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농업혁명 : 우경(牛耕)과 유기재배로의 회귀숲속 이야기
2009/10/28 10:13
http://blog.naver.com/misdown/70072490203
다음은 World Resources Institute가 2000년 4월 발행한 "A Guide to World Resources 2000-2001: People and Ecosystems - The Fraying Web of Life" (축약판) 중 Cuba's Agricultural Revolution (pp159~162)을 뜬구름이 번역한 것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그에 이은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몰락은 당시 쿠바인들에게 있어선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 혁명의 충격은 곧 쿠바의 대지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쿠바의 농업에는 유기투입재로의 전환과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농법에 있어 혁신적인 전환이 강요되었다.
1959년에서 1989년까지의 쿠바의 농업생태 관리
1959년부터 1980년대까지의 기간 동안 쿠바는 사회주의 무역 블록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쿠바의 경제발전과 생태계관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농산물은 물론 의약품과 컴퓨터를 생산하는 고도화된 산업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설탕이 쿠바경제의 주 생산물이었다. 1989년 현재 국가소유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은 식량작물 재배면적의 3배를 차지하였다. 설탕과 관련 가공제품은 쿠바 수출총액의 75%를 차지하였으며, 이들 제품은 대부분 소비에트연방, 중앙 및 동부 유럽국가들과 중국에 수출되었다. 당시 쿠바의 농업은 다른 남미 국가들보다는 훨씬 기계화된 농법과 다량의 농약과 비료의 사용, 대규모 관개로 매우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설탕, 담배, 오렌지, 광물의 수출로 쿠바는 필요 식량의 60%, 원유 기타 정제된 제품을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 호혜적 조건으로 수입하였다. 또한 비료의 48%, 농약의 82%, 사탕수수를 재배하는데 필요한 연료의 대부분, 축산 농후사료의 36%를 수입에 의존하였다.
쿠바의 주요 식품의 수입의존도 (%, 1990년 이전)
콩 | 식용유 | 곡물 | 쌀 | 우유/ 유제품 | 사료 | 육류 | 채소/ 과일 |
99 | 94 | 79 | 50 | 38 | 36 | 21 | 1~2 |
비록 수입의존도가 높기는 하였지만 쿠바의 11백만 인민은 이러한 무역구조의 덕분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경제적 평등, 빠른 산업화 그리고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달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에 쿠바는 국민영양, 평균수명, 교육수준, 1인당 GNP에서 대부분의 남미국가를 앞지를 수 있었다. 국민의 69%가 도시지역에 거주하였으며 실업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국민의 95%에게 안전한 식수가 공급되었으며 문맹률은 성인의 4%에 불과하였다.
대체농업의 출현
1989-91년간에 발생한 사회주의 무역의 붕괴는 쿠바 경제와 농업생산체계에 대변동을 초래하였다. 쿠바의 무역규모는 85%가 감소하였으며, 이미 쿠바에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던 미국은 제재의 고삐를 더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쿠바의 기초식량 공급은 큰 위협에 직면하였다. 식량수입이 반감되자 국민의 칼로리 섭취량은 22%, 단백질 섭취량은 36%, 지방섭취량은 65%가 감소하였다.
FAO에 따르면 1990년대에 쿠바에서는 영양부족 상태의 인구비율이 5%에서 20%로 상승하여 남미 국가들 중에서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농약, 비료, 사료의 수입은 80%가 감소하였으며 농업에 대한 석유의 공급은 반으로 줄었다.
주요 농업투입재 수입의 감소
1989년 | 1992년 | 감소율(%) | |
사료 | 1,600천톤 | 475천톤 | 70 |
비료 | 1,300천톤 | 300천톤 | 77 |
원유 | 13,000천톤 | 6,100천톤 | 53 |
농약 | 80,000천불 | 30,000천불 | 63 |
기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쿠바정부는 종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투입재로 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쿠바 농업으로, 쿠바는 인류역사상 전통적인 고투입 화학농법에서 유기농법 또는 반(半)유기농법으로 가장 혁신적인 전환을 이룩한 국가가 되었다. 쿠바의 농민들은 식량의 대부분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거 쿠바가 과학, 교육, 농업연구와 개발 분야에 투자한 것이 경제난국을 극복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980년대에 쿠바의 지도자들은 이미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중심의 쿠바경제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바이오테크놀로지, 건강, 컴퓨터과학, 로봇공학 분야의 과학자 양성에 120억 달러를 투자하였다. 그 결과 쿠바는 인구가 남미 국가들의 2%에 불과하지만 남미 전체의 11%에 해당하는 과학자를 보유하고 있다.
70년대 환경운동의 영향을 받은 쿠바의 농업과학자들은 외국산 투입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리고 전통적 농법이 쿠바의 농업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과학자들은 병충해에 대한 점증하는 저항과 토양침식에 주목하고 80년대에는 연구방향을 작물생산에 대한 대체농법, 특히 병충해에 대한 생물학적 대응방법의 연구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중요한 사실은 피델 카스트로가 "특별기간"동안 "대체모델"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수입된 기술보다는 쿠바 자체기술을 활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카스트로는 1991년 “쿠바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사탕수수보다 더 중요한 자원을 개발할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사료나 비료, 석유를 수입하지 않고도 해결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쿠바의 과학자들은 80년대에 몇몇 대체농업기술을 개발하였으나 현실적용은 되지 않았다. 화학농법에서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토양 비옥도와 병충해에 대한 자연력에 의한 관리를 회복하는데 보통 3~5년이 소요되었다. 당시 쿠바의 급박한 상황에서 3~5년이란 기간은 사치였다.
첫 번째 과제는 토양비옥도 문제였다. 비료공급은 1989년 이후 80%가 감소하였다. 부족량을 채우기 위해 쿠바 농업인들은 다양한 “생물비료”와 가축분뇨로 만든 퇴비, 녹비작물, 토탄, 광물원석, 지렁이 부식토, 질소고정 박테리아 등으로 토양개량제를 개발하였다. 그동안 근류(根瘤) 박테리아가 콩과식물의 공중질소 고정을 돕는다고 알려져 왔으나 쿠바 과학자들은 비콩과식물의 질소고정을 돕는 아조토 박테리아도 활용하였다. 아조토 박테리아는 생육기간이 짧은 작물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낙화율을 감소시켰다. 그 결과 쿠바의 옥수수, 카사바, 쌀, 채소류의 생산이 30~40% 증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화학비료에 대신하여 벌레부식토(worm humus)를 개발한 결과 작물 생산성을 12~46% 증가시켰다.
또한 상업적 농업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간작(間作)이 도입되어 작물생산을 다각화하고 토양비옥도를 제고하는데 기여하였다. 쿠바의 토양관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조림이다. 쿠바의 산림은 1959년 혁명이후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제조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크게 훼손되었다. 1989~90년 기간 중 20만ha 이상의 산림에서 조림을 위한 식목이 이루어졌다.
쿠바에서는 각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 가축분뇨, 인분을 포함한 각종 폐기물의 대대적인 재활용이 이루어졌다. 생활하수는 사탕수수밭 관개에 재활용되었다. 생활하수의 정수과정에서 생산된 부산물인 필터프레스(압력여과기) 케이크는 인, 칼륨, 칼슘이 풍부하여 비료로 재활용되었다.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사탕수수 고형물은 사료로 활용되거나, 설탕공장에서 발전을 위한 연료로 활용되었다.
쿠바에서는 병충해 방제를 위해 오래전부터 생물학적 제재를 사용한 역사가 있다. 1928년에 이미 농민들은 사탕수수밭에 만연하는 천공충을 방제하기 위해 기생파리를 대량 사육, 방출하였다. 식량위기이후 이러한 생물학적 제재의 개발이 더욱 강화되었다. 예를 들면 고구마밭의 바구미 방제를 위해 포식개미를 사육, 방출하였는데 이 방법은 99%의 효율성을 보였다.
쿠바의 과학자들은 또한 곤충병원균을 개발, 활용하였다. 이 병원균은 병충해에 영향을 주지만 인체에는 무해한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들이다. 쿠바에서 처음 상업적 목적으로 생산된 바이오 농약인 Bacillus thuringiensis는 초지, 양배추, 담배, 옥수수, 카사바, 호박, 토마토 등에 영향을 미치는 나방류와 인간에게 질병을 매개하는 모기유충의 방제를 위해 널리 사용된 토양박테리아이다. 곰팡이 종류인 Beauveria bassiana는 고구마와 요리용 바나나인 플란테인 바구미의 방제에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1989년 이전에 쿠바에서 널리 사용된 농약은 세계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농약이라고 하는 메틸 파라치온이었다. 1991년말까지 쿠바 농지의 약 56%에 생물학적 제재가 사용되었으며, 이에 따라 연간 약 15.5백만불의 비용이 절감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쿠바에서 생물학적 제초제는 병충해 방제의 경우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여러 방법들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수학 모델링에 기초한 윤작체계의 개선, 잡초의 생육밀도 조절을 통한 방법, 제초제가 출현하기 이전에 농민들이 쿠바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 등이다.
아마도 쿠바 농촌에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부속과 연료의 부족으로 러시아산 트랙터가 사용되지 못하고 놀고 있는 한편에 소에 의한 경운방법이 나타난 것이다. 우경(牛耕)은 기계화에 비해 노동집약적이긴 하지만 쿠바 농민들에게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비용이 적게 들고, 토양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으며, 우기에도 사용할 수 있고, 소의 분뇨는 유기비료로 사용될 수 있다. 지금은 소를 사용한 쟁기, 파종기, 경운기가 개발되었으며, 정부는 소의 사육두수를 늘리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소농과 도시농업의 육성
대체농법만으로는 쿠바가 농업침체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전체 농지의 80%가 거대한 소비에트식 국영농장의 관리하에 있었다. 오랫동안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되어 왔던 광대한 사탕수수, 파인애플, 오렌지 등 작물의 거대한 단작농업은 소규모 농가의 유기농법 체계가 발전시켜온 자연력에 의한 병충해 방제와 토양비옥도 향상 기법을 개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국영농장은 병충해에 극히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농민들(campensinos)은 새로운 기술에 매우 신속하게 적응하였으며, 생산성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저투입 전통농법을 수세대 동안 사용해 오던 농민들의 자손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선조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간작, 퇴비사용법 등 전통농법을 잘 기억해 냈다. 90년대에 유기농법이 전국적으로 장려되기 이전에 소농은 이미 효율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소농들을 전체 농지의 20%에서 국내 식량생산의 40%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3년 쿠바정부는 국영농장을 해체, 분할하여 농업노동자들이 소유하는 약 80ha 크기의 기초단위 협동농장을 설립하였다. 쿠바정부는 아직도 이들 농장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주요 작물에 대해서는 생산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협동농장 조합원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양 이상의 생산에 대해서는 온전한 소유권을 가지며 새농민 시장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시장판매는 크게 증가하였고 1995년 중반에 이르러 심각한 식량부족사태는 사라지게 되었다.
기아를 추방하는데 일조를 한 또 하나의 요인은 쿠바정부가 국영 및 민간 토지에 도시농업을 추진한 것이다. 도시인들은 이들 농지를 사용료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 하바나에서만 26천개의 자급적 농원이 개발되어 있으며, 이들 농원에서 1998년의 경우 541천톤의 신선한 유기 과일과 채소가 생산되어 지역의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일부 도시민의 경우 필요 식량의 30%를 도시농원에서 공급하고 있으며, 농산물에 대한 가격통제를 완화한 결과 도시농부들은 도시 전문직의 2~3배에 해당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유기농업혁명은 폐기될 것인가?
1996~97년 기간 중 쿠바는 13개 기초 식량작물 중 10개 작물에서 역사상 최고수준의 생산량을 기록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소농과 도시농업 시스템 덕분이었다. 그러나 FAO 자료에 따르면 1996~98년간 쿠바의 작물생산은 아직도 1989~91년 수준의 40%에 불과하다고 한다. 주된 원인은 사탕수수 생산성이 아직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병충해 발생도 아직 계속되고 있다. 생물학적 살균·살충제들은 살포시기를 정확히 지키지 않을 경우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으며 이들을 생산하는 협동조합들마다 생산량과 품질에 있어 차이가 너무 큰 문제점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관찰한 외국의 전문가들은 쿠바의 경제가 호전되고 무역장벽이 낮아질 경우 쿠바가 이룩한 이러한 유기농업 혁명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쿠바의 농업과학자들과 농장 경영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는 논쟁의 큰 주제가 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아직도 서구적 고투입 화학농법을 신뢰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건 현재 진행 중인 쿠바의 대체농법 실험은 이미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하바나의 식량공급은 충분한 상태임에도 도시농업은 아직도 그 어느 때보다 큰 성황을 이루고 있다. 최근의 조사에서도 93%의 도시농부들은 앞으로도 도시농업을 계속할 것이며 "특별기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쿠바의 과학자들은 이미 유기농법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멕시코, 볼리비아, 브라질, 라오스에 커피 바구미 등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한 생물학적 제재를 개발, 수출하고 있다. 쿠바는 전통적 고투입 농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다른 국가들이 따를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을 이미 제공하였다.
[출처] 쿠바의 농업혁명 : 우경(牛耕)과 유기재배로의 회귀|작성자 뜬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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