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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grinet.co.kr/news/photo/201507/138727_6311_4931.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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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 악양이 내 고향이다. 지금이야 교통도 좋고 세상에 많이 알려진 명소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정말로 두메산골이었다. 뒷산이 1,115m나 되니 짐작할만 할 것이다. 지금부터 35년쯤 전, 그 두메산골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컬러TV가 보급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아침, 며칠 전 들여 놓은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님께서 무슨 쌍욕 비슷한 말을 하면서 방을 나가셨다. 무슨 내용인가 보니, 봄철을 맞이하여 여성들의 올바른 피부 관리법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피부관리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즉슨 “피부가 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가급적 햇볕에 나가지 말고, 불가피한 경우는 반드시 썬크림을 바르고 보습을 잘해야 하며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반응은 “미친 X들 지랄하고 있네. 그걸 누가 모르나. 들에 나가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였다.
주민주도 농촌개발사업 시행 10년
얼마 전 무슨 강좌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는데, 강사로 오신 분이 “사람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그게 말이 되느냐, 불가능하다 등등의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그 강사의 얘기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누구라도 물 위로 걸어 갈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재빨리 왼발을 내 딛고, 또 왼발이 빠지기 전에 얼른 오른발을 내 디디면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돈만 쏟아부은 애물단지 시설 넘쳐
요즈음 농촌을 다니면서 문득문득 물위를 걷는 방법을 일러 준 그 강사의 이야기와 함께 35년쯤 전의 어느 봄날 아침 어머니의 역정이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2002년 녹색농촌체험마을, 전통테마마을사업 등을 시작으로 이른바 주민주도의 상향식 농촌지역개발사업이 시행된지 10여년이 훌쩍 지났는데, 우리 농촌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주민 주도성은 얼마나 강화되었을까? ‘지역리더’를 육성하면 그들이 중심이 되어 각자의 마을/지역을 바꾸고, 그것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 왔는데, 요즈음 우리 농촌은 기대와는 너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외양이 아니라 그 아래에 감춰진 진면목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무엇이 문제일까?
주민주도 상향식 농촌지역개발 10년, 우리의 목표는 얼마나 달성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실망스럽다고 말한다. 돈만 쏟아 부었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주민들의 이기심은 더 늘어나서 마을사업하기가 더 어려워 졌다고도 한다. 들어선 시설이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찬찬히 한번 되짚어 보자. 혹시, 우리의 목표나 방법이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농촌주민들에게 왼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내디디라고 해 놓고, 물에 빠진 것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물에 빠진 것은 네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들판에 나가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에게 피부관리를 위해서 햇볕에 나가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처방을 내린 적은 없는가? 정책당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
실현 가능한 목표·방법을 세워야
도로(徒勞)는 ‘헛되이 수고함’이라는 뜻이다. 6차산업, 창조적마을만들기, 퍼실리테이터양성 등등 각종 농촌지역개발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년 후, 도로(徒勞)가 되지 않도록 좀 더 치밀하게 계획하고, 현실에 기초한 접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난 10년의 평가가 필요하다. 두발로 물 위를 걷지 못하는 것은 농민 탓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