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9. 00:24ㆍ시민, 그리고 마을/로컬 파티
선거 결과를 축하하며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머리두건을 쓰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 장발에 수염을 기른 사람, 후드 티를 입은 사람, 그들에게 청바지는 기본 드레스코드로 보입니다.
(Hannibal Hanschke/European Pressphoto Agency)
선거결과 발표 후 베를린 의회에서 해적당 당원들이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의회 건물 보다 대학 캠퍼스에 어울리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이들은 2011년 9월 18일 베를린 지방의회선거에서 8.9%를 득표해 독일 정치계에 돌풍을 일으킨 해적당의 당원들입니다. 앞으로 베를린 시민을 대표하여 일할 시의원들이기도 하구요.
해적당의 이번 지방의회에서의 선전은 기존 정치가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정치가들은 해적당이 의석을 확보한 것이 기존 정치계에 대한 반감에서 오는 일시적 현상이거나 새로운 정치 아마추어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기인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계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해적당에게 투표한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이번 선거결과가 진지한 유권자들의 의사표현으로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들이 대변해 주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낼 곳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처: DPA) 선거결과 발표 후 환호하는 해적당 지지자들
독일 국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가들이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과 단기적 당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에 염증을 느껴 왔습니다. 또 국민들은 정치가들의 빤히 내다 보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듣기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해적당 지지자들에 따르면 해적당은 기성의 정치인들이 결여하고 있는 가치를 대변한다고 합니다. 신뢰, 진정성, 참신함 등으로 대표되는 그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거나 말문이 막히더라도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는 믿음이 지지자에게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독일 해적당( Piratenpartei Deutschland)
약칭은 해적(Piraten)입니다.
스웨덴 해적당의 성공과 오스트리아 해적당의 창립 이후에 프로그래머와 인터넷 전문가 등 관심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모여 당 강령을 만든 후 2006년 9월 10일 창당했습니다. ‘해적’은 음반과 영화산업단체가 저작권 위반을 ‘해적판’이라고 칭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해적당은 인터넷 세대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를 대표한다고 합니다. 정보공유자유 보장과 사회·경제체제의 투명성 보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고 있는 해적당은 독점반대, 인터넷 검열반대, 저작권법 개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명에서도 보여지듯 해적당은 정보의 개인적인 용도의 복사와 파일공유의 범죄화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음악산업계의 압력으로 저작권법이 저작권관리단체에게만 유리하게 강화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현재의 저작권법이 본래의 법제정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며 지식 공유를 인위적으로 제한할 뿐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저작권은 예술가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해적당은 저작권 철폐를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저작권 보호기간의 단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저작권관리단체를 보호해 줄 것이 아니라,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며 이에 부합하는 다양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이의 지식에 대한 접근’을 선거구호로 사용한 바 있는 해적당은 지식이 사치품이 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해적당은 대학등록금도 반대합니다. 모든 교육기관에 대한 개방, 교육과 정보에 대해 자유로운 접근할 권리를 모든 인간이 가진 권리로 보고 있습니다. 또 세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학술 연구의 결과는 무료로 공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출처: DPA, 슈피겔 온라인)
해적당 당수는 27세의 생명공학 전공학생인 세바스티안 네르츠(Sebastian Nerz)입니다. 베를린 선거결과에 대해 그의 첫 소감은 “Cool!”이었습니다.
(출처: dapd) 해적당 정당대회에서 당원들의 모습입니다.
대회장 분위기, 많은 전자기기, 모니터, 케이블 등 기존의 정당대회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적당의 의사결정은 ‘리퀴드 민주주의(liquid democracy)’라고 방식에 의해 정해집니다. 당원들은 정책을 제안하거나 입장을 표명할 때 온라인에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민주적으로 투표하도록 고안된 리퀴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 해적당을 지지한 지인에게 질문했습니다. ‘해적’, 당명처럼 진지하지 못하고 극소수 지지자만 열광할 매니아적 정당이 아니냐고 그들이 기존의 정치판을 바꾸려면 보다 보편적인 정책으로 기성세대를 포용하지 않으면 힘들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지인은 해적당에게는 기존의 좌파, 우파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해적당은 추상적인 정치적 이념보다 그들에게 관심있는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인터넷 세대를 대변한다고 합니다. 현재 독일 주요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녹색당도 20년전 등장했을 때는 정치계의 아웃사이더였듯이 지금의 해적당이 미래에 어떻게 성장할 줄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해적당이 모르는 분야에 모른다고 인정하는 자체가 참신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사회, 경제 전반에 관해 추상적이고 현실성 없는 공약을 내거는 것 보다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지지를 얻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10월 8일 베를린 해커그룹 카오스 컴퓨터 클럽(CCC Chaos Computer Club)에 의해, 독일정부가 컴퓨터를 원격으로 조정하거나 파일내용을 검색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트로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개인컴퓨터의 정보를 불법적으로 사찰해 온 것이 밝혀져 크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해적당의 지지율이 다시 한번 상승했다고 합니다. 테러 방지를 위해 갈수록 강화되는 보안시스템과 인터넷 검열 등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인터넷 세대들이 이번 사찰사건으로 인해 해적당의 목소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탄생한 해적들이 독일의 정치계에 어떤 존재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고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 통신원 - 권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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