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 배울래요" 학생 말에 양봉업자 모셔온 學校

2015. 3. 13. 13:06교육, 도서 정보/교육혁신 자치의 길

 

 

 

 

"양봉 배울래요" 학생 말에 양봉업자 모셔온 學校

  • 대구=정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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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03.13 03:00

    [학업 중단 청소년 위한 '대구 방송통신中'의 특별한 교육]

    국·영·수 일반 교과 외에도 요리·목공 등 맞춤형 교육
    무단결석 밥먹듯 한 아이도 "수업 재밌어 기다려져요"

    "이 설화에 무슨 허점이 있는 것 같노?"

    "저요, 저요!"

    11일 오전 대구 달서구 방송통신중학교 '논다'반. 역사 선생님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이날 수업에서는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과 김춘추(무열왕)의 결혼 설화를 들려주고 어색한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준서(가명·16)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난해 봄 입학했을 때만 해도 표정이 어둡고 말수가 없던 학생이었다. 불만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졌다. 화가 나면 감정 조절이 안 됐다고 했다. 그런 준서가 지난 1년 만에 달라졌다. 지난 겨울에는 2박3일 대구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일주를 하면서 친구의 고장 난 자전거를 고쳐주기도 했다. 준서는 "하루종일 페달을 밟아 내 힘으로 부산까지 가면서 화가 나도 참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다 그만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인 대구 방송통신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요리 실습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과 수업은 물론 자전거 여행이나 공동체 회의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에 다니다 그만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인 대구 방송통신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요리 실습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교과 수업은 물론 자전거 여행이나 공동체 회의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다. /대구방송통신중 제공

    준서가 다니는 대구방송중은 만 18세 이하 학업 중단 청소년들이 다니는 공립 중학교다. 학교 다니다 중도에 그만둔 청소년들이 교육 대상이다. 수업은 온라인 수업과 주3일 출석 수업으로 구성되며, 정규 중학교 교육과정의 80% 이상만 이수하면 중학교 졸업장을 수여한다.

    대구교육청이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연 것은 지난해 3월이다. 학업을 중단한 10대 청소년들을 학교로 데려오고 중학교 졸업 학력을 취득하는 것을 도와주는 게 목적이다. 방송통신 교육제도를 활용해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정규 교육기관을 개설한 것은 대구 방송중이 처음이다. 작년에 41명이 입학했고 올해 30명이 새로 신입생이 됐다.

    학교를 중도 이탈한 청소년은 심각한 수준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한 해만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이 6만8000여명에 이른다. 여성가족부는 전국에 있는 학교 밖 아이들이 28만명(학령기 청소년 인구의 4% 미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교한 대구 방송중에서는 지난 1년간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친구나 선생님을 때리고 결석과 지각을 밥 먹듯 했던 '문제아'들이 이제는 등교를 손꼽아 기다린다. 역사를 가르치는 최병학 교사는 "과거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맞거나 따돌림을 당해 움츠러들었던 학생들이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선생님과 장난칠 정도로 밝아졌다"고 말했다.

    대구 방송중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실시한다. 학업 중단 후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던 정민(가명·16)군은 어느 날 선생님에게 "양봉을 배우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양봉업자를 수소문해 정민군이 체험 학습으로 꿀 따는 법을 배우게 했다. "제가 뭘 배우고 싶다고 하면 뭐든 지원해주시는 선생님들께 제일 감사해요."

    이렇게 학교가 정착하는 데는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이 컸다. 대구방송중 교사 12명은 모두 자진해 이 학교에 전근 왔다. 일반 교과 수업 외에도 목공, 텃밭 가꾸기, 자전거 여행 등 다양한 예술·체육 활동을 이끌며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도왔다.

    전병석 교감은 "역사 선생님이 아이들과 텃밭을 가꾸고, 생물 선생님이 자전거 수리하는 법도 가르치는 등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혼신을 다한다" 고 말했다. 등교하지 않는 학생의 집 앞으로 찾아간 이들도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교칙도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모여 정한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 사용하지 않기' '무단결석이나 지각·조퇴하지 않기'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등이다. 규칙을 어기면 벌칙을 받는다. 변태석 부장교사는 "스스로 정한 규칙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잘 지킨다. 아직도 담배 피우는 학생들이 있어 걱정이지만 선생님과 학생들이 밀고 당기기를 해가며 고쳐나간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인 학생들은 "제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변 교사는 "의욕이 없던 학생들이 진로 고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라며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