨병을 낳았다는 것이다. 쿠리야마 당뇨병 전문의는 이에 대해 "국수나 밥, 빵 등 이중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할 경우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짜게 먹는 식습관과 적은 운동량도 당뇨병에 영향을 끼쳤다. 히로사키 대학 의학과 시게유기 교수는 아오모리현이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 1위인 데 대해 아오모리현 특유의 '짠 식습관'과 '적은 운동량'이 문제라고 밝혔다. 아오모리현은 주로 자동차로 이동하는 문화이고 연중 눈이 쌓여있어 운동이 적은 것도 당뇨병 유병률에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일본 정부, '국민병' 고치려 팔 걷어부쳤다 당뇨 인구가 계속 느는 데다가, 당뇨 환자로 인한 국가 전체의 의료비가 증가하자 당국도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일본투석학회에 따르면, 1983년 5만 3017명이던 투석환자는 2016년 32만9609명까지 증가했다. 이중 약 40%가 당뇨병성 환자다. 인공 투석 관련 의료비는 1인당 한달에 약 40만엔(400만원)으로, 연간 1조 6000억엔에 달해 일본 총 의료비의 약 4%를 차지한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각 현은 당뇨병이 비만과 과식, 운동 부족 등이 주요 원인으로 평소의 생활 습관에 기인하고, 또 사전에 당뇨병을 진단해야 당뇨병으로 발전하기 전 손을 쓸 수 있다며 '국민병 탈출'을 목표로 사업을 시행중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통해 국민병 극복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일본은 국가적, 민간적 차원 모두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 역시 일본과 그리 다른 상황이 아닌 데도 강 건너 불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일본의 국민병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살펴보고 우리가 배울 것이 없을지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4.29 06:30


  • "사랑해, 자기야"… 오명 쓴 '사기의 <strong>나라</strong>'


  •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③] '나이지리아 사기' 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사기 만연… 무역 사기부터 로맨스 스캠까지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자기야, 이제 한국에서 같이 살고 싶어. 미군 파병 중 받은 포상금 보낼 테니 운송료 보내줘." "호텔에 미리 전화해 내 카드로 숙박비와 체류비를 함께 결제해둘 테니 따로 체류비를 계좌로 보내줘."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나이지리아인 A씨(40) 등 7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1년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접근, 약 14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기 수법은 '로맨스 스캠'이라 불린다. 로맨스 스캠은 로맨스(Romance)와 신종 사기(Scam)이 합쳐진 용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신분 등을 속여 신뢰를 쌓은 뒤 연애·결혼 등을 빙자해 각종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로맨스 스캠은 어디에 속하고 싶은 심리, 외로운 심리 등을 이용해 중·장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며, 스캠네트워크라는 국제 범죄조직에 뿌리를 두고 이뤄진다. 스캠네트워크는 나이지리아를 비롯 서아프리카 지역에 본부를 두고 한국·중국·홍콩 등에서 활동한다. 나이지리아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국내에도 영어 사용 가능 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의 주 타겟이 됐다. 로맨스 스캠이 최신형이긴 하지만, 이 같은 사기 형태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전세계는 '나이지리아발(發) 사기'에 익숙해져있다. 나이지리아 사기 혹은 나이지리아 편지, 나이지리아 419 등의 용어가 세계 각국 사전에 등록돼있을 정도다. '나이지리아 사기'(나이지리아 선급금 사기, Advanced Fee Fraud·AFF)는 1990년대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확산된 사기 수법으로, 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영문으로 된 편지·팩스·이메일 등을 통해 사기성 메시지를 송달한 뒤 돈을 받아내는 방식이다. 주로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돈 많은 정치인·부호의 유산상속자인데, 정부의 눈을 피해 비자금을 옮겨야한다. 하지만 감시가 삼엄해 우리가 직접 손을 쓰면 덜미를 잡힐 것이다. 만일 이 메일을 읽는 당신이 우릴 도와서 비자금을 옮기는 비용을 대신 내준다면, 우리가 받을 유산 중 일부를 수수료로 제공하겠다" 등이다. 무역 사기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중앙은행(CBN)이나 석유개발공사(NNPC) 임원을 사칭하고 지하자금이나 불법자금을 관리, 세탁해 줄 경우 상당한 수수료를 지급한다고 기업인들을 유인한 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탈취해 가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무역 사기의 방법으로 일종의 '가짜 주문'도 자주 이뤄졌다. 높은 구매단가를 제시하면서 처음엔 사전송금 등 좋은 조건의 결제방식을 제시했다가 중간에 부득이한 사정이 발생했다고 하면서 물품 선적 후 선하증권(Bill of Lading)을 보내주면 전신환(Telegraphic Transfer)으로 대금을 결제하겠다며 결제방식을 바꾼 뒤 결국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물건만 떼어먹는 수법이다. 또 신용장 사기(신용장 위조) 수법이나 물품의 대량 샘플 요구 후 실제 거래는 하지 않고 샘플만 다른 시장에 팔아먹는 수법 등도 자주 사용됐다. 이같은 나이지리아발 사기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국 대사관과 관계기관은 419에 대한 경보를 발동시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미국 FBI(미국 연방수사국) 홈페이지에도 '나이지리아 편지' '나이지리아 419'라는 용어와 함께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419라는 건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를 가리킨다. 나이지리아 형법 419조는 나이지리아 사기를 언급한 형법 조항으로, 1995년 4월 대통령 칙령 13호 발효로 개정 및 확장된 '선급금사기죄(AFF) 및 기타 사기성범죄에 대한 칙령'이다. 미국이 1992년 나이지리아 사기를 이처럼 명명하면서 이후 '419 사기' '나이지리아 419' 등으로 불렸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IMF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1997년 말, 절박한 심정을 자극한 사기 피해가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린 기업이 큰 물량의 수입 오더에 희망을 걸면서다. 당시만해도 '나이지리아 419'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도 했다. 1998년 KOTRA 라고스(Lagos) 무역관장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무역관에는 한국인들로부터 매달 2~3회 정도 사기여부 확인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대기업이었던 아시아자동차, S물산 등도 국제무역사기 희생양이 됐다고 한다. 업계에선 "한국은 국제무역사기의 봉"이라는 자책도 나왔다. 이후 범죄의 주체는 가나, 카메룬, 베냉 등 경제적으로 낙후된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확대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로맨스 스캠'으로 발전했다. 그렇다면 나이지리아는 어쩌다 '사기의 나라'가 됐을까. 아페 아도가메(Afe Adogame) 영국 에딘버러 대학 교수는 "1970년대 후반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경제·사회·정치적 격동과 불안정이 나이지리아에서 사기성 책략을 출현하게 했고 이를 강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즉 1973년 1차 오일쇼크에 이어 1978~1981년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나이지리아 사회가 불안정해졌고 사기 행각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인해 원유값이 치솟으면서 이전까지 페르시아만 연안의 석유에 주로 의존하던 나라들은 나이지리아 등으로 원유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이때부터 나이지리아에 막대한 오일 달러가 대량 유입됐다. 특히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대량 유입되는 달러로 인해 타국으로부터 나이지리아로의 물품수입이 급증했다. 자연히 나이지리아 당국이 수입절차상 필요사항을 허가하는 일도 많아졌다. 문제는 당시 나이지리아가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이후 군사정권이 지속되면서 사회체계가 부패하고 불합리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권한남용이 발생했는데, 담당 공무원은 허가권을 남용해 상시적으로 뇌물을 수수했다. 일각에선 이 뇌물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기 행각이 시작됐다고 본다. 1980년대 초 석유 가격의 변화도 나이지리아에 사기 행각이 만연케하는 데 기여했다. 1980년대 초 유가가 하락하자 나이지리아 경제 역시 휘청였다. 다수의 대학생들이 취업에 실패했고, 이들이 당시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던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한 게 시초다. 내전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떨어진 신뢰의 가치 역시 사기가 만연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나이지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내전은 1967년~1970년 사이에 일어난 '비아프라 전쟁'이다. 1966년 하우사족 출신의 야쿠부 고원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자, 여기에 반발한 이보족이 동부 지역을 '비아프라 공화국' 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 선언하며 벌어진 전쟁이다. 소련과 영국의 지원을 받은 나이지리아 연방 정부군이 비아프라를 함락하면서, 1970년 비아프라는 무너졌지만 이 같은 내전 하 주민들은 살인, 절도, 강간과 같은 범죄에 노출돼 안보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했다.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배기현은 "내전에 따른 공포로 신뢰와 협력의 가치는 실종되고, 심각한 사회 자본의 변형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언제라도 내전이 재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성을 황폐하게 만들면서, 정직 보다는 염탐과 사기를, 공정한 교류 보다는 약탈과 폭력이 단기적으로 쉽고 유리하게 평가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는 명실상부 서아프리카 '지역 강국'으로서, 2050년엔 세계 경제순위 14위 경제강국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그렇다면 2020년을 목전에 앞둔 현재, 나이지리아는 '사기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 던졌을까? 안타깝게도 나이지리아를 향한 의심쩍은 시선은 그대로다. 극성인 로맨스 스캠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역 사기 역시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2016년 당시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OTRA의 '최근 3년간 우리 기업의 무역사기 현황'을 토대로 "나이지리아에서 100건의 무역사기가 발생했다"며 "이 국가와 무역할 때 각별하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오명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KOTRA 관계자는 "대다수의 나이지리아 바이어들은 일부 몰지각한 나이지리아 악덕업체들의 무역사기 사건으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나이지리아가 나쁜 평판을 얻게 돼 자신들의 비즈니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초래되고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된데 대해 매우 분개하며 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이지리아의 무역사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식적인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에는 KOTRA 라고스 무역관의 '해외시장 조사대행-단순 해외현장 확인정보' 서비스를 통해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나이지리아는 '사기의 나라'라는 오명을 벗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까. 나이지리아가 매년 8~9% GDP 성장률을 보이며 저력을 보이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겠다. 물론 그러려면 나이지리아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 조직을 소탕하고, 석유로 얻은 이익이 고르게 배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참고문헌 국내외 투자사기의 유형과 대책에 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황지태·박정선·양승돈 나이지리아 무역사기 사례모음, KOTRA 라고스 한국무역관 개발도상국의 유형별 신뢰 수준이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 성균관대, 정혜린 나이지리아인의 인터넷 사기의 유형, 주 나이지리아 대사관 분쟁 후 사회건설: 여성화된 빈곤과 공포의 극복과 개발협력 과제, 제1회 국제개발협력 논문공모 수상 논문집, 배기현 ☞[이재은의 그 나라, 일본 그리고 국민병 ①]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4.22 06:00


  • 잘 살고 못 살고, 갈림길에 선 <strong>나라</strong>

  •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②] '네덜란드병' 나이지리아, 소수민족 편 아닌 다국적 석유회사 편에 서면서 민족간 갈등 겪어… "산업 다변화해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1959년 네덜란드 흐로닝언 주 앞 북해에서 다량의 가스전이 발견됐다. 유럽연합(EU) 전체에 매장된 천연가스 매장량의 25%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네덜란드는 환호했다. 천연가스가 샘솟아 자원부국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후 네덜란드는 천연가스 수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상과 달리 경제성장률은 자꾸만 꼬꾸라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천연가스를 제외한 다른 네덜란드 산업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천연가스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급격히 늘어난 외화의 유입으로 굴덴화(네덜란드 화폐)의 가치가 크게 올랐고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니 노조는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기업은 조금밖에 올려줄 수 없다며 맞섰고, 사회불안이 커졌다. 기업이 투자를 머뭇거리게 되며 제조업 등 산업의 파국이 시작됐다. 동시에 비싼 물가로 소비자의 수입수요가 증가하면서, 내수 산업의 몰락 추세가 더욱 거세졌다. 이후 1977년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네덜란드병'이라는 용어가 실리면서 한 나라가 자원개발에 의존해 급성장할 경우,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찍는 현상을 '네덜란드병'이라고 지칭하게 됐다. 이처럼 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자원이 부족한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현상을 '자원의 저주'라고 부른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남미 전문 칼럼니스트 로시오 카라 라브라도르는 베네수엘라가 경제적 파국을 맞은 이유도 '네덜란드병'이라고 분석했다. 수출의 96%를 오일머니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는 2014년 유가폭락으로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IMF에 따르면 2016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475%였고, 2021년엔 450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1만238달러였던 1인당 GDP는 지난해 3168달러로 추락했다. 2020년엔 2000여달러로 예상된다. 이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한달치 월급을 모아도 빵 하나 사기가 어렵다. 지난해 2월21일 베네수엘라 3개 주요 대학의 연구 결과 베네수엘라 국민 75%는 2017년 한 해 동안 체중이 평균 11㎏ 줄었다. 응답자의 60%는 "지난 3개월 동안 식량을 사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지 못해 배가 고팠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정부 세금의 70%를 외국 석유 회사가 내고 있고, 수출의 90% 이상이 석유인 나이지리아는 어떨까. 1960년대 독립 당시 많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으로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큰 기대를 받았었다. 인구가 많으니 중산층 수도 많아 4000만명에 이르는 중산층이 탄탄한 내수시장 구축에 도움을 줬다. IMF에 따르면 2008년 나이지리아는 9%, 2011년엔 8% 성장하는 등 매년 8~9%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나라로 자리잡았다.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참고) 하지만 나이지리아 역시 네덜란드병을 앓고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나이지리아에게 '지역 강국'은 꿈일 뿐인 이야기라고 추측한다. 현재 갖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잠재력 있는 국가'로만 남을 것이라고 본다. 이 지적이 틀린 것만 같지는 않다. 나이지리아는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 빈민층 인구수가 1억명을 넘는다. 분명 석유가 터지는 나라인데 말이다. 김예슬은 '나이지리아 국가실패의 배경에 대한 연구'에서 △다국적 기업 △나이지리아 사회 내부의 다종족·다종교 문제 △나이지리아에 만연한 부정부패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즉 '국가실패'로까지 보이는 나이지리아가 이 같은 이슈에 잘 대처하지 못했고, 결국 자원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나이지리아는 '미완의 잠재력'으로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인구의 절반은 기독교를, 나머지 절반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종교 갈등이 첨예하다. 언어별로 분류할 경우 무려 250개의 민족이 살고 있어 민족간 이해관계도 첨예하다. 특히 라고스를 제외한 북부·동부·서부·중서부의 옛 4개주에는 주요 4개 부족이 살고 있는데, 석유는 이곳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니제르 델타 지방에 90% 이상 집중매장돼있었다. 민족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자원으로부터의 이권을 분배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 같은 조정 역할에 실패했고, 이는 나이지리아에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주요 원인이 됐다. 김예슬은 "니제르 델타 지방에 집중 매장된 원유 생산은 이 이익을 얻기 위한 다종족들간 민족 분쟁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켰다"면서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를 중재하기 보다는 다국적 기업과 연대,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다수의 소수민족을 자원의 혜택으로부터 소외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 인해 내전이라는 국가 운영 실패의 전형적인 결과가 나타났고 국가의 경제 발전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됐다"고 덧붙였다. 나이지리아가 어떻게 소수민족의 편이 아닌, 다국적 석유회사의 편에 섰는지는 니제르델타 지역의 오고니랜드에 거주했던 인구 50만명의 소수민족, 오고니족 이야기에 잘 나타난다. 1950~1960년대까지만해도 나이지리아는 세계 최대 코코아 수출국으로서 여타의 농업 작물도 많이 경작했다. 하지만 1956년 석유가 발견된 뒤, 급격히 석유위주로 국가 산업이 재편됐다. 오고니족이 살고 있던 오고니랜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니제르델타 남동쪽에 위치한 오고니랜드에서는 오고니족이 대대로 코코아, 고무, 면, 땅콩 등을 재배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1957년 오고니랜드에서 상업성 높은 석유가 발견되면서, 쉘(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과 쉐브론(Chevron Corporation) 등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이 지역에 눈독을 들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오고니족 등 소수민족 편이 아니라, 다국적 석유회사의 편이었다. 나이지리아의 권력층은 장기간 군부 정권의 집권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들은 다국적 기업과의 합작계약 등을 통해 높은 유가에 따른 수출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지리아 정부의 정책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그 이익을 '빼앗는 데' 초점이 있었다. 1979년 나이지리아 헌법개정안에는 "연방정부는 모든 나이지리아 영토에 소유권을 가지며, 땅값은 취득 당시 토지에 있는 작물의 가치로 보상을 끝낸다"고 적혀있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렇게 획득한 땅을 석유회사들에게 나눠줬다"고 주장했다. 오고니족 역시 "나이지리아 정부와 석유 회사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땅을 포기하라고 강요해왔다"고 항변해왔다. 순식간에 오고니족은 경작하던 땅을 빼앗기고, 대대로 해왔던 농사일도 하지 못하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 작업 도중 유출된 기름 때문에 땅도 오염돼갔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고, 뻘 바다 어족자원도 씨가 말랐다. 공동 우물에서 석유냄새가 나며 마실 물도 없어졌다. 식량은 부족해졌지만 물가는 상승했다. 참다못한 오고니족은 1990년, 민족 출신 유명 작가 켄 사로위와를 대표로 '오고니족생존운동'(MOSOP)을 창설했다. 부족은 △오염 실태를 조사하고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원유 개발이익을 주민에게 분배하라 △부족 자치권을 보장하라 등의 생존권 요구를 담은 오고니 권리장전을 제정했다. 이들은 나이지리아 소수부족 인권연대기구(UNPO)와 더불어 평화 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1993년 1월 평화행진에는 부족 성인 전부인 30만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여기서 나이지리아 정부는 가히 재앙적인 태도를 취했다. 소수민족이 아닌 다국적기업의 편에 선 것이다. 1995년 11월, 켄 사로위와를 비롯 9명의 원주민운동가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존 메이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 전세계는 이 사형을 "사법적 살인"이라고 비난했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듣지 않았다. 켄 사로위와는 죽기 전 "나는 셸이 델타에서 벌인 생태계 범죄가 곧 정당한 처벌을 받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이 통한 건지, 이제 세계는 셸을 켄 사로위와의 죽음을 야기한 주범으로 지목한다. 셸은 2009년 나이지리아 군부세력과 손잡고 반정부 환경 운동가 켄 사로위와를 탄압, 사형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미국의 뉴욕 법정에 섰고, 유족 측에 1550만달러(약 196억원)를 보상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나아가 세계는 오고니랜드를 파괴한 주범 역시 셸이라며 이를 인정하고 보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2017년 11월 국제 인권운동단체 앰네스티는 오고니랜드에서 군부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 사건에 셸이 연루돼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살인, 강간, 고문에 셸이 가담했다는 증거도 있다"며 "목격자들의 진술서에 따르면 셸은 나이지리아 주 보안기관으로부터 훈련받은 잠복 경찰 조직을 운영했다. 나이지리아 정부 역시 셸의 편이었다. 1993년 4월30일 MOSOP가 셸의 새로운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반대하는 시위를 할 때 정부 수비병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눠, 1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당시 군경의 뒤따른 반발로 약 1000명이 사망하고, 3만명이 집을 잃었으며, 마을이 파괴됐다. 그럼에도 셸은 1993년 작업량을 늘리기 위해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했고, 시추작업 중단 이후에도 시설이나 장비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환경단체는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으로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장비나 송유시설이 광범위한 오염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도 수 천 개의 기업 내부문서와 목격자들의 증언을 검토한 결과 1990년대 석유 생산지역인 오고니랜드에서 시위자들을 침묵시키는 잔인한 작전에 셸이 연루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소수민족 대신 쉘, 엑손모빌, 쉐브론텍사코, 토탈, 아지프 등 다국적 석유회사의 손을 잡은 나이지리아 정부. 그렇다면 이들의 바람대로 나이지리아는 이들과 함께 순항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나이지리아에선 농업 등 기존 산업이 무너지고 석유 산업만이 주를 이루게 됐는데, 다국적 석유 기업은 자사의 기술과 노하우 등을 나이지리아 국내 기업과 공유하거나 이를 제공하지 않고 배타적 독점을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규모와 자산, 경영전략 등도 국내 기업에 비해 월등해 나이지리아 국내 기업이 성장할 틈이 없다. '라틴아메리카 구조주의' 경제학자 푸르타도(C.Furtado)에 따르면 다국적 석유회사는 자본집약적이고 노동절약적인 기술을 사용했기에 딱히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나이지리아는 '신식민주의'라고 불리는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결국 국민의 편에 설 수 있을까. 다행히 나이지리아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변화와 국가 발전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조나단 굿럭 대통령(임기 2010년5월~2015년5월)은 스스로를 '농부의 대통령'이라 칭할 만큼, 농업 등 타 산업 육성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육성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재정장관 엔고지 오콘조-이웨알라도 "정부는 지금이 석유의존적인 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 구조 개편과 발전 토대 마련 이외에도, 나이지리아가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해야할 노력들은 산적해있다. 다음 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강국으로 나아가기위해서 꼭 극복해야할, '사기'에 대해 짚어본다. 사람들이 왜 나이지리아를 '사기꾼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나이지리아에 만연한 사기를 토대로 말이다. 참고문헌 나이지리아 '국가실패'의 배경에 관한 연구, 숙명여대, 김예슬 나이지리아 그림자경제에 대한 탐색적 연구, 부산대, 김준수 개발도상국의 도시빈곤과 KOICA의 도시개발 원조사업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 방설아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4.15 06:00


  • '나만 모르는' 2050년 경제강국… 의외의 <strong>나라</strong>?

  •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①] 매년 8~9% 괄목적 경제성장… 서아프리카 지역강국 나이지리아, 최근 '지역권력' 잃고있다는 지적 받기도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발단은 독일인 아주머니의 질문이었다. 그는 대화하던 중 내게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이랬죠?"라고 질문했다. 내가 한국이라고 답하자 그는 "그게 어디냐"고 되물었다. 한국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내가 "서울이 수도인 나라" "북한과 분단 상태인 나라" "삼성·LG·현대의 나라" 등 다양한 설명을 해봤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 뒤의 말은 더 황당했다. 그는 내게 "너희 나라에서는 안전하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냐"고 묻고, "지하철도 있냐"고 물었다. '대체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생각하는 거지?'란 생각에 억울한 심정까지 들었다. 때마침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소득·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을 △미국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등과 함께 전세계 10대 선진국으로 꼽았단 소식을 들은 직후였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다가, 문득 예전에 본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한 예능인은 2017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나 출신 예능인 샘 오취리를 향해 "가나에도 TV가 있냐"거나 "공중파·케이블 방송국이 있냐" "지하철도 다니냐" 등의 무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해당 예능인은 방송 이후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판한 이들이 국가 가나라든가, 혹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잘 알고 있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나이지리아 △이집트 △케냐 △에티오피아 등이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국가인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독일인 아주머니만 탓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국가들도 모두 흥미로운 지점을 지니고 있지만, 나이지리아는 특히 흥미롭다. 나이지리아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아프리카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국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나이지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3757억7071만3742.8달러로 세계31위다. 이는 아프리카의 강국 남아공 보다도 큰 경제규모다. 같은 해 남아공은 3494억1934만3614.1달러의 GDP로 세계33위를 기록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제규모가 이토록 큰 건 어마어마한 인구수 덕이다. '아프리카의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자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특히 청년 인구는 3900만명으로, 인도와 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많다. 높은 청년 인구수와 여타의 성장 잠재력 덕에 나이지리아는 앞으로 수십년 안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2011년 2월 씨티그룹은 "나이지리아는 2010~205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IMF에 따르면 2008년 나이지리아는 9%, 2011년엔 8% 성장하는 등 매년 8~9%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도 "나이지리아는 2050년 세계 GDP 순위 14위의 국가로 매우 괄목적인 성장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PwC에 따르면 2050년 나이지리아는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 이어 14위 GDP(PPP기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PwC는 한국이 2016년 13위에서 2050년 18위로, 이탈리아는 12위에서 21위로, 캐나다는 17위에서 22위로, 스페인은 16위에서 26위로, 호주는 19위에서 28위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했다. 풍부한 석유 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제 성장률에, 월등한 경제규모까지 더해지며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전통적인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꼽혀왔다. 지역강국이란 특정 지역에서 정치·군사·경제 부문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를 말한다. 미국이나 중국은 지역 강국이면서 동시에 강대국 혹은 초강대국인 국가이며, 인도네시아나 호주는 지역 강국이지만 대륙 자체가 전반적으로 국력이 작아, 국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수십년간 나이지리아가 아프리카 대륙의 지역강국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최근 몇년 사이 회의적 시각이 빈발하고 있다. 아프리카권 언론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아직도 나이지리아를 지역강국이라 부를 수 있냐'는 내용의 글이 자주 올라온다. 꾸준한 경제 성장세에,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던 나이지리아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나이지리아가 보코하람(Boko Haram)수습에 사실상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코하람은 2002년 설립돼 2009년부터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군사 도발에 나선 이슬람 무장단체다. 국제사회엔 2014년 4월 나이지리아 동북부 도시인 치복의 한 학교를 급습, 여학생 276명을 납치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올루솔라 오구누비(Olusola Ogunnubi) 남아공 줄루랜드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남아공 정치학회지 폴리티콘에 '실패한 지역강국? 보코하람의 진행과 나이지리아의 국제위상'이라는 글을 기고해 "이어진 보코하람 활동 결과, 나이지리아의 지역강국 지위는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이유로 나이지리아가 지역강국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며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과 싸우기위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많이 의지해왔다. 아주 작은 국가들에게까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에 속수무책이다. 2009년부터 보코하람의 공격으로 2만여명이 살해됐지만, 보코하람의 테러는 2019년 현재까지도 근절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국토의 상당 부분이 보코하람 통제하에 있으며, 나이지리아 국민은 계속 위협당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군도 보코하람에 맞서싸우고 있지만 매번 정부군의 군사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무기가 적다는 점만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꼴이 됐다. 민간 희생도 이어졌다. 2013년 4월, 정부군이 보코하람과 싸운 보르노 북동부의 어촌마을에서 185명이 사망하고 2200채의 집이 파괴됐다. 지난 1월28일에도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마을 란(Rann)을 공격해 최소한 60명이 숨졌다. 오사이 오지고 국제사면위원회 나이지리아 대표는 "이는 지난 10년간의 보코하람 공격 중 가장 잔인했다"면서 "목격자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공격 하루 전 이 지역을 포기, 시민들 보호에 완전하게 실패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보코하람은 약 2주 전 같은 곳을 공격해 나이지리아 정부군을 몰아낸 바 있다. 즉 나이지리아가 보코하람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군사력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나이지리아를 지역강국으로 인정할 수 있냐"는 회의론이 커진 것이다. 지난해 10월30일 오비 아냐디케 국제인도주의 뉴스에이전시 IRIN 편집인은 WPR(월드폴리틱스리뷰)에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길을 잃었는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에서 "나이지리아 군사력에 대한 평가는 과장돼있다. 나이지리아 군은 무기 부족으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칼럼니스트 로드 에이킨스 아드세이는 가나 매체 '모던가나'에 '나이지리아, 감소하는 지역권력?'이란 글을 기고해 "나이지리아는 서아프리카의 유일한 지역강국이지만, 이 권력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1월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말리 내전'을 나이지리아 지역 권력이 감소하는 사례로 들었다. 아드세이는 "굿럭 조나단 나이지리아 대통령(임기 2010년5월~2015년5월)이 '나이지리아는 ECOWAS(서아프리카 경제협력체)의 일원으로서 큰 병력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지만, 나이지리아는 결국 군사능력과 자산 등을 동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프랑스가 최신식 라파엘 전투기와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말리 북부의 무장대원을 몰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년간 무장대원들에 점령됐던 말리는 프랑스의 진출 1달 만에 잠재워졌다. 지역민은 프랑스의 노고에 찬사했다"며 "이는 프랑스가 초강대국(미국 같은 군사적·경제적 대국)은 아니지만, 유럽의 지역강국으로서 아직까지 아프리카 문제에 힘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였다"고 분석했다. 즉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해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말리 내전 문제에, 과거 말리를 지배했던 프랑스는 적극 개입해 세력을 떨친 반면, '지역강국' 나이지리아는 아무런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수년내에 내부적 문제를 극복하고 지역강국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점차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가고만 있는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나이지리아가 지역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할지 짚어본다. 나이지리아를 장악한 다국적기업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재은의 그 나라, 나이지리아 그리고 지역강국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4.08 06:00


  • "남자만 오세요"… 북적이는 필리핀 섹스 관광지

  •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④] 빈곤율 21.6%…성매매가 산업화하며 인신매매·아동성매매 만연… "성매매 관광지 가득 채운 한국인 남성들"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내 취미는 항공권 검색이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면 항공권 검색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어디로 가는 항공권이 언제 저렴한지 구경하곤 한다. 물론 매일 일상이 있기 때문에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도 각 여행지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상상하는 데서 왠지 모를 마음의 위안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 앙헬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필리핀항공 등 국적기는 물론이고 진에어·제주항공·에어아시아제스트 등 저가항공까지 매일 같이 인천-앙헬레스 직항을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정만 잘 맞으면 왕복 10만원 초반대의 가격에도 갈 수 있었다. '필리핀'하면 마닐라, 보라카이, 세부밖에 몰랐기에, '내가 유명 관광지를 놓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앙헬레스는 굳이 몰라도 될 관광지다. 앙헬레스는 과거 미군의 세계 최대 공군 기지가 위치하며 번영했다. 하지만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을 계기로 기지가 폐쇄되면서 앙헬레스는 아예 성매매 관광지로 거듭났다. '오락 수도'라는 별명의 앙헬레스는 불야성이다. 앙헬레스 최대의 홍등가 '필즈 애비뉴'(Fields Avenue)엔 낮이든 밤이든 저렴한 값에 성매매를 하려는 남성들로 득실거린다. ◇필리핀 성매매 관광지 '앙헬레스'… 가득 채운 한국인 남성들 앙헬레스의 필즈애비뉴에는 바, KTV(노래방), 비키니바(호스티스바), 마사지바 등이 늘어져있다. 이들 모두에서 성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심지어 길거리에 서있는 여성들도 성매매를 제안해올 정도다. 업종과 여성의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비용은(필리핀 정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들을 '조기퇴근'시키려면 성매수자는 업주에게 일종의 퇴근비(성매매비)와 벌금을 지불해야한다.) 아침까지 데리고 있는 조건으로 '최대' 60달러(약 6만원) 정도로, 한국을 비롯 선진국 남성들에게는 그리 비싼 값이 아니다. 구글에서 앙헬레스에 위치한 각종 바 등을 검색하면 "남자가 가기 좋은 곳" "저렴하게 성매매할수 있는 곳"이라는 한줄평이 줄지어 남겨져있는 이유다. 흥미로운 건 앙헬레스를 즐겨 찾던 서양인들 사이에서 최근 볼멘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호주 등 서구권 남성들이 즐겨찾던 앙헬레스는 이제 주고객이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앙헬레스 곳곳에는 이제 'OO바' 등 한국어로 써진 간판이 즐비하다. 2017년 유튜브에 게시된 '앙헬레스의 첫인상-필리핀 브이로그' 영상에도 재미있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댓글을 남긴 이는 "영상에 한국인 남성들이 길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등장하듯, 앙헬레스는 점차 한국인들로 가득차고 있다. 정말 많은 수의 한국 남성들이 앙헬레스를 배회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바들, 식당들이 한국인 남성만을 대상으로 영업한다"며 "점차 서구권 남성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외신도 잇따라 '한국인 남성'이 앙헬레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일 영국 가디언은 한국을 비롯 각국 남성이 필리핀에서 '섹스 투어'(성매매 관광)를 한 뒤 낳고 간 필리핀 아이들에 대해 다뤘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자신의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가디언은 "필리핀 관광청에 따르면 매년 47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필리핀을 방문하고, 이중 120만명이 혼자 오는 남성"이라면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국적은 한국, 미국, 중국, 호주"라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어 "필리핀 앙헬레스 빈민가의 아이들은 다양한 혈통을 갖고 있다. 흰 피부, 검은 피부, 그리고 한국인의 특징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며 "이들의 아버지가 '섹스 투어리스트'(성매매를 하러 온 관광객)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안 섹스 투어리스트 중에선 한국 남성을 콕 집었다. 2015년3월12일 카타르 알자지라도 "(앙헬레스가 위치한) 클락 국제공항은 목·금요일엔 도착 항공편으로, 일·월요일엔 출발 항공편으로 바쁘다"면서 "대부분의 승객은 한국·호주·미국 등지의 성매매 고객들"이라고 보도했다. ◇이 많은 여성들은 어디서 왔을까 필리핀은 인신매매법에 따라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력한 단속이 없이 용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기준 필리핀의 9750만 인구 중 50만명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이는 예상치로, 실제로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피아 카예타노 상원의원은 2011년 "필리핀에서 성매매로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최대 80만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레이디보이(빠끌라·여장남자) 등 일부 남성들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여성이다. 그럼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은 모두 어디에서, 왜 왔을까? 2008년 사마라싱헤(Samarasingihe Vidyamali)의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 대부분은 가난으로 인해 성매매에 자발적으로 종사하기 시작했다. 2009년 기준 필리핀인의 26.5%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고, 빈곤율도 2015년 기준 21.6%로 최빈국 아이티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의 발버둥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②] 참고) 앙헬레스에 종착하는 많은 여성들은 주변의 빈곤 농촌 지역, 즉 사마르, 레이테, 비사야 등에서 온다. 아직까지 전기와 상하수 시설이 제대로 돼있지 않을 정도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다. 이 여성들은 도시에서 돈을 벌어 부모와 형제자매를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도시로 이동했다. 필리핀 사회는 전통적으로 딸은 결혼 후에도 친정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족을 위해 돈을 보내는 만큼 딸에게 의존한다. 하지만 도시에도 그들을 위한 일자리는 거의 없다. 필리핀의 2016년 1분기 기준 실업률은 23.9%로,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앙헬레스에 도착한 여성들은 'Now Hiring!'(지금, 댄서를 고용합니다) 등의 광고를 보고 유흥업으로 빠지게 된다. 슬프게도, 이들의 염원과 달리 이들이 버는 돈은 충분치 않아서 대부분 성매매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생활을 꾸리기 위해 빚을 지게 된다. 성매매 여성들의 죄책감도 적지 않다. 1998년 세계노동기구(ILO)의 '동남아시아 대규모 섹스 산업'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의 50% 이상이 "무거운 마음으로 일한다"고 답했고, 20% 여성이 "돈을 받고 성관계를 맺은 뒤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는 다른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김경애 전 동덕여대 여성학 교수의 '우리나라 남성 성매수자와 필리핀 성매매 여성과의 관계 맺기'에 따르면 조사대상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은 나쁜 일로, 더럽고 지저분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또 "여러 남자를 상대하므로 건강상 좋지 않고, 주야로 일해 힘들며 성매매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길"이라고 답했다. 필리핀이 엄격한 가톨릭 국가라는 걸 고려하면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의 크기가 얼마나 클 지 추측할 수 있다. 필리핀은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이혼을 불법으로 규정할 정도 가톨릭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국가다. 필리핀에서 여성은 결혼 전 '순결'이라 불리는 성적 비경험을 유지해야하고, 성관계는 임신을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따라 혼전 성관계를 가진 여성은 타락한 도덕성을 가진 자로 낙인 찍힌다. 자연히 성매매 종사 여성은 필리핀 사회에서 배척된다. ◇섹스 투어리스트가 낳은 '아동 성매매'와 '인신 매매' 성매매 관광객들은 '아동 성매매'와 '인신매매'를 낳았다. 2008년 사마라싱헤는 "일부 여성들은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적으로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게 됐다"고 기술했다. 인신매매업자는 여성에게 과도한 수수료 등을 부과하고 신분증을 압수해 사기성 계약을 작성한다. 이로써 여성이 성매매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동 성매매'다. 소아성애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돈벌이를 위해 아동을 인신매매하는 현상이다. 지난 20일 가톨릭아시안뉴스(UCAN)에 따르면 최근 필리핀 마닐라 북부 팜판가의 한 호텔에서 14세 어린 소녀 20명이 구출됐다. 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었으며 이들을 중개하는 업자는 거리에서 아이들을 거래해 성매매에 이용했다. 업자들 뿐만 아니다. 부모들도 아이를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스테이시 둘리 인베스티게이츠'는 2017년 필리핀에서 엄마들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찍어 팔거나, 성매매를 주선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아동 성매매에 관심있는 이들은 주로 소아성애적 기호를 가진 호주, 미국 등 서구권 남성들이다. 2015년 7월22일 호주 ABC뉴스는 '필리핀의 젊은 여성들을 착취하는 호주 섹스투어리스트'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캐롤라인 노마 박사는 ABC에 "호주 남성들은 '아시안 여성들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변명을 하며 아동 성매매를 한다"면서 "이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노마 박사는 "필리핀 서부 지역에서 성매매를 시작하는 나이는 평균 14~16세다. 업주들은 '젊을 수록 좋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호주 남성 테런스 하인스워스(61)는 필리핀 앙헬레스 등에 거주하며 5~8세 사이의 필리핀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죄로 11년형을 받았다. 미국의 상황도 유사하다. 2005년부터 10년 넘게 필리핀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동 성매매 후 영상을 촬영해온 미국 남성 데이비드 폴 린치(56)는 징역 330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도 적지 않다. 2012년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6위 아동 성매매 관광객 송출 국가다. 엑팟(ECPAT) 등 국제 아동 성매매 관광 근절 단체는 "한국 관광객의 아동 성매매는 소아성애적 기호 때문이라기보다는 구매할 수 있는 아동이 있고, 이런 행위가 용인되는 상황에서 아동의 성을 구매하는 이른바 상황적(situational) 구매자"라고 분석했다. 필리핀 당국도 인신매매법을 제정하는 등 성매매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적극적이진 않다. ILO,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섹스 투어는 필리핀 국내 총생산(GDP)의 2~14%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수익성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내부의 사정 때문에 공급을 줄일 수 없다면 수요라도 줄여야한다. 구매하지 않으면 자연히 공급도 사라질 테니 말이다. 적어도 필리핀의 인신매매 이슈에 한국이 가장 문제 있는 나라로 언급되는 일은 피해야하지 않을까. 2017년 필리핀 세부 데일리뉴스에 한국인 남성 9명이 여성과 함께 동행하며 성관계까지 갖는 '에스코트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인신매매 혐의로 실명과 조사받는 장면 등이 대서특필됐듯이 말이다. ☞[이재은의 그 나라, 케냐 그리고 지역 강국 ①] 계속 참고문헌 필리핀 여성 빈곤의 특징과 그 구조적 요인, 사회교육과학연구, 전경옥·문은영 우리나라 남성 성매수자와 필리핀 성매매 여성과의 관계맺기, 젠더연구, 김경애 Child Sex Trafficking in Metro Manila,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Sex work in Asia, WHO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4.01 06:05


  • '가난한 <strong>나라</strong>' 이유로… 살해당하는 국민

  •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③] 필리핀, 해외 나가 일하는 노동자 1020만명… 인간적 대우 받지 못하는 이들 多=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홍콩에 놀러가 일요일을 홍콩에서 지내는 이들이라면 궁금해하는 게 있다. '오늘 홍콩에 큰 행사가 있는지' 여부다. 매주 일요일 홍콩의 행정·경제 중심지 센트럴 주변을 걷다보면, 끝없는 인파를 맞닥뜨려 이 같은 궁금증을 품기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콘서트 등을 기다리는 인파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이들은 대부분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돗자리를 편 채 삼삼오오 둘러 앉아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는가 하면 포커 게임을 하고 책·잡지·신문 등을 돌려본다. 주로 광장이나 공원, 고층빌딩 사이, 육교 등 햇볕을 피할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일요일 마다 바깥에 나와있는 건, 홍콩 정부가 이들에게 일주일 중 하루를 의무적으로 휴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일요일엔 홍콩 모든 가족이 집에 들어와 있는데, 보통의 홍콩 집은 좁으므로 가족들끼리의 시간을 보내도록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다. 이들의 일상이 늘 괴로운 것만은 아니지만 편치 않은 건 사실이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얼굴이 새빨간 채 어딘가 아파 보이는데도 길거리에 나와 누워 있는 이들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월13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인권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매체는 "한 대학 연구소가 홍콩에서 일하는 2000명 이상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조사한 결과 이들 중 70% 이상이 하루에 13시간씩 일하며, 이들 대부분은 봉급을 다 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홍콩에서는 35만2000명(2016년 기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일하며 대부분은 필리핀·인도네시아인이다. 이들은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하는데, 홍콩의 집이 작다보니 제대로된 방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 부엌에서 쪼그려 자면서 숙식을 해결한다. 14만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일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017년 리서치 어크로스 보더스의 조사 결과 60%의 가사도우미가 저임금, 긴 노동시간, 폐쇄회로TV(CCTV) 감시, 고용주에 의한 착취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슬픈 점은 이런 인권침해적인 현실도 중동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쿠웨이트에서 레바논-시리아인 부부가 학대 끝에 필리핀 가사도우미 조애너 데마펠리스를 살해한 뒤 1년 동안 냉동고에 시신을 보관하고 있던 게 발각됐다. 쿠웨이트로 조애너가 떠날 당시 조애너의 가족들은 "그냥 필리핀에 남아 함께 살자"며 조애너를 말렸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조애너가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것이라 더욱 슬픔이 컸다. 쿠웨이트에는 약 25만명의 필리핀인이 일하고 있고, 이중 75%에 달하는 이들이 가사도우미다. 이전에도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쿠웨이트인 집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한 바 있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분노를 금치 못하며 더 이상의 자국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고, 자국 노동자 25만명에게 쿠웨이트 철수를 명령했다. 귀국 비용도 모두 정부가 댔다. 쿠웨이트 집주인의 학대를 신고한 자국 가사도우미 26명은 필리핀 대사관으로 탈출시켰다. 하지만 쿠웨이트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다른 중동 국가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폭행 끝에 주인이 강제로 먹인 표백제 때문에 의식을 잃고 위중한 상태가 됐다. 2014년엔 사우디 집 주인이 "커피를 신속하게 가져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리핀 가사도우미에게 끓는 물을 던져 전신 화상을 입힌 일도 있었다. 집주인은 고통을 호소하는 가사도우미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는데, 평소에도 집주인은 그를 구타하고 음식도 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전세계에 퍼져 있는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얼마나 처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는 많디 많다. 모두 늘어놓을 수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필리핀 여성들은 이런 대우를 받는 데도 불구하고 외국으로 취업하러 나오는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이들이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임금은 매우 낮다. 필리핀 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필리핀의 일일 최저임금은 466페소(약 10.31달러)에 그친다. 필리핀 여성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필리핀에서는 한 달 15만원(2019년 기준)이다. 반면 홍콩에서는 최소 4520홍콩달러(약 65만원, 2019년 기준)가 필요하고, 싱가포르에서는 570싱가포르달러(48만원, 2017년 5월 기준)가 든다. 필리핀인 입장에서는 가사도우미로 같은 일을 한다면 외국에 나가서 하는 게 낫다. 가족을 부양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송금해서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길 바라므로 말이다. 2017년 컨설팅업체 리서치 어크로스 보더스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가사도우미 800명 중 3분의 1은 "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내가 일한 뒤 고국으로 송금하지 않으면 가족이 먹지 못하고 굶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특히 저소득층 여성이라면 해외에 나가 일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2018년 글로벌 젠더갭(성별 격차) 리포트에 따르면 필리핀은 성평등 측면에서 세계 8위로, 세계 상위 10위권에 있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하지만 빈곤층의 경우 성별 격차는 여전하다. 지난 20일 필리핀 뉴스채널 ABS-CBN 보도에 따르면 매킨지글로벌연구소는 이 같은 결과를 인용하며 "이제 필리핀의 상류층 여성들은 남성들과 유사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임금 격차도 적다. 하지만 저소득층 여성들은 아직도 상당한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를 겪고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적다"고 분석했다. 논문 '필리핀 여성빈곤의 특징과 그 구조적 요인'을 발표한 전경옥·문은영 교수에 따르면 필리핀 빈곤층 여성들은 비슷한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자는 남성 임금의 평균 59%(2001년 기준)를 받는다. 지난해지난해 3월7일 "성차별주의는 필리핀 여성을 가난하게 유지한다"는 제목의 CNN 기사도 이 같은 현실을 짚었다. 이런 임금 성차별은 남성은 보수가 따르는 생산적인 일을 하는 반면 여성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 내에서 할애한다는 전통적 사고 방식에서 기인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필리핀 여성들 입장에서는 해외에 나가 가사도우미를 하는 게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여성들이 해외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모습을 쉬이 볼 수 있는 이유다. 또 이들 입장에서는 해외 생활이 일종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비춰지기도 한다. 예컨대 홍콩은 외국인들이 홍콩에서 7년 이상 살면 영주권을 준다. 물론 홍콩 당국은 어떻게든 필리핀인 가사도우미들에게 영주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말이다. 앞서 2013년 홍콩 최고법원인 종심법원 재판부는 20여년을 홍콩에서 산 가사도우미 에반젤리네 바나오 바예호스와 다니엘 도밍고가 홍콩 정부를 상대로 영주권 신청 권한을 달라고 제시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필리핀인들이 가사도우미 등 해외로 나가 일을 하는 건 국가 입장에서도 장려된다. 필리핀 노동자가 해외에서 돈을 벌어 모국으로 송금한 돈이 필리핀 경제의 생명줄처럼 기능하는, '송금 경제'가 나라 살림의 주축이라서다. 필리핀은 수출주도형 발전전략 혹은 자본집약적 서비스산업 등 뚜렷한 경제발전산업이 없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 자국민 노동자가 가족들에게 보내온 돈으로 내수 증진을 하고 있다. 2013년 필리핀해외위원회(CFO)에 따르면 필리핀 인구의 11% 수준인 약 1020만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젊은이들이다. 2011년 실시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출신 해외 노동자의 24%를 24~29세가, 23%를 30~34세가 차지했다. 필리핀 정부는 정책을 통해 노동자 해외 송출을 증진하고, 미디어 캠페인이나 해외 정부와의 딜(계약) 등을 통해 노동자 해외 송출을 장려한다. 해외 노동자들은 미디어 등에서 필리핀 국가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시민들이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거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된다. 필리핀인 해외 노동자 인구는 수년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로, 이 같은 분위기가 필리핀인이 전세계 100여개국에 펼쳐져 있는 가장 큰 디아스포라 인구로 거듭나는 데 기여했다. 필리핀 정부가 가사도우미 등의 해외 송출을 위해 해외 정부들과 협상에 나서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해 5월 아랍에미리트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필리핀 노동자를 아랍에미리트 가사도우미로 데려오는 비용을 2만디르함(약 615만원)에서 1만2000디르함(약 370만원)으로 낮췄다. 필리핀인들은 이처럼 아주 빈번히 좋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로 힘들게 일하고 있다. 필리핀인들 사이에서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냐"는 울분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 편에서는 필리핀 하층민의 '가난'이 이들의 삶을 어떻게 지옥으로 몰아넣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필리핀에 만연한 '섹스 투어'와 관련해서 말이다.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④]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3.25 06:02


  • "우리도 한국처럼 될 수 있다"… 가난한 <strong>나라</strong>의 발버둥

  •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②] 식민지 잔재, 토지개혁 실패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 극심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조만간 '필리핀'(the Philippines)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사라지고 마할리카(Maharlika·따갈로그어로 '귀족'이라는 뜻)라는 나라가 생길지 모르겠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달 국명을 개명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라는 국명은 스페인 통치시절(1521~1898년) 스페인 왕 필립 2세 왕의 이름을 따 명명했기에 식민 통치의 잔재라는 것이다. 국명에 스페인의 흔적이 남았듯, 필리핀엔 사회·정치·문화·경제적으로 곳곳에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 있다. 가장 큰 흔적은 필리핀의 경제상황에 남겨졌다. 스페인(1571~1898년)과 미국(1898~1946년)의 식민지, 그리고 그 사이 잠시 일본의 필리핀 점령기(1942~1945년)까지 거치면서 오랜 식민지배 기간 끼친 여러 영향들이 필리핀의 지금의 모습, 세계 최빈국의 모습을 만들었다. IMF에 따르면 필리핀의 1인당 명목 GDP는 지난해 기준 3095달러로 세계 131위, 세계 최빈국이다. 물론 필리핀은 6.1%(2015년) 6.9%(2016년) 6.7%(2017년) 6.7%(2018년) 등 매년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 GDP 성장률은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동남아시아에선 '필리핀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2013년 2월 다바오시에서 열린 필리핀개발포럼에서 모투 코니시 세계은행 디렉터도 "필리핀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말했다. 2013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레이팅스는 필리핀의 성장이 ‘안정적’이라면서 BBB-를 부여했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필리핀을 2012년 '세계 경쟁력 순위' 10위에 뒀을 정도다. 하지만 어쩐지 아직 필리핀은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발전을 거듭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빈익빈부익부'다. 시사 매거진 디아틀란틱(The Atlantic)은 2013년 5월7일 "필리핀의 발전상은 대부분의 필리핀 서민들에겐 그저 '숫자'로만 느껴진다. 빈민가는 언제나처럼 황량하고, 경제 호황은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했다. 2012년 포브스 아시아에 따르면 필리핀 40대 부유 가문의 총 재산은 2010년에서 2011년 1년 사이 37.9%(130억달러) 증가해 474억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에서 2014년 1년 사이에도 또 13%가 늘어나 724억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필리핀 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필리핀의 일일 최저임금은 466페소(약 10.31 달러)로, 3년간 겨우 4.5% 증가했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임금은 그대로니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필리핀 5세 이하 아동의 32%는 영양실조에 따른 심각한 발육부진을 겪고 있으며, 필리핀 국민 중 60%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병원 등 의료케어를 받지 못한다. 2009년 기준 필리핀인의 26.5%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빈곤율(2015년 기준 21.6%)은 또 다른 세계 최빈국 아이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빈익빈부익부가 이처럼 심각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농업 종사 인구가 필리핀 빈곤층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며 "대다수 농민들의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토지개혁의 실패에서 왔다"고 지적한다. 2014년 기준 필리핀의 노동가능인구 중 30%는 농업에 종사한다. 장소영은 논문 '필리핀의 토지개혁'(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동남아학과, 2000년)에서 "정부가 수없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토지개혁이 계속 실패하거나 한계가 많았던 원인은 과거 식민지배기간에 만들어진 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때 구축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중심으로 지주계급이 국가의 정책까지도 방해하거나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토지개혁'이란 전후 독립 탈식민지 국가에서, 경제적 근대화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국가 주도하에 지주-소작관계의 해체를 추진하는 개혁정책을 일컫는다. 즉 단순히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 농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 외에 지속적으로 권력을 장악해온 통치계급의 정치경제적 기반을 제거한다는 목적을 가지지만, 필리핀은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통치계급을 공고화했고, 탈식민지에 이르러서도 이들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지속적인 사회 개혁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필리핀은 식민지의 유산인 플랜테이션 위주의 농업형태를 띠고 있다. 스페인은 18세기 말 식민지 경영비용을 현지에서 조달하기 위해 사탕수수와 코코넛을 비롯해 차·고무·바나나 등 열대작물을 중심으로 플랜테이션을 도입했다. 이 플랜테이션 체제가 스페인 식민지 기간 지주 계급에게 '부의 쏠림'이라는 선물을 줬다. 지주 계급은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체제(아시엔다·Hacidenda)를 강화해 부를 축적했다. 방법은 이랬다. 지주들은 개간된 땅을 무작위로 강탈하고 관료와 결탁해 관료에게 바칠 토지세 등 각종 세금을 농민에게 부과했다. 당연히 소수의 자작농도 파산했다. 그들의 토지는 대지주의 소유가 됐다. 스페인 당국은 이 같은 권력 쏠림을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겼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입장에서도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편이 경영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주들의 힘이 세진다는 건 국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엔 제약이 걸린단 걸 의미한다. 독립 이후 필리핀은 지주제 폐지와 자작농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 1955년 토지개혁법 이래 점진적이지만 끊임없이 토지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해집단을 만들어 국가 주도의 토지개혁에 반대했다. 필리핀농업회의소(PCA), 전국미곡생산자협회(NRPA), 전국사탕수수농장주협회(NSPA)등은 의회 밖에서 개혁법안의 반대를 주도했다. 시민단체와 자선단체, 협동조합과 은행까지 소유한 지주 계급은 토지재분배정책을 공산주의적 사고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또 지주 계급은 번번이 사탕수수와 코코넛을 비롯한 지주 소유의 수출용 재배작물을 농지분배의 대상에서 제외시켰고, 강제규정을 두지 않았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 그리고 '온건하고 건전한 반공국가'를 세우고자 한 미국의 대한 정책 등에 영향을 받아 1950년 6월 농지개혁을 실시, 지주를 거세하고 자작농 체제를 성립한 한국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필리핀 지주계급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 하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 정권의 20여년 독재정치 기간에도 지주계급을 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르코스 정권에 충성을 다한 지주 출신 엘리트와 크로니들은 온갖 특혜를 보장받았다. 즉 마르코스는 자신을 후원하는 소수의 지주계급(크로니)에게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정실(족벌·패거리) 경영과 정경 유착의 경제 체제)를 형성해나갔다. 지주의 힘은 역설적이게도 '투표권'이 생긴 뒤 더 강해졌다. 토지를 장악한 지주 계급이 가난한 민중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여기서 오는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권력(표)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행태를 후견주의(클리엔털리즘)라고 부른다. 후견주의에 따라 지주 계급은 경제적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까지 장악했고, 자연히 경제적 불평등도 지속됐다. 1987년 피플파워 혁명을 통해 21년간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6~1986년)을 몰아낸 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재임 1986~1992년)을 대통령에 올려놓고도, 필리핀 국민은 1987년 5월 선거를 통한 의회 구성에서 대부분의 의원을 지주 계급으로 채워 토지개혁 등 일련의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러니한 국민의 선택 역시 후견주의로 풀이된다. 물론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나 아키노 전 대통령 역시 본인과 가족이 지주 계급인 만큼 애초에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말이다. 한국은 성공적인 토지개혁을 통해 농업의 생산력과 농업잉여를 증가시켜 그 잉여를 제조업이나 기타 공업 등 기본설비시설에 투자함으로써 저발전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을 이뤘다. 반면 필리핀의 지주계급은 산업자본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잉여자본을 제조업분야나 산업기반시설에 투자하지 않고 오히려 토지를 지속적으로 매입, 아씨엔다를 넓혀가면서 부를 축적했다. 필리핀의 GDP 대비 투자 비율은 19.7%로, 인도네시아의 33%, 태국의 27%, 말레이시아의 24%에 비해 현저히 낮다.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외세의 힘을 막기위해 도입한 60·40법도 성장을 발목잡았다. 대부분의 필리핀 사업에서는 외국인 지분이 40%를 넘을 수 없다. 이 같이 외국인 투자에도 제한을 걸면서, 필리핀의 발전을 위한 투자에도 늘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태풍·지진·화산 폭발 등 빈번한 자연재해는 발전하려 하면 좌초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007년 7% 성장하고 2008년 경제위기 여파에도 3.8%의 성장을 기록한 필리핀이 2009년 두 차례에 걸친 강한 태풍으로 인해 0.9%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인 게 그 예시다. 또 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국토는 강력한 국가권력 체계가 발동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필리핀에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반군 등이 등장한 이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필리핀은 결국 아시아의 호랑이가 될 수 있을까? 필리핀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읽어보면 한국이나 태국, 싱가포르 등과 비교하며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토지개혁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필리핀의 미래는 어두워만 보인다. 그리고 국가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필리핀 국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아주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필리핀이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와 필리핀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짚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③] 계속 참고문헌 필리핀의 토지개혁, 서강대, 장소영 후견주의가 필리핀 민주화에 미친 영향, 이화여대, 송세시리아 한국과 필리핀의 민주적 이행에 관한 비교연구, 동국대, 서문수 필리핀의 토지개혁과 농업 현대화 과정의 전개와 한계, 농업경영 정책연구, 김광종 전운성 필리핀과 한국 토지개혁 법령의 특징, 경제연구, 김호범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3.18 05:50


  • [MT리포트]마약·뇌물·탈세·몰카…지금까지 열린 '버닝썬 게이트'

  • [버닝썬 게이트](종합) 우리들의 일그러진 우상이 된 일부 '아이돌'은 문화권력에 취해 범죄에 무감각해졌다. 권력층의 비호 얘기도 들린다.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단순 폭행으로 시작돼 마약과 뇌물, 탈세와 불법 몰카영상, 권력층과의 유착으로까지 확대된 '버닝썬 게이트'를 중간 점검했다. ━버닝썬 일파만파, 총리까지 나섰다━'버닝썬(Burning Sun)'이 '음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경찰청과 국세청에 수사 확대와 강력 처벌을 지시했고, 검찰은 경찰 유착 의혹을 포함한 관련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 준비에 착수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버닝썬 사태'와 관련, "이제까지의 수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일부 연예인과 부유층의 일탈이 충격적"이라며 "이번 사건뿐 아니라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유흥업소나 특정계층의 마약범죄 등 일탈에 대해서는 전국으로 수사를 확대해 강력하게 처벌해야겠다"고 말했다. 또 "국세청 등 관계기관도 유사한 유흥업소 등이 적법하게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 철저히 점검해 의법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경찰의 유착의혹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며 "사법처리된 전직 경찰만의 비호로 이처럼 거대한 비리가 계속될 수 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에 수사결과가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지난 5일에도 "경찰의 (버닝썬) 유착 의혹에 대해 경찰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다. 검찰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1일 수사 의뢰한 그룹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의 성접대 의혹과 경찰 유착 의혹,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유포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 배당 사실을 밝히며 "불법 성매매 영상을 유통시키는 것은 그 목적에 관계없이 가장 나쁜 범죄행위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민갑룡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이번 사건에 경찰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유착 의혹과 관련해서는 "철저히 빠짐없이 해결해나가고, 개혁이 필요한 부분도 철저히 해 이런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승리와 정준영은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나와 조사를 받았다. 정준영은 경찰에 출두하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하고 조사실로 이동했다. 승리는 "진실된 답변으로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박준식, 이영민, 이동우, 황국상 기자 ━'승리 게이트' 되기까지…시간 순으로 본 '버닝썬 사건'━[버닝썬 게이트]폭행에서 소환까지… '버닝썬 사건' 시간순 총정리 단순 클럽 폭행 사건에서 시작된 '클럽 버닝썬' 관련 사건이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8)의 성접대 알선 의혹을 비롯해 클럽 마약 투약 유통지 의혹, 경찰과 클럽 유착 의혹, 불법 촬영 영상물 공유 의혹 등으로 뻗어나가며 '승리 게이트'로 비화했다. 이른바 '버닝썬 나비효과'다. ◇2018년 11월24일 김상교씨, 클럽 버닝썬 손님으로 방문… 폭행 사건 휘말려 지난해 11월24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버닝썬 클럽을 찾은 손님 김상교씨(29). 그는 이날 버닝썬에서 성추행당하던 여성이 본인을 잡고 숨으려고 해 보호하려다가 클럽 이사 장모씨 등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집단 구타에 의해 갈비뼈 전치 4주 골절, 횡문근융해증(근육이 녹아 혈액을 막는 증상) 등이 생겼으나 경찰 조사 결과 가해자가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4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을 통해 이같이 밝힌 뒤 본인의 SNS(사회연결망서비스) 인스타그램에 역삼지구대 폐쇄회로TV(CCTV) 폭행 영상을 올렸다. 이어 지난 1월29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경사 ***, 경장 *** 등등 ***에서 뇌물받는지 조사부탁드립니다'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하루만에 20만명의 동의를 넘겼다. ◇2018년 12월21일 여성 3명 "버닝썬에서 김상교씨로부터 성추행당했다" 주장 버닝썬 측은 폭행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다만 김씨가 클럽에서 여성을 성추행한다는 민원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끌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지난해 12월21일 여성 3명이 강남경찰서에 김씨를 강제 추행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모두 버닝썬과 연관된 인물들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김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 3명 중 1명은 중국인 고객 손님을 담당하던 클럽 직원(MD) 애나다. 또 다른 한 명은 버닝썬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1명은 버닝썬 영업직원의 지인으로 드러났다. 버닝썬 측이 김씨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허위로 고소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9년 1월28일 버닝썬 CCTV 영상 공개… "버닝썬에서 마약과 성폭행은 빈번한 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지난 1월28일 김씨가 게시했던 버닝썬 CCTV 영상이 급속도로 공유됐다. 영상에는 한 여성이 노트북을 잡는 등 몸을 가누지 못하며 가드에게 끌려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27일 유튜브에 이 같은 내용의 영상을 게시하며 버닝썬의 약물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무언가(물뽕 등 약물로 추정)에 취한 여자를 버닝썬 가드가 머리채만 잡은 채 VIP 통로를 통해 끌고 가고 있다"면서 "여자는 컴퓨터와 데스크를 잡는 등 (구해달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버닝썬 직원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영상을 한 시민에게 제보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때부터 피해여성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여성 고객에게 물뽕(GHB)을 먹이고 강간하는 문화가 클럽 내부에서 횡행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마약을 적극 유통하고 이를 이용한 성폭력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부추긴다고는 증언도 나왔다. 물뽕 논란은 일반 마약류로 번졌고, 버닝썬에서 여러 종류의 마약이 공공연하게 유통된 정황도 드러났다. 또 다른 대형 클럽인 아레나와의 커넥션, 경찰과 유착 관계 등 의혹도 더욱 커졌다. 이에 지난 1월3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경찰 유착과 클럽내 성폭행 및 마약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수사 결과, 애나 집에서는 마약으로 의심되는 액체와 백색 가루가 다수 발견됐다. 이문호 버닝썬 대표와 영업사장 한모씨 모발에서도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2019년 2월17일 버닝썬 영업 종료 폭행사건에 이어 경찰 유착 의혹, 마약 판매 의혹까지 받으면서 버닝썬은 궁지에 몰렸다. 손님이 줄어들고 버닝썬이 위치한 르메르디앙 서울 호텔 역시 버닝썬 측에 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관련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버닝썬은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2019년 2월21일 "버닝썬서 돈 받아 경찰에 돈 살포"… 서울 강남경찰서 유착 의혹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월21일 전직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 강모씨를 소환 조사했다. 이 자리에서 강씨는 경찰과 버닝썬 간 유착 의혹과 관련, '연결고리' 의혹을 받고 있는 돈 살포를 인정했다. 이에 서울지방경찰청은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 버닝썬 폭력 사건을 강남경찰서에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송했다. 이전까지는 버닝썬 논란 관련 폭행 사건은 강남경찰서, 마약·뇌물 등 사건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나눠서 수사해왔다. ◇2019년 2월26일 승리 "잘 주는 애들로"… 성접대 의혹 지난 2월26일에는 승리가 2015년 말 재력가 고객에게 성접대를 제공하려 한 카카오톡 대화가 보도됐다. 승리는 2015년 12월6일 밤 11시38분쯤 가수 A씨, 설립 준비 중이던 투자업체 유리홀딩스의 유모 대표, 직원 김모씨 등과 함께 이 같은 대화를 나눴다. 승리는 이 방에서 외국인 투자자 일행을 위해 "강남 클럽 아레나에 메인 자리를 마련하고 여자애들을 부르라"고 직원 김씨에게 지시했다. 김씨가 "자리 메인 두 개에 경호까지 싹 붙여서 (중략) 케어 잘하겠다"고 답하자, 승리는 "여자는?"이라 묻고 "잘 주는 애들로"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10분 뒤 채팅방에 "남성 두 명은 (호텔방으로) 보냄"이라고 최종 보고했다. 승리의 성접대 의혹이 커지자 YG엔터테인먼트는 "승리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해당 보도는 조작된 문자메시지로 구성됐다"면서 "가짜 뉴스를 비롯한 루머 확대 및 재생산 등 일체의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일 국가권익위원회가 승리가 성접대를 주선했다는 의혹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 원본을 공익신고 형식으로 입수받으면서, 이 같은 승리 측의 해명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2019년 3월10일 경찰, '성매매 알선' 혐의로 승리 입건 결국 경찰은 지난 10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승리를 입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또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클럽 아레나를 1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약 3시간 동안 광수대 수사관과 디지털 요원 등 20여명을 보내 내부 압수수색했다. ◇2019년 3월11일 정준영,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불법 몰래 촬영 영상 공유 경찰은 승리의 성접대 알선 의혹 카카오톡 대화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수 정준영이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를 포착했다. 정준영은 다른 지인들과의 카톡방에도 문제의 동영상과 사진 등을 수차례 올렸으며, 2015년부터 약 10개월간 정준영의 불법 촬영 동영상 피해 여성은 10명에 달한다고 전해졌다. 정준영의 지인들은 여성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성관계하는 등 성폭행으로 의심되는 자신의 경험 등을 카톡방에서 공유하기도 했다. 정준영은 앞서 2016년 자신의 전 여자친구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정준영은 "여자친구와 장난 삼아 상호 합의 하에 촬영했고 이후 바로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정준영은 12일 오후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입국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정준영을 입건했다. ◇2019년 3월13일 "버닝썬 사건, 강남경찰서장 넘어서는 직위 관련돼 있어"… 경찰청장? '승리·정준영 카톡방'을 제보한 방정현 변호사가 13일 대화방에 경찰 유착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고 폭로했다. 방 변호사는 익명의 제보자에게 제보받아 '비실명 대리 신고'로 국민권익위원회에 해당 내용을 제보한 인물이다. 그는 "자료와 제보자의 제보를 다 검토했는데 경찰과 유착 관계가 굉장히 의심되는 정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면서 "제보자가 왜 망설였을까 이해가 될 정도의 직급이다. 해당 경찰의 계급이 강남경찰서장 이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민갑룡 경찰청장은 13일 오후 청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씨가 포함된 카톡 대화방에서 특정인물이 경찰청장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뒤를 봐준다'는 식의 표현이 나온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19년 3월14일, 승리·정준영·유모씨 나란히 경찰 출석 정준영은 1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에 검은색 카니발 차량을 타고 출석했다. 두손을 모은 채 포토라인에 선 정씨는 네번에 걸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각종 의혹엔 사실상 침묵했다. 정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앞서 "죄송하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죄송하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승리 역시 이날 오후 2시3분쯤 검은색 카니발 차량을 타고 출석했다. 포토라인에 서기 전 허리를 90도로 숙인 승리는 "성접대 혐의를 여전히 부인하냐"는 질문에 "아…"라며 몇 초 간 머뭇거렸다. 이후 "국민 여러분과 주변에서 상처받고 피해받은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며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승리의 지인이자 투자업체 유리홀딩스 대표인 유모씨도 이날 낮 12시50분께 같은 혐의로 경찰에 출석했다. 당초 오후 3시쯤 출석할 예정이던 유씨는 취재진의 눈을 피해 예정보다 이른 시각에 경찰에 출석했다. 이재은, 이동우, 이영민 기자 ━정준영·승리 소환조사…버닝썬 수사 급물살 탈까━14일 주요 피의자 출석…곧 전직 경찰 '구속 심사' 등 수사 총력전 경찰이 '버닝썬 사건'과 '승리 게이트' 주요 피의자 3명을 같은 날 소환조사 하며 수사의 고삐를 강하게 당겼다.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천명한 지 하루 만이다. 총력전에 돌입한 만큼 이른 시일 내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4일 '불법 촬영물'(몰카) 유포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씨(30)와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 전직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정씨와 이씨는 오전과 오후 차례로 경찰에 나왔다. 경찰은 대화방에서 불법촬영물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이 수사 상황을 전하고 말을 맞출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같은 날 소환했다. 이씨와 함께 성접대 의혹을 받는 유리홀딩스 대표 유모씨도 오후 출석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출석 당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 등에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죄송하다",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자리를 떴다. 심지어 '경찰총장'과 문자 대화를 한 것으로 지목받은 유씨는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출석해 취재진의 눈을 피했다. 이들의 경찰 출석에는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취재진 200여명이 몰렸다. 프랑스통신사 AFP, 일본 방송사 TBS(도쿄방송)가 현장을 찾는 등 외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씨와 정씨 모두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해온 만큼 외신의 관심이 높다는 해석이다. 대화방에서 성접대와 불법촬영물 관련 대화를 한 주요 인물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씨는 그동안 버닝썬의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날 성접대 의혹 수사에 이어 경찰 유착, 마약 등에서도 수사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정씨를 조사하며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 확인에 주력했다. 모발과 소변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는 등 마약 투약 여부도 살폈다. 전날 오전부터 정씨가 2016년 고장난 휴대폰 복원을 의뢰한 사설 수리업체의 압수수색도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 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2~3일 정도 더 소요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정씨의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능력 확보에 집중하는 한편, 이날 소환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신병처리 방향을 검토할 예정이다. 경찰은 문제의 대화방에서 정씨가 보낸 불법 촬영물 유포 의혹을 받는 아이돌 그룹 하이라이트 출신 용준형씨(30)도 13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용씨는 "(정씨가 보낸) 동영상을 받은 적 있고, 부적절한 대화도 했다"며 팀 탈퇴 의사를 밝혔다. 오는 15일 클럽-경찰간 '브로커' 역할을 의심받는 전직 경찰관 강모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이번 수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강씨는 지난해 7월 미성년자가 버닝썬에서 고액의 술을 마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경찰에 돈을 전달했다는 혐의다. 경찰 내부에서는 강씨의 구속이 관련자들 혐의 입증의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강씨의 방어 논리를 깨기 위해 총력를 해온 만큼, 구속이 이뤄지면 다른 증거들 역시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다. '버닝썬 사건'과 '승리 게이트'가 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르며 경찰 수뇌부는 연일 총력 수사 의지를 밝히고 있다. 정씨와 이씨가 대화를 나눈 카톡 대화방에서는 '경찰총장' 등 고위급 경찰과의 유착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찰의 명운이 달렸다는 자세로 경찰력을 투입해 특단의 의지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동우, 이영민 기자 ━탈세·마약·몰카 범죄 백화점 '버닝썬 사건' 형량 다합치면 100년 이상?━[버닝썬 게이트][the L]이론상 법정최고형은 무기징역… 서울 강남의 유명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이 마약 유통과 탈세, 성범죄, 경찰 최고위층 유착 비리 의혹 등 대형 게이트 양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모양새다.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가수 승리와 정준영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이들과 관계된 연예인과 사업 파트너 등의 혐의도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이들에게 적용될 죄목과 형량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미 제기된 의혹만 해도 마약, 탈세, 불법 촬영 등 강력범죄에 해당돼 이들이 받을 형량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가수 승리의 경우 클럽 버닝썬 대표를 지내면서 성매매 알선과 탈세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성관계 여부나 금전 등 대가성 여부에 대한 확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된다. 여기에 버닝썬을 비롯해 승리가 경영해 온 다수의 사업체들이 다년간에 걸쳐 탈세를 해왔다는 정황도 포착된 상태다. 탈세는 연간 10억원 이상일 경우 4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중범죄다. 신민영 변호사는 "탈세로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없지면 이론상으로는 법정형 최고로는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며 "현재 상황을 감안했을 때 실제로 구형될 형량은 수사 결과에 따라 나뉘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한 것으로 드러난 가수 정준영은 최근 불법촬영범죄에 대한 강화된 형량에 따라 최대 징역 7년6개월까지 받을 수 있다. 현행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영상물을 촬영하거나 촬영된 영상을 유포하면 최대 징역 5년 또는 벌금 3000만원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또한 촬영 당시에는 촬영 대상자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도 촬영물을 사후에 피해자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에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피해자가 다수일 경우 형의 2분의 1이 가중될 수 있다. 정준영이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한 여성의 수는 1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가중 처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준영은 이와 함께 강간 모의, 증거인멸과 탈세 등 다른 의혹들도 속속 제기되고 있어 이들 혐의가 모두 인정될 경우 형량은 훨씬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마약유통에 관여한 버닝썬 이문호 대표, 마약운반책 중국인 애나 등 마약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3명은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이문호 대표는 마약류 투약 및 유통, 뇌물 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표는 경찰 소환조사에서 버닝썬과 경찰 간 금품 전달 통로로 지목된 강모씨에게 2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인정했다. 성매매 알선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모 유리홀딩스 대표는 징역 3년, 추가 혐의가 더 드러날 경우 최대 4년 6개월까지 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방정현 변호사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유 대표가 경찰총장과 문자를 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지난해 미성년자 출입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버닝썬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경찰 강모씨는최대 징역 7년 6개월까지 선고될 수 있다. 또 클럽과 경찰 유착의 연결고리를 했다는 의혹도 받는 점에서 수사 결과에 따라 형량이 추가될 수 있다. 버닝썬 연루자 가운데 처음으로 기소된 버닝썬 직원 조모씨는 마약류관리법·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최대 징역 8년까지 가능하다. 버닝썬 사건의 발단이 된 김상교씨 폭행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버닝썬 이사 장모씨의 경우 폭행 혐의에 따라 최대 2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신 변호사는 "버닝썬 사건을 형량면에서 봤을때 가장 큰 대목은 마약유통과 탈세로 마약건은 최대 무기징역이 가능할만큼 중한 범죄"라고 말했다. 이미호, 최민경 기자, 오문영 인턴기자 ━[팩트체크] 정준영 폰 복구업체, 제보자라면 오히려 처벌 받는다?━[the L]고객 맡긴 폰에서 데이터추출해 제3자에 전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형사처벌 대상될 수도 '정준영 성관계 몰카 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3년전 정준영(30)씨의 전(前) 여자친구가 '몰카'를 이유로 고소한 당시, 휴대전화 복구를 맡겼던 업체에 대해 13일 압수수색을 했다. 경찰은 수사자료 확보 차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해당 업체 관계자가 이번 사건의 제보자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 형식으로 '비실명 대리신고'했다는 방정현 변호사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익명의 제보자가 존재함을 밝혔다. 제보자가 이메일을 보냈고, 그로부터 '버닝썬' 관련 자료를 받아 권익위에 대리신고했다는 주장이다. 법률전문가들은 만약 이날 압수수색을 당한 복구업체 직원이 방 변호사에게 파일을 보낸 익명의 제보자라면, 여러가지 법적 쟁점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본다. 공익 목적의 제보였지만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보과정에 불법성 있었다면 '공익신고자' 인정돼야 처벌 면할 수 있어 우선 제보자의 '공익신고자' 해당 여부부터 문제된다. 방송 등 일부 언론에서 방 변호사를 '공익신고자'로 표시하고 있지만 엄격히 따지면 방 변호사는 '공익신고자'가 아니다. '공익신고를 대리하는 변호사'다. 공익신고자보호법 제 8조의 2에 새로 규정된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는 지난해 4월 신설돼 10월 18일부터 시행됐다. 공익신고자의 신원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공익신고자 본인'에 관한 인적사항 등은 '봉인'돼 권익위에 보관되고 본인 동의없이 열람되지 않는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른 '공익신고'가 인정되려면 법령에서 정한 범죄혐의가 있어야 한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률로 별표에 별도로 나열한 284개의 법에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은 없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준영 휴대전화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진 카톡 대화방과 동영상만으로 가늠할 수 있는 범죄는 대부분 일반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 관련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정도다. 동영상 중에 '약'을 먹여 기절한 여성과의 성관계 장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제기된 혐의 중에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외엔 공익제보가 가능한 유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만약 수사결과 마약류관리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정준영 휴대전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범죄혐의를 권익위에 '공익신고'한 의미가 없어진다. 권익위가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범죄신고'가 됐지만 법에 따른 '공익신고'의 형태여야만 가능한 '신고자보호'를 기대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제14조에 "공익신고자의 범죄행위가 발견된 경우에는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형사책임 감면'도 제보자가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 ◇고객비밀 유출했다면 형사처벌 대상 될 수도 법에 따른 '공익신고자' 보호가 안 된다면 오히려 제보자가 범죄혐의자가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공익을 위한 제보라도 고객의 의사에 반해 고객의 비밀을 외부에 알렸다면 '비밀침해죄'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형사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소연 변호사(리인터내셔날 특허법률사무소)는 "헌법 제17조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자유권을 규정하고 있고 형법 제316조 제2항에 의해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도화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그 내용을 알아 낸 경우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복구나 수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맡겼다고 해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기술적 수단 등을 이용해 그 내용을 알아냈다면 비밀침해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씨가 휴대전화를 맡기면서 데이터 확인절차가 필요한 데이터복구업체 업무 특성상 동영상이나 카톡대화를 일시적으로 확인해도 된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업체 직원이 이 데이터를 고객이 아닌 제3자에게 사후에 전달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김운용 변호사는 "카톡 대화가 파일 형태로 돼 있긴 하지만 제3자간의 통신내용인 점을 고려하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재판에 넘겨질 경우에는 '증거 능력'도 문제될 수 있다. 업체 직원이 복구한 파일이 맞다면 법리적으론 '사인(私人)'에 의한 위법수집증거가 된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가 기록된 파일을 제3자가 취득해 넘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해당 자료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사인에 의한 위법수집증거가 배제되는 건 아니다. 제한적으로 비교형량을 통해 증거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런데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는 불법감청 등으로 기록된 전기통신 내용은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따라서 증거로 쓰이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수사기관에선 정씨와 카톡 대화방 참여자 등 관련자들을 기소하기 위해선 이 파일을 참고해서 별도의 수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해야만 한다. 또한 업체에서 데이터복구한 자료가 방 변호사를 통해 권익위에 전달됐고 다시 검찰에 넘어갔다면, 그 과정에서 정보가 오염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경우의 데이터 파일은 증거로 쓰이기 어렵다. 유동주 기자 ━강남 클럽의 민낯…어쩌다 '범죄 온상'으로…━[버닝썬 게이트]현재 클럽, 과거 '클럽+나이트클럽' 형태…운영 방식·수익 구조 달라져 범죄 행위 움튼 듯 서울 강남 일대 '클럽'이 범죄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탈세부터 마약류 유포·투약, 경찰과의 유착까지 다양하다. 클럽 업계 관계자들은 클럽의 운영방식이 바뀌면서부터 범죄 행위가 움튼 것 같다고 말한다. 14일 클럽업계 등에 따르면 소규모 클럽까지 포함해 서울에만 클럽이 100여개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아레나 △버닝썬 △페이스 △강남메이드 △옥타곤 △매스 등이 매출 상위권으로 꼽힌다. 보통 저녁 10시에서 11시에 문을 열어 아침 7시에 닫으며, 버닝썬의 경우 목금토일 4일 영업하는 구조였다. 현재 강남 클럽은 춤추는 무대인 스테이지와 그 주변을 둘러싼 테이블, 룸(방)을 모두 갖춘 형태다. 과거 클럽은 주로 춤을 추는 공간만 갖췄는데, 클럽 업계가 성장하면서 테이블과 룸으로 이뤄진 나이트클럽의 특징이 합쳐졌다. 2000년대 중후반 나이트클럽이 구시대적 장소로 20대에게 외면받으면서 클럽과 나이트클럽이 섞인 지금의 '클럽'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수익 구조도 달라졌다. 과거 클럽과 나이트클럽은 술값과 입장료에서 주로 매출을 올렸지만 지금 강남 일대 클럽은 테이블과 룸에 비용을 청구해 매출을 얻는다. 강남 일대 한 클럽 관계자는 "강남서 1·2위를 다투던 버닝썬과 아레나는 매출 90% 이상을 테이블 손님에게서 얻고 있다"며 "아레나는 한 달 매출이 4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강남 일대 클럽 테이블 이용료는 보통 100만~200만원, 룸 이용료는 300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위치에 따라, 혹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테이블 가격이 700만원을 넘기도 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25만원부터 시작하던 테이블 값이 지금은 100만원대로 올랐고 그만큼 서비스도 달라졌다. 강남 일대 클럽이 과거 나이트 클럽의 부킹 서비스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클럽 매출 상당 부분이 테이블과 룸 예약 손님에 달려 있는 셈이다. 클럽에서는 고액을 지출할 수 있는 '큰손'을 유치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이 과정에서 '마약'과 '성접대', '불법촬영' 등 온갖 불법 행위를 벌인다고 클럽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클럽 버닝썬 개장 이후 112 신고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후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에 접수된 버닝썬 관련 신고 중 마약은 1건, 성추행 피해·목격 신고는 5건이었다. 실제로 버닝썬 대표인 이문호씨와 MD(머천다이저, 상품기획자) 조모씨, 중국인 애나 등은 모두 마약류를 흡입하거나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님의 이목을 끌기 위해 버닝썬은 1억원을 호가하는 일명 '만수르 세트' 상품을 기획하기도 했다. 실제 중동의 거부 만수르가 이용했다는 것으로 전해지는 만수르 세트에는 한 병에 수천만원인 '아르망 드 브리냑'과 '루이 13세 브랜디'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금이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혹하기 위해서라는 게 클럽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VIP 손님이라면 미성년자도 클럽 출입이 가능했다. 지난해 7월 미성년자가 강남 클럽 버닝썬에 출입해 수천만원대 술을 마셨고 부모의 신고로 경찰까지 출동했다.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버닝썬 대표가 경찰에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클럽과 경찰 간 유착 혐의가 드러났다. 방윤영, 임찬영 기자 ━성범죄에 뇌물·탈세까지…클럽 유착 어디까지?━[버닝썬게이트]"경찰총장'이 뒤 봐준다" 카카오톡 나오면서 유착 의혹 일파만파 '버닝썬'의 마약·성범죄에 이어 '아레나'의 탈세까지 서울 강남일대 클럽업계의 각종 범죄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영업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탈법을 감시·감독해야 할 당국이 오히려 의혹을 눈감아 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여기에 가수 정준영씨(30) 등이 들어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에 "경찰총장이 뒤를 봐줬다"는 내용까지 나오면서 경찰 최고위층 연루 '게이트'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경찰은 최고위층까지 거론되는 등 유착의혹이 일파만파 커짐에 따라 126명 규모 특수수사팀을 구성해 이번 의혹에 전면 대응에 나섰다. 가장 먼저 불거진 유착의혹은 강남경찰에 대한 뇌물이다. 단순 폭행, 성폭력 사건에서 권력기관 유착 의혹으로 급선회한 것도 사건무마 대가로 금품이 오갔다는 진술이 나오면서다. 지난해 7월 미성년자가 출입한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전직 경찰관 강모씨가 버닝썬과 경찰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강남경찰서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증거 부족'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이 당시 버닝썬의 여러 불법 정황을 묵인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그동안 버닝썬 폭행-성추행 사건을 수사해온 강남서를 배제하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수사를 일원화했다. 경찰은 버닝썬 공동대표 이모씨 등 뇌물 의혹에 연루된 인물을 여러 차례 소환 조사하며 유착 의혹을 밝히는 데 집중했다. 뇌물전달자로 의심받고 있는 강씨에 대해선 한차례 반려된 구속영장을 재신청, 15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앞두고 있다. 탈세 의혹에서도 빠짐없이 과세당국이 등장한다.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의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장소인 아레나에서 봐주기식 세무조사를 한 정황도 포착된 것이다. 국세청은 이씨의 성접대 의혹 장소로 지목된 클럽 '아레나'의 수백억대 탈세 혐의 조사 과정에서 전·현직 사장들로부터 실소유주에 대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세당국은 아레나의 150억원대 탈세 혐의 고발 당시 실소유주를 뺀 '바지사장'만 고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을 압수수색해 국세청에서 강씨를 제외하고 서류상 대표 6명만 고발했다는 점을 포착했다. 2017년 국세청에 들어온 최초제보에는 강씨가 등장했지만 고발장에는 빠진 것이다. 경찰은 강모씨가 아레나의 실소유주라는 진술을 확보하고 국세청에 고발을 요청했지만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클럽에 주류 등 각종 유통망을 둘러싸고도 탈세 의혹이 나온 상태다. 이들 유통업체에 자리잡은 전직 공무원들 '입김'이 작용한다는 설도 유착의혹을 키우고 있다. 이밖에 경찰은 아레나 측이 식품이나 소방 관련 규정을 두고 전방위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영상 기자 ━'아레나 탈세 수사' 난관…국세청 입만 보는 경찰━[버닝썬 게이트]국세청, 경찰의 고발요청 한달 넘게 외면…실소유주 지목 강모씨 '의혹 핵심 인물' 강남 유명 클럽 아레나 탈세 의혹과, 국세청 봐주기 세무조사 의혹 등을 수사 중인 경찰이 좀처럼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버닝썬의 폭행사건에서 시작한 각종 파문이 강남 일대 클럽과 각종 관가 유착의혹으로 번지고 있지만, 탈세의혹 수사만큼은 더딘 모양새다. 수사지연은 국세청에 이번 수사의 핵심 인물이자 아레나 실소유주로 지목된 강모씨에 대해 고발요청을 보냈지만 한달 넘게 회신이 오고 있지 않아서다. 국세청에서 고발을 미루면서 아레나 탈세 의혹, 국세청 봐주기 조사 의혹 수사도 난관에 봉착했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 등을 참고인으로 부르고 2차 압수수색으로 얻은 세무조사 자료를 분석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국세청 직원은 피의자로 전환된 사람이 없다"며 "국세청 직원을 참고인으로 계속해서 부르는 등 탈세, 봐주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고위관계자 연루 의혹과 2016년 가수 정준영 몰카 사건 무마 의혹 등으로 경찰 전체가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끌어낼 카드로 보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검찰로부터 내려받은 아레나 탈세사건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라는 게 경찰 안팎의 해석이다. 문제는 아레나 탈세 의혹의 핵심인 강모씨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해 8월 국세청이 고발한 아레나 전현직 사장 6명을 조사하면서 실소유주가 강씨라는 정황과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강씨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올해 1월 말쯤 국세청에 강씨를 고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기려면 반드시 국세청의 고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추가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고발을 미루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강씨를 입건하고 피의자로 전환했지만 국세청의 고발 없이는 공소 제기가 안 되는 상황"이라며 "국세청이 고발해 주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국세청의 봐주기 의혹의 중심에도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을 압수수색해 국세청에서 강씨를 제외하고 서류상 대표 6명만 고발했다는 점을 포착했다. 2017년 국세청에 들어온 최초제보에는 강씨가 등장했지만 고발장에는 빠진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27일 강씨를 긴급체포한 뒤 다음날인 28일 증거 인멸 우려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보강을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경찰은 이달 8일 세무조사 과정상 작성된 서류 등을 확보하기 위해 국세청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세청에서 기존에 고발한 6명은 바지사장으로 보고 강씨에 대한 수사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기존 6명의 사건 처리는 향후 강씨와 함께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강씨에 대한 고발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세무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해명했다. 최동수 기자 ━'몰카방지법' 현주소…2·3차 유포자도 처벌━[버닝썬 게이트]처벌 수위 강화 추세, '유포 방지' 노력도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몰카'(불법촬영물)가 성행하면서 이를 처벌하기 위한 관련 법도 마련됐다. 국회는 201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을 제정했다. 14일 경찰에 출석한 가수 정준영씨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몰카 형량 강화, 2·3차 유포자도 처벌=이 법은 지난해 12월말 개정됐다. 예전보다 처벌 강도가 높아졌다. 자신의 신체를 찍은 촬영물을 유포하거나 동의 하에 남의 몸을 찍은 촬영물을 유포해도, 남의 몸을 동의 없이 촬영해 유포하는 행위와 똑같이 처벌된다. 복수심에 유포하는 '리벤지포르노' 등 불법 촬영물 처벌 역시 강화됐다. 촬영물이 촬영 당시 동의에 의해 제작됐어도 이를 동의 없이 유포하면 5년 이하 징역을 살거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자기 신체를 촬영해 유포하는 것도 범죄다. 이에 대한 처벌 수위도 남의 신체를 촬영해 유포하는 것과 같아졌다. 자기 신체 촬영물을 유포하다 적발될 경우에도 촬영자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 영리 목적으로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을 유포하면 무조건 징역이다. 당초 '징역 7년 이하와 3000만원 이하 벌금'이었던 형량에서 벌금형이 삭제됐다. 불법촬영물을 2차·3차로 유포한 자도 신상공개 포함 처벌을 받게 됐다. ◇불법촬영물 삭제 근거 신설, 식당엔 몰카 방지 의무=지난해 국회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불법촬영물 삭제지원 근거와 구상권 행사 근거를 만들었다. 또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명백한 불법촬영물에 대해 삭제∙접속차단 등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했다. 이를 위반하면 2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회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도 손을 댔다. 수사기관이 요청한 관련 불법촬영물을 삭제∙차단하도록 패스트트랙을 마련했다. 식당 등 공중위생영업자에 몰카 설치금지 의무 규정이 생겼다. '공중위생관리법'이 개정되면서다. 해당 법안은 감독관청에게 공중위생영업소의 몰카 설치 검사권을 줬다. 몰카가 단속된 경우 영업소 폐쇄 등 행정제재 처분을 내릴 근거가 생긴 것이다. ◇"몰카 처벌 더 강화"…계류중인 법안들=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13일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자는 내용이다. 윤 원내대표는 "최근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및 촬영물 유포행위 등 디지털성범죄로 인한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디지털성범죄에 엄격히 대응하기 위해 현행법상 벌금액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상향하는 등 처벌 수준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계류중이다. 몰카 등 범죄를 몰수·추징 대상 범죄에 추가하자는 내용이다.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도 계류중이다. 변형카메라 제조·수입·판매 등에 대한 사전규제를 도입하자는 게 골자다. '개인영상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개인영상정보의 안전한 처리·보호에 관한 사항을 규정했다. 개인영상정보 불법 유출 등으로 취득한 금품·이익은 몰수·추징토록 했다. 아울러 공중화장실 등에 몰카 설치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5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토록 했다. 김평화 기자 ━'정준영 루머' 해명, 왜 女연예인들 몫인가━[버닝썬 게이트]"사실무근"에도 女연예인 명예훼손…'신상털이'에 2차 피해도 심각 가수 정준영씨(30)가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및 유포 논란으로 14일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가운데, 사건과 관련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명예훼손이 심각하다. 또 불법 촬영물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도 발생하고 있다. ◇실검 등장·댓글 언급… 女연예인 명예훼손에 소속사 "사실무근" 정씨는 2015년 말부터 10개월간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성관계 동영상 등 불법 촬영물을 수차례 공유한 혐의(성폭력처벌특별법 위반)다. 피해 여성은 1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사건은 지난 11일 오후 정씨가 속한 카카오톡 대화방을 폭로한 SBS 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보도 이후 각종 '지라시'를 통해 아이돌 그룹 멤버 및 배우 등 여성 연예인이 이름이 거론됐다. 정준영과 친분이 있던 연예인을 걱정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 여성 연예인 다수의 이름이 올랐다. 또 '정준영 OO(여성 이름)' 등이 자동완성·연관 검색어로 형성됐다. 관련 기사 댓글이나 커뮤니티 글에서도 끊임없이 실명이 언급됐다. 이에 배우 이청아와 정유미는 12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걱정 말라'는 글을 올려 의혹을 에둘러 부인했다. 해당 배우들의 소속사는 공식입장을 통해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JYP엔터테인먼트도 12일 트와이스 공식 홈페이지에 악성 루머에 대해 "법적으로 가용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경고했다. 배우 오연서의 소속사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도 13일 "당사 소속 배우 관련 내용은 전혀 근거 없는 루머"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배우 오초희도 이날 SNS에 "정말 아니다. 전 관계없는 일"이라며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통의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14일 오전에는 문채원이 정준영 SNS에서 지속적으로 '좋아요'를 누른 모습이 포착됐으나 이는 개인 SNS를 해킹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몰카 상대는 누구?"… 2차 가해 일파만파 이처럼 여성 연예인들을 향한 루머와 해명이 잇따르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해명은 피해자의 몫인가", "왜 피해자에 이렇게 관심을 갖냐"는 반응도 나온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또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관계 동영상을 찾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각종 커뮤니티, 카카오톡 오픈 채팅, SNS 등 익명으로 대화가 가능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몰래카메라 상대가 누구냐', '동영상 구한다' 등 2차 가해가 발생했다. '여성가족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2차 가해는 △성희롱 사건에 대한 소문 △피해자에 대한 배척 △행위자에 대한 옹호 등의 형태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피해자 "몰카 피해자라는 주홍 글씨…신변 알려질까 두려워" 실제 피해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승리의 성 접대 의혹을 처음 제기한 기자는 한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그에게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고, 막막하고 두렵다"며 "살려 달라.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 토로했다. 또 "한 여자로서 이 몰카 피해자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어떻게 따라 붙이고 살아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하고 싶어도 신변이 알려질까 봐 너무나 두렵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2차 가해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불법강간약물' 사용, 성 접대 등 '버닝썬 사건'이 불거진 후에도 그랬다. 성인사이트엔 '버닝썬 동영상'이란 이름의 영상이 올라왔고, 각종 커뮤니티에도 "버닝썬 동영상을 봤다"는 글이 올라오자 "동영상을 어디서 봤냐"는 답글이 달렸다. 2차 가해는 경우에 따라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다.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내용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전할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전달받은 동영상을 재유포하는 것도 정보통신망법 제44조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 여성변호사들도 나섰다.14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불법촬영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즉시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정준영씨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혐의 '2차 가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지 경각심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어딘가에 영상이 있겠지', '누굴까? 나도 보고싶다'는 생각으로 검색하고 있다"며 "가해자 조사가 가장 우선인데, 피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나서서 해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황 평론가는 "유독 여성 피해자들에 주목하고 대상화하는 풍토가 있다. 이번 정씨 이슈에서는 '피해자'도 아닌 '피해녀'라는 워딩까지 등장했다"며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경찰의 부실수사나 전과자에 관대한 방송계 문화 등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민선 기자, 조해람 인턴기자 ━검·경수사권으로 더 달아오른 '버닝썬 게이트'━[버닝썬게이트] 검찰, 중앙지검서 직접 수사예정…경찰, 126명 대규모 수사인력 투입해 사활건 영역 다툼 지난 11일 밤 11시 세종시에서 올라온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들이 급하게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방문했다. 제보자로부터 받아 보관 중이던 정준영 휴대폰 파일을 직접 대검에 전달하면서 수사의뢰를 하기 위해서다. 권익위가 늦은 밤 먼 거리를 달려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건 경찰에 의한 압수수색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자료 협조요청에 권익위가 제보자보호를 이유로 응하지 않자 압수수색이라는 강제수사방법을 동원하기 직전이었다. 권익위 보관 자료가 대검에 넘어가자 13일 경찰은 아예 파일의 출처로 의심됐던 복구업체를 압수수색해 자료확보를 시도했다. 버닝썬게이트 초기부터 경찰은 인근 파출소 등 전현직 경찰들의 유착관계가 의심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의식한 경찰도 감찰반을 동원해 전반적인 자체 감찰과 수사를 동시에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권익위에 제보된 정준영 휴대폰 파일에 경찰 고위 관계자가 뒤를 봐준 것으로 의심되는 대화내용까지 있다고 알려지면서 경찰은 다급해졌다. 13일 아침 라디오방송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126명이라는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총력을 다해 수사하겠단 방침을 밝혔다. 경찰 유착의혹에 대해선 일단 사과를 하기도 했다. 권익위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도 행동에 나섰다. 법무부장관도 14일 국회에 출석해 사건을 검찰에서 다루기로 했다는 점을 알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가 수사를 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미 경찰에서 대규모 인력으로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검찰이 직접 나서겠다고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버닝썬게이트 관련 사건들의 파급력이 ‘검경수사권’ 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검·경 양측이 다분히 의식한 듯한 모양새다. 사건 초기부터 국민적 불신을 받고 있던 경찰도 나름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준영에 대해 이번 사건과 유사한 형태의 범죄신고가 들어와 지난 1월 이미 휴대폰 복구업체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했으나 반려당했다는 점까지 밝혔다. 검찰 탓이란 뉘앙스다. 이에 검찰도 즉각 반박했다. 2016년 정준영이 처음 동영상 촬영으로 입건됐을 때 ‘무혐의’ 처분받은 사건과 올 1월 영장신청한 사건이 별개란 점을 소명해 재신청하라는 수사지휘였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3년전과 지난 1월, 정준영 관련 과거 사건에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책임에 대해 서로 ‘네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준영·승리 등이 들어있는 문제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총장'이라는 단어가 언급됐다는 소식에, 경찰청장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굳이 ‘경찰청장’이 아닌 오타로 보이는 ‘경찰총장’이라는 카톡 원문 그대로 보도해달라고 한 점도 눈에 띄는 점이다. 대화 정황상 ‘경찰 고위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경찰은 검찰수장을 뜻하는 ‘총장’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살려서 ‘검찰총장’의 오타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전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 입장에선 검찰 고위 관계자도 연루됐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 문제가 터진 강남 클럽 등 업소를 관할하는 현장 경찰들의 유착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경찰은 연예기획사나 관련 사업가들과 검찰이 유착돼 있을 수 있다는 소위 ‘피장파장’ 전략을 쓰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검찰이 연예사업에 유독 관대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2014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검찰이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 박봄에 대한 마약수사에서 이례적인 ‘입건유예’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입건조차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야당 의원들이 문제 삼았다. 박봄 뿐 아니라 버닝썬게이트의 핵심인 승리가 속한 빅뱅 멤버들이 대마흡연과 교통사고 등의 사건을 일으켰을 때도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벼웠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수사의 최종책임과 기소여부 판단은 검찰에게 있기 때문에 검찰도 연예기획사들을 봐 준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을 중점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가운데, 수사권 조정이 임박한 시점에 터진 버닝썬게이트는 그런 면에서 검·경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대형 사건이 됐다. 중앙지검이 직접 수사하고 경찰청장이 매머드급 수사인력을 투입할 만큼 양 수사기관의 핵심 주요사건이 돼 버렸다. 유동주 기자 ━승리·정준영이 망친 한국 이미지?━[버닝썬 게이트]해외 K-POP 팬들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 부정적 반응… 외신도 '경찰 유착' '성매매' '몰카 범죄' 주목해 잇따라 보도 "K-POP 스타, 클럽 성매매 알선 사건에 연루" (美 NYT) "성매매 알선 용의자 된 승리… 몰래카메라·데이트 강간·성폭행, 한국의 고질적 문제" (美 CNN) "한국 문화 수출 핵심 K-POP 스타들… 한국 내 만연한 차별·폭력성 드러내" (佛 AFP통신) "승리·정준영이 보여준 한국, 몰카와 싸우는 나라… 한 해 보고된 몰카만 6000건" (英 BBC) "한국 상황, 한국 드라마에서 본 모습 그대로" (K-POP 해외 팬 트위터) '클럽 버닝썬' 관련 사건이 'K-POP 스타'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8)의 성접대 알선 의혹과 클럽 마약 투약 유통지 의혹, 경찰과 클럽 유착 의혹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나아가 정준영(30), 최종훈(29) 등 한류 연예인들의 불법 촬영 영상물(몰래카메라·몰카) 공유 의혹 등으로까지 확산하며 '버닝썬 게이트'로 비화했다. 해외 K-POP 팬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한국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고, 외신에서도 연일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국가 이미지 전반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K-POP 해외 팬들 "한국 경찰 당국과 정치권, 한국 국민 모두 문제" 15일 숨피(케이팝 관련 영문 웹사이트), 올케이팝(영어권 한류 사이트), SNS(사회연결망서비스) 트위터 등을 살펴보면 빅뱅 승리가 성접대 알선 피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게된 데 대해 한국 경찰 당국과 정치권, 나아가 한국 국민을 질타하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는 "진짜 한국 드라마 그대로다. 한국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유명인 승리를 이용하네" "포털 네이버는 승리 관련 이슈를 뉴스 상단에 유지해 여론을 조작한다. 대통령의 잘못들을 숨기려고. 박근혜 전 대통령때도 이랬었지"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 복구 정황에 이은 북미관계 악화 가능성, 미세먼지 등 민생의 어려움 등으로 지지율 하락(46.3%)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공유하고 이 같은 이유로 승리를 희생양 삼았다고 주장했다. 숨피에서도 해외 팬들의 '승리 감싸기'와 '한국 비판하기'가 이어졌다. 해외 팬들은 "승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나라들은 한국처럼 이렇게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결론짓지 않는다. 우리는 승리가 유죄로 밝혀질 때까지 결백하다는 걸 믿는다"거나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다뤄져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은 처음부터 승리를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할 수 있나? 언론과 대중 모두 말이다. 한국인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해외 팬들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전형적인 '사회심리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해외 팬들이 승리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가짜뉴스를 받아들이고 확산하는 심리와 유사하다"면서 "자신이 믿어왔던 것이 무너지는 데 대해 심리적 저항이 생겨,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인지하고 본인과 다른 의견을 보이는 한국 언론들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신들 "한국의 고질적 문제들, K-POP 스타들 통해 다시금 드러나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언론도 경찰 유착 의혹 등 K-POP 스타 승리의 '버닝썬 게이트'와 또 다른 스타 정준영의 '몰카 촬영 의혹' 사건에 주목했다. 외신은 빅뱅 승리가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만큼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는 동시에 정준영의 의혹 관련 '몰카 범죄'를 '한국의 고질적 병폐'라고 보도했다. 미 CNN은 13일(현지시간) "빅뱅의 승리가 성매매 알선 용의자가 됐다"고 보도하며 한국의 고질적 문제로 여겨지는 몰래카메라, 데이트 강간 및 성폭행 등과 이번 사건이 관계있다고 설명했다. CNN은 서이지(CedarBough Saeji)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한국 문화사회학 교수를 인용해 "한국에서 K-POP 스타는 국가의 대표이자 공적 소비 상품"이라면서 "버닝썬 사건이 진실이라면 그동안의 K-POP 문화에서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끊임없이 문제로 제기됐던 '몰래 카메라'와 '약물 성범죄'가 어떻게 여성을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AFP통신도 "한국 문화 수출의 핵심이었던 K-POP 스타들이 입길에 올랐다"면서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 만연한 차별과 폭력성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특히 AFP는 '몰카' 관련 이슈에 주목하면서 "최근 한국에서 '몰카' 관련 사건이 연이어 문제시되고 있으며, 지난해 여름엔 수만명의 한국 여성들이 몰카 근절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도 정준영의 몰카 범죄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BBC는 "한국은 최근 몇년간 마치 전염병과 같이 지독한 몰카 범죄와 싸우고 있다"면서 "한국 화장실과 탈의실 곳곳엔 몰카가 있고,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그대로 인터넷에 게시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은 2017년 한해에만 6000건 이상의 몰카 범죄가 보고된 나라"라고도 전했다. 이 밖에도 뉴욕 데일리메일, E온라인, 이브닝스탠더드, 포브스, T13 등 많은 외신이 이번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번 사건 관련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강화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스타가 마약과 연루된 일은 사실 해외 팬들이나 외신에도 충격은 아닐 것"이라면서 "하지만 '경찰 유착'이라든가 '몰카' 등의 이슈는 정말 충격적인 일로, 한국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이 서구 사회의 많은 이들에게 ''아시아의 그저 그런 나라'가 '역시나' 마약, 경찰 비리, 여성 차별과 여성 위협 등 나쁜 일들과 엮여있구나'하는 이미지를 주면서 이들의 오리엔탈리즘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은 기자 ━“K팝 넘어 대한민국 망신”…기획사 침묵 속 끝없는 신뢰 하락━[버닝썬 게이트]‘버닝썬·승리 게이트’로 본 케이팝의 미래…“경제적 손해는 물론, 대한민국 이미지까지 타격” 소위 ‘승리 스캔들’이 터진 이후 한류 스타들이 속한 대형기획사들은 말을 아꼈다. 말 한마디가 잘못 번져 또 다른 의혹을 생성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세세히 읽혔다. 승리가 속한 YG엔터테인먼트는 “메시지 조작” 멘트 이후 아무런 답변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중·대형 기획사 상당수 역시 연락이 닿지 않거나 답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케이팝의 향후 이미지 타격에 대해 “요즘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관련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또 다른 B기획사 대표 역시 “케이팝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 같다”고만 언급한 뒤 “더 이상 할 말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국내 기획사 관계자들이 말을 아끼는 사이, 외신은 서로 앞다퉈 버닝썬으로 촉발된 일명 ‘승리 게이트’에 대한 뉴스를 자세히 쏟아냈다. 영국 BBC는 11일(현지시간) ‘빅뱅:케이팝 스타가 성뇌물 의혹 속에 쇼비즈니스 중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승리의 성접대 의혹 수사와 가수 정준영 씨의 불법 촬영 동영상 등 디지털성범죄를 자세히 보도했다. 영국의 가디언지도 12일 'K-POP 스캔들:불법 성매매 혐의로 고발된 한국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타이틀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가디언지는 블룸버그를 인용, YG엔터테인트먼트의 주가가 14% 하락했으며 다른 케이팝 기획사들도 손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버라이어티는 지난 11일 "한국 가요계 거물 중 한 명인 승리가 성매매 여성 공급 혐의로 기소됐다"며 은퇴 소식도 함께 전했고 말레이시아 유력 일간 ‘더스타’ 온라인도 “승리를 둘러싼 일련의 의혹들이 한국 팝스타로서의 경력을 무너뜨릴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케이팝 스타 중 특히 일본과 아시아권에서 가장 잘 나가던 빅뱅 멤버의 추락은 단순히 빅뱅 그룹이나 YG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정점을 찍은 케이팝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는 비판과 함께 다른 케이팝 스타들의 해외 활동에 이미지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히 승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단체방 대화에 참여한 한류스타들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한국 연예계가 그간 깨끗하다고 여긴 해외 팬들에게 지저분하다는 이미지를 던져줬고, 이는 곧 케이팝 이미지의 전체적 실추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아시아권보다 미국이나 유럽 쪽 보도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성범죄나 마약 등을 가장 중요한 보도로 여기기 때문”이라며 “다시 말하면 아시아권에서 케이팝은 콘텐츠에 따라 재기할 여지가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선 이미지 실추 하나로 콘텐츠도 동반 하락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지금 케이팝을 이끄는 선두주자들이 대개 상업성과 거리를 둔 콘텐츠(가사나 장르)로 승부하면서 케이팝 브랜드의 차별화, 상업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성 등에 접근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콘텐츠 위선에 대한 논란, 브랜드 이미지 추락 등이 도마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헌식 평론가는 “약간은 저항문화적 기질을 가진 스타들이 그간 케이팝을 이끌었는데, 앞으로 공신력 있는 곳에선 케이팝의 가치를 높게 매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반 대중에게선 콘텐츠 자체로 재기할 수 있어도 심기일전 물갈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이번 사건이 여성이 혐오하는 범죄와 연루돼 케이팝 팬들의 상당수인 해외 여성 팬들의 충격이 작지 않다”며 “사건과 관계없는 다른 스타들에게 불똥이 튈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이 매년 늘어가는 추세에 맞춰 기획사의 관리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중견 기획사 C이사는 “신인 땐 관리 감독이 제대로 먹혀드는 것 같은데, 스타가 되면 통제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불안한 정서나 잘못된 성인식에 대한 전문가 교육 시스템을 좀 더 일찍,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경제적 손해도 엄청나겠지만, 무엇보다 케이팝을 넘어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까지 타격받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고금평 기자 ━'K팝 개츠비'의 몰락…외신이 본 승리·정준영 사태━ [버닝썬 게이트]이상적인 문화 수출품에서 마약·성접대 의혹 범죄자 나락까지 K팝 그룹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의 성접대 의혹이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촬영 혐의로 커지며 외신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정준영:비밀 섹스 비디오로 케이팝 스타 은퇴(Jung Joon-young: K-pop star quits over secret sex videos)'라는 제목으로 정준영의 연예계 은퇴 소식과 승리 성접대 의혹을 다뤘다. BBC는 "연예계 섹스 스캔들이 커지면서 두 번째 K팝 스타가 극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며 "이는 빅뱅 그룹 멤버인 슈퍼스타 승리로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영에 대해선 "버라이어티 쇼로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라고 표현했다. BBC는 정준영의 불법 촬영 혐의 기소가 처음이 아니라는 내용도 부연했다. 정준영은 2016년 9월 전 여자친구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했으나,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정준영은 "동의를 받고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BBC는 "한국에선 현재 포르노 불법 촬영을 근절하는 움직임이 급격히 퍼지고 있다"며 "2017년에만 신고가 6000건을 넘었다"고 설명했다. NYT도 같은 날 정준영이 불법 촬영 관련 사과문을 올렸다고 보도하며 "한국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촬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6500달러(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NYT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관련 법 진행이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NYT는 "지난해 (불법 촬영) 6800건 중 삼 분의 일 가량이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 열 건 중 한 건보다 적은 꼴로 징역형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프랑스 AFP 통신은 정준영의 경찰 출석 동영상을 메인 홈페이지에 편집자 추천(Editor's Pick) 중 하나로 올리기도 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준영의 소식과 함께 승리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뤘다. SCMP는 승리에 대해 "스캔들 전까지만 해도 잘생긴 외모, 성공적으로 보이는 사업, 화려한 파티 등으로 위대한 승츠비(승리+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이름)'로 불렸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SCMP는 팝 문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승리가 '이상적인 문화 수출품'(ideal cultural export)으로 여겨졌다"고 표현했다. 또한, 사태를 바라보는 빅뱅 팬들이 실망과 불신으로 양분됐다고도 언급했다. "몇몇 해외 팬들이 꽃을 든 사진과 함께 '꽃길에서 기다릴게'(지난해 3월 빅뱅 발매곡 '꽃길' 가사 일부)라는 문구를 올렸다"고 전했다. SCMP는 'K팝 레이블 YG가 승리, 지드래곤 등이 섹스·마약 스캔들에 휩싸이며 위기에 빠졌다'는 제목으로 승리뿐만 아니라 같은 그룹 멤버인 지드래곤의 마약 의혹 등도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YG 스타들의 연이은 마약 의혹으로 회사 평판은 더럽혀졌고, YG가 '약국'의 약자라는 조롱까지 얻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정준영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혐의로 출석했다. 정준영은 해외 촬영 중이던 지난 13일 새벽 입장문을 통해 "모든 죄를 인정한다"며 연예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승리 역시 성 매매 알선 혐의로 출석했다. 승리는 지난 10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뒤 12일 연예계 은퇴 소식을 알렸다. 강민수 기자 ━정준영, 그때 복귀하지 못했다면…━[버닝썬 게이트]"제작진 과거 비슷한 논란에 둔감하게 대처…책임 피하기 어려워" 수면 위로 드러난 가수 정준영씨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똑같은 논란이 3년 전에도 있었다. 정씨는 2016년 전 여자친구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피소됐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고 3개월 만에 복귀한 바 있다. 경찰을 비롯해 방송가도 정씨의 악행을 제지하지 못한 셈이다. 그로부터 3년 뒤 오늘(14일) 정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하게 됐다. 2015년 말부터 약 8개월 동안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지인들과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나 개인대화방에서 공유한 혐의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한 여성은 1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 검찰은 전 여자친구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씨가 피해자와 합의했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근거다. 수사기관이 당시 정씨의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최근 밝혀졌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16년 10월 자숙의 의미로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로 복귀했다. 당시 1박2일 제작진은 "무혐의 처분 이후 최근 잇따라 정준영 복귀에 대한 이슈가 생겨, 복귀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박2일 멤버들도 방송에서 정준영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 여론은 "이른 복귀"라며 비판했지만, 많은 대중들도 이후 '1박2일'을 비롯해 tvN '짠내 투어', '현지에서 먹힐까?' 등 그가 등장한 방송 프로그램을 즐겨 봤다. 정씨 외에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스타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복귀했다. 개그맨 이수근은 2005년 성폭행 혐의 논란이 있었지만, 무혐의로 판명돼 7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가수 겸 배우 박유천도 2016년 성추문에 휘말렸으나, 이후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고 최근 앨범을 발매했다. 가수 겸 배우 김현중도 임신, 폭행 관련해 전 여자친구가 제기한 소송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고 4년 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밖에 2002년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배우 이경영은 최근 SBS 드라마로 복귀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의혹 관련 연예인들의 복귀에 대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방송사가 출연자 선정 가이드라인 수립을 비롯한 전반적인 방송 제작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당시 '1박2일' 제작진 등이 성범죄 관련 혐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둔감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며 " 특히 '1박2일'은 대표 예능프로그램인만큼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무혐의라는 건 죄가 없단 게 아니라 법적으로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는 측면이 강하다"며 "고소를 취하하며 정리된 측면도 있는 만큼 그런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은 아무리 '리얼'이라고 해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며 "대부분 편집될 가능성이 높아 시청자들이 출연자의 문제를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방송사들의 출연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민선 기자 사회 > 일반 | 박준식 기자, 이영민 기자, 이동우 기자, 황국상 기자, 이재은 기자, 이미호 기자, 최민경 기자, 유동주 기자   2019.03.15 06:30


  • 아시아의 부국(富國)은 왜 가난해졌나

  •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①] 70년대까지 아시아 경제 이끌던 선도국가… 80년대 아시아 첫 여성대통령 배출하는 등 앞서나가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어릴 적 차를 타고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장충체육관 근처를 지날 때 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저기 밖에 봐봐, 저 체육관은 과거 우리나라가 잘 못살았을 때 필리핀이 만들어준거야. 당시 우리나라에 이걸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대. 돈도 없었고. 그랬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했으니 대단하지?" 훗날 어른이 돼서야 알게됐지만, 어머니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장충체육관은 건축가 故김정수의 설계로 서울시의 예산과 국고보조금 등으로 만들어젔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가난한 한국을 불쌍히 여긴 필리핀이 체육관을 무상으로 지어줬다거나, 한국인 엔지니어가 아닌 필리핀인 엔지니어가 설계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종의 유언비어였다. 하지만 이 유언비어는 꽤나 강력해서, 많은 국민은 아직까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책 등에서도 "1963년 개장한 장충체육관은 필리핀이 지어준 것이다" 등의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 이 같은 말을 큰 근거가 없는데도 수많은 국민이 그대로 믿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럴만해서'다. 필리핀은 과거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망했던 아시아의 대표 국가로, 수십년 전까지만해도 '꽤나 잘 살고' '정치적으로도 선진적인' 아시아 국가로 자리했었다. 필리핀은 독립이후 1970년대까지 아시아의 경제를 이끄는 경제 선도국가이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창설한 주도한 국가였다. 필리핀에는 금, 구리, 니켈, 크롬, 알루미늄 등 풍부한 광물이 있다. 연중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가져 쌀, 옥수수, 바나나, 설탕, 사탕수수, 카사바 등 농작물 생산도 풍부하다. 이런 필리핀은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한 뒤 1950년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바탕으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성장을 이룩했다. 이후 마르코스가 집권한 첫 시기(1965년~)에도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제조업 분야에 민간자본의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상당기간 성장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966년 기준 필리핀의 GDP(국내총생산)은 63억7100만 달러였다. 당시 한국의 GDP는 39억2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필리핀의 GDP는 동남아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높은 것이었다. 1966년 태국의 GDP는 52억7000만 달러, 말레이시아 GDP는 31억4400만 달러였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자연히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아시아의 부국으로 자리한 필리핀에는 각종 국제기구도 자리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아시아개발은행(ADB) 본점 역시 이 당시 아시아의 대표국 필리핀에 생긴 국제기구 중 하나다. 1963년 유엔아시아유럽경제위원회(UNECC)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회의에서 ADB 설치가 통과된 뒤 1966년 12월19일, 마닐라가 ADB 유치지로 최종 낙점됐다. 뿐만 아니다. 필리핀은 정치적으로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발짝 앞서 나가는 이미지였다. 필리핀에는 '태평양의 아이젠하워'라 불리는 막사이사이가 있었다. 막사이사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게릴라를 이끌고 일본과 싸웠으며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국방 장관을 거쳐 1953년 제7대 대통령이자 필리핀 공화국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공산주의자들의 후크발라합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내란을 수습하면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대통령 임기 중 막사이사이는 그의 청렴성으로 또 한번 존경을 받았다. 그는 가족 및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부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우상화를 경계해 도로, 다리, 및 건물 등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호명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또한 대통령 의전 특권을 반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국민에겐 가히 파격적인 지도자였다. 그가 1957년 세부 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순국하자 전세계적 추모 물결이 일었다. 1958년 록펠러 재단이 막사이사이 재단을 설립, 막사이사이상을 제정했을 정도다. 막사이사이상은 자유를 위한 막사이사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시아 발전에 이바지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참고로 한국인 중 장준하, 김활란, 법륜스님, 윤혜란, 박원순 등도 이 상을 수상했다. 이후 필리핀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독재 정치 시기를 거치며 암흑기에 빠져든다. 마르코스는 1965년 국민당 공천으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 뒤 21년간 장기집권했다. 물론 마르코스 역시 집권 초기에는 농공업 정책을 시행하고, 토지 개혁 등을 시도하는 등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본인을 비롯 친인척과 수구 엘리트 세력의 재산 수호에 급급하는 등 전형적인 독재자가 된다. 19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하여 정당활동을 금지하고 정적과 언론인을 투옥하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필리핀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존경심과 부러움은 급격히 낮아졌다. 마르코스가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을 암살하고 국민의 신임을 잃어 반마르코스 열풍이 불었는데, 이때 대다수 필리핀 국민의 지지를 받아 베니그노 아키노 의원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필리핀은 마지막 기회를 얻었다. 민중의 힘으로 정권을 재창출했고, 민주정권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1986년 2월25일, 독재정권과 부패한 관리, 무능한 정부 등에 대항해 민중이 궐기하고 이로써 마르코스 대통령이 물러난 사건을 '피플파워'(People Power·민중의 힘) 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시 한국을 비롯 주변 국가들은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했던 때였기에 필리핀 국민이 창출해낸 정권과 배출한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의 부러움을 받았다. 더군다나 코라손 아키노는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자, 이처럼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 이미지였고 1970년대까지 마닐라는 해외 다른 유명 도시에 밀리지 않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1980년대엔 민주주의 측면에서 앞서가는 정치문화적 리더의 면모도 보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필리핀은 이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불린다. 필리핀 통계청의 2009년 자료에 의하면, 5인 기준 가구당 월 소득이 134달러 이하인 빈곤층이 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필리핀 도시 곳곳은 마약과 마피아로 가득해 위험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필리핀을 함부로 여행할 경우 여권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필리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나가 세계 곳곳에서 일한다. 필리핀은 이제 '가정부의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명 필리핀은 진보하거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오히려 퇴보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문제들이 필리핀을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싱가포르판 '김치 논쟁'?… "치킨라이스는 내거야" [이재은의 그 나라, 싱가포르 그리고 치킨라이스 ①] 참고) (☞"아시아 국가는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이재은의 그 나라, 싱가포르 그리고 치킨라이스 ②] 참고)는 "잘못된 지도자는 첫 번째 임기에 정권을 망치고, 두 번째 임기에 나라를 망친다"면서 필리핀의 처참한 발전상에 대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독재와 관련해 비판했다. 과연 필리핀의 현재 모습은 정말 마르코스 시기의 잘못된 정책들에서 비롯된 것일까. 다음 편에서는 필리핀의 현재 모습을 짚어보고 어디서부터 필리핀이 꼬였는지 하나씩 살펴본다. ☞[이재은의 그 나라, 필리핀 그리고 빈국 ②] 계속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3.11 06:05


  • "오지마!"… 관광객에 질린 <strong>나라</strong>

  • [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관광객 ②] 독일 베를린, 관광객 많이 찾은 도시 3위… '오버투어리즘' 문제 겪어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Tourist : your luxury trip my daily misery." (관광객 여러분, 당신의 호화스런 여행은 내 일상의 고통입니다.) 몇년 전까지 서울 대학로 근방 이화동 벽화마을을 즐겨 찾았다. 산 중턱 높은 고도에 위치해 발밑에 서울이 쫙 펼쳐보이고 바로 옆엔 낙산공원 성곽이 둘러져있는 데다가, 아름다운 벽화가 가득 그려져있어서다. 낮에 가면 따뜻해서, 밤에 가면 한적해서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감흥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 기사를 읽은 뒤 내 존재가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겐 방해물이 된다는 걸 알게돼서다. 기사는 이화마을 주민들이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이들이 내는 소음 등으로 고통받아 벽화를 지우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고보니 혼자 앉아 주변을 구경할 때, 큰 소리로 떠드는 이들이나 남의 집 문 앞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이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곳은 이화마을 뿐만 아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서촌 세종마을, 통영 동피랑마을, 부산 감천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도 유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관광객들로 인해 거주민들의 생활이 파괴되는 걸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고 부른다.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일컫는 '오버투어리즘'은 환경·생태계를 파괴하고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 같은 현상은 관광객들의 목적지가 국립공원, 테마파크 등 전통적 위락시설에서 도심 및 지역사회로 확산되면서 나타났다. 과거의 관광형태가 관광지와 주거지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오늘날엔 관광을 위한 장소와 주거 목적의 장소가 혼재돼있기 때문이다. 주거지가 관광지로 개발되고 관광객이 주거지를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관광객과 지역주민 간의 갈등은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관광지화'를 의미하는 touristify와 지역의 상업화로 인하여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을 의미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합성어. 일반 주거지역이 관광지화됨에 따라 실생활에 불편을 겪는 주민이 이주에까지 이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버투어리즘과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는 모두 초기엔 이 같은 문제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주민이 떠나 지역사회가 공동화되기 시작하자 문제를 인식했다. 이탈리아 북서부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대표적이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으로 구성돼 177개 수로에 400여개의 다리가 놓여져 아름다운 풍경을 가졌다. 이 때문에 연간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베네치아 인구는 5만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관광객은 2500만명에 육박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관광객이 남기고 떠난 쓰레기로 가득찼다.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점 대신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숍이 들어섰다. 현지인들이 드나들던 식당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졌고, 대신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값이 비싼 식당만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베네치아에선 2010년대 초반부터 대형 크루즈의 정박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관광객을 상대로한 폭력사건까지 벌어졌다. 1955년 17만5000여명이었던 인구는 날이 갈수록 감소했다. 인구가 5만명을 찍으며 도시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베네치아 당국은 관광세 등 세금을 도입해 비용 부담을 높이는 방식으로 관광 수요를 억제했고, 주거지역으로 들어오는 지점 두 곳에 회전문으로 된 검문소를 설치했다. 성수기엔 현지 주민만 통과시키려 한 조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마요르카, 포르투갈 포르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그리스 산토리니,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히말라야 부탄, 일본 교토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했다. 유럽도시 마케팅 벤치마킹 리포트에 따르면, 베를린은 2015년 1237만명이 찾으며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 이어 관광객이 많이 찾은 도시 3위에 자리했다. 기본적으로 인기 관광의 흐름이 좀 더 '현지인스럽게', 좀 더 '주거지'로 바뀌면서 다른 도시도 영향을 받았지만, 베를린의 경우 더욱 큰 영향을 받았다. 베를린은 '힙스터 도시'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에펠탑·타지마할·마추픽추… 상징물 없이 관광대국 된 나라 [이재은의 그 나라, 독일 그리고 관광객 ①] 참고) 힙스터는 '꾸며진 것' '작위적인 것'을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누더기가 된 옷을 사랑하고, 주름진 얼굴을 굳이 화장으로 가리지 않으며, 허름한 건물을 부시지 않고 다시 정비해 새롭게 사용한다. 이런 힙스터들은 여행을 가더라도 관광객 스타일로 하길 원치 않는다. 각종 '타워'나 '동상' 등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 등의 관광 말이다. 대신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타인'의 눈에서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완전히 도시에 동화돼 '현지인'의 눈에서 바라보길 원한다. 이 같은 힙스터 트렌드가 전세계적 흐름과 맞물릴 때 등장한 에어비앤비는 '동네 놀이'를 가능케하면서 힙스터들의 구미를 완벽히 잡아냈다. 호텔과 비슷한 값에 현지인이 가는 마트를 가서 식재료를 사고, 현지인처럼 요리해서 밥을 먹고, 현지인처럼 한적한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게 해 '현지인 로망'을 충족시켜주면서 말이다. 당국도 이 같은 흐름을 반겼다. 베를린 관광청은 '동네를 경험하다·베를린 12개 지역 현지인처럼 즐기기'(Kiez erleben) 여행 관광 소개서와 앱을 발간해 어떻게하면 좀 더 현지인처럼 베를린을 즐길 수 있을지 소개했다. 페트라 헤도르퍼 독일관광청장은 "독일 관광 지표는 세계 경쟁 속에서 강력한 포지셔닝을 통해 발전을 해왔다. 세계 여행객 수가 천천히 증가하는 반면 독일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진짜 현지인'이 입게 됐다는 것이다. 베를린의 집값은 유럽에서 비싼 편이 아니었지만,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 동안 115%나 뛰어올랐다. 결국 베를린은 2016년 법으로 에어비앤비 규제를 강화했다. 베를린 당국은 단기 체류자를 위해 불법적으로 집을 임대하는 경우 10만 유로(1억3천만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이처럼 규제가 심해진 후 아파트 8000채가 일반 임대 아파트로 전환됐다. 또 베를린 곳곳 일명 '핫한' 지역에선 독어가 아니라 영어만 쓰는 카페가 늘어갔다. 2017년 당시 기민당 소속의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은 "요즘 베를린 식당들은 오직 영어만 사용한다"면서 독일이 점차 이민, 관광객 위주로 변화하고 있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독일 언론은 장관의 발언에 더해 프렌츠라우어베르크, 미테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서도 "관광객이 싫다"거나 "독일은 산업 구조가 탄탄해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적은데 왜 관광산업을 키워야하냐"는 등 반감 여론이 생겨났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1980년 2억7800만명이었던 세계 관광객 수는 2000년 6억7400만명으로 증가했고, 2017년에는 13억명을 기록했다. 관광객들이 이처럼 늘어난 이유로는 중국의 중산층 증가와 저가 항공 활성화, 먼 여행지들까지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기술 향상, SNS(사회연결망서비스) 활성화 등이 꼽힌다. 2030년 세계 관광객 수는 18억명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앞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나날이 더해가면 더해갔지 잦아들진 않을 것이란 소리다. 어쩌면 이제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국제적이고 전지구적인 문제가 된 것 같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고, 온실 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 오버투어리즘 문제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하는 시점이 온 게 아닐까. 참고문헌 관광지화된 주거지역 주민의 혼잡지각과 정주성 관계분석, 한양대, 남윤영 독일 세계를 읽다, 가지, 리처드 로드 사회 > E이슈 | 이재은 기자   2019.02.25 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