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혼용무도'보다 셌던 44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돌직구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5. 12. 27. 16:40

본문

 

                                                혼용무도 --------------------

 

'혼용무도'보다 셌던 44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돌직구

[달력 보는 남자] 1971년 '오늘'의 성탄 메시지가 전하는 위로

15.12.25 13:42l최종 업데이트 15.12.25 14:36l

 

 

'어제' 뉴스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뉴스 그 다음은 우리 삶과 '오늘'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만 쏟아지는 뉴스에 묻혀 잘 안 보일 뿐입니다. 어제 뉴스를 오늘의 이야기로 엮어보겠습니다. [편집자말]
가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돌직구'가 있습니다. 이번에 교수님들이 내놓은 네 글자가 딱 그랬었죠. 혼. 용. 무. 도. 이 글자들을 처음 전한 <교수신문>의 리드는 다시 봐도 놀랍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를, 정확히, 분명하게, 밝히고 있거든요.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져 이뤄진 말로,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적어도 이 문장은 전달하지 않으려고 고심한 흔적들이 역력히 보이는 기사들도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놀라면 실수도 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는 <동아일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마사지'하다 보니, 그만, "'무도'는 사람이 걸어야 할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된 야만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적었네요. 지금을 수렵·채취를 하던 야만 단계에 갖다 대다니. 더 셉니다.

[관련기사] "지금까지 중 제일 세다" 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

훨씬 더 센 돌직구가 있었으니...

기사 관련 사진
 1968년 5월 29일 고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 평화방송·평화신문 제공

관련사진보기


그래서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만, 훨씬 더 센 '돌직구'가 떠올랐습니다. '혼용무도'처럼 해석을 봐야 '아!' 하는 돌직구가 아니었거든요.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는데, 그냥!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평전)

1971년 12월 24일 밤, 성탄 자정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담당 PD, 아니 방송사 사장님은 아마 곧장 '멘붕'이었을 겁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야말로 '정상적인 궤도가 붕괴된 야만의 상태'였을 때입니다.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고, 국방을 위해 '싹 모여!'라고 할 수 있고, 물가와 임금까지 대통령이 '다 알아서' 정할 수 있고, 그러니 옥외 집회나 시위는 '당연히' 안 되고, 노동자의 단체 행동은 더더욱 안 되며, 언론·출판에 대해서도 '특별 조치'라는 이름으로 입맛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법. 국가보위법을 통과시키라고 대통령이 직접 국회의장에게 편지를 보낼 때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님이라면,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기사가 있을 겁니다. 역시 함께 걸어놓겠습니다.

[관련기사] 국회의장에 전화로 '직권상정' 직접 압박한 대통령

국회의원들도 벌벌 떨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대놓고 대통령에게 돌직구를 던진다는 것.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또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TV를 보다가 너무 놀란 대통령은 곧장 방송국에 방송 중지 명령을 내렸고, 책임자는 옷을 벗었다고 합니다. 워낙, 지독하게도, 깜깜한 시대였으니까요.

44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통하다'

기사 관련 사진
 1971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의 '국가보위법 통과 안 되면 비장한 각오' 보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법안이 만일 이번 회기 중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이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국회의장에게 보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주위가 너무나 어둠에 덮여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태산이 나의 앞길을, 우리 모두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모든 것에 대하여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의심합니다.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1971년 김수환 추기경의 성탄 메시지)

'오늘', 교수님들은 지금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제', 추기경님은 "주위가 너무나 어둠에 덮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1971년 추기경님의 성탄 메시지에는 지금과도 통하는, 지금 읽어봐도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목도 그중 하나입니다.

"오늘의 세계를 날로 더욱 심각한 불행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강대국들이 독점 지배하는 경제와 권력 정치 체제입니다. 이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세계 속의 불의, 특히 그것 때문에 시련과 타격을 받고 있는 약소국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고질적 부패와 사회 불안의 연원이 현재의 부조리한 권력과 금력의 정치 체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진실로 과감한 혁신이 없으면 부정부패 일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민 대중과 영세민들의 생활 향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중략)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인간과 그 양심을 믿고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나 교회나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양심의 외침을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란 양자 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혼용무도는 역사적 메시지

기사 관련 사진
 1975년 5월 목동 재개발 지역 방문 당시 모습
ⓒ 천주교 서울 대교구 <굿뉴스>

관련사진보기


적어도 지금이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을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기막힌 시대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통하는 역사적 진실임에 분명합니다. 이 진실이 이번에는 '혼용무도'라는 형태로, 네 글자로 다시 나타난 것이지요.

따라서 '혼용무도'는 지도자에게 책임을 따져 묻는 말만이 아닙니다. 지금 지도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역사적 메시지입니다. 시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죠. 지도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 동안 어둠은 계속될 겁니다.

오늘, 하루에도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듯, 역사도 늘 그런 것 같습니다. 밝은 날도 있고 어두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971년 오늘(12월 25일),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 말씀에서 큰 위로를 받았음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독자님들도 적어도 오늘 하루는, 위로를 받는 성탄절이 되기를 빕니다.

"그러나 바로 이 회의와,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보다 나은 앞날을 기대하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음은 1971년 12월 25일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성탄 메시지 전문입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의 도움을 받아 김수환 추기경 전집 중 발췌해서 싣습니다.

기사 관련 사진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 명동성당을 찾은 가톨릭 신자들
ⓒ 오마이뉴스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빛을 찾고 있는 사람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도, 거기 가득한 것들도 다 함께 환성을 올려라.
들도, 거기 사는 것도 다 함께 기뻐 뛰어라.
숲의 나무들도 환성을 올려라.
야훼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셨다"
(시편 96, 11-13)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시 기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밤의 어둠을 헤치고 '만민의 빛'이신 주께서 오셨습니다. 이 밤에 오신 메시아는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믿는 이들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정의의 주, 사랑의 주,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참으로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춤춰라"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이에게 축복을 빌고 싶은 밤입니다.

이 밤과 이날만은 반목과 질시, 불화와 분쟁, 전선의 총소리마저 멎고 오직 자비와 평화가, 용서와 사랑이 우리 모두와 온 누리를 가득히 덮어 주기를 간절히 빌고 싶습니다.

성탄은 모든 인간의 소원과 갈망을 채워 주시는 구세주 오신 날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지닌 그 영원한 동경을, 그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 주시는 메시아 오신 날입니다. 이는 생명과 구원의 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같이 참된 기쁨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주위가 너무나 어둠에 덮여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태산이 나의 앞길을, 우리 모두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모든 것에 대하여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실로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될 수 있는지 의심합니다. 나라에서 무슨 말을 해도,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나라도 교회도 신임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회의와,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보다 나은 앞날을 기대하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쉬운 것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인정이 아쉽고 이해와 진실이 아쉽습니다. 나를 받아 줄 따뜻한 마음, 나를 일으켜 줄 힘찬 팔, 나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줄 부드러운 손길은 없는지, 모두가 이 같은 동경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움을 지닌 채,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절망 직전에 서 있으면서도, 참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는지, 빛은 없는지, 계속 찾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나는 이 모든 괴로워하는 이들과, 슬퍼하는 이들과,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과, 이 성탄 밤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고통, 여러분의 회의, 여러분의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 해도 어두운 밤을 밝게, 외로움과 슬픔을 환희와 위로로 바꾸어 놓으신 그리스도만은 믿을 수 있고, 그분만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의탁할 수 있는 분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세계를 날로 더욱 심각한 불행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강대국들이 독점 지배하는 경제와 권력 정치 체제입니다. 이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세계 속의 불의, 특히 그것 때문에 시련과 타격을 받고 있는 약소국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고질적 부패와 사회 불안의 연원이 현재의 부조리한 권력과 금력의 정치 체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진실로 과감한 혁신이 없으면 부정부패 일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민 대중과 영세민들의 생활 향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인간 회복과 새 나라의 역사 창조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인간과 그 양심을 믿고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나 교회나 사회 지도층은 국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양심의 외침을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란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겨레는 그 어느 것도 원치 않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불의에 대해서와 같이 강력히 저항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일 뿐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숭고한 정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의로운 정신과 그 행동입니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서 식어 가는 애국 애족심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참신한 정치, 인간 존엄성과 사회 정의에 입각한 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이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 안에서는 모든 이가, 국제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평등하고 서로 권익을 돌보며 일체감을 갖는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의 성취를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생활과 신비를 제외하고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이 베푸신 사랑, 그분이 지키신 정의, 그분이 요구하신 신뢰, 한마디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와 사랑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 사회 안정과 질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특히 국민이면서 동시에 크리스천인 우리들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가 먼저 참된 강생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그의 사랑과 정의 안에 단결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탄생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사랑'이신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음과 그의 말씀, 그의 사랑을,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을 통하여 현재에 구현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지도층의 신자 여러분들이 먼저 대오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2천 년 전에 강생하신 그리스도가 불행과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실제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듯이, 교회는 오늘의 사회에 진정한 그리스도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회와 정부를 향해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우리 안에 정의의 실천이 없다면 우리는 위선자가 되는 것이고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교회, 특히 나를 포함한 교회의 지도층, 성직자, 수도자들은 이 정신을 가졌습니까? 이 사랑을 가졌습니까?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이 역사의 심야를 밝혀야 할 중대한 사명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반성이 있고 그 반성을 토대로 교회 자체의 혁신이 있을 때, 그리고 정의와 사랑의 행동이 있을 때, 우리 교회는 참으로 한국 사회 안에 그리스도를 강생케 할 것입니다. 이 사회와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야 이 사회와 이 어두운 세파를 향하여 성탄의 기쁜 소식을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일치시키는 성사, 즉 일치의 도구와 표지로서의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교회 헌장 1항)

오늘의 우리 사회와 겨레는 그래도 교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코 성탄의 종소리나, 아름다운 성가나, 더더구나 화려한 예식이 아닙니다. 휘황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진리와 사랑의 등불이, 정의의 등불이 밝혀지기를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고대하고 있습니다. 갈망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모두 이 겨레와 이 사회의 구원을 위한 봉사자로서, 성탄의 기쁜 소식을 외쳐야 할 때이며, 성탄의 신비를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그리스도의 과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 안에서만이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구세주 강생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도시와 판자촌, 공장, 농어촌, 산간벽지 오막살이, 그리고 먼바다의 낙도에까지 메아리치는 성탄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2천 년 전 한밤중에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었듯이 오늘의 어두운 곳, 외로운 곳에 이 소식이 전해져야 되겠습니다. 이 밤만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끊임없이, 이제 밤은 더 깊어지지 않으리라고,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어둠이 사라졌다고 외쳐야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은총을 빕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 강생의 은총입니다. 이 성탄과 새해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과 온 겨레와 만민에게 이 은총을 거듭 빕니다.

(1971년 12월 25일, 성탄절 메시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