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자유대학 초대 이사장 박구용(63회)교수, “공부하는 시민들이 일구는 아름다운 문화도시 상상”

2016. 2. 25. 00:17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활동

 

 

 

 

광주시민자유대학 초대 이사장 박구용(63회)교수, “공부하는 시민들이 일구는 아름다운 문화도시 상상”

Hit : 31, 2016.02.22

 

광주시민자유대학 초대 이사장 박구용 교수 . 사진 광주시민자유대학 제공

박구용(48) 전남대 교수는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철학자다.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문제점을 비판하지 않고는 큰 철학을 할 수 없다”고 믿는 그는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한다. 또 현장에서 대중들을 만나면 난해한 철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국립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비인가 민립 대안대학’인 광주시민자유대학 이사장을 맡았다. 새달 3일 첫 개강에 앞서 오는 19일 오후 6시 광산구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회원의 밤을 연다.

박 교수는 지난 11일 “진정 문화도시가 되려면 시민들이 공부해야 한다”며 “광주가 시민자유대학을 매개로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지역 지식인 10명 십시일반 3억 모아
비인가 민립 대안대학 3월 문열어
캠퍼스 대신 공익시설 3곳서 강의

전남대 철학과 시절 학생운동 투신
“슬픈데도 매력적인 도시” 광주 인연
“개인과 조직 사이 ‘시민자유’ 절감”

시민자유대학은 철학·사회학·과학·건축학·미술·음악 분야 교수 및 연구자 등 10명이 3000만원씩 모은 3억원을 밑돌 삼아 설립됐다. 하지만 학위취득이 불가능하고 ‘거대한’ 캠퍼스도 없다. 박 교수는 “작은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만나 학문과 예술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대학 거점인 광산구 장덕동 근대한옥(등록문화재)과 공익활동지원센터, 광주교육지원센터 등 3곳에서 강좌가 진행된다.

첫 학기엔 ‘음악사와 음악미학’(최유준), ‘동서양 고전 원전읽기‘(류근성·류도향), ‘건축의 안과 밖’(이효원), ‘철학하는 시민’(박구용), ‘매력있게 말하기’(박진영) 등 6개 강좌가 개설된다. 월~금요일(저녁 7시)에 이어 토요일(오전 10시)에도 강의한다. 분납 또는 일시불로 300만원을 낸 정회원은 3년동안 정규 교육과정을 무료로 수강하고 4년차부터 10년까지 50%를 할인받는다. 연회원(100만원)은 1년동안 무료 수강한다. 현재 시민 70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박 교수는 “학문간 융합을 통해 자기만의 전공을 창조할 수 있고, 교양강좌와 달리 자유로운 주제로 논문도 쓸 수 있다”며 개교 목적과 취지를 소개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뜻과 돈을 모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5·18기념재단 기획위원장(2005~06년)을 하면서 처음으로 시민자유대학을 꿈꿨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시민 인문학 강좌가 많았던 때였다. 하지만 국가가 준 돈을 가지고는 시민문화를 제대로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원이 없어지면 강좌도 사라지더라. 독지가의 후원도 비슷하다.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성해내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고 싶었다.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준 돈으로 공부하면 국가가 원하는 틀에 갇힌다. 나와 우리가 돈을 내야 나와 우리가 원하는 프레임대로 배울 수 있다. 이때 내는 돈은 이런 약속을 지키자는 증표다.”

-왜 시민자유대학이 필요하나?

“시민사회 활동가나 문화예술인, 교사와 공무원들의 열정과 좋은 뜻이 지속가능해지려면 일정하게 공부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맛있는 집’ 얘기만 하지 말고, ‘멋있는 건축’과 의미있는 예술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 매개가 좋아야 좋은 친구를 만난다. 술을 통해 만나면 ‘술친구’다. 시민자유대학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길 바란다.”

-대학 이름에 시민과 자유를 넣은 이유도 궁금하다.

“이 사회엔 개인과 조직 구성 밖에 없다. 나와 우리, 그리고 더 큰 조직 단위론 지역민, 민족, 국민이 있다. 그런데 한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나와 더 큰 조직 사이에 중간지대가 있어야 한다. 그 지점이 시민이다. 5·18 이후 국가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서 시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자유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우파에 의해 너무 오염됐고 좌파에 의해선 외면당했던 자유를 복권시키고 싶다. 해방 이후 켜켜이 쌓인 권위주의를 뿌리부터 흔드는 ‘문화혁명’은 자유롭게 살려는 시민의 열망에서 출발한다.”

박 교수를 철학으로 이끈 것은 “호기심”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하면 원인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전북 순창의 작은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나지막한 산이 많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자주 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고 말했다. 전주고 재학 시절 ‘마음앓이’를 하며 책에 빠졌던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시절 만난 ‘광주’는 그에게 “슬픈데도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왔다. 그는 “택시를 타도 사적인 관심사보다 세상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도시 분위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남대 철학과 2학년 때 전국철학과학생회연합 결성을 주도해 공동의장을 맡았고, ‘국민윤리’ 교육 철폐를 주장하며 평민당사를 점거하는 등 학생운동에 적극 투신했다. 하지만 “운동 논리를 토론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답답해 헤겔과 마르크스 원전을 읽다가 95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와 헤겔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연구해 200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사회와 철학>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