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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경제 민주화, 시민사회가 앞장서야”
입력시간 | 2013.06.17 10:00 | 김도년 기자 kdn8
“韓 고위층 위장전입 안돼..교육은 빈부상관없이 어울려야”
“기업경영자, 대·중소기업·지역사회 상생 위한 경영 중요”
“심각한 경쟁이 자살율 1위 원인..넓은시야서 가치 세워야”
[이데일리 김보리 김도년 기자] 명쾌한 해답은 없었지만 생각할 거리는 넘쳤다. 유일한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지만 고요한 호수 위 잔잔한 파문처럼 이제껏 당연시해오던 생각의 샘에 균열을 일으켰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교수(사진)를 만난 감흥은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사회 곳곳으로 시장논리가 과도하게 확산하지 않도록 민주시민의 힘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샌델 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통해 강조한 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논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각 나라에서 자유시장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현상을 관찰하면서 다양한 각도로 질문을 던졌다. 경제적 효용은 물론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같은 현상을
또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다.
과연 모든 것들이 돈으로 교환되고, 인간미와 공공선을 잃어가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그러면서도 답은 내리지 않았다.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질문, 무엇이 옳은지 또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논의가 바로 철학이며 정치였다.
샌델 교수는 우선 한국 사회의 복지 논란에 흥미를 표시했다. 한국 사회는 최근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성장과 복지 중 특정가치에 따라 지지정당을 선택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경제위기와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넘어오면서 복지는 여야 모두가 일순위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됐다. 샌델 교수는 “어떤 것이 옳다고 답변하긴 어렵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비슷한 논의는 이미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곳에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결국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둘 사이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길 강요하면서 정치적 투쟁으로 연결짓기보단 보다 슬기롭게 균형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샌델 교수가 학계나 언론으로부터 비판받는 지점 중 하나는 정의관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대안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김영기 경북대학교 교수는 “샌델은 우리가 어떤 기준, 어떤 원칙에 합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 없이 공동체적 가치나 연대성만을 강조한다”면서 “정의를 둘러싼 현실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은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질문을 던졌다. 샌델은 정의에 대한 문제를 푸는 실질적인 대책에 대해 역시나 답을 제시하진 않았다. 그는 “단순히 내가 답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와 평등, 경제 민주화 등을 둘러싼 문제들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민사회 안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구체적으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흑인차별을 없애기 위한 미국 시민들의 공민권 투쟁과 같은 광범위한 시민운동이어야 하는지, 의회 내에서 점진적인 법개정으로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도 없었다.
다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나라 헌법정신처럼 정의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주체는 시민사회이고, 그들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론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공공선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하게 읽혔다. 그 모호함 역시 샌델 철학의 일부분인 듯했다.
한국사회의 지나친 ‘평등주의’와 양극화에 대한 주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국사회는 평등주의가 만연해있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평등원칙인 기회의 균등조차 위태로울 정도로 그만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돈 많고 힘 있는 고위층은 위장전입 등을 통해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일이 ‘자식사랑’으로 포장되면서 일상화된 지 오래다.
샌델 교수는 “공공교육의 목표는 빈부격차와 배경에 상관없이 같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민주사회와 성숙한 시민으로서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며 교육이 그 기회가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 경영자의 선택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만약 한 기업 경영자가 상품가격을 낮춘다면 10만명의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지만, 해당 회사 직원 중 일부는 구조조정되거나 임금이 삭감될 수밖에 없을 때 어떤 선택이 정의로운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샌델 교수는 자신이 수업할 때 학생들에게 특정상황을 가정해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은 방식의 질문을 받게 됐다며 웃은 뒤 “경영자의 선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지역상권 등 모든 부문의 상생에 도움이 되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격조정은 모든 부문에 영향을 주는 만큼 균형을 갖고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어느 한 쪽의 희생을 반드시 전제하지 말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제 3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율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대부분의 자살 동기는 치열한 경쟁 환경과 맞닿아 있다. 성적비관과 진로문제, 부당해고, 빚 독촉 등 교육현장과 노동시장에서 낙오되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
샌델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오히려 기자에게 이유를 듣고 싶어했다. 그는 “심각한 경쟁환경이 자살의 주요 원인일 수 있겠지만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면서 “단편적으로 결론을 내리면 넓은 시야를 갖고 성공적인 삶, 행복 등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는 평등, 형평성,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나라다. 과도한 평등주의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푸른 눈의 정치철학자에겐 마냥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샌델 교수는 “1년 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강의를 했는데 무려 1만 4000명의 학생이 모여 도덕과 정의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다”며 “시장의 한계, 민주주의의 의미 등을 주제로 열띠게 토론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의 꿈은 소크라테스와 같은 삶이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정치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형이상학적 담론도 아닌 현실 속에 뿌리를 둘 때만이 생명력이 있다는 고집 때문이다.
샌델 교수는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나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시장 만능주의는 크게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귀결됐고, 작게는 우리 공동체의 사람 냄새와 풀 냄새, 흙 냄새를 앗아갔다. 자연은 황폐해졌고 이기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사회로 파편화했다.
그래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뜻으로 지켜나가는 경제시스템이 결국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만든다는 그의 지론은 울림이 더 컸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푸른 눈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 교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억된다. 그의 철학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사회’, 박근혜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화두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1980년부터 30여 년간 하버드대에서 가르쳐 온 정치철학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꼽힌다.
주요 저서로는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왜 도덕인가’, ‘정의의 한계’, ‘민주주의의 불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