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간디의 '스와라지'는 주민자치의 또 다른 이름-- 동네 공화국

본문




간디의 '스와라지'는 주민자치의 또 다른 이름

신용인 입력 2017.08.07. 12:07

[의견] 주민자치와 사회적경제를 위한 동네공화국 구상

[오마이뉴스신용인 기자]

 간디
ⓒ pixabay
1948년 1월 30일 아침 인도 국민회의 서기장에게 한 통의 문서가 전달되었다. 그 문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직접 작성한 신헌법 안이었다.

인도의 독립을 주도한 간디는 비폭력운동을 펼치며 스와라지와 스와데시를 주창했다. 스와라지가 정치적 자치를 뜻한다면 스와데시는 경제적 자립을 뜻한다.

간디는 스와라지와 스와데시를 구현하는 곳으로 '마을'을 주목했다. 간디는 평소 "인도에는 70만 개의 마을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간디는 인도의 70만 개 마을이 각각 주권을 가진 독립공화국이 되고, 서로 느슨히 연결되어 협력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면 스와라지와 스와데시가 이뤄지면서 마을이 세계를 구할 것이라 보았다.

간디의 신헌법 안에는 그런 간디의 꿈이 담겨 있었다. 70만 개의 마을은 각자 주민이 선출한 5명 내지 11명의 판차야트 위원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마을공화국을 건설한다. 마을공화국은 마을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모든 생활영역에서 고도의 자치를 누리며 자급자족을 실현한다. 그 상위에는 마을을 전국적으로 연결하는 일종의 국제기구와 같은 조직을 두되, 그 조직은 마을에 대해 조언만 할 수 있을 뿐 명령할 수는 없다. 그 조직은 명령권이 없기에 당연히 군대를 둘 수도 없다. 간디는 신생독립국 인도가 군사력이 없는 비폭력 마을공화국연방이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당시 국민회의 지도부는 중앙집권적 국가인 인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간디의 신헌법 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을 만드는 폭탄이었다. 하지만 폭탄의 위력은 금방 사라졌다. 신헌법 안이 전달된 그 날 저녁 힌두교 광신자인 나투람 고드세의 총에서 나온 흉탄이 간디를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간디의 죽음과 함께 간디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식민지 인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연방국가로 새롭게 출범했다.

그 후 인도는 1992년 제73차 헌법 개정을 통해 마을 판차야트, 중간 판차야트, 지역 판차야트의 3단계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읍ㆍ면ㆍ동과 유사한 마을 판차야트는 3단계 자치계층의 최하층에 속한다. 마을 판차야트 몇 개가 결합하여 중간 판차야트가 되고, 다시 중간 판차야트 몇 개가 결합하여 지역 판차야트를 이룬다. 2006년 기준으로 마을 판차야트는 약 24만 개이고, 총 위원 수는 약 300만 명에 이른다. 간디의 꿈이 부분적으로나마 성취된 것이다.

나는 스와라지를 '주민자치'로, 스와데시를 '사회적 경제'로 읽는다. 또한 주민자치와 사회적 경제를 구현하는 장으로 '동네'를 주목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3,500개의 읍ㆍ면ㆍ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만일 3,500개의 읍ㆍ면ㆍ동 마다 자치권을 누리는 동네정부가 수립되어 동네공화국이 건설되고, 그렇게 세워진 동네공화국들이 전국적으로 연합하게 되면 주민자치와 사회적 경제는 활짝 꽃필 것이다.

정부는 1998년 이래 읍ㆍ면ㆍ동 별로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강화ㆍ개편하기로 결정하고, 현재 전국적으로 49개 읍ㆍ면ㆍ동에서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내지 주민자치회(이하 '주민자치회'라 한다)는 읍ㆍ면ㆍ동 주민 중에서 선발된 20~30명의 주민자치위원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조직이다. 따라서 주민자치회가 제대로 구성ㆍ운영되어 동네정부 노릇한다면 우리나라에는 3,500개의 동네공화국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대표성 결여, 권한의 미흡으로 분명한 제도적 한계가 있다.

대표성의 점을 보면, 주민자치위원 선정의 민주성ㆍ투명성ㆍ공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 주민대표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 결과 주민자치회는 지역유지나 관변단체 인사 위주로 구성되고 주민 대다수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제주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자치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작년 7월 8일 조례 개정을 통해 전국 최초로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했다. 주민자치학교를 개설하여 수료자 중에서 신청을 받고 신청자가 정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추첨에 의해 주민자치위원을 선발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서울의 경우 성동구는 올해 7월 13일 조례 개정을 통해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도입했고, 금천구, 도봉구, 성북구는 현재 추첨선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추첨선발제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에서 기원한다. 아테네에서는 공직자 대부분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선발했다. 민주주의를 엘리트의 통치가 아니라 보통 사람의 통치로, 그리고 누구나 동일하게 통치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정치체제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선거가 귀족적이라면 추첨은 민주적이다."

이제 제주에서 시작된 주민자치위원 추첨선발제를 전국적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주민자치위원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주민자치위원 선정의 민주성ㆍ투명성ㆍ공정성이 보장되어 주민대표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권한의 점을 보면, 현행 주민자치위원회는 문화프로그램을 짜는 것 외에는 별다른 권한이 없어 사실상 행정의 '장식용'에 불과하다. 시범 실시되고 있는 주민자치회의 경우 권한이 좀 더 강화되기는 했으나 읍ㆍ면ㆍ동의 하부행정기관 성격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주민관치회'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2012년 6월 주민자치회 모델로 협력형, 통합형, 주민조직형을 마련했는데 그 중 통합형과 주민조직형은 주민자치회가 읍ㆍ면ㆍ동 사무소를 지휘ㆍ감독하거나 대체하는 안으로 최소한이나마 동네정부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통합형과 주민조직형은 현행 법령 위반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이에 정부는 가칭 '주민자치회의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주민자치법'이라 한다)을 제정하여 통합형과 주민조직형도 실시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오리무중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주민자치법을 제정ㆍ실시함으로써 주민자치회가 주민대표성과 동네자치권을 모두 갖춰 동네정부로 확실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국의 읍ㆍ면ㆍ동마다 동네공화국이 건설되어 주민자치와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동네공화국이 건설되면 동네공화국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필요하다. 연합체로는 우선 시ㆍ군ㆍ구 민회, 시ㆍ도 민회, 대한민국 민회를 생각할 수 있다. 난 여기에 세계평화정부도 덧붙이고자 한다.

시ㆍ군ㆍ구 민회는 해당 시ㆍ군ㆍ구 관할의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위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으로 구성한다. 시ㆍ도 민회 역시 해당 시ㆍ도 관할의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위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전국적으로 226개의 시ㆍ군ㆍ구 민회와 17개의 시ㆍ도 민회가 생기게 된다. 시ㆍ군ㆍ구 민회와 시ㆍ도 민회는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와 사이에 지방권력을 분립하여 상호 견제ㆍ균형을 이룬다.

대한민국 민회는 전국의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위원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으로 구성한다. 대한민국 민회는 대통령, 국회와 사이에 국가권력을 분립하여 상호 통제한다.

세계평화정부는 우리나라의 주민자치위원과 같은 전 세계의 동네정부 요인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사람으로 구성된다. 세계평화정부는 국제연합(UN)과 마찬가지로 세계평화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세계평화정부의 기반이 국가가 아니라 동네라는 점에서 국제연합과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동네공화국, 시ㆍ군ㆍ구 민회, 시ㆍ도 민회, 대한민국 민회, 세계평화정부가 다층적으로 구성된다면 동네공화국은 상위 조직들의 권력 원천으로 작용하면서 주민자치와 사회적 경제의 구현은 물론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보았다. 십분 공감한다. 세계의 구원은 '동네'로부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