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원의 마을, 지속가능 발전 대책?

본문

 

 

 

수원의 마을, 지속가능 발전 대책?


수원 지속가능발전 토론회가 오늘 수원시청 중회의실에서 있군요?

민선6기 수원시 정책에 대해, 4개 부문에서 제안을 하고(환경, 경제, 사회, 자치역량), 토론을 하게 된답니다....

지속가능 발전 의제는 거시적인 것이지요?

현안문제에 대한 단기적 처방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단하자는 것이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는, 비록 더디 가더라도 올바른 방향을 잡아,

기초부터 튼튼히 다져 나가자는 것이겠지요?

저는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아파트 공동체 운동 20년간의 실패(?)와, 대책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참석해 보려고 합니다.

박인석 교수(명지대)의 책에서는, 지난 20년간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희망적 노력'이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하는군요.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저에게는 '충격'을 주는데요,

아파트 단지마다 '명품 아파트가 되자!'는 논리와 구호로 똘똘 뭉쳐서 활동하는,

매우 당연하고도 절실한 목표인, 바로 그것이 '공동체적 실패'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먼저 소개하고, 그 다음에는

현대 도시에서 왜 과거적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 불가능한지 분석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매우 탁월하네요. 그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좀 길지만, 요약을 했습니다.

------------

박인석 교수 (1)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 실패한 이유

명지대 박인석 교수가 한국의 아파트 단지화 현상에 대해, 20년간 정책비판을 해오던 내용을 종합하여 책으로 펴냈다. (아파트 한국사회. 2013. 현암사)

그는 '아파트 마을'에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 성공하려면, 주민들이 아파트를 '상품'으로 여기지 말기를 주문했다.

높은 값으로 되팔기를 염두에 두고 아파트 단지를 멋지게 꾸미는 활동들은,

결국 집단 이기주의를 넘지 못하고, 그 상품을 고가에 팔려는 이기적 상인들의 결사체처럼 되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로 성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느슨한 결합상태를 넘지 못하고, 폐쇄적 공동체가 되어, 내부에서도 사람사는 멋과 맛이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고, 현대인의 전반적인 문제와 한계가 아닐까? 그나마 아파트 공동체에서는 그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열린 창이 아닐까?)

그는 아파트단지 '해체'를 주장한다. 단지를 해체하고 마을로 열려 있어야 공동체 정신이 성숙한다는 것이다.

(온통 끝없이 아파트 단지로만 구성된 지역도 그럴까? - 그럴 때는 '소규모 단지연합' 마을이어야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그는 뒤에서 말한다.)

개별 아파트 단지가 '고급 아파트 단지' 이미지를 추구하는 활동은 공동체 정신이 아니라, 내재산 늘리기 욕구의 수준이라고 본다.

(그런 욕구가 뭐가 나쁜 것인지? 아직 이해가 안된다. 일단 핵심을 요약 소개한다.)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 실패한 이유 (297쪽)

아파트 공동체 운동은 1990년대 들어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었다.

92년 광주 YMCA에서 아파트 시민학교를 시도했으나, 운영의 어려움으로 중단되었다가, 95년 6월 삼풍붕괴 사건 이후 '안전성 위기의식'을 중심으로 재개되었고,

98년 참여연대 '아파트 공동체연구소'가 창립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아 확산되었다.

2000년 10월에는 16개 시민단체가 '전국아파트 공동체운동'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한 채, 2013년 현재까지 '아파트 공동체 운동'은 정체상태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시 추진하면서 겨우 되살아 나고 있다.

90년대 이후 도시공동체 운동의 새로운 총아로 주목받던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 2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활력을 잃고 흐지부지 되었을까?

그것은 아파트가 현금처럼 거래되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좋은 마을로 꾸미는 일조차 현금으로 환산되는 교환가치 상승 차원에서 추진됐기 때문에, 공동체 운동으로 지속발전 되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주변의 일반 주거공간보다 환경 측면에서 월등하여, 입주민들의 이기주의적 속성이 공고해진다.

그래도 아파트 공동체 운동은 희망을 안고 십여년 간의 노력이 이어졌다. 2000년 경에 쓰여진 글을 보면, 아직 아파트 공동체 운동에 희망과 기대를 많이 걸고 있었다.

김칠준은 "같은 아파트 주민들끼리는 일정한 연대를 갖고 있으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라고 본다.

최병두, 강성률 등의 논문에서도 아파트 공동체의 전망을 매우 밝게 전망하고 있었다.(생략)

그러나, 이들은 아파트 입주민들이 지극히 배타적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그 태생부터 도시 시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집단의 주거환경 개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관계가 자라나기에는 한계가 있는 주거지였다.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하여 입주하고 살다가, 다시 더 높은 값에 상품으로 내놓게 되는, '분양 아파트' 단지는 특히 더 그렇다.

주민들의 공통적인 삶의 폭을 넓히는 호혜적 관계를 확대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자칫 '자신이 팔아야 할 물건의 가격을 염두에 둔 상인들의 집단'처럼, 시장적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결사체로 이어지게 되어,

'부녀회'의 수익사업 등 대부분의 활동은 그 아파트 단지의 상품성 높이기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새로 그 공동체에 들어오려는 외부인에게는 '높은 값'을 치루어야 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게 되고,

따라서, 그 단지의 상품성을 높이는 활동들이 아파트 공동체를 풍요롭게 발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단지만을 위하는 '반 공동체성'을 내포하는 행위로 전개되었다.

열린 공동체 운동이 아니라, 단지별 결사체를 공고히 함으로써, 오히려 도시 공동체의 기반을 허무는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안으로만 흐르는 폐쇄회로처럼 되기 쉽다. 아파트 단지별로 '유별난 교환가치'를 갖는 상품으로 거래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주민들의 시민정신으로만 극복될 일은 아니다. 주민들의 시민정신을 억눌러 놓는 '단지별 소속감'을 해체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파트를 '나의 재산'이 아니라, '우리의 삶터'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분양할 때, 아예 단지들을 작게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규모가 작은 단지들은 한 단지 안에서 자족적인 생활이 곤란하므로, 공공 공간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그러한 공공 복지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신설하고, 함께 쓰는 과정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이 싹틀 수는 있다.

(지역을 연대하는 공공복지 운동이 '현대적 공동체 형성'의 기반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아파트 단지들이 폐쇄성을 허물고, 단지해체에 앞장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여러 사례들을 소개했네요)

--------

박인석 교수(2)

현대 도시에서 마을이 안되는 이유와, 되는 이유

그는 아파트의 삶이 어떻게 전통적인 마을과 다른지 분석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체를 외면하고 개인적 삶을 살게 되는지 분석한 결과,

현대적 상황을 '말기적 현상'으로 보는 언론의 시각과는 달리, 그는 자연스럽게 현대화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약간의 보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현대적 삶의 조건에서는 굳이 전통적인 마을 개념을 고집할 게 아니라, 현대적인 상황에 맞는 마을만들기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요점을 간추려 본다. (괄호 안은 나의 생각).

285쪽

1. 현대는 이동과 정보의 시대, 공동체의 개념이 달라졌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지리적 (운명)공동체였다.

서로 이동하기 수월하지 않았고, 지리적으로 격리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를 말한다.

불과 2.3백명의 마을 사람들이 평생 함께 살아야 했으니, 그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해지는 사회였다.

더구나, 농사일을 품앗이로 해야 하므로, 당시의 공동체란 생존전략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인간의 이동 능력이 급속히 증가하여,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생활하므로, 엄청나게 커진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

(당연히 각자의 이웃을 선택하게 되고, 제한하게 된다. 너무 많은 타인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보호 본능이다.)

이동성이 편리해지자, 한 개인이 '관계'를 맺으려고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자기 맘에 들지 않거나, 따돌림 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다른 쪽에 가서 어울리면 된다.

싫은 사람은 안보는 게 상책이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기에도 무척 바쁘다.

그렇게 살다가 집에 돌아오면, 굳이 이웃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이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가 되는 이유다.

동네에서는 외톨이처럼 살고 있는 사람도,

각자 저마다의 영역에서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소화하느라 무척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등의 발달된 정보 기술은 이러한 양상을 한걸음 더 진전시켰다.

끝없이 넓은 범위에서 사람을 사귈 수 있으므로, 굳이 같은 아파트 내에서 친해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진짜 큰 변화는, 사람이 가득찬 (만원전철 같은) 공간에서도 이어폰만 꽂으면 모두와 단절하고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도 전세계의 동호인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생활에서 과거와 같은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기란 불가능하다. (꼭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2. (현대적 공동체의 가능성)

지리적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이 공동체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G.힐러리는 공동체의 성립 요건이, 지리적 공동영역 외에도, 사회적 상호작용, 연대감 등 2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전통사회는 이 3가지 차원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현대는 굳이 같은 공간(마을)에 모여 살지 않으면서도 공동체 형성은 가능하다.

사회적 상호작용만으로도 공동체가 가능하고, 연대를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도 공동체가 가능해졌다.

3. (현대적 공동체 발전의 방향)

공동체는 결국 개인의 집합이다.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면, 연대의식을 갖게 되고, 협력과 규범을 공유하는 집단이 된다.

현대적 공동체를 결성할 필요가 생기는 것은 공공 영역에서다.

여럿이 함께 사용해야 할 그무엇을 요구하고, 설치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인 공동체가 생긴다.

그것은 공공 영역의 복지를 추구하는 공동체다.

현대 도시의 상황에서 공동체는 바로 이처럼 공공 영역에서 결성되고 발전된다.

4. (잠깐 걸음을 멈추게 하는 정도의 공동체 설계)

현대적 개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도 느슨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따로 내기에는 너무 바쁘다.

더러는 따로 시간을 내서 시민 공청회에 모이는 사람도 있고, 커뮤니티 센터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다.

대다수의 개인들이 그렇게 공동체에 관심을 갖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바쁜 세상에 저마다 각기 제 갈길 가기에 바쁜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답은 길에 있다.

각 개인들이 바삐 이동하는 공공의 장소인 길에서 '잠시' 어울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거기서도, 잠깐 걸음을 멈추는 것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다.

시장가는 길, 전철타러 가는 길, 계단, 등

따로 시간을 낼 정신적 여유가 없는 개인들에게, 잠깐 걸음을 멈추고 참여할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 현대적 공동체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00 쪽짜리 책 한권을 소화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시기를.....)
더 보기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