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재편합시다

2014. 9. 22. 22:01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진보정치, 재편합시다

[기고] ‘강한 여당, 약한 제1야당, 의미 없는 진보정당’ 틀 부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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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노동정치의 재편과 통일을 호소하는 기고 글을 노동당 강상구 전 부대표가 보내왔다. 앞으로 몇 차례 더 기고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독을 권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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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늘 운동이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할 때는 대충 정해진 순서가 있었습니다. 세계정세를 살피고, 한국의 경제·정치상황도 살피고, 우리의 주체적 조건을 감안한 후에 해야 할 일을 정하는 식이었죠. 진보정치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같은 방식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 배운 게 도둑질이니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진보정치가 현재 상태대로 굳어져 버리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보정치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다만, 이런 의견을 갖게 된 것이 썩 즐겁지는 않습니다.

노동당 당원으로서 나름대로 운동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고, 지역에서 계급적 사회운동 모델을 만들기 위해 민중의 집에서 딴에는 열심히 일 했습니다. 방사능안전급식 주민발의 운동을 제안하고 성공시켰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 유일의 진보정당 구의원 당선자를 내는 데 선거운동본부장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열심히 활동하다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자주 합니다. 내 원칙대로 살고, 그것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차분히 기다리면 되는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재편이네 통합이네 이런 목소리들이 나오는 게 정말 지겹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낯부끄럽지만 저는 진보재편을 주장합니다.

우선, 2008년에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가 터진 후에 신자유주의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정책들인 규제완화, 민영화 같은 것들이 여전히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죠.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당연히 사람들 먹고 사는 처지는 더 안 좋아질 겁니다. 최경환 장관이 경제를 다시 살려보겠다고 하지만, 어차피 빚내서 경제 키우는 수법은 새로운 방법도 아니고 오래 가지도 못할 겁니다.

문제는 빈곤한 대중들이 자신의 삶을 개선해줄 정치세력으로 누굴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 스스로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스스로 형성해 나가며 변모해갈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데요, 이 점을 생각해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어차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익적 방식도 있고 좌익적 방식도 있는 법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현실에서는 좌타자든 우타자든 안타 치는 선수가 장땡이죠.

삶을 개선시키는 좌파정치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대중들은 우익 가운데 누군가를 선택합니다. 먹고 살기가 아주 힘들어지면 때로 대중들은 극우적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번 만들어진 정치성향은 웬만해선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우익 주도 사회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문제가 좀 큰 것 같습니다.

우선 대중들은 이명박·박근혜를 선택했었습니다. 우익적 방식으로 삶을 개선하겠다는 집단적 의지 표명을 한 것이죠. 아울러, 어버이연합 같은 극우집단의 세력화는 최근에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일베도 예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사실 신자유주의 20년이면 ‘남을 짓밟고 살아남기’가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뒤덮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입니다.

걱정되는 것은 이런 현상이 날로 심해질 것 같다는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집회·시위 같은 대중직접행동을 통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정치 영역의 수준에서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강한 여당, 약한 제1야당, 의미 없는 진보정당’ 이라는 어이없는 3각 구도가 계속되는 한 더욱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은 새누리당입니다. 야당은 당선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만 새누리당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권의지의 수준이 처음부터 다른 거죠. 새누리당은 지역 기반도 매우 튼튼합니다. 영남지방의 지지율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나머지 지역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정당도 새누리당 만큼 풀뿌리 정당을 하는 곳이 없습니다. 또한 새누리당은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고, 때로는 같은 당 인사들을 정치사찰까지 하는 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계파 간 자리바꿈도 할 줄 알고, 상식을 뒤집는 과감한 혁신도 할 줄 압니다. 무엇보다도 대중적 지지율이 높은 인사를 대선 등의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정당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제1야당은 벌써 오랫동안 외부수혈을 통해 겨우 유지되고 있는 환자 신세입니다. 그러나 외부수혈이 허약한 제1야당 처지를 극복하는 힘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누차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초강력 여당이 계속 집권하고, 나머지 야당은 액세서리 정도로 있는 그런 정치구조가 아예 굳어져버릴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87년 이후에 대통령을 선거로 뽑은 후 한 30년 가까이를 각축하던 극우 성향의 여당과 보수야당 간의 대결은 오는 2016~18년 3년간의 연속된 선거 국면을 거치면서 거의 어떤 하나의 ‘체제’로서 고착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체제’는 한 번 만들어지면 대개 한 20-30년은 그대로 갑니다.

이런 마치 ‘1당 독재’ 같은 체제, 그러니까 일본과 매우 비슷한 이런 체제를 진보정치 활동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체제는 그 동안 양당 사이에서 분투했던 모든 제3세력의 시도가 거의 완전히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동안 제3세력은 대부분 보수정당 간의 다툼과 이합집산 속에서 등장하기도 했고, 우연적이거나 필연적인 어떤 사회적 상황 속에서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박찬종, 이인제가 그랬고 문국현, 안철수가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선 때 제3후보의 형태로 등장했거나 등장할 뻔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 기존 보수 정치 구조 속으로 편입되거나 소멸되었습니다.

진보정치 세력은 이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집단입니다. 보수정당간의 이합집산 속에서 나오거나 대선 때 잠깐 후보로서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화된 대중운동 속에서 잘 준비되고 계획된 채로, 그 안에 수많은 훌륭하게 단련된 활동가들을 보유한 채로 등장했습니다. 나름대로 노동현장과 지역에 뿌리를 탄탄히 갖추고 있었으며, 기존의 제3세력과는 달리 독자적 이념·노선·정책을 두루 갖추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진보정치 세력은 더 이상 제3세력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힘든 처지입니다. 당연히 한국 정치를 통째로 바꾸는 건 더 어려워졌습니다. 거대한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2016년 총선 역시 자력으로 지역구 당선자를 내기 힘든 게 진보정치의 실력입니다. 이건 2012년에도 그랬고, 2008년에도 그랬습니다. 그 보다 전에는 야권연대가 없었어도 우리 실력으로 지역구 당선자를 냈다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 실력을 기대하는 게 더 요원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진보정치의 선두주자이니 이대로 있으면 된다거나, 우리가 유일하게 옳으니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집권은 고사하고 보수야당에 종속된 진보정치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얼마 전의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가 부끄러운 우리 실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보정치를 다시 세우는 방법과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각자 도생하여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식의 경로는 앞서 말했듯이 한국정치의 보수적 체제 고착화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입니다. 그 시간 동안 생존과 확장 보다는 오히려 소멸이 더 현실적 미래라는 사실, 우리는 벌써 수년째 그런 경향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을 저는 인정합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진보정치재편의 요구는 단지 몇몇 정치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음모라거나 하루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조급증의 발로가 아니라 이런 나름대로의 ‘판단’이 적지 않은 설득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보정당 내부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지난 3년여의 진보정치 분화 과정에서 이탈한 무당파 진보대중 사이에서도, 노동현장과 지역에서도 진보재편의 요구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활동가들의 다급한 성명서 같은 형태로 나오기도 하고, “더 이상 먹고 살기 힘들어서 활동 못하겠다. 당이 최소한 활동가의 생계는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는 탄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되는데, 그냥 합치지”라고 무심히 얘기하는 유권자의 목소리에도 그런 요구는 담겨 있고, 투쟁의 현장에서 제 역할 못하는 진보정당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노동자들에게서도 그런 요구는 읽힙니다.

저는 그래서, ‘진보재편’의 요구가 계속해서 나오는 맥락을 이해하고, 그 근본원인을 해소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동현장에서 왜 진보정치재편의 필요성이 자꾸 제기되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에는 진보정치를 다시 세울 강력한 대중조직이 없습니다. 민주노총은 진보정치를 갈라놓았던 정파 구조가 여전히 살아있어서 진보정치 재편 과정에서 어떤 하나의 입장을 제시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대중조직과 함께 하는 진보정당만이 비로소 의미가 있고, 힘도 갖출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매우 슬픈 일입니다.

노동자대회

예전에 노동조합 조합원들 사이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70%씩 나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사실 진보정치에 제대로 참여해 본 적이 없으며, 선거 때 되면 돈 대고 몸 댄 게 전부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에 한번 씩 돈 낸 경험, 진보정당 후보를 찍은 경험, 조합원이 진보정당의 후보로 출마한 경험, 선거 운동에 참여해본 경험 등이 사실은 진보정당이 노동운동 내에서 일종의 헤게모니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런 건 그냥 옛날 일입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을 접할 수 있었던 진보정당 친화적인 문화도 사라졌습니다. 민주노총에는 새롭게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공 같은 경우 조합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반쯤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새롭게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지만, 이 분들 사이에서 진보정당은 그냥 집회에 자주 오는 당 정도의 의미입니다.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인식은 몇몇 노조활동가들 사이에만 존재하지 조합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생각은 아닙니다.

노동조합 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해 진보정당이 하는 일은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노조활동가가 아니니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여전히 산별노조가 기업별 체제를 못 뛰어넘어서 걱정입니다. 이를 극복할 여러 방안 중에는, 지역별 수준에서 간부들이 아니라 조합원간의 교류와 공동사업 및 연대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단위 사업장을 뛰어넘는 일상적 경험을 꾸준히 쌓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만약 진보정당이 살아 있고, 진보정당의 지역조직이 튼튼했으면 이런 류의 노력을 진보정당이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당원의 이름으로 자주 만나게 하는 기획이 웬만큼은 가능했을 테고요.

그런데 진보정당은 이런 최소한의 기획은 고사하고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그 어떤 제안도 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오히려 노동운동에 방해가 되고 있지요. 과거에 민주노동당은 ‘노동’에 대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기획을 제시하기도 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정규직이 나눠 내자는 제안 같은 게 그것입니다. 그 주장이 옳건 그르건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이 사회적 주도권을 갖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제안을 하고, 그것을 노동운동은 진지하게 논의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한 어떠한 적극적인 제안도 할 능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결론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노동운동과 함께 하지 못하는 진보정치는 날로 쇠락할 것이고, 진보정치와 함께 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정치적 실리주의에 점점 깊이 관여될 것입니다. 한국노총이 지금 보이고 있는 그 행태말입니다. 노동자를 단순 후원자 집단으로 여기는 미국식 모델은 보수양당제의 근간이고, ‘강한 여당과 약한 제1여당’ 체제에도 꽤 어울립니다.

지금 진보정치는 소멸 직전의 위기에 있습니다. 그 한 원인은 ‘노동’과 함께 할 수 없는 진보정치 간 분리 구조에 있습니다. 단지 나눠진 것을 다시 합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 있는 상황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노동 내부의 진보정치 지향성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현재의 분리 상황을 극복하고 진보정치를 재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야 노동 내에서 진보정치가 다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생기고, 노동운동의 발전에 진보정치가 기여할 여지도 생깁니다.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해 ‘혁명이냐 개량’이냐는 식의 탁상공론 말고, 현실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구체적인 전략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이것이 저의 미천한 주장입니다.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