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학교협동조합 방문기①] 학교협동조합의 본류를 찾아서

2015. 1. 27. 08:23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사회적경제의 필요성과 잠재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을 비롯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사회적경제는 저성장·저고용으로 침체 일로를 겪고 있는 우리 경제환경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안으로 만든 (가칭)서울학교협동조합추진단은 지난 1월 19일부터 1월 23일까지 학교협동조합이 발달한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하고 돌아왔다. 말레이시아는 최근에 붐이 일기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을 잘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 관련탐방 기사를 4회로 나누어서 싣는다...<기자말>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던 사회적기업 육성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또 협동조합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육성과 홍보를 통해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967개의 협동조합을 인가했다. 이는 전국 협동조합 3210개 중 30%를 차지하는 막대한 규모다. 박 시장은 2022년까지 서울시 협동조합을 8000개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협동조합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면 학교협동조합은 결성은 지지부진하다.

일례로 지난해 서울 금천구 D고등학교에서 어머니들이 모여 학교매점을 협동조합으로 만드는 운동을 벌였다. 서울시는 건강매점 지원을 하고 학부모들은 학교협동조합을 결성하는 좋은 협업관계를 구상한 것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협동조합이 매점운용을 하려면 한 가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른 최고가 입찰이다. 

D고등학교 어머니들은 학교매점을 협동조합식으로 운영하려고 오랫동안 많은 준비를 했으나 입찰과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어머니들이 1년 매점 임대료로 1800만 원을 적어 넣었는데 업자는 2300만 원을 써넣은 것이다. 단 500만 원 때문에 최고가 입찰규정에 따라 탈락하자 이를 준비한 학교장님과 어머니들의 실망감은 컸다.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구로구 Y중학교는 교육청, 교육부와의 지리한 핑퐁 게임 끝에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인정을 받아 어머니들이 힘겹지만 뜻있게 운영을 하고 있다. 해당 학교 어머니들은 "답답해서 몸으로 뛰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D고등학교 어머니들은 협동조합인가까지 받았는데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일반적으로 학생 1000명 규모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교매점 임대료는 1년에 5000만 원이 넘는다. 그 정도의 매출을 올리려면 연 매출 1억 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무슨 "간식 사먹는 기계"들도 아니고 매출을 올리려면 학생들 입맛을 확 끌어당기는 조미료가 포함된 인스턴트 식품과 과자 등을 매장에 깔아야 한다. 피자, 햄버거 등 고열량 즉석식품은 청소년 비만의 원인이다.

나 역시 서울시의 재정경제위원회위원으로 2013년 초부터 1년 동안  어머니들의 의지와 서울시의 지원이 결합해 두 주체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 학교협동조합 5~6개는 너끈히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는데 실망이 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듣기로는 말레이시아에는 학교협동조합이 중고등학교에만 200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과연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한 것일까? 말레이시아 교육부는 어떻게 학교협동조합을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설치 장려한 것일까?

"22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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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학교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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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가보는 거야."

그런 초보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서울학교협동조합추진단(가칭)을 결성하고 두세 차례 모임을 통해 사전 정보를 습득한 13명은 함께 길을 나섰다.

경비를 아끼느라 비행기를 갈아타고 고생고생 끝에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말레이시아 교육부. 말레이시아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지만 우리처럼 쿠알라룸푸르 옆에 과천 같은 행정도시를 만들어 총리공관과 정부부처 등을 모아 놓았다. 말레이시아는 국민경제소득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더구나 말레이시아는 협동조합을 서클 활동처럼 장려하며 학생들이 경제관념과 회계방식실습, 사업가 정신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도록 활용하고 있다. 학교 협동조합을 통해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성을 기르는 데 좋다는 인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학교협동조합설립허가를 내줄 때 학부모들에게 수많은 '핑퐁'을 치며 설립을 지연시킨 것과는 분명 달랐다.

다음은 말레이시아 교육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교육부 관리의 환영사 중 일부이다.

"국가의 발전이나 경제발전에 있어 교육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육을 통해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나 국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가 양성됩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개인 각자의 지식이나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가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말레이시아의 교육을 통해 학생은 지식적인 측면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숙됩니다. 교과서 지식 습득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인지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문제풀이식의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높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위해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도록 팀 활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엔 무려 2200개 이상의 학교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교육은 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6개의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을 기르는 교육, 단 하나의 언어만이 아니라 영어와 같은 외국어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영적 성숙, 국가관 제공 등을 목표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말레이시아 교육 철학의 일부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스포츠 클럽 중 한군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기르고, 더 도덕적으로 훈련이 되어, 나중에 기업가가 되더라도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가격과 정보를 주는 법을 익히게 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당연히 학교 협동조합 내 의사결정 구조의 주체는 학생이 된다고 한다. 학교 협동조합 내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리더를 뽑는다. 학생들 스스로가 조직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학교관계자는 조언을 해주거나 독려를 할 뿐이지, 교육부에서 전혀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 이사회도 학생들로 구성된다.

교장은 일 년간 학교 협동조합 활동이 끝나면, 결산을 하고 거기에서 난 수익은 다른 학교 협동조합 활동을 돕는 데 쓴다고 한다. 학부모는 학교 협동조합 활동에 관여하지 못한다. 학생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학부모가 대신 계약서에 사인 하는 정도이며 학부모회도 따로 없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학교매점협동조합은 학부모가 중심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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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레이시아 내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 매점.
ⓒ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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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를 방문해 얻는 학교협동조합 기본지식을 바탕으로 오후엔 학교현장을 방문했다. 세리 푸트리(Seri Puteri) 공립학교는 공립이지만 기숙사가 제공되며 전국에서 성적 상위 5%의 학생들이 진학한다. 25에이커, 5개 학년, 870명 재학하고 있는 여학교이다. 전교생이 출자하고 1년마다 정산을 한다는 학교 매점에 가 보았더니, 학생들이 선호하는 간식류와 아이스크림, 운동복과 필기도구 등 다양한 상품구색을 맞춰 놓았다.

말레이지아의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제품은 공동상표가 있지만 협동조합이라 해서 특혜를 주지는 않는단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기 위해서다. '영업은 영업, 교육은 교육'이라고나 할까.

두번째날엔 앙카사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협동조합네트워크기구를 방문했다. 앙카사에는 3000여 개 조합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데 그 중 2200개가 학교협동조합이라고 한다. 앙카사는 학교교복을 공동구매하고 A4 용지 등을 공동구매하여 학교에 싸게 공급한다.

예를 들자면 말레이시아 교복은 남학생은 흰색 셔츠와 그린색 바지, 여학생은 히잡과 흰색셔츠, 곤색치마로 통일되는데 시가로 대략 1만5000원 정도다. 제품은 베트남, 중국 등에서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시가의 70~80%로 공급한다. 교육부의 도움 없이 앙카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서로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한국 협동조합관계자들의 관심은 주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선진외국에 집중되어 있지만 같은 동양권인 말레이시아 사례도 자못 흥미로웠다. 하루 먼저 돌아오기 위해 일행과 헤어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학교협동조합매점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이 생각났다.

이번에 함께한 일행들은 말레이시아 학교협동조합사례를 통해 서울도 학교협동조합의 선구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왔다. 첫번째 글은 전체적인 스케치를 중심으로 학교협동조합사례에 집중했지만 향후 이어질 글에서는 동행한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말레이시아 협동조합 전국협의회 등 방문기관별로 자세한 내용을 담은 글을 올릴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시의회 의원이며 재정경제위 소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