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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도지사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는 것은 20세기의 낡은 정치관”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4. 6. 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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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충남도지사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는 것은 20세기의 낡은 정치관”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안희정 충남지사는 선거운동의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지만 생기가 넘쳐 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 물어보니 “성대결절이 의심돼 병원에 다녀왔는데 다행히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안 지사는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 으르렁거리는 현 시국을 ‘20세기형 정치’로 진단했다. 그가 제안하는 21세기형 정치는 ‘다 내려놓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민주주의 제도에 승복하는 것’이다. 안희정은 시국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이따금 날카로움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4년간의 도정 경험으로 다진 ‘정치적 근육’ 덕인지 표정에서 원숙미가 느껴졌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18일 충남 홍성 충남도청 집무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 내려놓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통하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보수도 진보도 아직 미완성… 광야의 길을 계속 걷는 과정
나만 ‘선’이라면 대화 안돼… 민주주의 다양성 존중해야
대권 도전은 너무 먼 얘기… 지금은 도정 집중이 목표


- 지역 책임자를 뽑는 선거였지만 사실상 중앙정부를 평가하는 식으로 선거전이 흘렀다.

“중앙정부에 대한 심판론과 평가가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에서는 중요한 주제로 보이지만 실제 임해 보니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신랑·신부가 맞선을 보는데 양쪽 가문끼리 서로 다투면 신랑·신부들은 곤란해진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입장이 딱 그런 것이다. 양쪽 가문이 영향을 전혀 안 미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정은 결국 당사자가 하는 것이다. 지방선거는 주권자와 지방선거를 이끌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당사자가 돼 평가를 받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선호 등이 감안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번 선거의 주된 이슈이고 큰 주제였다고 동의하기 어렵다.”

- 재선에 성공하면서 행정가의 ‘근육’이 붙은 것 같다.

“지방행정과 공직사회, 지역사회를 이제 조금 알게 된 수준이다. 예전에 보지 못한 지역사회와 공직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배움이 확실해졌다.”

- 충남도민들이 왜 안 지사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2010년에도 그랬지만, 사람이 되바라지지 않고, 예의 바르고 겸손하면 어른들은 젊은 사람을 키워주려는 마음이 있다. 충청도의 젊은 정치인을 키워보자는 도민들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 됐다’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겸손하게만 일하면 어른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키워주려고 마음을 준다.”

-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하나.

“많이 듣고 내 고집을 덜 세우면 된다. 어려운 형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생각도 틀릴 수 있는 생각으로 듣는다면 소통이 된다. 아무리 많은 대화를 해도 내 생각이 제일 옳다는 생각을 하면 소통이 안된다. 저 사람이 고집을 내려놓고 내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10분간의 대화와 자신의 주장이 제일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한두 시간 대화한 것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 청와대는 좀 다른 것 같다.

“지도자가 자기의 소신을 내려놓고 대화하면 된다. 다 내려놓으면 된다.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만 놓고 보면 대화가 안된다. 옳은 자가 그른 자를 계도해야 한다는 것은 20세기의 정치관이다. 제국주의 침략 세력과 민주주의 해방이라는 개념, 착취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 같은 구도로 보니 선악 싸움이 된다. 21세기에는 그 관점을 그대로 가져오면 시대에 안 맞다.”

안 지사는 차이를 선악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차이를 선악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보고 인정하면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선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면 대화가 안되는 것이다. 상대적 진리관이 필요하고, 제도에 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옳고 그름에 승복하는 게 아니라 제도에 승복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릴 경우 대화를 통해 다수가 원하는 것을 따르면 된다. 그러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시대의 과제를 못 풀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억지로 쥐어틀어 풀리는 과제는 없다.”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군주론>을 선물한 것이 뉴스가 됐다.

“최장집 교수는 내가 감옥에 있던 2003년도에도 책을 보내왔다. 1983년부터 스승과 제자 관계였다. 대학 시절 ‘제3세계 종속이론’ 강의를 들었고, 그때부터 좋아했던 선생님이다. 선생님도 우리 83학번들을 좋아하셨다. 크게 기사가 될 것도 없는데….”

- 2007년 ‘폐족 선언’을 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가치가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진위가 왜곡되기도 하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보였는데 그 말은 유효한가.

“다산 정약용이 ‘폐족’이란 말을 썼을 때 ‘우리는 끝난 집안이다’라는 뜻으로 쓴 게 아니다. ‘오늘 임금님의 사랑을 못 받았지만 앞으로 더 노력해서 임금의 사랑을 받자’는 뜻이었다. 오늘의 임금은 국민이다. 당시 우리 패배를 인정하고, 앞으로 더 노력하자는 뜻으로 한 말이다.”

‘노무현의 가치’로 이야기가 옮겨가면서 안 지사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열기가 붙었다. 그는 내친 김에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진보 진영이 굳건한 정권교체의 파트너가 되고 보수도 보수답게 서 있어야 사회가 균형을 잡을 수 있는데 아직은 보수 진영이 완성되지 않았다. 남의 집안 이야기할 것 없이 진보 진영 자체가 정립이 안돼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과 주장이 대중 공간에서 득세해 정치적 주제를 잡아가기도 하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어려운 주장이 이슈로 만들어지는 등 여러가지 돌개바람이 분다. 이것이 안정화돼야 하는데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는 광야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국가지도력이 바로 선다. 지금으로서는 국가지도력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위기인 것이다.”

“보수 진영은 식민사관에서 못 벗어나고 있고, 진보 역시 민족해방과 노동자 계급해방이라는 단어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보수 진영도 출세주의나 기회주의 역사관으로부터 못 벗어나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지배해서 근대화, 박정희가 쿠데타해서 산업화시키지 않았느냐라고 하지만 결과주의나 성공주의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회주의이고 사대주의다.”

- 문창극씨를 총리로 내세운 것도 이런 결과주의라고 보는가.

“한국의 지도력은 20세기의 성공·결과지상주의라는 토양에서 나온 것이다. 과정이 어떻든 이기는 사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나온 지도력은 국가를 제대로 이끌 수 없다. 국가지도자는 국가라는 이름의 통합된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 모두 ‘집권하면 국민을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규칙과 과정을 규정하는 제도에 승복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생각에 변함이 없나.

“(지도자는) 헌법과 역사의 법통을 훼손해선 안된다. 헌법을 유린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합리화하면 안된다. 쿠데타를 했거나 부정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것마저 어쩔 수 없었다고 해선 안된다. 하지만 그 시기에 그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그 시대를 존중해줘야 한다. 남북분단 시기에 단독정부가 옳았느냐의 역사적 문제까지 현실정치에서 ‘옳다, 그르다’ 시비해서 어쩌자는 건가. 헌법과 전통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던 대통령들에 대해선 존중하려는 자세가 옳다고 본다. 하지만 헌법을 유린하고 인권을 탄압하며 법률을 위반했던 대통령의 행위까지 미화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 일부에선 안희정이 ‘노무현 후기 모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집안의 장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니 그들의 역사를 잘 이어갈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진보 진영에서 집권한 두 번의 소중한 경험이다. 그분들이 이룬 업적도 못 이룬 과제도 내것이라 생각하고 받아야 한다. 진보 진영이 집권을 하면 그들의 후예들인 것이다.”

안 지사는 대권 도전 가능성과 관련해 2018년까지로 돼 있는 도지사 임기를 다 못 채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여운을 남겼다.

- 대권에 도전할 것인지 많이들 물어봤을 텐데.

“할 이야기가 없다. 영광스럽지만 아직 부족하다. 지방정부의 여러가지 도전과 실천을 통해 경험과 많은 대안을 준비하고 더 실력을 쌓아야 될 단계라고 생각한다.”

- 임기를 못 채우는 것 아니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도정에 집중하는 게 목표고 2017년 도전은 사실상 너무 먼 이야기다.”

안 지사는 이상적인 사회의 덕목 중 하나로 정의로움을 꼽았다. 정의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억울한 일 없는 사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 ‘억울한 일 없는 사회’란 말을 자주 쓰는가.

“모든 개인의 어려움과 실패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억울함을 제거해준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 양껏 살 수 있다. 그런 사회가 선진국이다.”

- 우리 사회가 갈수록 ‘서울 일극주의’로 치닫고 있어 지방정부 운영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 할 것은 중앙보다 지방에 더 많다. 중앙의 관점은 매우 제한된 국가 업무에 한해서 적용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자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 언론들도 중앙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가 내려 서울 광화문의 맨홀 뚜껑이 열릴 정도로 물바다가 됐다는 뉴스를 왜 전 국민이 다 봐야 하나. 내게는 부여나 논산의 수박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긴 게 고민이고 걱정이다.”

<대담 | 서의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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