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의 생태문화적 지표가 되는 만경강 포럼을 기대하며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공동대표
전라북도강살리기추진단 이사장
김 택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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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동진강과 함께 호남평야의 중앙부를 서류하는 만경강은 길이는 총98㎞이다.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675m 지점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전주시·익산시를 지나 김제시 진봉면과 군산시 회현면 사이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상류에 동상(東上)저수지, 대아저수지가 있으며, 곳곳에서 화평천·소양천(所陽川)·전주천(全州川)·탑천 등의 지류가 흘러든다.
전북평야를 관계하는 대동맥인 만경강은 춘포면과 오산면의 경계를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멀리 노령산맥의 서사면에서 발원하여 여러 지류인 고산천, 소양천, 전주천, 삼천 등의 하천을 삼례읍 동방에서 합류하여 완주군, 익산시, 김제시, 옥구군의 저지역을 관류하는 전장 98km에 달하는 하천이다. 상류에 세 개의 거대한 저수지를 가지고 있는 이 하천은 수량이 풍부하여 전북평야의 북반부를 관계하고 있다.
화평천과 합류된 뒤에는 고산천이라고 불리며, 전주천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만경강이라고 한다. 넓은 들 가운데로 흐른다는 뜻이 담긴 만경강은 이 강 하류지역에 만경현(萬頃縣)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과거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였던 만경현은 현재 김제시 만경읍에 편입되었다.
이 강은 상류지역을 제외하고는 유속이 매우 느린 전형적인 곡류하천이며, 밀물 때는 완주군 삼례읍까지 하천수위가 상승하는 감조하천이다. 유역에는 전주시·익산시·김제시·완주군 등이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관개와 주운(舟運)에 많이 이용되어왔는데, 배가 다닐 수 있는 구간은 익산시 춘포면 대장촌리까지이며, 하구와의 사이에 신환포(新煥浦:김제시)·목천포(木川浦:익산시)·사천리(沙川里:익산시) 등의 선착장이 있어 출곡기에 많이 이용되었다.
하곡의 변동이 심하고 홍수의 피해가 잦아 1938년 하류지역에 직강(直江)공사를 실시, 길이 76㎞에 이르는 제방이 축조되었다. 1989년에는 1922년에 축조된 대아 댐 아래 새로운 댐이 건설되어 익산·군산 등의 상·하수도와 전주공업단지의 공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하구 일대의 간석지를 대상으로 새만금지구간척종합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라선과 호남고속도로가 삼례읍에서 만경강을 가로질러 지난다.
만경강은 길이 98㎞, 유역 면적 1,571㎢로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운장산(雲長山, 1,126m)에서 발원하는 고산천(高山川)과 만덕산(萬德山, 763m)에서 발원하는 소양천(所陽川)이 완주군 삼례읍 동쪽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전주 시가를 관류하는 전주천과 전주시 서부의 삼천(三川)이 삼례읍 동남쪽에서 이에 합류하여 만경강의 본류가 된다. 삼례에서 서쪽으로 흘러 익산시 남쪽을 통과한 뒤, 군산시 대야면에서 탑천(塔川)과 합류하고, 군산시와 김제시 사이의 넓은 간석지의 하구로 흘러든다.
만경강은 전형적인 곡류하천(曲流河川)으로 충적평야 위를 심하게 곡류하며, 하구에서 48㎞ 떨어진 삼례 부근까지는 대조시(大潮時)에 하천 수위가 상승하는 감조하천(感潮河川)이다.
만경강의 역사적 고찰은 호남의 젖줄이자 삶의 근간으로 이 땅의 역사를 주도하였다. 만경강은 크게 전주천· 익산천·고산천이 삼례지역에서 합류하여 본류를 이루는 강인데 이들 지류가 각각의 지역의 역사를 만들어 강의 역사를 형성하였다.
만경강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짚어보면 그 한 줄기인 익산천은 고조선의 준왕이 바다를 통해 현재의 익산(금마) 일대로 피난하여 우리 역사에서 마한이 역사 정통성의 근간으로 자리잡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는 근대 대한제국 명칭의 역사적 근거로서도 활용되었는데 그 뿌리에 만경강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백제시대의 경우 만경강 줄기가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논의되고 있는 금마지역을 흘러 백제 무왕(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서동이 백제의 무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제공한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가 망한 직후 고구려 부흥군들이 건국한 '보덕국(報德國)'이 금마에서 고구려부흥의 마지막 꿈을 키우며 살았던 고구려 문화의 흔적을 이 강줄기에 남겼다.
특히, 백제멸망시 백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라군을 넘게해서는 안된다고 백제의 충신 흥수가 지목한 탄현(炭峴)이 상류지역 부근에 위치하여 백제사의 마지막과 만경강 줄기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백제부흥 전쟁을 주도한 중심 거점인 주류성(周流城)이 바로 부안 변산반도로 비정되며 이들을 원조하기 위해 왜(倭:일본)에서 온 지원군이 나·당연합 함대에게 궤멸을 당해 부흥전쟁이 종식된 백강구(白江口) 전투 현장이 만경강과 동진강, 금강이 만나 이룩된 하구지역으로서 만경강 유역의 역사적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만경강의 또 다른 물줄기인 전주천이 흐르는 전주 일대는 후백제 견훤의 도읍이자 조선왕조의 관향으로서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곳이다. 특히, 해양왕국 백제의 부흥을 꿈꾸었던 견훤은 도읍 전주에서 만경강 물줄기를 이용하여 후당·오월 등 중국과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 해양교류의 통로로서 만경강을 활용하였다.
이는 동북아 해상왕국을 이루었던 장보고가 해상왕국 백제의 전통을 계승하였던 것을 다시금 부활시키고자 한 것으로 그 중심에 만경강이 위치하였던 것이다. 이같이 만경강은 고대사회에는 바다로 진출하거나 교류하였던 해상교통의 동맥으로서 우리 역사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만경강 유역권의 토지는 대부분 왕실 및 관청 토지로서 일반농민의 경작권이 소유권처럼 보장되었던 토지였는데 일제의 토지조사 사업으로 총독부에 토지소유권이 넘어갔고 다시 이를 일본인 지주에게 불하하여 대규모 일본농장이 집중 육성된 지역이기도 하였다.
특히, 일본은 식민지농업 경영의 활성화를 위해 만경강 상류에 당시 동양 최대의 농업용 댐이었던 대아댐을 만들고 직강화 및 농로·수리관개 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여 근대농업 시스템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에 따른 수확은 일본으로 대부분 반출되었고 전통적인 만경강의 양상은 크게 왜곡되었다.
그리고 광복 이후 만경강 관련 지역은 동진강유역권과 함께 개간,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계화도간척과 새만금간척을 통한 국토변혁의 역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1870년대 제작된 '대동여지도총도'에 현재의 만경강을 '사수(泗水)'라 표현하고 있으며 1906년 완성된 '증보문헌비고' 여지고(輿地考)의 산천(山川)조 총설(總說) 호남연해제천(湖南沿海諸川)에서는 우리 나라 모든 강의 원류와 구성등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면서 현재의 만경강의 본래 명칭이 사수강(泗水江)임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특히, 사수강은 공자의 고향 곡부의 강 이름이자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지역의 강 이름으로서 유교문화의 발상지이자 왕조의 발상지를 상징하는 강 이름이었다. 따라서 만경강의 본 이름 사수강은 조선시대 왕조와 문화발상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개념이란 면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켜 현재의 '만경현 앞을 흐르는 강'이라는 격하된 의미로서의 만경강 명칭과 병기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따라서 만경강유역은 한국 고대문화의 요람지역인 익산(미륵산)∼전주(모악산)을 관류하는 강으로 농업생산, 군사방어, 교통로, 문화거점의 중심으로서 만경강 유역권내 역사유적 연계활용하는 지역자산 발굴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조법종 님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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