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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쿠바 젊은이들 "공산주의가 뭐죠"--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세계와 여행이야기/쿠바

by 소나무맨 2015. 6. 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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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쿠바 젊은이들 "공산주의가 뭐죠"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아카넷
480쪽, 2만2000원

정승구 영화감독이 쿠바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단순한 여행견문록이 아니다. 인문학적 풍취가 가득하다. 국내 필자가 쿠바를 이런 식으로 접근한 것은 처음이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살사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시가와 야구…. 쿠바 하면 떠오르는 단편적인 조각이다. 쿠바의 정식 명칭은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다. 미국과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해 ‘아메리카 대륙의 열쇠’라고도 불린다.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접하고 있어 ‘카리브해의 진주’로도 통한다.

 사실 우리가 쿠바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다. 엄격한 쿠바의 취재 정책 때문인데, 쿠바는 외국인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취재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비자가 있어도 공무원의 관리 하에만 취재가 가능하다.

 저자는 지난해 취재 비자를 받지 않고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쿠바에 갔다. 덕분에 현지인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그간 언론과 책에 소개되지 않은 쿠바의 이모저모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쿠바의 젊은이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그간 우리가 알아왔던 쿠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저자가 경험한 쿠바는 우리에게 낯설고 생경하다.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그 누구도 시가를 피우지 않았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듣지 않았다. (…) 그 누구도 마르크스는 고사하고 공산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젊은 친구들이 쓰는 은어 중 ‘공산주의’라는 형용사는 ‘구리다’ 또는 ‘안 좋다’로 통했다.”

 쿠바의 오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풍부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쿠바에서는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법이 엄격해서 음란 잡지나 동영상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적 착취의 산물인 음란물은 반혁명적인 것으로 간주돼 이를 소지하기만 해도 매춘 행위보다 훨씬 더 엄하게 처벌받는다.”

 영화감독이 쓴 책답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마치 한편의 로드무비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과감한 클로즈업과 롱샷으로 찍은 사진도 쿠바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으로 그려낸 제국과 화해 직전 쿠바의 마지막 모습!

지난 7월 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쿠바와의 국교를 재개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국교 정상화 합의 이후 한국 제품의 수입을 원하는 쿠바와 시장 확대를 바라는 한국의 외교관계 수립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서 쿠바에 관한 가장 최근의 정보와 분위기를 담은 영화감독 정승구의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의 출간은 주목할 만하다.

원래 쿠바에서는 취재 비자 없이는 어떠한 형태의 취재 활동도 허락되지 않으며, 취재 비자를 발급 받는다 하더라도 쿠바 공무원의 관리 하에 취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가을, 저자는 취재 비자를 발급받는 대신 쿠바의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쿠바로 떠났다. 그렇게 현지인들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베일에 싸인 쿠바 사회의 이모저모를 체험했다.

체 게바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사실의 일부이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쿠바의 건축물을 통해 행복의 의미와 미학을 탐색하며 쿠바 문화의 속살과 다양성을 위트 있게 드러낸다. 영화감독 특유의 과감한 클로즈업과 롱샷으로 찍은 사진들은 쿠바를 입체적으로 드러내주며, 책의 내용을 한층 더 실감나게 전달해준다.


저자 : 정승구
저자 정승구는 영화감독, 작가. 서울에서 태어나 세계 8개 도시에서 살았다. 90여 개국을 여행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장편과학소설 『영원한 아이』를 썼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의 각본을 쓰고 연출하고 제작했다. 영화 다음으로 쿠바를 좋아한다. 《중앙선데이》와 《시사인》에 쿠바의 문화, 역사와 정치에 대한 글을 썼다.


1 레솔베르 9
2 빠라이소 45
3 행복이라는 체인지업 105
4 체 175
5 개 같은 날의 오후 231
6 노인과 바다 269
7 아메리칸드림 349
8 작은 신의 아이들 387
9 파란 바람 429
10 아바나에 내리는 눈 453

 

 

상세이미지

▣ 책의 개요

쿠바가 열렸다! 미국과 쿠바, 53년 만에 역사적인 화해 결정!
정승구 영화감독의 시선에 담은 제국과 화해 직전 쿠바의 마지막 모습

미국이 쿠바에 대한 53년만의 봉쇄를 풀고 수교를 결정했다. 쿠바와 한국의 외교관계 수립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성공한 혁명으로 알려진 나라, 자유로운 음악과 살사의 낭만, 시가와 야구로 유명한 나라… 그러나 이처럼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박제화 된 쿠바의 이미지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떠한 형태의 취재 활동도 쿠바에서는 취재 비자 없이는 불법이고 취재 비자를 발급 받으면 쿠바 공무원의 관리 하에 여행과 취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4년 가을, 저자는 취재 비자를 받지 않고 쿠바에서 아는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현지인들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그동안 언론과 책에 소개되지 않은 쿠바 사회의 이모저모를 체험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한국 제품의 수입을 원하는 쿠바와 시장 확대를 바라는 한국의 수교가 시간문제인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쿠바에 관한 가장 최근의 정보와 분위기를 담은 책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쿠바의 다양한 색깔을 예리한 프레임으로 포착,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장르를 선보여

정승구 감독은 영화인이자 스토리텔러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직업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지구 여러 곳을 떠돌며 성장했다. 스위스에서 사춘기를 보내며 영화와 사랑에 빠졌고, 소설과 시나리오를 썼으며, 미국 동부의 기숙고교를 다니며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매료됐다.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정책학을 공부하고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감수성은 현지 쿠바인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쿠바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밀착 탐사뿐 아니라 쿠바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통찰하는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의 장르를 펼쳐 보인다.
가령 저자의 쿠바 여행에 동행하는 친구이자 현지 가이드인 하비에, 쿠바 젊은이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페페와 그의 여자 친구 다리아나가 주요 인물로 등장해 한편의 로드무비를 방불케 한다. 이들과 주고받는 대화를 비롯해 곳곳에서 저자가 겪는 사건들은 한편의 소설과 영화처럼, 때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뒤섞여 전개된다. 이러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의 기법을 차용한 서술방식은 쿠바를 입체적으로 드러내주며 깊이와 정서를 더해준다.
한편 쿠바인들의 일상과 쿠바의 건물 등을 과감한 클로즈업과 롱샷으로 찍은 사진들은 영화감독 특유의 예리한 감각을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한층 더 실감나게 전달해준다.

쿠바의 민낯과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쿠바에 관한 국내 저자의 첫 인문서

기존에 주로 소개된 쿠바 관련 여행서나 사진집과 달리 이 책에는 쿠바의 역사와 정치, 경제를 비롯해 종교와 문화 등 인류학적 접근이 돋보이며 소설가 김탁환의 추천사처럼 ‘한낮의 달뜬 소동극이자 한밤의 전아한 에세이’의 문학성이 곁들여진 인문서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체 게바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외로 사실의 일부이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찾아내고, 피델 카스트로의 리더십을 정치사회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하며, 쿠바의 건축물을 통해 행복의 의미와 미학을 탐색하고 쿠바 문화의 속살과 다양성을 위트 있게 드러낸다. 쿠바에 대한 인문적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는 참신함이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 책속으로 추가

쿠바인들이 부러웠던 순간
어쩌면 내가 쿠바에서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한국의 일상에서 얻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 쿠바인들은 부유한 나라에서 온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미묘한 슬픔을 느꼈다. 경제적인 유복함을 얻는 것보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_165쪽

조작된 체 게바라의 생일
‘체 게바라’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수많은 문서와 사이트에는 체가 1928년 6월 14일에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체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1928년 5월 14일에 태어났다.…두 사람은 1927년 11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결혼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체의 어머니는 그때 임신 3개월째였다. 속도위반 신혼부부는 남편의 사업을 핑계 삼아 인근 도시 로사리오로 떠났다. 그리고 6개월 후 체 게바라를 출산했다. 의사 친구의 도움을 받아 출생증명서를 6월 14일로 위조해서 약 두 달 조산한 것으로 꾸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친지들에게 알렸다._180~182쪽

체가 중앙은행 총재가 된 사연
언젠가 기자가 체에게 물었다. 왜 당신 같은 의사 출신 공산주의자 혁명가가 쿠바의 경제정책을 맡았느냐고. 그러자 체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는 피델이 경제학자가 필요한데 적합한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죠. 그래서 내가 손을 들었어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에꼬노미스타’(경제학자)를 ‘꼬뮤니스타’(공산주의자)로 잘못 들었던 거였어요.” 체 게바라는 유머감각이 있었다. 그는 ‘교양’ 있는 혁명가였다._200쪽

피그스 만 공격에 감사를 표한 체 게바라
피그스 만 상륙작전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군사 개입에서 첫 실패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해 8월, 체는 우루과이에서 열린 미주경제회의에서 우연히 케네디의 측근인 리처드 굿윈과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체는 쿠바산 시가 한 상자를 선물하며 피그스 만 공격을 해준 케네디 대통령에게 감사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체는 혁명정부가 안착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피그스 만의 승리로 민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입지를 굳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제안했다._205~206쪽

88올림픽 남북한 공동개최, 피델 카스트로가 제안
1986년 피델은 IOC 위원장 사마란치에게 1988년 하계올림픽의 남북한 공동 개최를 제안한다. 이를 모색하기 위해 남북 간 실무자 회의가 제네바에서 몇 차례 열렸다. 공동개최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고, 북한의 동맹인 쿠바는 동서방 국가 160개국이 참여한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한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화합의 아이디어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피델이 제안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_282쪽

피델이라는 이름조차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곳
피델을 지칭할 때는 그녀는 손가락으로 턱을 치고 두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무언극에 가까운 이 손짓은 모든 쿠바인들이 피델을 지칭할 때 쓰는 수화다. 쿠바에서는 이렇게 피델이라는 이름조차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_321쪽

크리스마스의 부활
교황은 1998년에 쿠바를 방문했다. 명분 없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비판하며 교황은 “쿠바는 세계에게 문을 열어야 하고, 세계도 쿠바에게 문을 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교황의 쿠바 방문은 1991년부터 혁명정부가 종교적 자유를 점차적으로 허용한 것도 한몫했지만, 쿠바의 헌법에서 바뀐 하나의 형용사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헌법에 ‘쿠바는 무신론 국가다’라고 기재된 부분에서 ‘무신론’이 ‘세속적인’으로 바뀐 것이었다. 교황의 건의로, 1969년부터 쿠바에서 폐지됐던 크리스마스는 공휴일로 부활될 수 있었다._327~328쪽

죽음을 무릅쓰고 에볼라 퇴치를 위해 떠나는 쿠바의 의사들
쿠바의 교육은 불필요한 경쟁보다는 건설적인 협력을, 타인을 다스리는 방법보다는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와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체 게바라처럼 되겠다고 맹세한 아이들은 커서 의사가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에볼라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로 주저 없이 떠난다. 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이나 건강과는 별 상관없는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다._333쪽

공산주의 쿠바에서도 성행하는 점집
산테리아는 서부 아프리카 노예들이 들여온 토속 종교 요루바와 스페인인들이 들여온 가톨릭이 혼합된 쿠바의 토종 신앙이다.…쿠바인들은 그동안에도 암암리에 산테리아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봤다. 많은 쿠바인들이 산테리아를 종교라기보다는 생활 미신 또는 역술 문화로 여긴다. 우리가 타로나 토정비결을 보듯이 많은 쿠바인들이 종교와 무관하게 개오지 조개껍질 점을 치고, 또 산테리아 사제들의 기도와 빙의를 통해 앞날을 들었다. 좀 더 미신적인 쿠바인들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싫어하거나 해코지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종이에 적거나 얼굴을 그려서 냉장고 뒤에 놓기도 했다._390쪽

우리들 마음에 있는 각자의 신이 중요
마그다의 말이 맞았다. 우리들 마음에는 각자의 ‘신’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비워지지 않기 때문에 늘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자기 마음의 ‘신’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돈을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돈이 신이고, 마그다처럼 페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아들이 신일 것이다. 걱정거리가 결국 각자 인생의 신이고, 목적이고 의미일 테니까. 그렇게 마음에 품은 신 덕분에 우리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_418쪽


책속으로

체의 사상? 그것이 도대체 뭐니? 훌리아가 생각에 빠졌다
마그다의 집 옆 건물에는 훌리아라는 일곱 살짜리 아가씨가 살고 있다. 훌리아와 나는 아침에 마주칠 때마다 서로 인사하며 친해진 사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인 훌리아는 영어를 못해서 하비에나 마그다가 우리의 대화를 통역해주곤 했다. 아바나에서 동부로 출발하던 날 하비에와 내가 차에 짐을 싣고 있는데 줄넘기 연습을 하던 훌리아가 달려와서 섭섭한 표정으로 내게 한국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산타클라라를 들러 산티아고까지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올 거라고 얘기해줬다. 훌리아는 자기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체 게바라의 기념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는 체 게바라에 대해 아세요?”
“아니, 잘 몰라. 음…… 네가 좀 가르쳐줄래?”
친절한 훌리아는 줄넘기를 접으며 내게 체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체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어요. 피델과 함께 쿠바를 해방시켰고요. 그리고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죠.”
“우~와, 정말? 대단한데!”
그녀가 뿌듯한 듯 미소를 머금었다.
“체가 외국에 갔다고 했는데…… 어느 나라에 갔니?”
추가 질문에도 훌리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막힘없이 대답했다.
“체는 볼리비아에서 싸우다 죽었어요.”
“저런…….”
“하지만 슬퍼하지 않아도 돼요. 체의 사상은 영원히 죽지 않으니까요.”
“그래? 아니 어떻게?”
훌리아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 왼손을 차례로 대며 말했다.
“체의 사상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에 살아 있으니까요.”
학교에서 아침마다 배운 이야기와 숙달된 동작이었지만 자부심을 갖고 이방인에게 체 게바라에 대해 가르쳐주는 훌리아의 표정은 내 마음 어딘가를 흔들었다.
“그렇구나. 근데…… 체의 사상? 그게 도대체 뭐니?”
훌리아가 생각에 빠졌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비에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눈짓으로 짓궂은 나를 나무랐다. 머뭇거리던 훌리아가 정답이 생각난 듯 활짝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_223~224쪽

시가를 피지 않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듣지 않는 쿠바의 젊은이들

쿠바의 젊은이들은 내가 쿠바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그 누구도 시가를 피우지 않았고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듣지 않았다. 간혹 살사를 즐겨 추는 친구들은 몇몇 봤지만 관광 책자에 나온 전형적인 쿠바인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마르크스는 고사하고 공산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젊은 친구들이 쓰는 은어 중 ‘공산주의’라는 형용사는 ‘구리다’ 또는 ‘안 좋다’로 통했다._64쪽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섬, 쿠바

말레꼰에는 밤이면 어김없이 호객꾼들이 나타났다. 고급 코히바 시가를 싸게 판다는 아저씨부터 여자 또는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포주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쿠바에서 매춘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특별시기’ 때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성매매는 오늘날까지 외국인들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쿠바에서는 이런 모든 활동을 일컬어 ‘히네떼리스모‘라고 한다…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쿠바에서는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법이 엄격해서 음란 잡지나 동영상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성적 착취의 산물인 음란물은 반혁명적인 것으로 간주돼 이를 소지하기만 해도 매춘 행위보다 훨씬 더 엄하게 처벌받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쿠바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순수한 섬이었다._80~83쪽

19세기 말 아바나에서 시가의 맛을 알게 된 처칠
아바나의 중심을 향해 프라도 거리를 걸어가면 우측에 영국 호텔이 나온다.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이 호텔은 1895년 군사참관인으로 쿠바에 온 윈스턴 처칠이 장기 투숙한 곳이기도 하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스물한 살의 풋풋한 처칠은 그곳에서 《데일리 그래픽》이라는 영국의 일간 화보지에 쿠바에 대해 기고했다. 저자는 처칠이 봤을 19세기 말의 화려한 아바나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 눈부신 모습에서는 마치 늙은 여배우의 화양연화처럼 아련함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처칠은 그때 원고를 쓰면서 쿠바 시가의 맛을 알게 됐고, 평생 트레이드마크처럼 시가를 입에 물고 다녔다._134~135쪽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은 결국 우리를 만든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잇는 예술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어서 우리와 물리적으로 닿아 있는 예술은 단연 건축이다._111쪽
문화적 다양성이 있는 사회는 잡종과 혼혈의 ‘우성종자’를 많이 배출하므로 면역력이 높고 건강하다. 건강한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건강한 태도를 심어준다._156쪽

쿠바인들이 부러웠던 순간
어쩌면 내가 쿠바에서 매력적



"쿠바 가보고 싶다고요? 먼저 쿠바가 되세요"

한겨레 | 2015.09.10 21:00

[한겨레]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사진·글/아카넷 펴냄(2015)

서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책을 파는 곳인가, 문화를 전달하는 곳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터넷 서점을 위해 진열장 구실을 하는 곳인가!

아니다. 서점은 좁게는 한 고을, 한 도시, 넓게는 한 나라, 궁극적으로는 문명의 기록을 보관, 확산시키는 요충이다. 그런 까닭에 서점이 없는 고을, 도시는 문화의 사막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점이 없는 고을에서 사는 데 익숙하다. 하기야 아무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명을 힘들여 캐내려는 자가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누가 책을 거론하겠는가. 한 개그맨 말마따나 '그저 웃고 떠들며 히히덕거리며'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언론, 사회, 위정자들 틈에서 살아남기에 서점의 생명력은 너무도 미약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서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책이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오직 그 수단을 통하지 않고는 미래로, 창조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모여 오늘도 책장을 뒤적인다.

교보문고가 있다. 그곳 책꽂이 또한 다른 서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이 팔리는 책들이 무수한 책꽂이를 차지하고, 발에 걸리는 책들 또한 더는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는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결코 잊힐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을 담은 채 온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자리에서 평생을 기다리다 쓸쓸히 사라져갈 바로 그 책을 만나러.

그런데 오늘 그곳에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 서점에서 평생을 책과 함께 살아온 직원들이 손글씨로-아, 이 단어는 얼마 만에 숨을 쉬는가!-자신이 읽고 감동받은 책의 서평을 써서 추천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아무도 볼 수 없는 후미진 곳이 아니라, 당당히 가운데 서가에서.

아는 사람은 안다. 그 서가를 유명짜한 책이 아닌, 오직 쓴 이의 영혼과 의지를 담은 무명의 존재에게 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기에 나는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맨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을 빼들었다.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참으로 그곳이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낯선 책 한 권을.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앉은자리에서 첫 쪽을 펼친 후 마지막 쪽을 확인하고야 덮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책이야! 여행 관련 정보는 단 한 줄도 없지만 지금 당장 쿠바행 짐을 싸게 만드는 책! 꼭 가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서 늘 머릿속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곳, 바로 그곳으로 향하기에 충분한 용기와 실천의 힘을 전해주는 책! 한 달 동안 둘러본 친구들이 이제 다 파악했다는 듯이 설명하던 내용이 사실은 쿠바라는 살아 숨 쉬는 땅이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에 놓인 어느 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 진짜 쿠바의 펄떡이는 심장을 열어 보여주는 책! 그 누구보다 쿠바를 사랑한 헤밍웨이를 가이드로 모신 책!

"쿠바를 가보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먼저 쿠바가 되세요" 하고 말하는 책. 과감한 책! 뜨거운 책! 한국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듯이. '한국에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한국이 되어보세요. 분단국가, 세상천지가 아파트인 나라, 300명의 젊은이가 죽어간 지 고작 1년 만에 그들을 떠올리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한 곳!'

500쪽 가까운 책 가운데 오직 단 한 줄, 289쪽 여섯째 줄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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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때가 묻기 전, 쿠바의 마지막 모습

오마이뉴스 | 2015.07.30 10:38

[오마이뉴스 이민희 기자]

지난 7월 20일, 미국과 쿠바는 워싱턴과 아바나에 각각 대사관을 재개설함으로써 1961년 국교 단절 이후 54년 만에 양국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했다.
여전히 북미 적대 관계, 남북 대치 상태에서 상시적인 전쟁 위기를 안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금융 세계화 열풍 속에서도 '쿠바 혁명'은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오랜 기간 쿠바를 옥죄어 왔던 경제 제재의 빗장도 풀릴 것이다.

이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불어닥칠 변화의 바람이 쿠바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세계의 이목이 지금 쿠바로 쏠려 있다.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유입되기 전,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쿠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행문이 출간돼 관심을 끈다.

▲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표지 .
ⓒ 아카넷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연출한 정승구 감독의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이다. 취재를 하려면 별도의 취재 비자를 발급받고 공무원의 감독 하에 취재를 해야 하지만, 정 감독은 쿠바에서 아는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혁명의 쿠바,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

정 감독의 눈에 비친 쿠바는 확실히 '인민의 낙원'이라거나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와 같은 판에 박힌 느낌이 아니었다. 각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쿠바는 그 풍광만큼이나 신비한 매력을 풍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행에서 만난 쿠바인들은 아직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았다. 인심이 넉넉하고 친절하며 사람관계에서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엮인 촘촘한 공동체는 쿠바 사회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반이다. 쿠바인들은 긍정적이고 오랜 관습과 문화를 통해 일상에서 행복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게 쿠바다.
곳곳에 숨은 보석들이 반짝이는 나라. 시간이 멈춰버린 어른들의 동화. 전설의 보물섬. 누더기를 입은 왕자 또는 공주. 또는 마녀, 또는 창녀, 그리고 성녀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 유령의 섬. 수많은 겹과 결로 이뤄진 오해의 미로. 열정적이고 유혹적이고 모순되고 현실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나라. 이 세상 그 어떤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명작 그 자체였다. (32쪽)

정 감독이 여행 기간에 묵었던 숙소 주인 마그다는 아들 페페와 함께 미국 마이애미로의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쿠바를 떠나는 것은 젊은층뿐만 아니라 변화를 바라는 쿠바인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들은 사회주의 몰락과 경제 봉쇄로 인한 파멸적 위기, 이른바 '특별시기'라고 불리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쿠바 혁명의 신화를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쿠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안고 있다.

"별을 봐야 돼, 별을. 우리가 아무리 시궁창에 처박혀 있을지라도 하늘의 별을 봐야 된다고. 이게 쿠바의 현실이야. 관광책자나 영화에 나오는 쿠바가 아닌 진짜 쿠바. 그래도.... 우린 별을 보도록 노력해야 해." 건물 밖으로 나를 끌고 나와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하비에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443쪽)

여전히 쿠바의 모든 교실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학생들은 아침 조회 시간마다 "공산주의자의 선구자들이여, 우리는 체처럼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쿠바 혁명을 넘어 사회주의로 단결된 라틴아메리카를 꿈꿨던 체 게바라는 쿠바 공동체를 지탱하는 신화이자, 여전히 살아있는 따끈따끈한 이야기다. 마그다의 집 옆 건물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훌리아는 "언젠가 어른이 되면 체 게바라의 기념비에 꼭 가보고 싶다"면서 "체의 사상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에 살아 있으니까요.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224쪽)라며 활짝 웃는다.

혁명을 넘어 또 다른 진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정 감독은 이 책에서 "쿠바는 20세기 역사가 만들어낸, 그 어떤 예술가도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아주 기이하고 독창적인 작품이 틀림없다"며 "어쩌면 이제 그 명작은 또 다른 진화 단계에서 변하고 있는 것일 뿐"(474쪽)이라고 썼다.

미국의 법무장관이었던 램지 클라크는 "피델 카스트로의 정부는 전 세계에 보여줬다. 고통, 무지, 빈곤과 부패로 얼룩진 바티스타 정권으로부터 벗어난 지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이들이 먹고 교육받고 치료받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회 시스템을 자국에 국한하지 않고 지구상의 다른 곳에도 수출해서 그들 역시 읽고, 알고,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335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경제 규모가 3분의 2로 줄어들면서 '특별시기'를 겪어야 했던 쿠바인들의 처지는 비참했다. 이 시기 혁명 정부는 오히려 이웃공동체의 사회적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위기에 대처했다. '특별시기' 동안 단 하나의 병원도 문을 닫지 않았고, 단 한 명의 교사도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대 쿠바 국내 총생산 가운데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들어간 비용은 34% 증가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다 지저분했지만 아이들 교복만은 깨끗했다네. 누구나 아이들에게는 품위와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어했으니까. 자기 자신만의 암울한 인생을 걱정하고, 자기연민에 빠진 이기적인 사람들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야. 그런 사람들은 주변이나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영혼이 삐뚤어진 이들이지. 과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우리 스스로 깨달았던 것 같아.

미국이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고 소련이 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즐거움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그러니까 어떻게 상황에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지. 고통과 고난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우리의 선택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자유란 말이지. 그런 자유야말로 우리가 혁명을 지키고 또 우리 자신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었다네." (415쪽)

클라라 할머니의 말을 통해 비로소 '특별시기'를 이겨낸 진짜 비결을 알 수 있다. 쿠바 혁명은 외세가 심은 이념이 아닌,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일궈낸 사회이자 문화이자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오히려 특별시기 덕분에 정부에서 무상으로 받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들에게 '창의력'을 주었다는 쿠바인들. 그들이 특별시기를 이겨낸 저력은 '희망은 바깥에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 즉 쿠바 인민들의 진정한 '자유'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때가 묻기 전 풋풋한 쿠바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정 감독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없어지는 해피엔딩은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온 쿠바인들의 명분 있는 승리이자 역사적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쿠바를 축하해주고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2014년처럼 내 마음속의 쿠바도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섭섭하다"고(471쪽) 토로했다.

정 감독의 말처럼 거대한 변화에 직면한 쿠바인들이 호모사피엔스들에게 멸종된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들'처럼 될까. 혁명의 철학적 토대를 공격하고 도덕적 열망 대신 물질적 욕망이 발흥하는 소비주의의 물결 앞에서 그들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사회주의로 단결된 라틴아메리카를 꿈꿨던 체 게바라의 상상력은 자본주의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21세기 버전으로 새롭게 꽃필 수 있을까. 지구 반대편 쿠바의 미래가 궁금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정승구 지음 / 아카넷 펴냄 / 2015.06.)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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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로드무비 같은.. 쿠바·쿠바 사람들의 오늘

한국일보 | 2015.06.26 20:20

시가를 피우고 있는 쿠바의 할머니. 쿠바는 세계 최고 품질의 시가, 낙천적인 평화주의자의 나라로 통한다. 아카넷 제공

체 게바라, 모히토, 시가, 헤밍웨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사회주의, 피델 카스트로, 아바나 해변의 말레콘 방파제….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많은 여행자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낭만의 공간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유명하다. 정말 그럴까. 영화 다음으로 쿠바를 좋아한다는 정승구 영화감독('펜트하우스 코끼리')이 지난해 가을 쿠바의 진짜 모습을 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기의 형식을 띤 쿠바 종합 소개서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쿠바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쿠바의 문화와 역사까지 담았다. 어디로 가야 좋은 볼거리가 있고 맛집이 있는지를 귀띔해주진 않지만 쿠바의 일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고 쿠바의 현재를 통해 한국의 현재를 살펴보게도 만든다. 쿠바의 건축물, 집, 거리, 골목, 풍경, 사람들을 찍은 근사한 사진들이 구경할 만하다.

책은 두 가지 성격의 글로 짜여있다. "나의 조국 쿠바는 낙원"이라고 말하는 가이드 하비에, 중년 부인 마그다와 스물두 살의 아들 페페, 페페의 친구 다리아나 등 현지인들과 겪은 이야기가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쿠바의 문화, 정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소개다. 앞 부분은 여행 에세이의 성격이 강한데 뒤로 갈수록 진지한 설명문이 많아진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도 자세히 소개한다.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쿠바를 볼 수 있도록 돕는 구성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생동감이 떨어지고 교과서를 읽는 듯 딱딱한 느낌이 든다.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아카넷 발행ㆍ480쪽ㆍ2만2,000원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하버드대에서 정치정책학을 공부한 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독특한 이력답게 저자는 쿠바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사람 사는 이야기다. 저자의 선입견과 달리 쿠바의 젊은이들은 거의 시가를 피우지 않고 쿠바 재즈를 세계로 알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듣지도 않는다. 관공서에 가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건 둘째 치고 "내일 다시 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다혈질인 남미인들과 달리 쿠바 사람들은 낙천적인 평화주의자에 가까운데 그래서인지 쿠바에는 강력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가 현지인들과 만나는 이야기는 한 편의 로드무비 같다. 별다른 사건은 없지만 쿠바의 현재를 살아가는 필부필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육상선수였던 마그다는 전 남편과 이혼하고 30년 전 만난 쿠바계 미국인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영재교육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였던 다리아나는 교통사고 후 꿈을 접고 암시장 상인으로 살고 있다. 페페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엄마 마그다에게 숨기고 있지만 마그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평화로운 삶 속에서도 이들은 미래가 불안하고 불투명한 나라에서 떠나고 싶어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총체적인 환멸을 느꼈"다는 저자는 쿠바 여행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긍정적인 상상력"이었다고 적었다.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상상력,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상상력,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 그건 체 게바라가 쿠바인들에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쿠바의 민낯에 푹∼ 빠지다

세계일보 | 2015.06.27 07:51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정승구 지음/아카넷/2만2000원

"쿠바의 젊은이들은 예전 나의 선입견과는 너무 달랐다. 내가 만난 그들은 시가를 피우지 않았고 살사바에도 가지 않았다. 간혹 살사를 즐겨 추는 친구들은 몇몇 봤지만 관광 책자에 나온 전형적인 쿠바인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마르크스는 고사하고 공산주의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젊은 친구들이 쓰는 은어 중 '공산주의'라는 형용사는 '구리다' 또는 '안 좋다'로 통했다."



정승구 지음/아카넷/2만2000원
젊은 영화감독이자 여행가 정승구의 색다른 쿠바 여행기가 나왔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성공한 혁명으로 알려진 나라, 자유로운 음악과 살사의 낭만, 시가와 야구로 유명한 나라….' 저자는 이처럼 박제화된 이미지와는 다른, 교과서 밖의 쿠바 모습을 전하기 위해 발로 뛰고 글로 써냈다.

작년 말 미국과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쿠바는 요즘 한국인에게도 성큼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과 가장 가까운 사회주의 우방은 쿠바다. 저자는 2014년 가을 취재가 아닌 여행 비자로 쿠바를 찾았다. 연줄을 통해 인터뷰 약속을 잡고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보았던 수도 아바나를 찾았다.

맨 처음 만난 사람은 일곱살짜리 어린아이 훌리아였다. 훌리아는 숙소로 잡은 민박의 옆집 아이였다. "'체 게바라의 사상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에 살아 있으니까요.' 학교에서 아침마다 배운 숙달된 동작이었지만 자부심을 갖고 이방인에게 체 게바라에 대해 가르쳐 주는 훌리아의 표정은 내 마음 어딘가를 흔들었다."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의 리더십은 쿠바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북한 공동개최를 처음 제안한 이는 피델 카스트로였다. 1986년 피델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사마란치에게 1988년 서울올림픽의 남북한 공동 개최를 제안했다. 이를 토대로 남북 간 실무자 회의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몇 차례 열렸지만 공동 개최는 물건너갔다. 쿠바는 160개국이 참여한 서울올림픽을 보이콧했다. 하지만 한반도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화합의 아이디어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카스트로가 제안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젊은이들은 카스트로를 얘기할 때 두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는 시늉을 한다. 무언극에 가까운 이 손짓은 모든 쿠바인들이 카스트로를 지칭할 때 쓰는 일종의 '수화'다. 그를 얘기할 때 쿠바인들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왕조 국가의 그런 위치는 아니었다.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의미였다.

미국에서 건너온 자본주의의 쓰레기가 판을 치는 쿠바이지만 그래도 교육은 사회주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쿠바 아바나 시민들이 2008년 4월30일 혁명광장에서 다음날 열릴 메이데이(노동절) 퍼레이드를 준비하며 혁명지도자인 체 게바라의 기념비 앞에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쿠바의 교육은 불필요한 경쟁보다는 건설적인 협력을, 타인을 다스리는 방법보다는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와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는 "아침마다 학교에서 체 게바라처럼 되겠다고 맹세한 아이들은 커서 의사가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에볼라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로 주저 없이 떠난다"면서 "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이나 건강과는 별 상관없는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쿠바에 대해 "내가 쿠바에서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은 한국의 일상에서 얻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불만"이라면서 "쿠바인들은 부유한 나라에서 온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미묘한 슬픔을 느꼈다. 경제적인 유복함을 얻는 것보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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