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과락 겨우 면해, 설계한 정부·국회 점수는 20점"--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7. 10. 28. 11:58시민, 그리고 마을/지역자치분권운동




[최경철이 만난 사람]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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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7 00:05:01크게보기작게보기프린트이메일 보내기목록

"지방자치 과락 겨우 면해, 설계한 정부·국회 점수는 20점"
 

오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다.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모르는 이들이 적잖고, 또 그들 스스로가 지방자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중앙정부라 하면 높아 보이고, 지방정부라 하면 '촌' '시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아직 많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지방이 살아야, 지방이 자치를 통해서 경쟁력을 키워야, 대한민국이 잘살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민들의 주머니도 두둑하고 정치적 안정도 이룩해낸 세계 선진국가들의 성공 비결은 튼튼한 지방자치였다.

그 때문에 우리 국회도 지방에 획기적으로 권한을 넘겨 주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통해 지방분권이 제대로 명시된 새로운 헌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작업에 동참하고 있는 국내 지방자치 분야 권위자이자 분권 운동가인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난 20일 국회에서 만났다.

-가장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지방분권 운동을 하고 지방자치의 제도화를 위해 이토록 열성을 다하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나?

▶독일에서 유학했다. 1986년에 갔는데 독일 사람들은 우리하고 많이 달랐다. 내가 살던 곳이 인구 30만 명의 뮌스터였다. 한국에서는 소도시지만 독일에서는 대도시로 본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태어나 직장생활을 하고, 그곳에서 늙어가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30만 도시에서 충분한 문화, 의료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살펴봤다. 바로 지방자치였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확신이 생겼다. 우리나라가 번영하고 국민이 행복하려면 권력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문적 주장만으로는 안 되니까, 학회에서 매일 얘기해 봐야 영향력이 없으니까, 시민운동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시민운동과 결부된 지방분권운동을 펴게 됐다.

-29일이 지방자치의 날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전반적으로 과락을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물 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지방자치를 건축물에 빗대보면 설계하는 사람, 시공하는 사람,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지방차지 설계자는 중앙정부와 국회다. 그런데 설계자들의 점수는 20점도 안 된다. 한참 과락이다.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 설계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 한다. 지방자치가 도입될 때부터 설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대안도 제시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 공사하는 사람이야 설계도대로 시공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부실공사가 나오거나 건물이 제대로 기능을 못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설계자의 책임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방자치제도의 폐해를 언급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을 얘기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설계자의 문제다. 지방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책임은 제도를 설계한 국회와 중앙정부의 지방자치 주무부서가 져야 한다. 지방자치 주체 가운데 지방정부는 열악한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방의회의 문제점도 지적하는데, 문제는 분명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결기관의 특수성으로 볼 수 있다. 국회도 국가기관 중 신뢰도가 가장 낮다. 또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다 보니 지방의회 의원들이 주민보다 국회의원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고 눈치를 보는 문제점이 있다.

-지방의 주인은 주민들인데, 주민들의 책임은 없나?

▶주민들은 선거만 해 놓으면 지방자치가 되는 줄 안다. 그 때문에 주민이 지방의 소비자로 전락했다. 지방자치는 원래 주민의 자치다. 주민이 지방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도가 주민을 지방자치의 소비자로 한정시킨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주민들의 역할이 수동적으로 돼 있고 자치의식도 낮다. 지방자치제도 설계의 문제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주민들은 '지방이 잘못되면 내 책임(손해)으로 돌아온다'는 의식이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주민들의 자치의식도 기대한 만큼 충분하지 않다. 주민들의 역할은 과락수준은 아니지만 높게 평가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주민의 자치의식은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다.

-주민들을 깨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체험을 해야 한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내 생활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 중요성을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학습을 할 기회가 없다. 주민들이 자치를 체험하려면 풀뿌리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자치기구의 인구가 1천 명 또는 2천 명인 곳에서는 주민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동네가 달라진다. 편의시설이 달라지는 등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세금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러면 주민들이 '내가 세금을 더 내더라도 우리 생활공간을 더 개선해야겠다. 아니면 세금을 더 내지 않더라도 행정을 혁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의 역할이 거의 없다. 주민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향유하는 위치로만 전락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외국처럼 자치단체 규모를 줄여야 하나?

▶쪼개야 한다. 많은 정치인들이 풀뿌리 자치를 없애고 주민들이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하고 있는데 아주 형식적이다. 주민자치위원들을 만나보면 '이게 자치냐'라고 하소연을 한다. 오히려 자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것들은 제도설계를 잘못한 주무부처 행정안전부와 국회의 잘못이다. 지금도 국회의원이나 행안부의 일부 관료들은 지방자치단체 규모를 키우려고 생각한다. 효율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방자치가 잘되는 나라의 지자체 규모는 어떤가?

▶스위스는 자치단체 60% 이상이 인구 1천 명 미만이다. 평균이 3천 명 정도 된다. 스위스에서도 자치단체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스위스에 가서 한 경제학자를 만났는데 '못산다고 해서 통합을 하면 잘살게 되느냐'고 되묻더라. 그 학자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 내용은 '지방이 통합을 해야 잘산다는 논리는 거지가 결혼을 하면 잘살게 된다는 논리와 같다'였다. 우리는 지방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려면 통합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내가 스위스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인구 400~500명인 자치단체도 가 봤다. 인구 500명 정도 되는 지방자치단체에 공무원이 2.5명 수준이다. 잘 돌아가고 있다. 숫자로 보면 오히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공무원 숫자가 더 적다. 스위스는 행정효율 측면에서 앞서는 나라다. 스위스의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1990년대 말 3천300개 정도였다가 지금 많이 줄었는데 2천 300개 정도 된다. 평균인구가 3천 명이다. 작은 지방정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높은 효율성을 보인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 때문에 혁신이 잘 된다. 왜냐하면 지방끼리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이를 통해 매년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위를 거의 기록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제도화가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개헌인가? 헌법 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현재 법제도하에서 가능하지는 않은가?

▶핵심이 헌법이다. 현재 우리 헌법은 지방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헌법이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지방정부가 활동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세세하게 법률로 규율되고 있다. 사실상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법률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시키는 국회와 중앙정부는 지역발전 방향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정답도 모르는 주체가 지시를 하고 있고 지방정부는 그것을 따라야 하는 구조다. 시키는 대로 하면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헌법 117조의 내용은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법률에서 허용(위임)하는 것만 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키는 것만 하라는 취지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시킬 수 없다. 마치 사람도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은 큰 발전을 이룰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다른 사람보다 더 발전하려면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누군가 시키지 않는 일도 창의적으로 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이런 것을 못 하게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정부가 기업과 일자리를 유치하려면 세금을 줄여줘야 한다. 기업의 생리를 고려하면 감세는 기업유치의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지방에서는 세금을 낮춰줄 수 없다. 지방에서 성과가 나더라도 법인세는 모두 중앙정부가 가져간다. 지방에는 떨어지는 것이 없다. 이런 것이 지방정부의 손발을 헌법이 묶어놓은 사례다. 헌법이 제한하고 있으니 법률을 개정해도 소용이 없다. 국회가 이런 법률을 바꿔주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주민의 권리제한과 의무부과를 위해서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지방자치법 22조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세계 어느 법률체계에도 없는 조항이다. 이런 주장을 지방자치가 실시되자마자 학계와 시민단체가 주장했고 법률로 발의됐으나 국회는 상정도 안 한다. 법률 개정으로도 지방자치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하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국회에 제안했지만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헌법이 가장 문제라고 하는데, 개헌을 꺼리는 개헌 비판 세력도 많은데?

▶외국의 헌법 개정 사례를 보면 독일은 의회에서 헌법 개정을 의결하면 그것으로 헌법 개정이 완료된다.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하지만 1년에 10번에서 30번 정도 헌법개정을 한다. 헌법 개정에 소요되는 비용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나라는 정치를 비롯해 각종 갈등비용이 많은 나라다. 추산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약 82조원 내지 240조원 정도 된다고 한다. 헌법 개정으로 다양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헌법을 자주 개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미신이다. 이런 미신 때문에 국민들이 개헌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개헌은 수시로 이뤄진다.

-지방분권`지방자치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인가?

▶오늘날 지식정보사회는 정답이 없는 사회다. 끊임없이 정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정답을 찾다가 시행착오를 하면 나라 전체가 망한다.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각 지방정부가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결정권을 줘야 한다. 그러면 성공하는 곳과 실패하는 곳이 발생한다. 지방정부가 실패하더라도 그 악영향은 그 지역에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한 곳에서 성공을 하면 다른 지방정부가 벤치마킹을 통해 국가 전체가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혁신이 아래로부터 가능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방의 손발을 묶어서 혁신동력을 죽이고 있다.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 경제발전은 혁신동력에 의해 결정된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경비를 절감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것을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두고 있다. 중앙정부는 각 지역 발전 전략과 관련한 답을 모른다. 그런데 답도 모르는 중앙정부가 모든 지방정부에 따라오라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중앙정부는 '지방에 맡겨 놓으면 사고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자식이 실수할까 봐 두려워 모든 행동을 부모가 다 지시하고 맘대로 하지 못하도록 묶어놓으면 자식이 잘 크나? 지방도 마찬가지다. 지방이 혁신 실험실이 되도록,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해당 지방 발전을 위해 실천해 옮길 수 있도록, 결정권을 지방정부에 넘겨줘야 한다.

사진 김상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