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집권에 성공한 여당은 정부의 각종 통치수단을 통해서 권력을 분배한다. 통치의 유력한 방법이고 이를 통해 애초에 목표했던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한다. 반대로 야당은 집권여당의 각 분야의 정책과 통치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감으로써 다시 다음 선거에서의 집권을 노린다. 이런 의미에서 야당은 ‘대안권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은 ‘대안권력’으로서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야당들을 비롯해서 현재의 야당들의 대부분은 ‘대안’보다는 ‘권력’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시민들은 야당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야당들이 한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대안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뒷전이고, 공직과 권력자원의 분배를 놓고 쟁투하는 집권여당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여당이 두 개인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야당의 유력인사들이 은근히 총선보다 대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유력 대선후보들의 행보와 말을 중심으로 내부다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 제1야당의 대표가 제안한 야당 총단결론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단일대오로 모이자는 제안이 절박하게 들리기보다는 다소 허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떤 ‘대안’을 만들자는 이야기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단결만 제안했기 때문은 아닐까.
야당의 한 축을 형성해야 하는 진보정치 역시 조금은 다르지만 깊은 고민에 둘러싸여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생존을 위해 분열된 진보정치세력들의 ‘헤쳐 모여’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도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오랫동안 응원해주었던 이유는 진보정치가 기존의 양 정당들이 대변해주지 못하는 갈등과 문제들을 대변해주고 대안을 보여주기 원했던 것이다. 진보정치 역시 현재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뭉칠 것인가보다 어떤 대안을 보여줄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필요한 스스로의 변화는 무엇인가이다. 오늘의 고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진보정치가 변화의 가능성을 희망케 하는 별도의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면 시민들에게 진보정치가 독자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당에 대안이란 존재의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진보정치 역시 재결집과 통합의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기존의 진보정치와는 다른 어떤 대안으로 시민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여당이 아니고 야당인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여당보다 의석수가 적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어서? 각종 신당과 진보정당으로 분열되어 단결하지 못해서? 아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오직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야당인 이유는 우리가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