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04년만에 되찾은 부산시민공원 가보니
일제가 강탈, 해방뒤 미군기지로
'땅 되찾기' 시민운동끝 돌려받아
부산시가 기증수 등 심어 숲 조성
아픈 역사 담긴 시설물 보존
"반환 미군기지터 활용 모범사례""죽기 전에 다시 우리 땅을 밟아보니 너무 기쁩니다."
15일 서명기(76·부산 동래구 사직동)씨는 다음달 1일 개장을 앞둔 부산시민공원을 둘러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빠졌다. 70여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은 내가 어릴 때 경마장이었다. 해방이 되자 일본군이 물러간 뒤 미군이 점령했다. 멋진 공원으로 다시 돌아오니 너무 반갑다"며 웃었다.
주한미군 기지였던 부산 하야리아(Hialeah·맞는 표기는 하이얼리아)부대의 터가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설치된 지 64년 만이다. 일제 강점이 시작됐던 1910년을 기준으로 하면 104년 만이다.
이날 부산시가 임시로 개방한 부산시민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속살이 공개된 시민공원 곳곳을 둘러보며 탄성을 질렀다. 공원의 숲길은 다섯개의 주제로 이뤄졌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주둔기의 흔적과 기억을 담은 시설물과 조형물이 들어선 '기억의 숲길'과 다양한 문화예술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의 숲길',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는 '즐거움의 숲길', 사계절 변화 체험의 공간인 '자연의 숲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나무들이 들어선 '참여의 숲길' 등이다.
공원 중앙의 잔디공원에는 4만㎡ 규모의 파릇파릇한 천연 잔디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돗자리를 깔거나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도심 공원인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연상하게 했다.
공원 오른쪽의 '참여의 숲'은 시민들이 기부한 나무들로 빼곡했다. 시민 5300여명은 지난해 도심 공원을 지켜달라는 뜻으로 1만원에서 몇백만원씩을 부산시에 냈다. 최상갑(56·건축사)씨는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도심공원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180만원을 내 한 그루를 기증했다. 시민들의 뜻을 모아 만든 공원이 대대로 보존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민공원은 부산의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부산 부산진구 서면 근처 범전·연지·양정동의 53만3828㎡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엔 경마장과 일본군 기마부대 훈련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8월 해방 뒤 주한미군기지사령부와 미국영사관 및 국제연합 산하 기구들이 번갈아 들어섰다.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 병력과 보급품을 미국 본토에서 조달받아 전국의 미군부대로 전달하는 주한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다시 설치됐다. 미군은 이곳의 이름을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도시인 하야리아라고 불렀다. 하야리아는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을 지닌 인디언말이다.
하야리아기지는 1980~90년대 부산지역 반미시위대의 표적이었고 도심 발전을 가로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에 1995년부터 시민들이 하야리아 땅 되찾기 운동을 시작했다. 부산시도 2004년 8월 하야리아기지 터를 근린공원으로 지정하며 반환을 압박했다. 마침내 2004년 8월 미군은 기지를 국방부에 반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들은 다시 일어섰다. 하야리아 터를 무상으로 돌려달라는 운동이었다. 정부는 2005년 공원조성비의 67%를 국비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2006년 8월 미군은 56년 만에 부산을 떠났다. 부산시는 국방부와 다시 협상을 벌여 2010년 1월 하야리아 터 관리권을 넘겨받아 2011년 8월 부산시민공원 착공식을 열었다. 부산시는 국비 3439억원을 포함해 6679억원을 들여 2년8개월 만인 다음달 1일 개장식을 연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하야리아 터를 시민공원으로 만든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다. 공원으로 전환할 예정인 전국 미군기지 터 활용의 모범 사례로 본다"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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