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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을 가로막는 적들-- 행정주도 마을사업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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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을 가로막는 적들

 
ㆍ‘밀양’ 공동체 짓밟은 정부가 ‘마을공동체사업’ 공약 쏟아내…

 

관이 주도하면 지역자치 활성화는커녕 마을
경제의사결정의 자생성 죽여


밀양의 마지막 송전탑 반대 농성장 5곳에 6월 11일 새벽 행정대집행이 강행됐다. 평밭마을, 위양마을 등 ‘마을’을 지나는 송전선로 건설계획은 마지막까지 농성을 이어가던 마을 주민공동체는 물론 이미 한국전력과 합의서에 서명한 마을마저도 선로의 양쪽 편처럼 갈라놓았다. 밀양의 마을이 갈라지고 있던 무렵, 6·4 지방선거를 앞둔 서울시와 경기도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후보진영에서는 역설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 공약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6개 부처 15개 사업에 엄청난 예산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원조는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중앙정부 부처가 시행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관련 사업의 규모와 범위가 훨씬 크다.

 

2013년 현재 마을공동체 발전사업으로 분류되는 사업은 6개 부처에서 15개에 달한다.

 

안전행정부의 마을기업·정보화마을 등 3개 사업을 비롯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마을리
모델링사업·녹색농촌체험마을사업 등 6개 사업,

 

해양수산부의 어촌종합개발사업·어촌체험마을사업 등 2개 사업,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사업, 환경부의 저탄소녹색마을 등 2개 사업,

 

산림청의 산촌종합개발사업 등이다.

대전 중구 박용갑 구청장과 주민들이 2013년 12월 정부의 좋은마을만들기사업에 따라 그려진 벽화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 대전 중구 제공

 


<주간경향>은 이들 사업 가운데 예산 규모와 정책 인지도 등을 고려해 8개 사업을 선정해 예산 현황 및 운영실태를 분석한 한국조직학회 연구진의 보고서를 입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로 예산 집행규모는 크지만 그에 비해 정책 시행에 따른 효과와 실적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8개 사업에 연간 투입된 예산규모만 1600억원을 넘어섰다. 그에 비해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정책 집행 아이디어가 반영된 사업은 전무했다. 전국 단위 규모로 가장 활발하게 추진 중인 안행부의 ‘마을기업 사업’은 2013년 기준 2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등 2010년부터 해마다 200억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됐다. 반면 3년간 누적 매출 실적은 2012년 12월 말 기준 492억원 수준에 그쳤다. 투입된 예산규모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100억원 넘는 돈이 눈먼 돈이 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마을리모델링사업의 경우 2013년부터 2014년까지 4개 지구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2015년 이후 총 1000지구를 목표로 본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시범사업이 시행되는 4개 마을에 들어가는 예산만 총 158억원에 달하고, 본사업에는 3조6881억원을 투입하기로 예정한 초대형 사업이다. 사업이 현재 진행 중인 상태라 결과에 대해 섣불리 평가하긴 힘들지만 한 마을당 약 40억원 안팎을 투입해 시행하는 사업의 성격이
슬레이트 노후주택 개량 및 철거, 담장·경관저해시설 정비 등에 중점을 두고 있어 새마을운동의 반복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농어촌마을리모델링사업의 도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증진사업 역시 2013년 기준 1086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지만 역시 슬레이트 가옥 철거, 보도 교체 등 전시성 행정에 투입되는 예산 비중이 높다. 또 지자체별 예산 지원액수를 살펴보면 영남권의 대구와 울산에만 각각 126억원, 151억원이 지원되는 등 인구 대비 지원액수가 높아 지역 민원에 따른 퍼주기 사업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마을공동체 사업은 사업 취지와 예산 규모에 비해 주민자치와는 큰 관련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민간 주도의 마을공동체 및 주민자치에 몸 담아온 활동가들 사이에서 정책 방향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지난 5월 발간된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대담집은 정부와 지자체 등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톱-다운식 마을 지원 모델이 주민 주도의 지역자치를 활성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압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동체 이상만 강조 땐 소외·배척 당연시”

 


대담에서 논의에 참여한 이들은 실제 마을 만들기 운동의 현장에서 일한 경력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전문적인 이론을 근거로 마을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바라보는 보통 시민의 시각에서 공론장을 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마을공동체에 관한 행정적이거나 이론적인 논의에서는 가시적인 물적 효과에 집중하지만 실제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과 그 실제 ‘삶’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네트워크 고리의 김정찬 대표는 “콘크리트 벽에 막혀 관계망이 무너진 도시 공간에서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들려면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과
모임들을 통해 삶의 관계망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을 구성원들과의 논의 없이 중앙 부처에서 세워진 계획에 따라 예산과 집행방안을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식의 사업이 마을 경제와 의사결정기구의 자생성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의 김신범 실장은 “마을을 구성하는 ‘노동’의 문제를 짚어볼 때 생산과 소비가 서로 만날 수 있어야
사회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다”며 “생활과 경제는 물론 공동체가 환경과 공존하는 관계를 회복할 때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안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활동가가 공통으로 제시하는 마을공동체 구성과 정착의 열쇠는 다양성에 있었다. 반면 밀양 송전탑 농성장 행정대집행에서 보인 일방적 법 집행은 그나마 살아남은 마을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청주지역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서 활동하는 박영길씨의 답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가 이상과 소속감을 강조하면 거대한 감옥이 되거나 소외와 배척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마을은 그 안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구성원들과 그들의 일상이 끊임없이 다투고

 

또 타협하는 각축장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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