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생태도시' 순천은 어떻게 900만 명을 불러 모았나

본문





'생태도시' 순천은 어떻게 900만 명을 불러 모았나

천권필 입력 2018.11.04. 06:01 수정 2018.11.04. 07:49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천권필의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대표하는 축제인 ‘순천만 갈대축제’ 모습. [사진 순천시]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고속열차(KTX)를 타고 전남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인 순천만습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넘게 걸리던 곳이 KTX가 다닌 뒤부터는 2시간 반으로 줄었습니다.

순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달려 순천만습지에 도착했습니다. 평일인데도 전국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인해 입구에서부터 북적였습니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도 쉴 새 없이 오갔습니다.

평일이라 그래도 이 정도인 겁니다. 주말에는 하루에만 3만 명이 넘게 찾아와서 줄을 서서 구경할 정도예요.-손용현 순천만자연생태해설사
손용현 순천만자연생태해설자가 순천만습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순천 토박이인 손 씨는 교직에서 정년 퇴임한 뒤부터 7년째 생태해설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습지에 들어가니 황금빛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그 사이로는 S자로 꺾인 수로를 따라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철새들의 낙원’ 답게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새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며칠 전 흑두루미 한 쌍이 겨울을 보내려고 순천만을 찾아왔다는 설명에 대자연의 한복판에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손 씨는 “어렸을 때만 해도 순천만은 각종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였던 곳”이라며 “요새는 외국인들도 이렇게 갯벌과 갈대가 잘 보존된 곳이 없다고 놀랄 정도로 대표적인 생태관광지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흑두루미 보호 위해 전봇대 뽑아
순천만습지. [사진 순천시]
순천만습지는 22.6㎢의 갯벌과 5.4㎢의 갈대 군락지에 수달과 갯게 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입니다. 국내 유일한 흑두루미의 월동지이자 240여 종의 철새들이 계절별로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 씨의 말대로 20년 전의 순천만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도시와 농장에서 각종 오수가 유입됐고, 쓰레기도 무분별하게 버려졌습니다.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1992년 쓰레기가 쌓여 있는 순천만의 모습. [사진 순천시]
그러던 중 1993년에 이곳에서 갯벌을 파내고 모래를 채취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순천만을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그 결과 1998년 골재채취사업은 취소됐고, 2003년에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순천만의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순천시는 습지보호지역 주변에서 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의 토지를 매입해 습지복원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수질을 오염시키던 오리농장과 습지 인근에서 운영되던 식당들도 모두 철거했습니다.

순천만을 찾아오는 철새들을 위해서는 인근 농경지의 전봇대 280여개를 전부 뽑고, 친환경 농법으로 수확한 쌀을 정부가 수매해 두루미의 먹이로 뿌려줬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2009년 80여 마리였던 흑두루미 개체 수는 지난해 2176마리로 증가했습니다.

순천만에서 월동 중인 흑두루미. [사진 순천시]
2006년에는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됐고, 2011년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가이드:한국편’에 순천만이 소개되면서 국내를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올해에는 순천시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제적인 ‘생태도시’로 인정받았습니다.


100년간 경제적 가치는 2조 3천억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대표하는 축제인 ‘순천만 갈대축제’ 모습. [사진 순천시]
순천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순천시 방문객 수는 2014년 614만 명에서 지난해 907만 명으로 30% 이상 늘었습니다. 서울 인구에 이르는 천만 명 가까이가 지난해 순천을 찾은 셈입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9월 한 달 동안 64만 명이 순천을 방문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대로면 조만간 연간 방문객 수가 천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순천만습지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얼마나 될까요?

2014년에 발표된 ‘순천만 생태복원에 따른 경제 가치 평가(황민섭 고려대 대학원 외 2인)’ 논문에 따르면,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들의 여행비용(생태관광)을 분석해보니 연간 1747억 원의 편익이 발생했습니다. 향후 100년 동안의 경제적 가치는 2조 3569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자연을 보전해 온 순천시의 선택이 이런 경제적 가치를 낳은 셈이죠.


관광객 분산 위해 탄생한 순천만정원
국내 제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그렇다고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방문객 수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이른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으로 인해 환경오염과 서식지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죠.

순천시 입장에서는 생태적 가치를 보호하면서 밀려오는 관광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과제가 된 것입니다.

순천만정원은 남쪽의 순천만과 북쪽의 도심 사이에서 완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순천시]
순천시는 고민 끝에 2013년 순천만습지와 도심 사이에 ‘순천만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남쪽으로 점점 확장하는 도심 개발의 차단막 역할을 하는 동시에 순천만습지에 몰린 관광객을 분산시키자는 의도에서였습니다.

또, 입장 수입의 10%를 순천만 보전 기금으로 조성해 습지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투자했습니다.


“탐방예약제 등 대안 고민해야”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대표하는 축제인 ‘순천만 갈대축제’ 모습. [사진 순천시]
이런 노력은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관광객 수가 이미 수용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순천만습지가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방문객 수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암산 정상부에 있는 국내 1호 람사르 습지인 ‘용늪’은 탐방예약제를 통해 하루 250명만 방문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천만 역시 과거 차량 진입을 줄여보려고 주차장 사전 예약제를 시도했지만, 민원 등으로 인해 결국 없던 일이 됐습니다.

김학수 순천만생태관광협의회 대표는 “많은 탐방객으로 인해 생태계가 간섭현상을 빚고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정 탐방객 수를 조절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다른 관광지와 달리 생태관광지에서는 환경에 대한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탐방객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광과 보전,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순천의 선택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순천=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관련 태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