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앙행정 분산화 추진…각급 공공기관 지방 이전 가속
행정학교, 스트라스부르시로 프랑스 정치·행정엘리트 산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프랑스의 지방분권형 개혁은 2003년 개헌으로 이어졌다. 리옹,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 등은 이를 통해 지방조직을 구축해왔다. 프랑스는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재정자주권과 자치입법권 등을 지역에 넘겨줬다. 성공적인 지방분권 모델을 완성한 프랑스의 도시 중 전북이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프랑스 동쪽 끝 알자스 지방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다. 스트라스부르는 인구 65만 명 규모의 전주시보다 훨씬 적은 27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만 도시로서 국제적 위상을 확립했다는 평가다. 본보 취재진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현지를 찾아 롤랜드 리즈 시장과 주요 관료 등을 만나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조건 등을 논의했다.
△프랑스의 지방분권개헌 ‘말보단 실천을’
프랑스는 지방분권 개헌 추진을 단순히 지방자치의 헌법적 보장을 확인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는 중앙과 지방간 권한 배분을 통한 국가 조직의 분권화, 지방 민주주의 발전, 자치행정 및 재정 강화 등을 실천에 옮겼다.
프랑스 개정 헌법 제1조는 “프랑스 국가조직은 지방 분권화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상급 자치단체인 레지옹(지역)은 중급 자치단체인 데파르망(도) 및 최하급 자치단체인 코뮌(시읍면)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지방자치단체이며 다른 지자체들에 대해 최소한의 통제도 행사할 권한을 갖지 않는다. 오직 국가만이 지자체를 통제하기 때문에 레지옹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통제를 행사한다.
자치재정에 대한 규정도 강화됐다, 개정 헌법 제72조는 지방자치단체는 법률이 정하는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재원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한 법률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간 형평을 촉진하기 위해 재정조정제도를 정하고 있다.
지자체에 법규 제정권을 인정하고 자치입법권도 가지게 만들었다. 개정 헌법(제72조 제2항, 제3항)에 근거해 중앙정부(총리)의 법규 제정권에 의한 관할 범위가 규정되지 않은 경우에 지자체의 법규 제정권이 행사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프랑스에서 지자체 조례는 법률 적용을 위한 조치, 절차 등을 규정하는 법규 제정권의 성격이 아니라 법률 집행을 위한 조치, 절차와 관련된 이차적 성격의 법규 제정권을 의미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한 ‘주민투표제’도 개정 헌법에 들어갔다. 기존의 자문형 주민투표제는 의사결정형 주민투표제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판 혁신도시 계획
프랑스정부는 지난 1991년 중앙행정 지방 분산화시책 일환으로 국립행정학교(ENA)를 비롯한 20여개 각급 공공기관을 각 지방 도시로 이전키로 결정했다.
프랑스 국토관리위원회는 지방분권화 촉진, 국토의 효율적인 운영, 수도와 지방간의 균형 있는 발전, 파리근교 소외지역을 없애자는 취지아래 중앙행정. 기관을 대폭 이전시켰다.
프랑스 판 혁신도시의 역사는 우리보다 길다. 이들도 처음에는 파리 외곽으로 이전한 데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현재는 지방자치의 일원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도시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중심도시인 스트라스부르는 20세기 후반 이후 유럽의 지방분권화의 흐름 속에서 가장 많이 발전하고 있는 도시로 꼽힌다. 올해 기준 인구수는 27만으로 프랑스에서는 7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수는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인 전주시에도 턱없이 못 미치고 있지만, 스트라스부르가 보유한 국제적 위상은 남다르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유럽연합의 유럽의회와 유럽 인권 재판소, 유럽 평의회 등 EU 주요 정치기구가 소재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물론 독일 메르켈 총리도 EU관련 중요 문제를 논의할 때 스트라스부르에서 회의와 연설을 주재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에 이 같은 주요 기관이 위치한 것인 프랑스와 독일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지방분권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다.
스트라스부르에는 프랑스 고위 공무원을 육성하는 국립행정학교(ENA) 본교가 소재하고 있어 수많은 국가엘리트가 이곳에서 배출되고 있다.
지방분권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의 정치와 행정 엘리트를 양성하는 국립행정학교가 스트라스부르로 이전한 것이다. 스트라스부르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만든 문화전문채널 ARTE 방송국 본사도 자리 잡고 있다.
전북 전주와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 이 두 지역은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닮은 점은 둘 다 지리적으로 중앙정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문화도시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화시대 변방부로서 소외당해왔던 점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 유럽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권·균형발전이 만든 ‘시민중심’ 국가
파리와 스트라스부르는 5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두 도시간 이동시간은 프랑스 고속열차 떼제베(TGV)로 2시간 10분 남짓 소요된다.
줄리앙 치아 폰 루체시 스트라스부르 외교특보는“5시간 걸리던 두 도시 간 거리가 이제는 2시 간 대로 줄어들었다”며“조만간 철도개선과 교통망 확충 등이 더 이뤄지면 1시간 대 진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혁신은 시민의 편의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지방자치는 지방에 그리고 그 각 지방에 사는 국민들에 균등한 경쟁력을 부여하자는 의미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며“오랜 시간 중앙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나줘 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줄리앙 특보는 또한“지방분권이 무조건 지역의 발전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중앙정부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예산의 적정성을 판단해 집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긴축정책을 시행해 지자체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