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6. 16:53ㆍ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프란시스 후쿠야마 특별기고 -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언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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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미국 투자은행들이 주저앉고, 미국 증시에서 하루 새 1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이 증발하고, 미국 납세자들에게 7000억 달러가 청구됐다. 월스트리트의 균열이 이보다 더 심할 수는 없었다. 많은 미국인은 경제의 붕괴를 막으려고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융시장 붕괴가 미국의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은 거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잠재적으로 미국에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다. 아이디어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오른 80년대 초 이래로 미국의 전형적인 아이디어 두 가지가 전 세계의 사고(思考)를 이끌어 왔다.
첫째는 특정한 자본주의 이념이었다. 낮은 조세, 가벼운 규제 그리고 작은 정부가 경제성장의 엔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레이거니즘은 한 세기에 걸쳐 더 큰 정부를 지향하던 흐름을 되돌려 놓았다. 규제 완화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시대의 흐름이 됐다. 둘째는 전 세계에 자유 민주주의를 보급하는 나라로서의 이념이었다.
이는 더 번영되고 개방된 국제 질서에 이르는 최선의 지름길로 간주됐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은 미국의 탱크와 달러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이 미국식 자치 체제의 장점을 인식해 자신들도 그런 식으로 바꾸려 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정치학자 조셉 나이가 미국의 ‘소프트파워’라고 정의한 개념이다. 미국 브랜드의 이 같은 상징적 특성들이 얼마나 심하게 훼손됐는지 가늠하기는 힘들다.
2002~2007년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성장을 구가하는 동안에는 유럽 사회주의자들과 중남미의 대중주의 정치인들이 미국 경제 모델을 ‘카우보이 자본주의’라고 깎아내려도 못 들은 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던 미국 경제가 궤도에서 이탈해 다른 나라들까지 모두 수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주범은 바로 미국식 모델이다.
워싱턴 당국은 작은 정부에 집착한 나머지 금융 부문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해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도록 방치했다. 민주주의는 그전부터 퇴색했다.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WMD)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조지 W 부시 정부는 더 광범위한 ‘자유화 의제’와 연결해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려 했다. 돌연 민주주의 확산이 테러 전쟁의 주요 무기가 됐다.
이제 미국이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상당 부분 미국의 패권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구실처럼 들린다. 현재 미국이 당면한 선택은 구제금융이나 대통령 선거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다른 모델들이 갈수록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점에서 미국 브랜드는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의 명성을 회복하고 미국 브랜드의 강점을 되살리는 것은 여러모로 금융 부문의 안정만큼이나 커다란 과업이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은 각기 나름의 강점을 갖고 그 과업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여러 해 동안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실히 이해하기 전에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미국 모델의 어떤 측면이 건전하고 어떤 측면이 서툴게 집행됐고 어떤 측면을 통째로 버려야 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레이거니즘의 뿌리
월스트리트의 붕괴는 레이건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많은 논객이 지적했다. 그들의 지적은 천 번 만 번 옳다. 오는 11월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큰 이념은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배경에서 탄생한다. 그 배경이 일변하면 이념도 대부분 생명력을 잃는다.
이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정치가 좌에서 우로 그리고 다시 좌로 이동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레이거니즘(또는 영국의 경우 대처리즘)은 당시에는 옳았다. 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이후 세계 각국의 정부는 갈수록 몸집을 키웠다.
70년대에 이르자 관료주의에 손발이 묶인 대형 복지국가와 경제의 역기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당시엔 전화기가 비싼 데다 구하기도 힘들었고 비행기 여행은 부자들의 사치였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관치금융의 이자율이 낮은 예금 계좌에 돈을 저축했다. ‘아동 부양 가정 지원’ 같은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빈민 가구의 근로와 부부관계 유지 의욕을 저해해 가정 파탄이 일어났다.
레이건-대처 혁명으로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가 간편해짐에 따라 전통 산업이 위축되거나 소멸하면서 막대한 고통이 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30년에 가까운 성장, 그리고 정보기술과 생물공학 같은 새로운 분야의 부상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 대외적으로 레이건 혁명은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로 발전했다.
워싱턴 합의는 워싱턴 소재 국제문제연구소의 존 윌리엄스가 제안한 것으로 재정적자 시정, 금리 자유화 등 10개 항목을 열거한 개발도상국 채무 문제 대책이다. 그에 따라 워싱턴(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등 워싱턴의 영향을 받는 기관들)은 개도국에 압력을 넣어 경제를 개방하도록 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대중주의자들에게는 종종 쓰레기 취급을 받지만 워싱턴 합의는 80년대 초반 중남미 부채 위기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초인플레이션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같은 나라들을 휩쓸었다. 중국과 인도도 비슷한 시장 친화 정책으로 오늘날의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큰 정부의 사례, 옛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의 중앙집중형 계획경제를 살펴보면 된다. 70년대 무렵 이들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뒤떨어지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이들의 몰락은 그런 과도한 복지체제가 역사적으로 종착역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레이건 시대의 끝
모든 혁신 운동이 그렇듯 레이건 혁명이 방향성을 상실한 것은 복지국가의 과잉에 대한 실용적인 대응이 아니라 많은 추종자가 그것을 신성불가침의 이념으로 떠받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세를 해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것과 금융시장이 자율 규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80년대 이전의 보수파들은 예산 편성에도 보수적이었다.
다시 말해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 이상은 지출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는 감세를 하면 경제가 더욱 성장해 결국 세수가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이른바 래퍼 곡선). 실상 전통적인 견해가 옳았다. 지출은 줄이지 않고 세금을 내리면 상당한 적자를 떠안게 된다. 따라서 80년대 레이건이 실시한 감세는 큰 적자를 초래했고 90년대 클린턴의 증세는 흑자를 낳았다.
21세기 초반 부시가 집행한 감세는 더 큰 적자로 이어졌다. 클린턴 시절 미국 경제가 레이건 시절만큼이나 빠른 성장을 보였다는 사실을 보고도 감세가 성장을 부르는 확실한 열쇠라는 보수파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세계화로 인해 이런 논리의 맹점이 수세기 동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은 미국 달러를 언제까지나 계속 보유할 작정인 듯했다.
덕택에 미국 정부는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고도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개도국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딕 체니 부통령이 임기 초반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80년대의 교훈이었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말한 것도 그 때문일 듯하다. 레이건 시대의 둘째 금과옥조는 금융 규제 완화다.
레이거니즘의 진정한 신봉자와 월스트리트 기업들이 암암리에 손을 잡고 주창했으며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민주당원들도 복음처럼 떠받들었다. 이들은 대공황 시대의 글래스-스티걸법(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했다) 같은 해묵은 규제가 혁신의 숨통을 조이고 미국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긴 해도 규제 완화의 결과 혁신적인 신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그중 하나인 부채담보증권(CDO:회사채, 금융사 대출채권 자산담보증권 등을 한데 묶어 만든 신용 파생상품을 말한다)이 현 금융위기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래도 공화당에는 이런 현실을 깨닫지 못한 의원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이 내놓은 구제금융안의 대체 법안 중 헤지펀드에 대한 감세를 확대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걸 보니 말이다. 문제는 월스트리트가 가령 규제가 가벼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실리콘 밸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정부가 투명성을 담보하고 투자자들의 돈으로 부담할 수 있는 위험을 제한해야만 번창할 수 있다.
금융산업이 다른 점 또 한 가지는 한 금융기관이 붕괴하면 주주와 직원들뿐 아니라 무고한 구경꾼들도 다수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부정적인 외부성(negative externalities)’이라고 부른다. 레이건 혁명이 위험하게 표류한다는 조짐은 지난 10년 사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초기의 경고음은 97~98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태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들이 미국의 충고와 압력에 따라 90년대 초반 국내 자본시장을 자유화했다. 핫머니(투기성 단기유동자금)가 양국 경제로 물밀듯 밀려들기 시작해 거품을 키워놓은 뒤 경제 불안의 조짐이 나타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많이 듣던 소리라고? 한편 중국과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은 미국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금융시장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거나 엄격히 규제한 결과 피해가 훨씬 작았다.
둘째 경고음은 미국 적자의 구조적인 누적이었다. 97년 이후 중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미국 달러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고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금융 쇼크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9·11 이후의 미국으로선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덕택에 미국은 세금을 내리고 흥청망청 돈을 쓰고 예산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두 번이나 값비싼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누적되는 막대한 무역적자(2007년에는 연간 7000억 달러)는 분명 더는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며 조만간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돈을 맡기기에 미국도 썩 좋은 곳이 아니라는 판단을 굳힐 판이었다. 미국 달러의 약세는 그런 시점에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 체니의 말과는 달리 적자는 분명 큰 문제다.
미국 내에서도 월스트리트의 붕괴 훨씬 전부터 규제 완화의 문제점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주가 역내 에너지 시장의 규제를 푼 뒤 2000~2001년 전력요금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엔론 같은 비양심적 기업들은 이런 틈을 타 잇속을 챙겼다. 하지만 엔론은 2004년 다수의 다른 기업과 함께 파산했다. 회계 기준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선 지난 10년 내내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미국의 고소득 고학력자들에게로 몰린 반면 근로계층의 소득은 정체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으로 이라크 점령 실패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미숙한 대응은 상의하달형 공공 부문의 약점을 노출시켰다. 레이건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예산 지원이 적어 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진 결과다.
이 모든 것은 레이건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은 민주당이 설득력 있는 후보와 주장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미국의 특정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저학력 근로계층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에 근거해 사회당·공산당 등 좌파 성향의 정당에 꾸준히 표를 던진다.
반면 미국에선 저학력 근로자들이 좌파와 우파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중 이들은 거대한 민주 연합을 지지했다. 이 연합은 60년대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까지 유지됐다. 그러나 닉슨과 레이건 정부 때는 공화당에 표를 주기 시작하더니 90년대에는 클린턴 지지로 돌아섰고 조지 W 부시 때는 다시 공화당으로 복귀했다.
이들이 공화당에 투표할 때는 종교, 애국심, 가족의 가치, 총기 소유 같은 문화적 이슈들이 경제 현안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이들 유권자 그룹이 11월의 선거를 판가름할 것이다.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 같은 소수의 경합 주에 이들이 몰려 있다는 점도 작지 않은 요인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더 정확히 반영하지만 거리감이 있는 하버드 출신의 오바마 쪽으로 기울까, 아니면 매케인과 세라 페일린처럼 더 동질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줄까?
미국인들은 29~31년의 대규모 경제위기를 겪은 뒤에야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08년 10월에 다시 그 시점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상처받은 미국식 민주주의
미국 브랜드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는 민주주의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민주 정부를 후원하려는 미국의 의지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이런 이상주의적 성향은 지난 한 세기에 걸쳐 변함이 없었다. 우드로 윌슨의 국제동맹(국가 간 협력과 평화 촉진을 위해 설립된 조직)으로부터 루스벨트의 4대 자유(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빈곤과 공포로부터의 자유), 레이건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에게 “이 벽을 허물자”고 촉구한 일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민주주의의 확산(외교, 시민사회 단체 지원, 자유 언론 등)에 대해선 아무런 이론이 없었다. 요즘의 문제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내세워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군사 개입과 정권 교체를 의미하는 완곡 어법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이다(이라크 점령에 따른 혼란도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나쁘게 했다).
중동은 특히 미국의 어느 정부에나 지뢰밭이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비민주적 우방을 지지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단체들과의 협력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이 ‘자유의 의제’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신빙성이 별로 없다. 부시 정부의 고문 스캔들 또한 미국 모델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걸 증명할 만큼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뒤로 많은 외국인의 눈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관타나모 만과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두건 쓴 수감자가 미국의 상징으로 비치게 됐다.
미국 브랜드의 미래
한달 뒤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든 미국과 세계 정치의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될 것이다.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점유 의석수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 붕괴가 실물경제로 확산됨에 따라 국민의 분노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다. 이미 다수의 경제 분야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미국은 지금껏 차지했던 제왕적 지위를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난 8월 7일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이 뒷받침한다.
무역협정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을 통해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능력도 미국의 금융시장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위축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념, 충고 심지어 지원까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지금보다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미국 브랜드의 부흥에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할까? 버락 오바마는 최근의 금융위기에 따르는 부담이 가장 적은 듯하며 당파를 초월한 스타일로 현재의 정치적 분열을 초월하려 한다.
본질적으로 그는 실용가이지 이념가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의 여론 조성 능력이 엄격한 검증을 받게 될 듯하다. 공화당뿐 아니라 제멋대로 구는 민주당원들을 품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최근 몇 주 사이 나름대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어조로 월스트리트를 성토하고 증권거래위원회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의 해고를 촉구했다.
악을 쓰고 발길질을 하며 버티는 당을 탈(脫)레이건 시대로 이끌 수 있는 인물은 공화당에선 그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정말로 어떤 색깔의 공화당원이 될지, 어떤 원칙으로 새로운 미국을 정의할지 아직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의 영향력은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이나 러시아 모델이 미국 모델보다 두드러지게 나은 모습을 보일지는 확실치 않다. 미국이 30년대와 70년대 커다란 좌절을 딛고 일어선 것은 미국 체제의 적응력과 미국인들의 회복력 덕택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또한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첫째 세금·규제와 관련해 레이건 시절의 속박을 벗어던져야 한다.
감세를 하면 기분은 좋지만 그것이 늘 성장을 촉진하거나 세수 증대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미국의 장기적인 재정 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는 국민 스스로가 자신의 경제력으로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실토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든 아니면 급변하는 시장을 당국이 따라잡지 못하든 최근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상상도 못할 희생이 따를 수 있다.
자금 부족에다 전문성 결여 그리고 사기 저하에 허덕이는 공공 부문을 완전히 개조하고 자부심을 새로 심어 줘야 한다. 몇몇 특정 분야는 정부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이행하다 보면 물론 과잉의 위험도 따른다. 금융기관은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지만 다른 경제 분야도 그런지는 확실치 않다. 자유무역은 변함없이 경제성장의 강력한 원동력일 뿐 아니라 미국의 외교 수단이기도 하다.
미국은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켜 주려 하기보다 그들이 세계적인 환경 변화에 적응하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감세가 번영에 이르는 승차권이 아니라면 무절제한 복지 지출도 예외가 아니다. 구제금융 비용과 장기적인 달러 약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 위협이 대두될 것이다. 무책임한 예산정책을 펼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기 쉽다.
미국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외국인은 줄어들겠지만 다수는 여전히 레이건 모델의 특정 측면을 따르며 혜택을 볼 것이다. 그것은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유럽 대륙의 근로자들은 여전히 긴 휴가, 짧은 근로 시간, 고용 보장 등 다수의 혜택을 누린다. 이는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언제까지 정부가 그 뒷돈을 댈 수는 없는 법이다.
월스트리트 위기에 대한 알맹이 없는 대책은 정치야말로 미국에서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한 분야라는 점을 말해 준다. 레이건 혁명은 진보파와 민주당의 50년에 가까운 미국 정치 지배를 깨고 시대의 문제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에 참신했던 이념이 딱딱하게 굳어 빛바랜 도그마로 변했다.
정치 토론은 아이디어 자체뿐 아니라 상대방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파당주의로 질이 나빠졌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처한 험난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따라서 미국 모델의 궁극적인 시금석은 또다시 자기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는 점이 될 것이다. 훌륭한 브랜드 형성은 어느 대통령 후보의 말마따나 돼지 입에 립스틱을 바르는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좋은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 민주주의 앞에 큰 과제가 던져졌다. [필자는 존스 홉킨스대 고급국제연구 대학원의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다.] <<뉴스위크한국판 2008년 10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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