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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 6년이 가장 행복한 추억”'인생역경' 오점녀 할머니의 빛나는 고등학교 졸업장,, 한일장신대 심리학과 학생되다

시민, 그리고 마을/지역자치분권운동

by 소나무맨 2017. 3. 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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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 6년이 가장 행복한 추억”'인생역경' 오점녀 할머니의 빛나는 고등학교 졸업장

김병진  |  webmaster@jeon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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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05  22: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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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학교에 들어설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괜히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하지만 바로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5일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은 오점녀(82) 할머니는 손에 꼭 쥔 졸업장을 바라보며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오 할머니는 이날 졸업한 79명 가운데 최고령 졸업생이다. 최연소 졸업생보다 52세나 많다.


황혼의 나이에 학업을 시작해 무려 60년이 훌쩍 지나서야 딴 졸업장이지만 이날 졸업식에서 할머니의 졸업장은 그 누구의 것보다 빛났다. 한평생 자녀 뒷바라지와 생계를 위해 식당일부터 아파트 계단청소, 직조공장 등 안 해본 일이 없고, 아들의 죽음과 시각장애인 딸, 남편의 이혼까지 결코 순탄치 않은 가정사를 딛고 손에 쥔 졸업장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그가 중학교 입학을 마음먹게 된 건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열심히 공부해 졸업장을 따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긴 이후 망설일 것도 없이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6년여의 시간은 그에서 가장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오 할머니는 “중학교까지 지난 6년을 돌이켜보면 공부하는 게 제일 즐거웠다”며 아쉬움에 눈물을 훔쳤다.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익히는 재미는 하면 할수록 커져갔다. 졸업생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연장자였지만 오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까지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으로 학교에서 정평이 날 정도로 부지런했다.


오 할머니는 “알파벳만 알면 될 줄 알았던 영어가 제일 어렵긴 했지만 소풍, 체육대회, 바자회 등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재미 있었다”며 “지난해 허리수술 탓에 개근상을 놓친 게 두고두고 아쉽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의 꿈은 대학교 졸업장을 따 심리상담가가 되는 것이다. 오 할머니는 “계속 공부하고 싶다. 올해 한일장신대 심리학과에 지원했다.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편, 이날 열린 제14회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 졸업식에는 중학교 과정 이수자 40명과 고등학교 39명 등 모두 79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김병진기자




“심리학 배워 상담사 될 것” 82세에도 향학열은 ‘활활’
 글쓴이 : 국제참교육개발원
조회 : 5,211  
“심리학 배워 상담사 될 것” 82세에도 향학열은 ‘활활’

5일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아 든 오점녀(82) 할머니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가누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제14회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의 최고령 졸업생이다. 최연소 졸업생보다 무려 63세나 많다.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는 당시 여성으로선 드물게 전주 풍남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한 뒤에도 두 딸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세월이 지나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생활이 안정된 후 할머니는 비로소 다시 배움에 눈을 돌렸다. 노인복지회관에서 컴퓨터와 알파벳 등을 익힌 할머니는 학교를 그만둔 지 50여년이 지나 다시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마음 한구석에 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76세가 되던 2008년 이 학교에 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그는 “처음에 학교 문턱을 넘을 때는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지요. 하지만 첫해 학교에 다니면서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는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학우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끝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동석(37) 담임교사는 “할머니는 수업 태도와 열정만큼은 학교에서 제일 강했다”며 “할머니가 무사히 학업을 마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또 다른 목표는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것. 한일장신대 심리학과에 지원한 그는 “살아온 경험과 역경을 바탕으로 젊은 사람부터 노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심리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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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학구열' 오점녀 할머니 감동의 졸업식

입력 : 2014-02-05 15:48


         
 
[쿠키 사회] “배우지 못한 설움이 늘 있었는데 오늘 그 것을 풀었습니다. 행복합니다.” 
 
학사복을 입은 할머니는 연신 웃음을 지었다. 두 손에는 졸업장과 꽃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5일 열린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 제14회 졸업식에서 오점녀(81) 할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 할머니는 이날 졸업한 79명 가운데 최고령 졸업생이다. 최연소 학우보다 52세나 많다.
 
할머니는 75세였던 2008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인 이 학교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57세다. 할머니는 6년간 중·고교 과정을 보내며 누구보다 뜨거운 학구열을 보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설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괜히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해서…. 하지만 바로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고 열심히 공부했지요.” 

전주에서 태어난 오 할머니는 풍남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일제감정기와 6·25를 거치면서 오빠들이 강제노역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그만 뒀다. 직조공장에서 일을 하다 결혼한 뒤 두 딸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다.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나서야 배움에 대한 열망이 새롭게 꿈틀댔다. 노인복지회관에서 컴퓨터와 알파벳 등을 익힌 할머니는 50여년 만에 다시 학교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는 “그냥 마음 한구석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젊은 친구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학우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끝까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동석(37) 담임교사는 “할머니의 수업 태도와 열정만큼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강하다”면서 “무사히 학업을 마치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계속 공부하고 싶다. 올해 한일장신대 심리학과에 지원했다.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전주=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83세에 14학번 새내기 여대생이 된 오점녀 어르신의 만학도 인생기 소곤소곤 전북일상

2014.03.24. 16:24

복사 http://blog.jb.go.kr/13018759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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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유독 어려서부터 나이듦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 멀리 거대한블랙홀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노인이 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상상한 노인이 된 나는 기운 없이 햇살을 맞으며 손뜨개질을 유일한 소일거리 삼는 모습이었죠.

 

물론 지금이야 그런 모습은 아니라는 걸 잘 알게되었지만 그래도 어느 날, 어느순간 문득 노년의 내가 어때야 하는지 나는 흘러가버린 시간 앞에서도 태연히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지, 추억을두 번 세 번 곱씹는 유일한 취미를 가져야 하는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는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자꾸만 세상이 주목하는 '수상한 그녀, 82세 만학도 오점녀 어르신' 

 우연히 알게 된 오점녀 할머님의 이야기가 제 시선을 사로잡은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할머님 나이 올해 여든 셋올해 전라북도도립여성고등학교를 졸업하셨다고했습니다도립여성중고야 배움의 때를 놓친 분들이 못다 푼 학업의 열정을 태우시는 곳으로 도내에서 유명하니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할머님은 대학에도 진학하신다고 했습니다. ‘대학을?’라는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도대체 무엇이 할머님을 내일로 나가게 하고 있는지 만나 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터널 끝에서 만난 희망

 

그 연세에 학교를 졸업하실 정도니 나름대로 여유가 있는 생활이 윤택한 분이시겠거니 싶었는데 제 예상은 보기 좋게빗나갔습니다.할머니는 알뜰 대왕백원짜리 하나 허투루쓰지 않으실 뿐더러 허투루 쓰실 만큼의 형편도 아니었습니다지내시기도 빠듯하신데 왜 배움의 길을 잡으셨을까여쭙자 할머님은 본인이 살아오신 이야기부터 해주셨습니다. 

 원래 글 꽤나 읽던 풍족한 집안 딸이었어그 시절(일제시대)에도 굶지 않았지자식이 여럿 있었는데도 여자인 나를 학교에 보낼 정도로 윤택했어그렇지만 세상일이 늘 평탄할 수 없는 거야나라에 험한 일이 있을때마다 우리 가족 역시 그 풍파를 피해갈 수 없었어일제 때 만주로 갔던 큰 오라버니한국전쟁에서 질고를 겪은 둘째 오라버니셋째 오라버니까지..다 돌아가시거나 병들어 오셨지어느새 가산은 탕진했고 아버지마저돌아가시니 옛 명성뿐이었어그러다보니 내 입 하나라도 덜어볼 요량으로 급하게 시집을 갔지가자마자 9남매 장남인 남편 아래로 동생들이 가득이었고 시부모님봉양까지 하게 되었는데손에 물 한번 안 묻히다시피 큰 내가 견디기에는 지독하게 매운 시집살이였어배움이란건 잊혀진지 오래였고.”

그리고 나서도 할머니에겐 어려운 세월이 한참이었습니다두 딸을 낳고그 딸들이 장성하기까지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했습니다그렇게 모진세월을 견뎌내고 할머니가 혼자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평생을 꾹꾹 눌러두었던 도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무엇이든 의미 있는 일신나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찾아 다니게되었습니다.

 

" 자유롭게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지 노인일자리도 다니다가 복지관도 다니고 그랬어뭐든 가르쳐준다는 강좌다같이모여서 즐거웁게 하는 일들은 다 쫓아다니는 열성이었지등산도 그 때부터 시작했고그런데 어느날 보니 복지관에 컴퓨터가 놀고 있는거야그래서 사회복지사선생님한테나 저거 배울 수 있냐고 물으니 타자부터 가르쳐주대한글도 타자배우면서 뗐어. (한글을 모르셨는데배우신거에요?) 그렇지일제시대때배워서 한글을 잘 모르고 일본어만 할 줄 알았지타자로 배우니 ,,이랑,,,’ 다 합쳐져야 글자가 된다는 걸 좀 더 쉽게 배우게 되더라고내가 지금은 타자가 한글영어200타가 넘어일본어 타자도 칠줄 알고나주책이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할머니의 한글과 컴퓨터(?) 동시습득 이야기이미 당시 할머니는 73세의 연세였습니다할머니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입을 쩍 벌어지게 하시며 컴퓨터를 익힌 뒤에 어르신과거시험에 응시하셨습니다. (어르신과거시험이란 고령층의 정보화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문서작성인터넷정보검색 능력 등을 겨루는 시험입니다.)당당하게 상도 받으셨죠하지만 할머니는 늘 아쉬웠습니다. 

 

문서를 작성하는건 하겠는데 인터넷 검색이 막히는거야단순 검색이야 간단하지만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해결해야하는 부분에서는 늘 막혔지이해가 잘 안되니까그래서 속이 답답하더라고. ‘이것만 잘하면 나도 일등인데’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계속했어.”

 

우연의 모습을 타고 오는 운명, 할머니 학교 진출기

  상의 종류가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2%가 늘 할머니 마음속에 따라다녔습니다그러다 우연히 TV에서 전라북도도립여성중고등학교 광고를 보고 어딘가에 홀린사람처럼 바로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나이가 많아서 부끄럽지만등록할 수 있냐는 물음에 걱정 말고 오시라고 한 따뜻한 대답은 할머니의 용기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할머니의 학교 생활처음에는 괜히 시작한다고 했나부터 시작해서 수업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매일 통학하다 포기하지는 않을지 현실적인 걱정들이 할머님마음속에 한 짐이었습니다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막상 학교에 입학한 후로 할머니는 주변에서도인정한 모범생으로 생활했습니다눈이오나 비가오나 빠지지 않다 못해 심지어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얼마후부터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결국 학교에 나가셨다고 합니다할머님이 당연히 장학금을 타신 건 이제놀랍지도 않지요?

 할머니, 대학에 가다 

왜 대학에 가려고그러냐고내가 처음에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10년을 채우겠다고 했어뭐든 제대로 하려면 10년은 해야 하는거야아직 10년을 못 했으니 당연히 대학에 가야지심리학과에 가고 싶었어나는 사람 마음에 관심이 많아사람마다 이 생각 저 생각 다 다르니 얼마나 신기해여기 이렇게심리학 책도 두고 읽고 있어세상 돌아가는 일도 궁금하고공부하면다 알 줄 알았더니 더 궁금한 일만 늘어가네.”

 

  아쉽게도 할머니는 사정상 목표한 심리학과에 진학하시진 못했지만 2014년수시모집을 통해 도내 모 대학 NGO관련 학과에 들어가셨습니다새내기가 되신 셈이죠여든셋의 새내기가 되신 소감을 여쭤보니 대학공부를 잘 할 수 있을지젊은 친구들한테 피해는 안줄지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으셨습니다나이만 조금 많으시지 영락없는 신입생의 모습입니다도립여성중고를 다닐 땐 수학을 제일 좋아하시고 영어를 어려워했는데 이제 영어도 많이 알아야 하니 걱정된다고기자 양반은 다녀봤으니 알 거 아니냐고 도서관도 자주 가야하냐고 저에게 물으실 땐 신입생과의 만남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지금 이 열정을 보니 대학공부도 문제 없으시겠구나과탑을 하시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아름다운 오늘이 쌓이면 

   대학 졸업 후 나중에 하시고 싶은 일이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여든셋의어르신께 장래희망을 물으니 참 기분이 묘했는데 역시나 반전의 매력을 가지신 오점녀 할머님은 요즘말로 쿨하게 아직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황해하는 저를 위해 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고그저 나를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했다는 할머님의 말에 어느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순수한 집중과 도전으로 채우는 삶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데 어떤 자리어떤 증서를 위해서만 너무 정신 없이 앞으로 가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뭔가 빠른 결과물과 성과를 원하는 저와 달리 할머니는 시간이 쌓이고 최선을 다해야 보이는 길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청춘이 청춘에게

 

 나 공부 막 배울 적에 알파벳부터 익히는데 앞이 깜깜한거야그래서 미친사람마냥 붙들고 늘어졌어걸어갈 때도 보고등산하면서도 보고밥 먹을 때도 보고사람이 뭐든 미쳐야 뜻을 이룰 수 있는거야내가 대단한 사람도 못되고 팔팔하지는 못해도 내 힘껏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왔어대학가서도 이러면 되겄지기자 아가씨도 지금 어디 있든지간에 열심을 내면돼그나저나 누가 날더러 박사님도 해보라는데 도전이라도 해보지 뭐 허허안그래나같은 노인들 중에 공부하고 싶은 분들한테 도움이나 좀 되는 정도면 좋겄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103세의 브라질 할머니가 스카이다이빙에도전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다이빙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온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영웅처럼 느껴졌었지요그러나 오점녀 할머님의 모습은 브라질 할머니의 모습만큼이나 영웅 같았습니다.할머님과의 시간을 통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꿈꾸시는 모습에서 청춘이 숫자가 아니라 심장에 머무름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더 이상 제 마음 속 노년에 대한 두려움도 싹 달아난건 물론이구요. 여러분도 오점녀 할머님의 에너지로 올 한해 가슴 뛰는, ‘미치고 싶은 삶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쳐야 잘하는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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