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놓고 있는 朴정부 경제팀]
- 수출은 줄고, 지갑은 닫고
지난달 수출액 10% 넘게 급감, 극장·백화점·마트 온종일 한산
한국경제 양날개 치명타 입는데 세월호 때와 똑같이 안이한 대응
"금리 인하·추경 등 적극 검토해야"
역대 최저인 연 1.75%까지 기준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풀어가면서 식어가는 불씨를 살리려던 한국 경제가 양대 악재를 만나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엔저(低)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수출 대기업이 휘청거리는 데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하면서 내수마저 더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이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초동 대응에 실패한 데 이어, 현 정부 경제팀 역시 엔저와 메르스라는 양대 악재를 맞아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이나 위기의식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사고 당시 "대형 재난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안이하게 대응하다 경제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경기가 얼어붙게 만들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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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효과 본격화, 수출 급감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00엔당 원화 환율은 891.97원을 기록했다. 2008년 2월 이후 7년 3개월 만에 최저다. 그 바람에 10년 이상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여온 우리나라 수출은 올 들어 유례없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 둔화까지 겹치면서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9%나 줄었다. 올 들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3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 인파가 줄어 한산한 모습이다. 평소엔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곳인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06/03/2015060304380_0.jpg)
- ▲ 3일 오후 서울 명동 거리에 인파가 줄어 한산한 모습이다. 평소엔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곳인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유동 인구가 크게 줄었다. /남강호 기자
엔저의 가공할 효과는 해외 시장에서 일본 자동차 메이커와 가격 경쟁을 벌이는 현대차의 부진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지난달 미국 판매는 1년 전보다 10.3% 급감했다. 이 같은 실적 쇼크로 현대차 주가는 지난 2일 10.36% 폭락한 데 이어 3일에도 2% 이상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 중견 자동차업체인 스바루와 미쓰비시는 미국 시장에서 각각 12%와 32% 판매량을 늘렸다. 일본 조선업체들은 엔저를 등에 업고 지난 1월 월간 선박 수주량에서 7년 만에 1위에 올랐다. 여행 시장에서는 한·일 양국의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역전(逆轉)됐다. 올 들어 4월까지 해외 관광객 숫자가 일본은 589만명이지만, 한국은 459만명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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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 악재 메르스, 제2의 세월호 되나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메르스 쇼크가 길어지면 소비 심리도 급격히 얼어붙을 것이 자명하다. 전염병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했던 2003년 초 중화권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2003년 2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9%로 전분기(10.8%)보다 급락했다. 홍콩도 그해 1분기에 4.1%였던 성장률이 2분기엔 -0.9%로 쪼그라들었다. '메르스'발 충격이 경제 위축으로 더 확산되기 전에, 경제팀도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우리 경제는 수출 감소, 내수 부진의 만성 질환으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메르스라는 급성 합병증이 와 경제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고 불안감이 고조된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3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메르스 사태가 악화되면 세월호 충격보다 더 큰 경제 충격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팀은 어디서 뭐하고 있나전문가들은 엔저 쇼크로 인한 수출 감소 및 메르스 확산 등에 따른 내수 심리 침체를 경제 비상사태로 보고 경제팀이 쓸 수 있는 정책을 총동원해서 경제의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엔저에 맞서서 기준금리 인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데 손놓고 있다. 한국 정부나 중앙은행의 무대응이 이상하다는 외신의 지적이 나올 정도다"라고 말했다. 대한상의 이동근 부회장은 "기업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엔저인데, 정부가 6월 말까지 수출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확실한 대책이 나올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메르스로 인한 경제 쇼크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추경을 포함한 모든 수단도 검토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더 낮추고,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추경 편성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메르스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계부처와 함께 점검하고 있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한은도 “엔저나 메르스의 영향을 예의주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준금리 인하를 얘기하면 가계부채 문제가 걸리고, 추경을 얘기하면 재정 적자 같은 문제가 걸리지만, 수출 저하에 메르스 쇼크가 겹칠 가능성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부가 칼 한 번 빼보지도 못하고 있으니 경제 주체들이 지쳐가는 상황”이라며 “현 정부의 경제팀과 한국은행이 과단성 있게 밀어붙이고, 정치권의 협력을 얻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