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뉴질랜드 마오리족의 ‘160년 소원’ 성취
ㆍ세계 첫 ‘인간 지위’ 부여
ㆍ법적 권리 주는 법안 통과
사람이 된 강. 뉴질랜드가 전통과 환경을 지키기 위해 세계 최초로 강에 ‘인간의 지위’를 부여했다.
뉴질랜드헤럴드 등은 의회가 15일 원주민 마오리족이 신성시하는 북섬의 황거누이강에 살아 있는 인간과 동등한 법적 권리와 책임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 강을 해치거나 더럽히면 사람에게 한 것과 똑같이 처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크리스 핀레이슨 조약협상장관은 “법안은 황거누이강과 마오리족의 깊은 영적 유대를 반영한 것으로 강의 미래를 위한 강한 토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황거누이강은 공익신탁이나 사단법인과 비슷하게 취급되고, 마오리족이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신탁 관리자가 돼 강의 권익을 대변하게 된다. 정부는 법안에 따라 마오리족에 8000만뉴질랜드달러(약 636억원)를 보상하고, 강을 보존하기 위해 3000만뉴질랜드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또 강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드는 데 100만뉴질랜드달러 상당의 기금이 조성된다.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황거누이강은 활화산 통가리로에서 발원해 290㎞를 지나 바다로 흘러든다. 마오리족은 이 강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싸워왔다. 마오리족이 이 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법적 보호를 확보하기 위해 싸운 것은 160년에 이른다. 마오리족과 정부의 협상은 2009년 시작돼 2014년에 타결됐다. 법안이 통과되자 원주민들은 기쁨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마오리족 의원 아드리안 루라우헤는 라디오뉴질랜드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며 “황거누이강은 그곳에서 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오리족은 삶의 터전인 황거누이강을 가리켜 ‘코 아우 테 아우아, 코 테 아우아 코 아우’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강, 강은 나’라는 뜻이다. 원주민들은 최소 600년 전부터 이 강 주변에 터를 잡아 살았다. 왕가누이 국립공원은 “통가리로산과 한 소녀를 두고 사랑 다툼을 하던 타라나키산이 실연한 뒤 슬픔에 싸여 지는 해를 향해 나아갔는데, 산이 지나간 곳을 눈물이 채워 강을 이뤘다”는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마오리족은 자신과 강을 동일시하며,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귀중한 보물을 뜻하는 ‘타옹가’로 여긴다.
왕가누이 투쟁의 승리는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서 갖는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원주민 애버리지니를 탄압해 절멸시키다시피 한 호주와 달리, 뉴질랜드는 470만 인구 중 15%가 마오리족이다. 여전히 마오리족 공동체의 교육수준이나 소득은 전체 평균보다 낮은 편이지만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원주민들은 뉴질랜드 의회가 생긴 지 13년 만인 1867년부터 자체 선거구를 만들고 의정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